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닝덱
- 조회 수 2080
- 댓글 수 15
- 추천 수 0
'오늘도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봄날이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침, 맞은 편에서 유모차에 아들은 태운 아빠가 밝은 미소를 띄고 어딘가를 바삐 가고 있다. 부자가 즐거워 보였다.
'우리 아들도 한창 클 나이인데, 아빠가 못 놀아줘서......'
이렇게 날 좋고, 가족들이 산책하기 좋은 날에 연구원 과제를 수행하는건 상당히 고역이다. 아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이 유난히 두드려지는 것 같고, 나 또한 가족들과의 여유로운 한때를 간절히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부터 시작한 책 읽기와 워딩작업이 벌써 다섯 시간째. 정해진 책을 읽고 감명깊은 글 귀를 옮겨 적고, 그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적는 것. 주말 이틀은 거의 꼬박 이런 방식의 과제에만 몰두해야하는 실정이다. 어제도 14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오늘도 그 정도는 해야할 것 같지만 마냥 더딘 진도가 불안을 가중시킨다. 속도를 내어 다섯 시간째 워딩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서서히 몸와 마음이 긴장을 하게 되고 이내 불안해진다. '과연 기한 내에 제출할 수 있을 런지......' 목이 뻐근해오고 허리가 아파온다. 근처 커피숍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자리도 불편하다. 창밖에선 여전히 가족들이 삼삼오오 나들이를 가고 있다. 우울하고 외롭다. '그래도......' 조금 작업에 속도가 붙나 싶더니 배에서 신호를 보낸다.
'꼬르륵 꼬르륵'
'에이, 밥이나 먹으로 가자.'
오늘도 혼자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언제나 그렇듯 자장면 한그릇...... '이놈의 동네는 도대체 제대로 된 백반집 하나 없냐.' 고깃집과 술집이면 몰라도 서울 속 비싼 땅값에 수지타산 맞지 않는 백반집이 있을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 괜한 심술을 부려본다. 이렇게 우울할 때 혼자 먹는 점심은 잘 넘어가지도 않는다.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다시금 후회 짙게 깔려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책을 낼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전문분야도 없고, 책과 글도 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그런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이 과정을 나는 진정 원했던 걸까?'
'...... ......'
'잘해낼 수 있을꺼야. 그래도 넌 할 수 있을꺼야. 네가 원했던 거잖아'
애써 자신감을 불어넣지만, 앞은 보이지 않고, 불편한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처럼, 그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육지에 도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고독한 선장처럼, 나는 오늘도 이렇게 홀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따뜻한 대지에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김대성. 작가이자 사회활동가. 이 글은 지난 4월 3일 세상을 떠난 故 김대성 작가의 30대 시절, 그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남겨놓은 일기 중 일부이다. 향년 70세. 일기에서 보듯 스스로 서기 위해 1만 시간을 이처럼 외롭게 정진했던 그였다. 결국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작가로 거듭난 대표적인 인물들 중의 한명이 되었다.
김대성 작가는 40세가 되던해인 2017년, 졸업 후 입사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작가로 두번째 인생을 살게된다. 그가 작가가 된 계기는 우연치 않게 찾아 왔다. 30대 초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회사생활에 회의를 느낀 한 청년은 어느 날, 서점에서 낯익은 책을 발견하게 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이 책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까지 '변화경영'과 '자기경영'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변화경영 시인'으로 불리던 故 구본형 선생님의 데뷔작이자 베스트셀러였다. 밋밋한 삶에 변화를 원했던 김대성 작가는 개인과 직장인의 변화에 대해 명쾌한 방향을 제시한 이 책을 접하고 구본형 선생을 멘토로 삼게 되었고, 작가를 꿈꾸게 된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3년, 김대성 작가는 그가 멘토로 삼은 구본형선생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스승이 직접 진행하던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고 운좋게(죽기 전까지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합격하게 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작가가 그토록 모시기를 원했던 스승, 구본형 선생님은 갑작스런 병환으로 그 해 4월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대성 작가가 스승, 구본형 선생을 처음으로 만난 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만남이었고, 이는 처음이자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기도 했다. 제자와 스승은 손을 꼭잡고 몇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픈 몸으로도 그들을 선발하고 그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안타까워하는 스승을 보고 작가는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가 되어 스승님을 빛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후 김대성 작가는 자신과의 싸움, 작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위의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처럼, 홀로 공부해야하는 그 시간을, 치열하게 질문하고 번민했던 그런 시간을 1만번이나 반복하게 된다. 그러기를 몇 년, 드디어 그는 그의 첫 책을 내게 된다 . 일상과 순간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려낸 '일상이 예술이 되는 찰나, 순간의 붙잡음'이라는 다소 긴 제목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삼십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이 바라본 일상, 그리고 의미없이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을 예술로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 책이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 후로 2년 뒤, '남자, 영화처럼 살다'라는 두번 째 산문집을 출간. 업무로 일상에 찌든 직장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작가로서 인정 받기 시작한다.
그 후로 매년 한 권정도의 책을 꾸준히 발간하던 그. 김대성 작가는 주로 일상과 영화,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제로하여 대중들과 언제나 가깝게 지내고자 했다. 김대성 작가는 그 뒤로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한다. 그 중 몇 편의 시나리오도 써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박찬옥 감독의 스릴러 '너를 보다'와 봉주노 감독의 미스테리 '스탠드 아래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대성 작가의 인생 후반부는 작가로서 보다는 사회사업가로서 활동으로 채워진시기 였다. 그의 나이 55세 때, 강원도 춘천 동면에 작은 노인공동체를 조직한다. 그곳에서 그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생의 후반부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많은 활동 - 글쓰기, 그림그리기, 노래하기, 여행가기, 사회 활동하기 등 - 을 지원하고 운영하면서 많은 외로운 노인들의 뒷인생을 즐거움으로 채우는데 앞장섰다. 작가는 죽기 전까지 그곳에서 여느때와 다르지않게 친구들, 즉 같이 지내는 노인들과 공동집필작업과 사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생을 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작가는 얼마 전, 본지와의 인터뷰(2048년 4월 7일)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내 스승님은 언제나 별이 되고 싶어하셨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하고 큰 별이 아닌,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게 해주는 달빛처럼 그렇게 은은한 별, 작지만 없어서를 안되는 북극성 같은 그런 별 말이지요. 그 분은 결국 그렇게 되셨어요. 잘 아시겠지만, 그 분의 꽤 많은 제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 곧곧을 비추어 주고 있지요. 전 제 인생에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토록 원하던 글을 쓰며 사는 인생을 살았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어져 살고 있지요.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바래본다면, 저도 제 스승님처럼 그렇게 아주 자그마한 별이 되었으면 하는게 제 작은 바람이지요. 제가 이 세상에 없어도 어떤 이의 어두운 가슴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 결국엔 그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별이 되는 것, 그게 제 마지막 바람입니다. "
김대성 작가는 결국 그의 바람대로 되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별이 되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472 |
[5월 2주차] 지금 이 순간 ![]() | 라비나비 | 2013.05.13 | 2022 |
» | 9-2 마침내 별이 되다 (DS) [15] | 버닝덱 | 2013.05.13 | 2080 |
3470 |
5월 2주차 칼럼 -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이유 ![]() | 유형선 | 2013.05.13 | 2156 |
3469 | #2. 필살기는 진지함이다. [8] | 쭌영 | 2013.05.13 | 2051 |
3468 | 떠날수 밖에 없는 이유 - (9기 최재용) [16] | jeiwai | 2013.05.11 | 2492 |
3467 | 산 life #3_노적봉 [6] | 서연 | 2013.05.09 | 2904 |
3466 | 2-4 너는 나의 미로 | 콩두 | 2013.05.08 | 2310 |
3465 | 가까운 죽음 [12] | 한정화 | 2013.05.07 | 2419 |
3464 | 산 life #2_마이너스의 손, 마이더스의 손 [1] | 서연 | 2013.05.07 | 2614 |
3463 | 저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6] | 한젤리타 | 2013.05.06 | 2195 |
3462 | (No.1-1) 명리,아이러니 수용 - 9기 서은경 [13] | tampopo | 2013.05.06 | 2033 |
3461 |
[5월 1주차] 사부님과의 추억 ![]() | 라비나비 | 2013.05.06 | 2358 |
3460 |
연 날리기 (5월 1주차 칼럼, 9기 유형선) ![]() | 유형선 | 2013.05.06 | 2272 |
3459 | 나는 하루살이 [14] | 오미경 | 2013.05.06 | 2184 |
3458 | Climbing - 6. 오름에도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1] | 書元 | 2013.05.05 | 1989 |
3457 | #1. 변화의 방향 [7] | 쭌영 | 2013.05.05 | 2086 |
3456 | 9-1 마흔 세살, 나의 하루를 그리다(DS) [7] | 버닝덱 | 2013.05.04 | 2168 |
3455 |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9기 최재용) [19] | jeiwai | 2013.05.04 | 2094 |
3454 |
시칠리아 미칠리아 - 소설 전체 ![]() | 레몬 | 2013.05.01 | 2213 |
3453 | 시칠리아 미칠리아 - 몬스터 (수정) [2] | 레몬 | 2013.05.01 | 22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