-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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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난 따뜻한 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난 인류를 위해 큰 일을 할것이라 생각했다. 꿈많고 이상이 높았던
어린시절,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행동하고 사고하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모든 게 모호했지만 예술을 내 인생의 밥벌이로 정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대학 진로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예술은
힘들다고 걱정을 하셨고, 난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사진한장
진지하게 찍어본 적이 없지만 내 머릿속의 그 알 수 없는 모호함이 날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난 모르긴 모르지만 내가 특별한 예술적 재능이 있고 특별한 일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수능 점수에 맞춰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복수전공으로 영상학을 선택하고 영화 수업을 할 때였다. 2인 1조로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과제였다. 우리조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청계천에 관해서 다큐를 찍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을 헐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딱 적절한 주제였다. 이틀을 날을 새서 대충의 콘티를 완성하고, 카메라를
들고 청계천으로 갔다. 나에게는 떨리는 첫번째 야외촬영이였다. 헌데
흥분되기보다는 조금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즐겁기 보다는 피곤하고 모든게 다 귀찮았다. 난 나에게 조금 실망했다. 그토록 원하던 일을 하는데, 피곤하고 힘들다는 생각하는 내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갔던 조원은 고등학교때부터 영상을 만들던 친구였다. 나처럼 예술에
대해 모호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확실하고 거침이 없었다. 눈빛은
살아있고 쉬는 시간에도 앵글을 구상하거나 인터뷰 내용을 살피면서 콘티를 수정했다. 적어도 그녀는 자기가
하는 일을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난 그녀 옆에서 가끔씩 헛소리만 해대는 귀찮은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정말 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지, 학창시절
열병처럼 날 이끌던 꿈이 진지했던 것인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영상에 흥미를 조금씩 잃어감과 동시에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재미로 기타를 치긴 했지만 뭔가 성이 차지 않았다. 조금은 더 진지하게 음악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직장인 밴드에 들어갔다. 밴드활동은 생각처럼 너무 즐거웠다. 하모니가
맞아 들어가는 희열은 최고였다. 거기다가 리더형의 수완이 좋아 우리는
2주마다 술집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손님들은 우리에게 크게 집중 하지 않았지만 나름
예술을 하고 있다는 맛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딱 그때쯤 밴드활동에 실증이 났다. 바쁘다는 핑계를 댔지만 밴드의 생리를 알게 되면서 서서히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연습에 대해서 진지함을 잃어갔다. 연습을 하는둥 마는둥 더이상 발전도 없이 정체되면서 밴드활동은 피곤하고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좋아서 했던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이리도 성의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는 연습은 이제 재미가 아니라 고통이 되었다. 연습부족. 맞다. 진지하게 음악을 하기에 난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난 필살기는 진지함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진지하게 접근하지 못한다면 발전할 수 없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이야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꾸준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연습하지 않고서 필살기를 갖겠다는 것은
헛소리일 뿐이다. 연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술의
모호함은 연습을 통해서 걷어내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 난 진지함이 부족했다. 그냥 말로만 꿈을 외치는 공상가였다.
최근 시험공부를 했다. 바쁜 회사가 싫어서 이직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일요일은 학원에 종일 앉아 있었고 평일에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공부를 했다.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같은 부서의 4명중 3명은 중간에 그만뒀지만 난 쉽게 포기가 안됬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였고, 공부가 적성에 맞아서는 더욱더 아니였다. 음악이나 영상이니 하는 것들보다 몇갑절 지루한 일들이였지만 진지하게 임했다.
예전과 다르게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진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비록 하기 싫은 공부였지만 진지하게 대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었다. 공부하는 습관은 날 성장시켰고, 인내심과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많은 것들을 포기했지만 그 부분은 새로운 것들이 매꾸어 주었다. 이상하다. 정작 하고 싶은 예술은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만 끝나버렸다. 훌륭한 영화감독이 되는 것도, 멋진 음악을 만드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얻은 것이 없다. 열심히 하지 않는 자신과, 재능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만 얻었을 뿐이다. 하지만 회사 일이나 공부는 달랐다. 비록 가슴이 뛸 정도로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였지만 묵묵히 하다 보니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단연 하나이다. 하고 싶은 것인지 하기
싫은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지함의 문제였다.
내 밥벌이와 미래에 대해서 아직도 고민이 많다. 영상과 음악은 이제
내 밥벌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속에서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재능많은 친구들을 보았다. 전문 예술인이 되기에는 지금의 난 너무 지쳐있고 의지도 없다.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 역시 내 평생에 밥벌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난
이곳에서 임원을 단다거나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능력도 안되지만 일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무엇보다 반복적인 이 일은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다.
더이상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험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다. 자격증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건 끔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난 새로운 일을 찾았다. 이번엔 정말 다행이다. 다행히 하고 싶으며, 어릴 적처럼 철없이 내 꿈을 대하지도 않을테니깐…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내 마음을 파고든다. 됐다. 적어도 나에게 이정도면 충분하다. 내 인생의 후반부의 마지막 밥벌이로
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원하는지는
일단 재쳐두려고 한다. 하기 싫은 공부도 열심히 하다보면 도움이 되듯,
진지하게 수련한다면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분명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진지함이다. 필살기를 얻기 위해서는 진지해져야 한다. 필살기는 요령이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진지하다면 이런 것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철없이 날려버렸던 내 꿈을 위해서라도 지금 목표에 대해
진지하고, 또 진지하게 대해야 겠다. 작가가 된다는 게 어디
쉬운일이겠는가? 온 맘을 다해서.. 하지만 실천은 우직하고
단순하게.. 내 생의 마지막 필살기를 익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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