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 조회 수 1926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손가락 마디마디와 등이며 팔등 성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삭신이 쑤신다. 아직 몸에 배어 있지 않고 평소 사용치 않는 근육을 억지로 쓰다 보니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그 느낌은 다음날 하루의 일상을 버겁게 만든다. 내가 이것을 왜 시작한 것인지 자괴감과 함께 여느 일이 그렇듯 한 번에 쉽게 되는 것이 없음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약관의 시절. 이소룡의 영화로 쌍절곤에 심취했던 이들처럼 한때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그 영향으로 잠시 검도에 입문한 적이 있다. 호구를 쓴 포즈가 무사의 늠름한 기상을 느끼게 할뿐더러, 기합을 내지르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는 제격이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운동량은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 맨몸으로 그냥 뛰어다니기도 쉽지 않은 터에 죽도라는 도구를 들고, 쉴 새 없이 타이어와 사람을 가격하는 연습을 이어나가야 했으니.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승급심사일이 찾아왔다.
“시험 종목중 하나는 뛰면서 머리치기 2,000회를 끝까지 완료하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구호를 붙이지 않습니다. 실시.”
허걱~ 그러하였다. 상위로의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과정의 필수코스이지만 말이 2,000번이지. 스텝을 밟으며 죽도를 머리끝에서 단전까지 팔을 뻗어 호기 있게 내치며 기합을 외친다. 하나, 둘, 셋……. 횟수가 어느 정도 이어갈 즈음 땀이 이마에 맺히며 발바닥과 쥐어짜는 손목에 근육이 땅긴다. 시간이 흘러가고 체력의 열세로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노라니 입신의 경지라고 불리는 9단 사범님은 일갈을 내치신다.
“목소리가 작습니다. 배에 힘을 넣고 크게.”
반환점을 돌았다. 앞으로 나머지 절반만 하면 된다. 서서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찾아온다. 내가 이 짓을 왜 하는 거지. 왜 사서 고생을 할까. 뭐가 있기에. 이러다 쓰러지는 것 아닌가. 해도 해도 그렇지. 너무 심하다. 입술이 바짝 메말라가는 가운데 숨이 턱에 차오고 팔과 다리는 천근만근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간다. 이런 나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사범이란 분은 더욱 매몰차게 수련생들을 몰아치신다. 연세가 일흔 살이 넘으신 분이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인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런 와중에 속에서는 부글부글 무언가 튀어나온다. 이런 XX.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어진다. 그냥 자동적으로 훈련된 무의식이 이어질 뿐. 그러다 어느 순간 무념무상의 상황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이 아닌 삼자가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때 내 몸은 의지를 벗어나 대뇌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 아닌 스스로의 오토매틱으로 변신한다. 종착점이 보일 즈음 숨구멍이 턱에 차면서 온몸은 덜덜 떨리며 바가지로 물을 부은 마냥 도복이며 바닥은 흘린 땀으로 홍건. 그 자리에는 구령소리와 뛰는 행위 그리고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만이 존재할 뿐 다른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번호를 속으로 되뇌는 순간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끝냈다. 드디어. 허허.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아무 생각이 없다. 해내었다는 기쁨과 희열감이 비어있는 온몸에 가득할 뿐.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십자가의 길’로,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일명 고통의 길이며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예외가 없이 저마다의 주어진 짐을 짊어지고 가야만하는 숙명의 길로 다가온다. 시련은 언제 끝나지 모른다. 인고의 세월 내내 지속이 될지도 모른다. 시지프스처럼 가파른 언덕길 바위를 억지로 꼭대기까지 올려놓지만,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굴레가 살아가는 내내 반복이 될지도 모른다. 일 년째 나의 어머니는 대학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서 투병중이시다. 일찍이 남편을 여윈 후 여인 혼자 자식 뒷바라지 고생만 하시더니, 휴식은커녕 끝내는 삶의 끝자락을 원하지 않은 곳에서 애써 부여잡고 계신다. 이곳은 병세가 좋아지기 위한 치료라는 개념보다는,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지금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개념의 장소이며, 누군가에게는 삶의 종착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기약 없이 머무르는 그들에게는 밝음이 보이질 않는다. 그곳에는 죽음이라는 녀석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중풍으로 사지를 떨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유아시절 기저귀 차는 상황으로 돌아가고, 치매이신 분의 과거의 넋두리가 가슴에 똬리 친다. 어느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억울한 자신의 삶을 원망할지 아니면 그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 빈공간의 여백이 있을지. 그럼에도 어떤 이에게는 이 암담함의 길을 단순한 시련을 넘어선 빛의 순간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다. 오래전 그때의 예수란 인물이 그랬던 것처럼 그 극심한 고통 이후에 부활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희망을 부둥켜 잡으며. 아무 걱정 없다는 듯 갓난아이와 같은 천진한 웃음을 짓는다. 걸쭉한 뽕짝 트롯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빨간색 루주로 입술을 칠하며 한껏 멋을 부린 채 패션쇼를 연출한다. 그들에게 Via Dolorosa는 절망이 아닌 슬픔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의 창구가 된다. 안도현의 <연어 이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난 말이야, 넘지 못할 벽은 없다고 생각해. 아니 오히려 뛰어오르라고, 도전하라고 벽은 높이 솟아 있는 게 아닐까? 벽 앞에서 절망하고 되돌아서는 이들을 위해 한번 덤벼들어보라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고 벽은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벽은 높고, 두텁고, 강하고, 오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이 세상 어떤 벽도 하늘 위까지 막혀 있진 않아. 그러니까 넘을 수 없는 벽이란 없는 거야. 많은 연어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시각장애 1급의 장애인이면서도 보험설계사에 도전하는 이가 있었다.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업종이기에 같은 시각장애인 친구들마저도 "회사를 얼마나 다닐 수 있겠냐. 더 늦기 전에 안마나 배우라"고 했다. 정상 시력을 가진 고등학교 친구들도 그에게 보험을 들어주지 않았다. 장애인인 그가 보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을지 못 미더워한 것이다. 첫 6개월간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지독한 노력밖에 없었다. 보험설계사 시험을 치기 위해 매일 새벽 2시까지 글자 확대기로 글자를 하나하나 확대해가며 공부를 하고 외웠다. 매일 밤 회사에 들어와 고객과 시선 맞추는 연습을 하고 보험 상품 설명 연습을 했다. 변액보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는 3주간 하루 20시간 이상 공부에 매달렸다. 그런 그가 현재는 42주 연속 매주 2건 이상 계약을 맺는 입장으로 변신 하였고, 전 세계 보험설계사들의 '명예의 전당' 격인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에도 2년 연속 이름을 올리는 지위가 되었다.
장애인의 날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서울 역삼동 PCA생명 타워지점에서 근무하는 박태완 씨의 사례다. 세상이라는 장애라는 벽앞에 굴하지 않고 그가 이렇게 당당히 우뚝 설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장애인 친구들에게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딛고 대인관계가 많은 분야에서도 당당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흠뻑 땀을 쏟고 난후 샤워를 할 때의 느낌은 카타르시스 그자체이다. 아마도 이 맛에 힘들지만 오늘도 암벽장을 찾는 것 같다. 모든 스포츠는 인생이라는 여정의 축소판이다. 마라톤을 하다가 너무 고통이 심해 차도로 뛰어들고 싶다는 유혹이 생길만큼 힘듦과 어려움은 필수이지만,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다보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쾌감을 경험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A.J.맨델이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 이것은, 주변의 환경자극이 있는 상태에서 운동을 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행복감을 말한다. 이때의 느낌은 마약과 같은 약물을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느낌 또는 그 상태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오랜 세월 험난한 외부적 조건에서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나타난 인간의 진화적 산물이다. 사냥감에서 환경에서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태생적 소산이다. 시련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라보게 하는 무언가를 기어코 딛고 일어서게 만드는 또 다른 해방구의 Via Dolorosa이다.
파도 (유승우)
파도에게 물었습니다.
왜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서느냐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파도의 대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