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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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정신이란 무엇인가?
9기 유형선
새벽 일찍 산길을 올라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안개 낀 새벽, 산길을 걸으면 나무도 꽃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도 땅도 구분이 모호합니다. 다만 누군가 먼저 걸었던 길의 흔적을 따라 걸을 뿐입니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 질 수도 있고, 얼굴을 할퀴는 나뭇가지나 돌연 튀어오르는 산짐승의 기척에 놀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녘에서 해가 떠 오르면 안개는 어느 새 걷히기 시작합니다. 이제 시야도 점점 넓어지고, 저만치 아래로 마을도 보이고, 산허리를 감싸 도는 구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모양새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나뭇잎의 푸르름에 취하고 한들거리는 꽃들에 반합니다. 얼굴과 전신이 땀으로 덮히지만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땀을 흘리는 만큼 바람을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흔히 등산에 비유합니다. 지리산 종주처럼 며칠 동안 걷고 또 걸어야 하는 큰 산행을 처음 떠나는 사람에게 산을 가본 사람은 누구나 말 합니다. “먼저 산을 가본 사람을 따라 가라. 따라가면서 산을 배워라. 그러면 언젠가 너도 다른 사람에게 산을 알려줄 수 있단다”. 인생이라는 산길을 가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꼭 있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그리고 여기가 어딘인지 돌연 방향감각이 사라지고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순간 우리는 당황합니다. 다시 길을 찾을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 정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이 주저앉아 버린 그 순간! 그러나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길이 바로 나의 인생 길이지요.
“어제 보다 아름다워 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구본형 스승님의 정신을 나타내는 몇 가지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승님을 만나는 가장 처음 문장이 바로 이 문장입니다. 구본형 스승님께서 밝히신 변화경영연구소의 설립 취지이며, 선생님의 삶을 표현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 문장에 취해 스승님의 책을 읽고 2010년 가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잃어버린 내 인생의 길! 잠시 자리에 앉아 스승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점심 먹을 장소를 찾거나 주말에 보고 싶은 영화를 검색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나의 내면 속 심연의 중심을 향해 밧줄 하나 허리에 묶고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뛰어 듭니다.
일하는 목적과 하루 세끼 밥을 먹는 목적부터 다시 묻습니다. 목적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인생의 길을 잃어버립니다. 도대체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때 주저 앉아버립니다. 때론 분노로, 때론 무기력으로, 때론 일상을 망각하기 위해 알코올이나 혹은 의미 없는 사랑에 목을 매는 이런저런 중독으로 채워보려고도 합니다. 다 부질 없습니다. 그럴듯하게 화려해 보이면 꽃잎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디론가 쓸려 가는 낙엽 같은 인생이지만 바람에 흩날리기는 결국 똑같습니다.
거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잡초여도 좋습니다. 내 땅에 뿌리를 내고 스스로뿌리를 내고 싹을 틔우고 잎을 내어 그늘을 만들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바람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거목으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바람에도 흔들려도 다시 몸을 곧추 세울 수 있는 풀이어도 좋습니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땅에 내려가 스스로 썩어야 비로소 씨앗이 되어 발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땅에 떨어져 어떤 씨앗을 틔울 지는 잘 모릅니다. 내 속의 가치는 사실 나도 잘 모릅니다. 다만 진실로 썩어야 하는 게 우선입니다. 이제 나는 나를 애정어리게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잘 썩어 잘 싹 틔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주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해 주고 햇볕을 쬐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어떤 무엇인가가 발아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를 찾게 됩니다. 일그러지고 못생긴 괴물 같은 모습이 나와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놀랄 수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모양새이니 놀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내 모습이니 그대로 받아 주십시오. 상처받고 외로워 떨고 있는 나를 발견 하셨나요?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담요를 덮어주고 불을 피워 불 옆에 앉히고 살포시 끌어 안아 주십시오. 나도 몰랐던 내 속의 나를 세상에 끌어내어 공원에 데려가 꽃구경도 시켜주고 이어폰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도 들려주십시오. 또 책을 골라 손에 들려 주십시오. 은하계의 법칙을 다루는 물리학 책이 좋겠습니다. 아니면 존재와 존재 사이에 흐르는 파장을 글자로 담아 낸 시집이어도 좋습니다. 내 자신에게 에게 선물하십시오. 궁극적이며 무한한 저 너머 바로 존재의 근원을 묻는 이야기일수록 더욱 좋습니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땀을 흘려주고 근육을 키워주는 헬스트레이너가 되십시오. 이 모든 대상이자 고객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진정 내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꿈을 찾아 보십시오. 욕망이라고 표현해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어린 시절 혹은 청춘의 시절에 몸을 불살랐던 꿈과 열정을 다시 기억해 내십시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과 자원이 무한정 공급될 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봐도 좋습니다. 이렇게 묻고 또 물어도 내 안의 욕망이나 꿈이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그 동안 절제하고 억제하는 훈련만 수십 년을 해 왔는데 모습을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이상한 것 입니다. 당연합니다. 내 안에 어딘가 살아있는 꿈이라는 짐승을 찾으러 떠나야 합니다.
구본형 스승님은 한달 휴가를 내고 지리산 자락의 단식원에 들어가 포도단식과 관장을 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 욕망을 찾아 내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시작해 보는 겁니다. 목표는 내 안의 ‘꿈’ 혹은 ‘욕망’으로 불리는 그것을 찾으러 가는 겁니다. 저는 내 안의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혹은 ‘녀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짐승의 발자국을 찾아 보십시오. 이제 녀석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십시오. 자주 드나드는 길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매복하십시오. 몽둥이 혹은 올가미도 필요하지만 녀석이 군침을 흘릴만한 먹이감도 함께 준비하십시오. 그래야 이 ‘짐승 녀석’을 사로 잡을 수 있습니다. 먹이감을 놓고 유인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가미를 씌우고 몽둥이를 내리쳐서 잡으셔야 합니다. 한 두 번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결국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녀석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짐승을 잡으셨다면 울거나 말거나 코뚜레를 꿰야 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이유는 남의 내 코뚜레를 꿰었기 때문입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 코에 코뚜레를 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올라 타십시오. 이제 코뚜레를 꿰고 내 말을 듣는 ‘나’라는 짐승을 몰고 가십시오. 산으로 갈수도 있고 물가로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짐승이 진정 좋아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녀석이 좋아하는 곳, 녀석이 진정 좋아하는 곳으로 가보십시오. 녀석이 가는 곳으로 녀석에게 몸을 맡기고 따라 가 보십시오. 두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낯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녀석은 내가 몰랐던 놀라운 세계를 나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
구본형 스승님께서는 늘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루 최소 2시간씩은 내 자신의 꿈을 위해 수련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루 3시간이면 더욱 좋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오로지 수련이 수련을 끌고 가는 시간이 새벽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설령 새벽시간이 어렵다면 일단 점심식사 시간을 잠시 빼어 수련하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김밥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이어도 좋습니다. 퇴근 이후 시간이어도 좋습니다. 또한 주말 중 하루의 시간을 통째로 할당할 수도 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시간을 내어 내 꿈에 투자하십시오. 수련하십시오. 아름답게 성장시키십시오. 나날이 아름답게 성장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대견해 지실 겁니다. 그 일을 평생 반복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이며, 또한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해답은 결국 아름다움으로 귀결됩니다.”
저는 이 문장을 괴테가 한 말로 기억합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찾아 보니 괴테가 한 말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는 그냥 제가 한 말로 기억하렵니다. 풀고 싶어도 풀리지 않는 인생. 그러나 풀어야만 하는 나의 인생. 누구나 당면한 숙제입니다. 이 숙제를 하지 않고 방치해 놓으면 물론 잠시나마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을 맛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아름다워 지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주변을 살피고 나를 살피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 인생은 아름다워 집니다. 이것이 제가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구본형 스승님의 정신입니다.
坡州 雲井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