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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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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8일 09시 15분 등록

 

20년 장기근속휴가로 주어진 일주일. 양쪽 주말을 포함하면 11일간의 휴가로 단식을 선택했었다. 회사를 오랜 다닌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혜인데 일종의 포상휴가인 셈이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들이밀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채우기만 하던 삶에서 비우는 삶을 경험하고자 하는 단순한 발로였다. 40년을 썼으면 한번쯤은 비워주는 것이 내 몸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단식을 하는 일주일이 번거롭기 보다는 도시락을 가지고 출근해야 하는 보식기간이 불편한 일이다. 21조로 일주일간 방을 썼다. 나와 한방을 쓰게 된 친구는 서너 살이 어렸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대화도 불편하고 하니 주체 측에서 배려를 한 조합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재미나게 이야기를 잘 하는 이였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말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 조금은 내밀한 이야기들도 오고 갔다. 벌거벗은 몸으로 일주일을 한방에서 생활하는 것은 마음까지 벗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풍욕을 할 때도 옷을 벗어야 하고 커피관장을 서로 해주다 보면 은밀한 부분을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하루에 두 번 이상 알몸을 본다는 말이다.

 

한방친구는 삼청동에 갤러리를 하고 있었다. 작가들의 그림을 기획전시하고 그 그림을 파는 일. 유명작가의 작품도 있고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일도 그녀의 몫이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텔레비젼이나 냉장고 자동차같은 소비제품은 신용카드 할부로 구입하면서 그림을 할부로 구매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학교에 강의를 나가서 어린 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고 했다. 그림도 할부로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을 사는 일. 재테크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작가의 혼이 깃들인 작품을 구매하는 일이다. 예술가의 작품은 그의 영혼을 사는 일이다. 혼신을 다하여 토해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 것에 돈을 쓰지 않으면 어떤 것에 돈을 쓴단 말인가. 그녀의 표현이지만 내 마음에도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녀의 말을 듣기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다. 작가의 혼이 밴 예술품에 대한 값은 어떻게 매겨야 하는지...그것은 어떤 값을 치르고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배운 바가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곳에 돈을 쓰는 방법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소비재를 할부로 사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할부로 산다는 의미는 추가비용을 지불하고 사는 행위인데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소비재를 굳이 할부로까지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투자의 개념에서 보아도 향후 가치가 좋아지는 물건은 미리 사 두어야 한다. 이럴 때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으면 할부로라도 구매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소비재는 상황이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굳이 할부로까지 수중에 무엇인가를 넣어야 할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소비를 불러올 뿐이다.  

 

그녀의 말은 갤러리를 하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소비형태를 꼬집는 말이기도 했다. 돈을 사용하는 기준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임에는 틀림없다. 나의 몸을 다시 보게 되던 해에 소비에 대한 내 시선도 바뀌었다. 드디어 나도 그림을 사게 되었다. 진품을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욕망의 소비였다. 같은 돈을 쓰면서도 비싼 가전제품을 사는 것과는 분명히 기분이 달랐다. 뭔가 품위 있는 행위를 했다는 자만심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십여 년이 흘렀다. 일상에 매몰되어가던 어느 날 저녁 걸려온 전화. "산에 갑시다." 주말도 아니고 낮 시간도 아닌데 난데없이 산에 가자고 하는 전화에 조금 당황했지만 길어진 해에 한 시간 남짓의 산보 정도는 가능하지 싶은 생각이 들어 그러자고 했다. 산에 가자는 사람이 만나자고 하는 장소가 예술의전당 부근이었다. 약속장소에 가보니 그분이 말하는 산은 산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의미했다. 나쁘지 않다. 산에 가는 것도 좋고 산을 보는 것도 좋으니 말이다. 그의 손에는 2013.4.22 (월) 매일경제신문 한 장을 들려있다.

 

"산에게 묻는다 인생이 뭔지" 산수화가 전래식 '세계의 산을 품다'()

 

"멈출 것인가, 아니면 다시 오를 것인가. 인생이라는 산은 늘 나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난 전진을 택했다" 동서양 기법을 섞어 신()조형산수라는 쟝르를 개척한 전래식화백을 인터뷰한 기자의 글이다. 작가를 소개한다. 2008년 대학 강단을 떠난 뒤 2년전 칠순이 넘은 몸으로 히말라야를 찾은 작가. 해발 2874m 고라파니 언덕에서 안나푸르나를 스케치해온 분. 히말라야 산의 장엄과 경이, 신비와 위엄을 담은 작품 40여점. 산 그림에 전념한지 20. 1982년 추상화로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음. 실경산수를 그리던 그가 외양을 묘사하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전통산수화에 조형적 개념을 접목한 조형산수를 개척. 화가의 눈으로 재해석한 자연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조형산수라고 설명한다. 조형산수를 그리는 노작가.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마감을 한 시간 정도 남겨놓은 때였다. 또한 월요일이니 전시관은 한적했다. [마차푸차레의 조형적(造形的)소견]2011, [마운트 후이텐을 향하여]2012, [마차푸차레의 찬가]2011 이 순서대로 전시되어있었다. 입구 왼편에서 세 번째 작품인 [마차푸차레의 찬가]를 보는 순간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차푸차레(Machhaphuchhare 6,993m), 두 개로 갈라져 있는 봉우리의 모습이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네팔어로 '물고기의 꼬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Fish Tail'로도 알려진 히말라야 유일의 미등정 산이다.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 등반이 금지되어 있는 영산(靈山). 그 마차푸차레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갈라진 봉우리는 흰색과 검정으로 그 오른편은 붉은 색, 검은 녹색과 어두운 연두색 고동색과 분홍과 보라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몸체와 검푸른 하늘에 희미한 달, 수많은 별들이 흩뿌려진 작품 앞에서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나가는 길에 물어봐야지'생각하며 나머지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찾은 곳이다. 지식과는 상관없이 이미 이곳의 작품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 이후이다. 전시관를 한 바퀴 둘러보고 입구로 나오는데 마지막 바로 전() 작품의 이름표가 바닥에 떨어져있다. 주어 들었다. 이름표 뒷면 끈끈이가 손에 붙는다. 떨어진 자리에 이름표를 눌러 붙였다. 이름표를 붙이고 돌아서는데 저쪽에서 "그게 자꾸 떨어지네요" 한다. 어르신이 말을 하면서 내게로 걸어온다. 직감발동...'저분이 작가이신 모양이다' 나도 그분에게로 다가갔다. "혹시,,,작가선생님 이세요?" ". 제가 그린 그림들입니다." 말씀을 하시는데 술 냄새가 난다. 반주를 하신 모양이다. 자그마한 키에 자그마한 체구이다. 여느 시골 할아버지 같은 모습에서 이런 작품들이 어떻게 나왔을까 싶을 정도의 소박함을 가진 외모이다.

 

"혹시...작품 파세요?" ". 그럼요" 좀 전에 내 심장을 작동시킨 작품은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분명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테니...하얀 설산을  붉은빛이 도는 분홍이 떠받히고 있는 [히말라야 여정] "저 작품은 얼마예요?" 작품을 가리켰다. 어르신이 난감한 표정이다. "저것은 오전에 다른 분이 찍어놓고 가신 작품입니다. 그런데 계약금을 아직 받지 않았으니 꼭 달라고 하면 그럴 수 도 있지만..."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신다. 나도 저 작품이 꼭 맘에 드는데...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작품을 추천해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내가 전시하기 전에 집에서 걸어놓고 감상하다가 가지고 온 작품입니다"하신다. 어르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옆 전시실로 앞장서신다. 그분이 안내하는 곳에는 제목이 같은 히말라야 여정 16,17번이 나란히 걸려있다. 푸른색과 흰색으로 표현된 히말라야와 붉은색과 고동색으로 표현된 히말라야이다. 마치 남녀 한 쌍 인 듯이 나란히 걸려 있는 작품이었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두 작품은 함께 걸어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두 작품을 다 팔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으신다.

 

18888월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보인다.

 

"캔버스 세 개를 동시에 작업 중이다. 첫 번째는 초록색 화병에 꽂힌 커다란 해바라기 세 송이를 그린 것인데, 배경은 밝고 크기는 15호 캔버스다. 두 번째도 역시 세 송이인데, 그 중 하나는 꽃잎이 떨어지고 씨만 남았다. 이건 파란색 바탕이며 크기는 25호 캔버스다. 세 번째는 노란색 화병에 꽂힌 열 두 송이의 해바라기며, 30호 캔버스다. 이것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여기서 끝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 네 가게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걸 너도 알겠지. 나는 그곳 창문에 있던 커다란 해바라기를 늘 기억하고 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면 열 두 점 정도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그림을 모두 모아 놓으면 파란색과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루겠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03, 예담-

 

고흐가 미술상을 하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또 다른 그림들에 대한 조합에 대하여도 이야기한다. “어떤 어떤 작품은 함께 걸어 두고 보면 좋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림도 자기 짝이 있다. 작가의 생각이 쌍으로 놓아야 한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추천에 따라 두 작품을 사기로 마음을 먹고 보니 돈이 문제다. 같은 사이즈의 작품이 두 개이니 가격도 두 배인 것은 당연하다. 처음보다 금액이 많이 커져버렸다. 선생은 말씀하신다. "그림의 가격을 정할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너 같으면 그 돈 내고 이 작품 살거니? 스스로 YES가 나와야 한다" 노작가의 말씀에 나는 마음을 정했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정한 작품가격이라고 하면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니 한마디 한다. "선생님....두 작품을 사는 거니까 가격을 잘 해 주실 거죠?"

웃으신다.... ‘내일 펀드 팔아야겠다딱 그림 값 정도 되어 있는 펀드가 생각났다. '그것을 팔아서 히말라야를 보는 거야.

거실에 걸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상상을 하며 계약금을 지불했다.

 

사람마다 돈을 버는 이유도 다양하고 돈을 쓰는 이유도 다양하다. 단순히 돈을 모으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는 놀이인 사람도 있다. 노년의 어르신이 열심히 돈을 투자하고 계산하고 스트레스 받고 하시길래 언젠가 물어봤다. "왜 돈을 그렇게 열심히 투자하세요? 이제 그 정도의 돈이면 편안하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노년을 즐기실 수 있으실 텐데요?" "나는 돈 모으는 것이 재미가 있어. 늘어나는 숫자가 재미있더라. 어릴 적부터 그랬어. 공부를 하면서 뜨게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도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벌어서 차곡차곡 모으는 그 재미가 아주 좋았다"고 하신다. 내 눈에는 그 어르신의 노심초사 하면서 하는 투자가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분은 자신의 재미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거였다.

 

세 번째 그림구입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림을 좋아서도 사고 투자로도 산다. 나는 투자로 그림을 사지 않는다. 아직 그만한 돈을 지불한 여유는 없다. 그림으로 행복을 사는 거다. 돈으로 살수 있는 행복이다.

IP *.175.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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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 11:23:11 *.51.145.193

돈 쓰는 행위가 품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 사는 것조차 맘껏 지르지 못하는 제가 부끄러워 집니다. 그것이 행복인줄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하물며 그림앞에서 더구나 히말라야 꿈꾼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히말라야니스트의 타이틀을 행님께 넘겨 드려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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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11:04:50 *.39.134.221

똥쟁이한테 이야기 조금 들었다. 네 마음이 어떨것인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다만 네 곁에 말을 나눌 친구와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만 생각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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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04:52:55 *.153.23.18

어떤 그림일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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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11:03:54 *.39.134.221

네가 히말라야 그림을 보고 알았다고 하는 그 말을 이해못하고 있음. 설명해줄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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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1 13:28:27 *.176.221.180

알수록 멋있는 여인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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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11:03:13 *.39.134.221

가끔 지름신이 강림하시면 남들은 이해못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곤한다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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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19:09:41 *.252.235.88
저도 히말라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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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19:45:08 *.39.134.221

목요아카데미갈때 도록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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