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mpo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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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1. 자기경영 --- 죽어야 사는 여자 |
1. 변화Story-명리, 아이러니 수용 (한계에 대한 사랑)
2. 변화Story-민낯 드러내기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3. 변화Story- 도끼 한자루, 습관의 씨앗 (시간과 호흡하는 실천력)
4. 변화Story-‘구본형’ 정신 (매일 되살아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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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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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식할 정도로 용감했던 그녀가 어느 순간 덜걱 겁이 났다면,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세상 살면서 무언가 식겁(食怯)한 경험을 했다는 거다. 한 살짜리 어린애가 있다. 부모가 “지지”하며 저지를 해도 겁 없이 뜨거운 목욕물 속에 야들야들한 고사리 손을 쑥 집어넣는다. 순간, “앗 떠”의 경험을 하고난 뒤에는 다음부터 “목욕하자” 하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든다.
누구나 처음에는 아무런 동요 없는 투명한 상태였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맞이한다. 그 경험들은 내 몸에 고난의 화살로 날아와 박히기도 하고, 든든한 밥 한 그릇이 되어 힘으로 충전된다. 그리고 달콤한 쵸콜릿 한 조각같은 위로와 사랑을 주기도 한다.
하얀 빛깔의 도화지 같은 태초의 어린애가, 세상살이를 통해 '나라는 에고(자의식)'가 강력하게 생겨나고 그 놈의 에고는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가면(페르소나)'으로 자신을 위장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유난히 좋아하는 나만의 가면이 있고 그 가면을 계속 고집하는 순간, 내 마음의 갈등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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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화장을 지운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내가 있다. 화장 지운 생얼(생 얼굴)이 영 불만스럽다. 더 윤기나고 예쁜 모습이고 싶다, 화장한 것 처럼.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참... 화장하기 전의 모습도 나이고, 화장한 모습도 나이고, 화장 지운 뒤의 모습도 나인데....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하는 것이 바로 나인데... 그냥 그렇게 있는 존재 그 자체의 나인데....?”
나는 언제부터 화장의 둔갑술을 사용하고 민낯에 색깔 입히기 시작했을 까.
나의 무식한 용감함이 사라졌던 그 순간이다. 그 때 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 날 것의 감정을 뿜어내는 것에 더욱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불편하다’는 감정은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기도 하고 뭔가 있어보기고 싶은 ‘신비주의 전략’으로 연막전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거절당하기 싫은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또 생각에 잠긴다.
"아니 도대체 누가 나를 거절하고 또 누군가 거절했다고 한들, 이미 나는 나인데 내가 그러면 어떻고 또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떠냐? 거절 당하면 당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끝이지 않은가? 타인의 마음, 내가 어찌 할 수 없으면 그걸로 땡~ 이지 미련을 두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뭘 바라냐?”
맞는 말이다. 그리고 거울 속에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도 보였다. 화장처럼, 내 마음도 생겼다 지워졌다 요동쳤다.
그러기에 또 언제 바뀔 지 모르는 내 마음에 너무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부끄러운 순간에도 약간의 쪽팔림 후에 모두 다 지나가리니.
그 옛날, '무식해서 용감했던’ 은경이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 ‘용감함’을 신에게 반납하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똥바가지 뒤집어 쓰듯 옴팡 뒤집어썼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두려움의 트라우마를 안은 채, ‘민낯 드러내기’ 연습을 해야 했다.
인생은 좌충우돌하며 갈 지(之)자로 걸으며 균형을 잡아가는 여행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어김없이 반작용으로 튀어 올라오는 강한 펀치를 맞본다. 그것은 쓰라린 고통이다. 고통은 자신의 자만과 오만을 깨닫게 한다. 눈물 흘리며 자신의 무지를 발견하는 순간, 어느 듯 인생은 성숙과 깨달음이 나에게 선물한다.
***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 앉았다. 화장을 한다.
온전한 내 빛깔이 더욱 아름답게 어우러져 나도록 복숭아 빛 새도우도 살짝 볼 터치를 한다. 또 클렌징 로션을 듬뿍 솜에 묻혀 민낯을 가렸던 화장기를 말끔히 닦아 낸다. 자체 발광이다. 눈에서 빛이 난다. 누가 뭐래도 거울 속에 보이는 내가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좋다. 그러면 그만이다.
이른바 ‘생얼’은 자기 스스로가 아무런 꺼리림 없을 때 가능하다. 화장 하든 하지 않든 나 자신에 이 색깔을 입혀도 좋고 저 색깔을 입혀도 좋을 때 생얼 역시 거부감 없이 좋다. 여러가지 맛의 내 얼굴, 그것이 바로 나다. 자유자재 변신 가능한 자유로움. 나는 나만을 내 마음대로 그려보는 것이 인생의 재미이고 놀이다.
'무식함'은 나에게 '용감함'을 주었고 '용감함'은 나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그리고 '두려움'은 나에게 '용기'를 선물했다. '용감함'과 '용기'는 언뜻 비슷해 보이나 분명한 어감의 차이가 있다. '용감함'은 '무지'와 함께 간다. '용기'는 '깨달음'과 함께 가는 성숙의 힘이 느껴지는 단어다.
나는 또 한번 엎어지고 나서야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얻었고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언덕을 넘었다.
2013.5.13(월)
서 은 경 쓰다
저는 9기 연구원 과정의 그 허벌나게 빡센 일정에 집중하다보면
자기 자신에게 에너지를 쏟아붓는 거기 땜에
14살이 된 아이를 기르면서 '어머니' 역할에 갔던 에너지가 다시 자신에게로 향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의 생얼이 꽃피지 않을까 생각해요.
13살까지는 유럽에서는 아이를 혼자 두면 부모가 처벌받는대매요?
'곁에 있어주는 엄마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자신을 누르고 옆에 있어줄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자율성을 좀 가져야할 때 엄마의 일로 바빠지면서 자신을 돌보는 엄마 덕분에 아이는 더 좋을 것 같아요.
수요일에 살롱9에서 만나 후 돌아와 드는 생각이었어요. 은경님^^
살롱9에서의 콩두님과의 시간, 정말 정겹고 유익했어요.
차분하게 이야기를 펼쳐놓는 모습이 새 색시다운 홍조빛 빰같았답니다...^^
콩두님.
콩두님이 쓰실 여성 & 신화 이야기 궁금합니다.
저 역시 책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고 무척 반가왔답니다..
그리고 사부님의 그리스인 이야기 책을 펼칠 때 마다
마음 속 한 구석 불편함을 [우속여] 속의 여신들을 불러 달래곤 했답니다..
다시 오늘부터 저는 [신화 이야기]를 읽습니다.
history 옆에 쭈그리고 앉아 herstory를 속으로만 조용히 이야기하는 그들을
어찌 생생하게 살려내야 할 지 깊이 생각 좀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