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i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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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어느 날, 나는 어린 두 아들과 애들 엄마와 함께 싱가포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손에는 편도 승차권만이 쥐어져 있었다. 언제 다시 한국에 온다는 기약 없는 순간이었다.
떠나기 몇 달 전이다. 싱가포르의 한 거래처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에 왔는데 나를 좀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직원 70여명을 거느린 해운 중개회사 사장으로 당시 내가 근무하는 회사와 거래관계가 있었다. 굳이 갑을 관계로 치면 ‘을’의 입장에 있는 회사였다. 나를 깍듯이 맞이하면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자기네 회사에 한국인 중개업자가 필요한데 나에게 자신과 같이 일해보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구체적인 계약조건도 제시했다. 중개업자는 고객에게 최신의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때로는 고객의 변덕스런 요구까지 들어주어야 하는 고달픈 직업이다. 물론, 그 서비스 대가로 중개 수수료(때로는 거액의)를 받지만 말이다. 고객이 간과하는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꼼꼼한 성격도 아니고, 고객 감동을 줄 정도로 남을 섬기거나 비위를 맞출 자신도 없어 사양을 했다. 더구나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업 영역이었다. 그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사실, 당시 직장생활 10년이 지나자 매너리즘에서 빠져 있어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긴 했다. 며칠을 고민 후, 나는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삶, 그리고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속한 팀은 ‘다국적’ 팀이었다. 싱가포르를 제외하더라도 미국, 일본, 노르웨이, 말레이시아, 인도, 그리고 한국에서 차출된(?) 용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로 가치관은 달라도 이익 시현이라는 목표는 같았다. 저마다 자국의 고객을 위해 일을 했다. 동종업계의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상대방 고객의 최신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계약 금액 기준으로 수수료를 받으니 매일 한 건이라도 더 성사시키기에 정신이 없었다. 데스크는 매 순간 전화가 쉼 없이 울려댔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그리고 노르웨이어가 뒤섞여 시장 한 복판처럼 시끄러웠다. 말 그대로 도가니 (melting pot)! 그 자체였다.
새로운 보스 밑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의 부하직원은 나와 이제 동료가 되었다. 전에는 내게 “Yes, sir, boss”하며 대답을 했던 녀석들인데 이제는 같은 동료가 되었다고 마주쳐도 시큰둥했다. 나보다 네 살 많은 보스는 일을 할 때는 냉정했다. 얼굴은 무표정에 항상 굳어 있었다. 하지만 거래처를 만나면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그는 철저히 ’을’로 변신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해 피나는 노력으로 사장이 된 자수성가형 사람이었다.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뛰어난 친구였다. 그는 나를 담금질 시켰다. 내 영어에 실망해 그는 몇 달 동안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지’의 사설을 매일 읽고 요약 보고 하도록 했다.
이익 목적으로 나를 포함 외국 용병들을 영입했기 때문에 그는 철저히 투자대비 손익을 따졌다. 용병들의 손익에 따라 그는 대접을 달리했다. 당시 나와 같은 팀의 동료이자 경쟁자인 50대 중년의 한 일본인 친구는 수십 년 쌓은 거래처와의 돈독한 관계와 풍부한 실무지식으로 내 부러움을 샀다. 당연히 실적이 좋았다. 그는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날은 거래처와 골프치고, 어떤 날은 저녁 무렵에야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그래도 보스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실적이 좋으면 밖에서 무슨 짓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입이 헤벌어지게 웃으면서 그를 반가이 맞았다.
매월 나, ‘JY’라는 상품의 손익 계산서가 집계되어 그의 손으로 들어갔다. 실적이 저조하면 그는 조용히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문제가 무엇이며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시장의 변수, 거래처의 마케팅 전략변화 등 외부의 변동요인은 변명거리가 되지 못했다. 거래처를 어떤 식으로 구워삶든 이익을 내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내가 손익 분기점을 오랫동안 오르락 내리락 하자 나를 바라보는 보스의 시선도 싸늘해 지기 시작했다. 그런 보스를 매일 마주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그러는 사이 같은 팀 동료들 몇 명이 동종 업계로 옮겼다. 조직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 부담감에서 벗어 날 수 없어 전전긍긍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가까운 미래에도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없자 나는 고용계약에 보장되어 있는 3년을 몇 달 남겨놓고 사의를 표했다. 보스는 갈 데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 계약기간을 채우면서 일거리를 찾아 보라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다. 다행히 그 해 말, 전에 다니던 회사에 3년 만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새로운 보스는 싱가포르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내게 무한 신뢰를 주었다. 그 후 10년 동안 직장생활의 꽃을 피웠다. 마지막 3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기였지만.
지난 날들의 직장생활을 돌이켜본다. 거래처와의 갑을 관계, 상사와 부하직원과의 상하 관계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인간 군상들! 누가 결정권자이고 누가 실세인지에 촉수를 세우는 사람들. 서럽고 억울하고 마음 아픈 적도 있지만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거래처와 부하직원한테. 그들이 나이고 내가 그들인 것을 몰랐다 내가 그들한테 도움을 준 것보다 그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사람들이 많다. 나를 포함하여 그들 또한 ‘불완전한’ 사람들이다. 이제라도 그 불완전함을 다시 끄집어내 하나라도 배워야겠다. 그러면 완전함으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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