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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6일 11시 19분 등록

나는 나무다.

나는 땅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고, 하루하루,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싶은 꿈을 가진 나무다. 욕망 가득한 나무다. 지금은 비록 저 크디 큰 나무 아래 그늘진 이곳에 자리잡은 작은 나무에 불과하지만 내 머리 위로 보이는 하늘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매일 매일 꾸준히 뻗어나가고 싶어하는 나무다. 하늘은 나의 욕망이고 나의 꿈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뻗어가다 보면 결국 나는 풍성하고 푸릇푸릇한 입사귀 가득한, 달콤한 과실로 가득한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풍성한 입사귀들은 인생이라는 먼 길을 지나가는, 지친 나그네들이 잠시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어줄 것이다. 답답한 일상의 숨막힘을 뻥 뚫어줄 수 있는 박하향의 맑은 공기를 선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달콤함과 짜릿함 주고, 결국 함박웃음을 짓게 할 달콤한 과실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죽음을 먹고 산다. 그리고 자라난다. 내가 뿌리내린 이 땅 아래의 어둡고 축축하고 냄새 나는 흙, 그 안에 자리잡은 수 많은 존재들 - 벌레들과와 잎파리들, 오래전에 이 곳에 살며 이 땅을 밟고 뛰어다니던 백구와 그와 행복한 한 때를 보냈던 그의 주인 가족들- 그 모든 존재들이 이 땅() 속에 묻혀 있다. 이제는 생명이라 부를 수 없는 그 죽은 존재들에게서 나오는 진액과 체액, 피와 골수...... 존재의 죽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그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내게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이다 영양분이다.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삶이다. 나는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들은 내가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들의 죽음은 나에게 에너지이고 꿈이자 곧 삶이다.

나는 수 많은 죽음을 먹고 살며, 그렇게 나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저 그렇게 대충대충 살아갈 수 없다. 하루를 살더라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내 꿈을 향해 뻗어간다면 한뼘이라도 더 뻗어야 하고, 하나의 과실이라도 더 맺어야 한다. 나그네들, 인생에 지친, 일상에 지친 나그네들이 쉬어갈 수 있는 더 큰 그늘을 만들어주어야 하고, 목을 축일 수 있게 더 과실을 맺어야 한다. 나의 삶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조금 더 여유롭고, 더 행복하고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내 그늘 아래 앉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온전히 그들 자신이 될 수 있도록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어야 한다.

옆에 자리한 또 다른 나무가 나에게 말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뭐해.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뻗어나가면 뭐 할꺼야?! 사람들은 곧 너의 과실을 몽땅 따다가 시장에 내다 팔거야. 너의 몸뚱이를 싹뚝 잘라 공장으로 보낼지도 몰라. 멋진 원목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 운명이란 걸 알아?! 넌 이번 여름에 올지도 모르는 큰 태풍으로 뿌리째 뽑힐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런 운명 앞에서 넌 도망칠 수도 없어. 그저 무기력하게 서 있는, 자신의 운명을 앞에 두고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넌 그런처지란 말이야. 그런데…. 매일 매일 산고를 치루는 산모처럼,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뻗어나가려고 하다니…… 나는 도대체 널 이해할 수가 없다…….”

저 녀석뿐만 아니다. 주변에 있는 몇몇 다른 나무들도 녀석의 한숨 섞인 충고에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 일부 동의할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않다.

수 많은 삶들이 자신만의 삶을 살았고 땅 속으로 묻혔다. 그들의 죽음으로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삶이 나를 살게 만들었다. 그들의 삶은 곧 나의 삶이다.

나의 삶도 다른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진다. 친구들의 말대로 나는 폭풍우에 뿌리째 뽑혀 어딘가로 날아가버릴 운명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벌목업자에게 내 몸뚱이가 싹둑 잘릴 운명일지도 모른다. 마을 행정직원들에게 오래토록 익혀온 달콤한 과실들을 한번에 빼앗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운명일지도 모른다.

내 육체는 그렇게 소멸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토록 허무하게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진정 내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 일상에 지친 나그네들, 일상이 그들을 괴롭힐 때면 어김없이 나를 찾던 그들. 그들은 내게 기대어 앉기도 하고, 나를 둘러싸 앉기도 한다. 술잔을 앞에 두고 어제 있었던 김부장의 독단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술 한잔에 그도 사람이라며, 그런 김부장을 용서하자며, 지난 일상을 어제의 시간 속으로 던져버리곤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떤 이는 내게 기대어 먼 산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고르고 내일을 설계하기도 한다. 그의 내일은 오늘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것이다. 또 다른 이는며칠전 티격태격한 부인과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고 머리를 긁적인다. 시간이 흐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은 후련한 미소를 머금고 자리를 뜨는 그. 그는 내 몸뚱이를 '툭툭툭' 치며 어깨를 털고 집으로 향한다. 아마도 그는 집에 가는 길에 장미 한송이를 사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인에게 쑥쓰럽게 꽃을 내밀며 사과를 할 것이다. 그들 부부는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할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나를 찾아온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나와 놀기 위해 나를 찾는다. 나를 둘러싸고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내 몸뚱이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에 매달리기도 한다. 달콤한 과실을 따먹기도 한다. 내 두꺼운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달아놓고 타기도 한다.한동안 쉼 없이 놀던 아이들. 가쁜 숨을 헥헥 내쉬더니 이내 내 앞에 눕는다. 잠시 잠깐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녀석들. 곧 눈을 뜬다. 그리고 내 나뭇가지와 잎사귀들 사이사이 보이는 하늘을 본다. 눈부신 하늘. 그들이 그 하늘을 보고 있다. 그들은 하늘을 보며 내일을 꿈꿀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하늘은 그들에게 꿈일 것이다. 나와 함께 아이들도 꿈을 꾸고 있다. 나의 꿈이 곧 그들의 꿈이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내 몸뚱이는 한 순간에 소멸할지도 모른다. 옆에 있는 녀석의 말처럼, 언젠가는 그렇게 한 순간에, 허무하게 소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찾던 사람들, 나를 스쳐 지나간 나그네들, 내 몸뚱이를 타고 놀던 아이들. 그들에게 나는 괜찮은 나무로 기억될 것이다. 어떤 이는 나와 같은 나무를 심기 위해 씨앗을 뿌릴 것이고 어떤 이는 나의 그늘아래서 꾸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나아갈 것이다. 또 다른 이는 내가 없어져버린 이 장소를 추억하며, 내가 서 있었던 이곳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매일 이토록 진정으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하늘과 조금 더가까워진다면, 내 욕망에 충실하다면, 내 육체는 소멸할지라도 나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나를 찾았던 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무다.

매일매일 나의 욕망을 향해 그렇게 뻗어나가는 나무다. 그리고 결국 나는 삶이 된다. 많은 이들의 삶의 일부가 된다. 그들의 삶도 내 삶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내 삶과 내 존재는 완성된다.

나는 나무다.

 
 
 
 
 
 
** 5월 25일 있었던 오프수업 발표 자료 입니다. 칼럼 대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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