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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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두 통
살롱9에 있었던 9기 연구원의 5월 수업을 참관하다가요. 나도 그에게 편지를 한 통 받고 싶어졌어요. 그들이 부러웠어요. 이 부러움은 역사가 있습니다. 메일로 마음편지를 받아볼 때 제자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은 적이 있어요. 내가 직간접으로 아는 사람이 수신인인 게 있었습니다. ‘붉은 여인’과 ‘늘 푸른 청년’이 그들입니다. 수료여행을 다녀와서 유끼선배들에게 보내는 수료증 편지도 읽었어요. 어떤 그녀는 냉장고 옆에 그가 손으로 써준 편지를 붙여놓고 있었어요. 7기중에는 더 많은 편지를 받은 선배가 있었습니다. 8기들 중에서도 전화와 메일, 카톡으로 많은 편지를 주고 받는 이들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한 통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통도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가 이틀 째 계속 오시고 있어요. 어제는 종일 출렁출렁했어요. 비 오는 날 술집으로 향하게 하는 마음이 어제 내게도 있었습니다. 퇴근 길에 전화를 두 통 걸면서 오라거나 가겠다고 말을 못하고요, 호박전을 혼자 부쳐 먹고 초저녁에 잠들었거든요. ‘부침개를 부쳤어요. 오세요’ 다음 번에는 그리 말해보자 작정합니다. 비가 오니 쓸쓸하다, 혼자 있기 싫다, 만날까? 놀자 대사를 시뮬레이션 해봅니다. 하지만 인생 전반전 동안에 이건 내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관계를 책으로 배운, 이런 글에서나 수다스런 모양새입니다.
너무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났습니다. 두 가지 꿈을 살살 뜨며 한참 누워 있었어요. 나는 어제부터 편지 두 통을 작정하고 있었어요. 이 꿈들이 관련된 것인가 잠시 머뭇거렸어요. 하나는 내 스승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가 장난스럽고 환하게 웃으며 자꾸 뛰어 달아나는 겁니다. 그를 맹렬히 추적했습니다. 질문은 내가 스물다섯 살 때 그가 준 숙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라시는 대로 했어요. 5년 묵혔다가 시작해서요, 3년이면 갈 길 을 15년 걸려 갔어요. 저는요 결혼했습니다. 저는요 내가 그사람을 죽이게 될까봐 무서워 죽겠어요." 그는 계속 도망갑니다. 동산을 둘러싼 수로 속으로 쑥 들어가버렸어요. 옷까지 초컬릿처럼 녹아버렸어요. 가을물처럼 색은 깊지만 얕아보이는 그 물을 통과하면 다른 걸로 변하나? 그가 다시 솟아나올 거라 기대하며 계속 추적했어요. 달리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구요. 회색 쥐와 밤색 눈을 가진 오소리나 팬더가 튀어나왔어요. 그가 그걸로 변했나? 알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동물들의 꽁무니를 눈으로 쫒다 놓쳤습니다. 비 내린 후 해가 비치는 동산이 너무 아름다운 겁니다. 이슬과 이파리들이 보석보다 빛났어요. 넋을 놓고 보았어요. 나는 어느새 그 동산으로 들어와 있었나, 아직은 안 들어가고 경계에 서 있었나 그건 모르겠어요. 두번째 꿈은 마초 남자에게로 돌아간 낭창낭창하고 여리여리한 젊은 여자 꿈이었어요. 그 남자는 내 또래인데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재능과 전문성이 뛰어났지요. 그런데 여자를 보는 눈이 너무 까다로와요. 어릴 때 너무 바쁜 엄마한테 돌봄을 받지 못해 생긴 거라고 해석을 해서 나는 그를 연민했고, 그를 맴돌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도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멍을 알지 못해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외로워했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거절했어요. 그것조차 마음 아파했지만, 나는 비겁한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와는 달리 보통 돌직구를 선택하고요, 아니면 아닌가보다 돌아서는 편이었지요. 어리고 경험없는 새 애인을 한 팔에 안은 옛 애인에게 안기려는 그녀의 팔을 내가 나꿔채고 호통을 쳤어요. 호통의 요지는 '너 좀 사랑하라'는 거였어요. 남자가 나를 미워하며 쳐다 봅니다. 나는 쫄거나 물러서지 않고 내 오른쪽의 다섯 여자들과 합세해서 남자를 속 시원하게 혼내켜 준 후 냅다 내뺐습니다. 눈 치는 고무래 같은 걸로 대갈통을 힘껏 내리친 것도 같구요. 그를 따돌린 후 여자들과 깔깔거리며 다른 길로 갔습니다.
오늘 새벽에 9기 오미경씨가 했던 방법을 흉내 내어 봅니다. 그녀는 목욕재계를 하고 108배를 한 다음에 '사부님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적었다고 했습니다. 108배 하기 전에 샤워를 했어요. 8기 입학식 때 받았던 노랑 초를 켰습니다. '그분'이 오시리라 믿으면서요.
근데요, 이건 딴 소린데요 나는 절대로 '진지한 인생'의 주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냥, 라이터가 없어서 가스렌지에다 초에 불을 켰거든요. 노랑초 째로 엎어서 들이미니까 심지에 불이 안 붙어서요 가지고 있던 모닝페이지 뒷 장을 쭉 찢어서 돌돌 말아서 가스레인지에서 불을 옮겨 왔어요. 꺼지라고 개수대 쪽으로 휙 던지고 보니, 가스렌지를 켜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댕기는 골초여자와(이 여자는 왼손으로 담배를 쥐고 담배재 떨어지니까 고개를 돌리고, 오른손으로 집안일을 할 것 같습니다.) 삼류 깡패 양아치 강재씨가 상상이 됐어요. 쿡쿡 웃다가 진지함이 한 김 날라갔어요. 게다가 출근시간이 인제 얼마 안 남아서요. 스댕양푼에다가 상추를 뜯어넣고 날된장 한 숟갈과 들기름을 듬뿍 넣고 설렁설렁 섞어서 갖다 놓고 먹어가면서 편지를 쓰고 있거든요. 머리속 한 쪽에서는 초간단 국 레시피가 있어요. 보내는 편지만 쓰고, 북어국 끓이고 계란말이 한 접시 해놓고 나가자면 서둘러야겠어요. 편지가 잘 써 질 지 모르겠습니다만 출근길이 우중산책이고 기차여행입니다. 나는 한강을 날마다 건너갔다가 건너오거든요.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나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노래를 한 소절 부르면 전철이 강을 딱 건너거든요. 오늘은 비가 와서 그 섬의 푸르름이 더 진해졌겠지요. 전철이 지하로 거의 안들어가요. 열차에 앉아 손으로 써서 타이핑을 하면 될 겁니다.
1. 보내는 편지
사부님 안녕하세요?
우중산책을 나서고 싶은 새벽입니다. 남산에도 물안개가 오르고 비에 젖어 흙냄새가 진해졌을텐데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은 예상처럼 무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 보내는 편지를 한 통도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니 저도 보낸 적이 있어요. 제가 첫 북리뷰를 '저 오늘 빵구냅니다' 하고요, 보충하라는 날짜까지도 안 냈을 때, 그 때 쫒겨났었거든요. 홍승완선배, 이희석선배, 밥잘 슨상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샐리언니가 메일이라도 드려라, 사정이 생겼을 땐 미리 전화로 의논을 해야 한다 했을 때 메일을 한 통 보냈더랬습니다. 아 크리스마스 카드도 썼군요. 하지만 카드는 총무 레몬이 사와서 우루루 묻어간 거였고요. 메일 역시 어떻게 하면 안 쫒겨날까 하는 마음에서 보낸 거였어요. 아부지 같은 사부님이 나를 내쫒았다는 게 멍했어요. 아시겠지만 그때는 제가 아부지한테 내어쫒겼다는 마음에 삐져있던 때였어요. 지금은 안 그럽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묶이고 맺힌 것들이 거의 풀어졌습니다.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그런 나의 모양을 내내 후회하였습니다. 오프 수업 때마다 맨 끝자리에 앉았던 이유 중 하나예요. 하나는 과제를 제대로 못해내고 있어서고요. 지각을 3회 이상 하였기 때문에 자진 퇴학을 해야하는 줄 알면서도 그냥 버티었습니다. 털어버리셨을 일들인데 저는 내내 가슴에서 풀어지지가 않았어요. 다른 데서 시작된 걸 여기서 엉뚱하게 풀고 있구나, 저런 식이지 않을까 짐작하셨겠지요. 그 때는 제가 저의 길을 가기 위해 아버지한테 반역하던 때여서 사부님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직장의 보스에게도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저는 사람을 어려워합니다. '물끄러미' '저만치' 있는 게 제가 관계맺는 방식이었습니다.
5월에 9기들 따라 사부님 책을 읽었습니다. 사부님의 유품을 나누던 스승의 날, 살롱9에서 사왔습니다. 사모님이 새로 드라이를 해서 보내셨어요. 저는 내심, 여행에 관련한 사부님의 소품 하나를 간직하게 되길 기대했어요. 구할 수 없었어요. 다 남자 물건이었어요. 모자라도 하나 갖고 싶었지만 제 머리가 좀 커서요. ㅠㅠ 그래서 책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어요. 저자보다 책이 생명이 더 긴 게 신기했어요. 그리고 사부님의 유품으로 책을 사온 자신을 칭찬했어요. 제대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면서 어떻게 연구원에 지원할 용기를 냈었는지요. 저지르듯 대책없이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부족했더라도 저질러서 뵐 수 있었던 걸 아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학하듯 그만 두지 않고 버티어 끝까지 견딘 것도 잘했다고 생각하구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5월에 읽은 건 <익숙한 것과의 결별><신화 읽는 시간><깊은 인생><사람에게서 구하라><일상의 황홀><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였어요. 끌리는 책은 <떠남과 만남><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구본형의 그리스인이야기>고요, 그닥 끌리지 않는 책은 <필살기><코리아니티><더 보스><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중간에 있어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 같이 생각이 됩니다. 나머지 책들은 아직 구하지를 못했어요. 끌리는 책부터 읽어보려 합니다. 저는 사부님의 책 중 총론격인 두루뭉수리하고 종합적인 책이 좋았습니다. <깊은 인생><사람에게서 구하라><익숙한 것과의 결별><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라> 같은 책들입니다. 각론에 해당하는 방법적인 책은 선뜻 손이 가진 않았어요. <사람에게서 구하라>에서 섬김으로써 사람을 얻는 2장의 각론이 <더 보스>이고, <필살기><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자기의 역량을 높이는 3장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듯 했습니다. 제일 좋아진 책은 ‘일상의 황홀’입니다. 3월부터 2월까지 반 페이지 정도 일기로 된 책 말입니다. 저도 하루를 기록해서 그런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라>를 제일 좋아한다 하셨지요. 40대 자서전 저도 써보고 싶습니다. 이담에 쓰게 되면 쓰겠습니다. ‘구본형 정신’에 대해 글을 쓰는 9기연구원 여러분들을 따라서 하려면 구본형 전작주의를 해야지 않나 하다 그냥 하렵니다.
혁명, 사람, 하루를 저는 키워드로 꼽겠습니다.
‘나는 나를 혁명할 수 있다’ 는 말이 저도 좋습니다. 혁명은 흘러가고, 단명하고 유한한 생명의 한계를 받아들인 자의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대응일 겁니다. 변화가 가져온 헤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을 받아들이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변화를 창조하겠다는 그 슬프면서도 오만한 마음이 좋습니다. 저는 변화는 개인과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개인과 세상 중 개인의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 구본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식사회에서 1인 기업가가 고용의 대안이라는 것, 욕망에 기초해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해 전문가가 되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너는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다, 너 자신으로 빛나라는 게 핵심 구호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첫 책에서 생각해보라는 '묘비명에 쓸 욕망'을 한 달 간 살펴봤습니다. 이전에는 나의 사명은 ‘자기 중심에 굳게 서서 사랑하는 삶’이었어요. 조금 고쳤습니다. ‘사랑’ 도 자신에게 하는 강요일 때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사랑’ ‘헌신’ 이런 단어들을 폐기합니다. 저는 ‘자기 중심이 굳게 서서 푸르고(green), 싱그럽게(juicy) 피어나는 삶’이라고 썼습니다. 저는 나무가 좋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나무이고 싶고, 어떨 때는 혼수로 장만해 가는 밥상, 화장대, 장롱이 되는 단단하고 결 곱고 향기 나는 나무가 되고 싶고, 어떨 때는 땔감도 되고, 참숯이 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잘 못 어울려도 사람을 그리워하니 아마 깊은 숲의 기괴한 낙락장송, 천연기념물보다는 인가 가까이에 있는 나무일 겁니다. 저는 그저 자신으로 피어나는 걸 목표로 삼습니다. 어떤 꽃이든, 나무이든 내가 나임을 사랑하고 인정하면서 피어나는 이 방향에서 살아나갈 겁니다. 어쨎든 쓸모보다는 나로 피어나는 걸 목표로 삼았으니, 저도 굳이 구분을 하자면 개인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부님 책의 절반이 얼굴 사진이었어요. 표지에 저자의 얼굴을 싣는다는 건, 그 얼굴 자체가 브랜드이거나 얼굴이 그가 써놓은 많은 것을 말해주니까 그런 것이겠지요. 저는 사부님이 돌아가신 뒤 모두가 1:1로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고, 추억할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걸 보고 놀랬습니다. 사모님, 두 따님, 친구분, 그리고 연구원 하나하나라 그리 느끼는 듯 했습니다. 제가 문태준 시인의 [빈 집] 시를 드린 걸 기억하시지요? 저는 사부님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집을 가꾸는 소프트웨어나 문화를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식사회의 사람이 재산이라는 말보다도 따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더 좋았습니다.
‘하루’는 세 번째 키워드로 다가왔습니다. 붉은 열정보다 뜨거운 푸른 불꽃은 하루 속에 있을 것 같습니다. 사부님은 하루 속에서 날마다 실천을 하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9기 연구원들은 신화에 대한 책을 읽는데, 저는 첫 책의 주제가 신화니까 언제든 읽을 수 있으니까요, 하루경영에 대한 책 두 권을 읽었어요. 그 책들이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미뤘던 일들이 후회로 남습니다. 새벽시간 보낼 때 같이 해볼 걸, 덜덜덜 떨면서 말을 더듬으면서라도 전화를 걸어서 체부동 잔칫집에서 잔치국수를 먹자고 해 볼 걸, 편지든 메일이든 전화든 먼저 말을 걸어볼 걸요.
오늘도 마감 시간을 어기며 이러고 있습니다. 또 똘창에 빠집니다. 근데요, 사부님한테 편지를 1번만 쓰고 말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어요. 사부님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3. 5. 28 화요일 콩두 올림
2. 받는 편지
너의 편지를 읽었다. 고맙구나.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편지를 써서 답장을 받는 기회를 잃은 걸 슬퍼한다고 너는 말했다.
체부동 잔칫집에서 술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나도 그게 슬프고 아쉽다. 기다렸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구나.
네 옆에는 지금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지금 네게 떠오르는 그 사람들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너무 늦기 전에 나 대신 그이들과 해라.
편지를 나누어도 좋겠지.
대부분 반갑게 받을 거다.
몇 년간 아침글쓰기를 편지로 써온 너니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다.
또, 나의 영전에서 울면서 재용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지? 내 다 들어두었다. (메롱~)
‘재용, 사부님을 징검다리 삼아 우리 아부지한테 가자’ 했었다.
네가 잊어먹은 듯 해 내가 상기시킨다. 나도 너한테 짧은 편지를 쓴 적이 있다. 합격자 발표를 할 때 ‘팀의 허리로 모두가 일정한 속도 보폭으로 갈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라. 가끔 쉬기도 해야겠지’ 라고 짧은 편지를 썼었다. 그걸 성실한 열정의 ‘푸른 불꽃’, 야생 늑대의 눈 속에 있는 ‘푸른 불꽃’으로 참구해가는 너의 생각들은 재미있다. 나는 네 말을 재미있게 들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니까 필력이 있다고 칭찬을 했겠지? 또 내가 언젠가 꿈 이야기에 댓글 달았다. 슬라이딩 세이브를 하기 때문에 똘창에 빠졌다는 말만 한 건 아니었다. 두 개 절벽 사이 길을 걸어 옴파로스, 우주의 배꼽에 너는 끝내 닿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눔아, 어떤 북리뷰에서인가 질문하는 것이 공부라고 했다. 인제 기억나느냐? 긴 편지도 써 두었다. 내 책들은 모두 세상에 보내는 편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1년간 같이 있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 나누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아주 적다.
네가 바라는 대로 네가 빈집이 되지 않도록 가꾸는 일을 하루 하루 잘 해나가길 바란다. 그건 너의 신화를 사는 일과 다르지 않을 거다. 네가 한 끝에 닿거든 자기 신화를 찾아가는 이들을 도울 수도 있을 거다. 넝쿨장미도 아름답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하루가 황홀한 일상이었다. 너는 재미있게 해 나갈 거다. 너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콩두야, 너를 사랑하고, 언제나 언제나 언제까지나 콩두씨와 함께 있다고 말해주는, 지켜보며 응원하는 여러 님들의 하나가 내가 되었구나. 이게 죽어서 좋은 점이다. 그럼 내일 새벽에 다시 보자.
붉은 노을 네 신랑에게 안부 전해다오.
2013년 5월 28일 오후 구본형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상상은 상상이고, 상실은 상실이라는 게 신경질나고 허허롭습니다. 그렇게 밖에 못 산 내가 미워집니다. 뭔가 파토내고 싶습니다. 내가 슬퍼하고 화내는 건 '사랑'을 잃어서가 아니라 머뭇거리다 '사랑할 기회'를 죽음의 신에게 빼앗긴 듯 해서입니다. 내 것을 강탈당한 듯 합니다. 비오는 날 날궂이 하느라 출렁거림의 파고가 높아진 나의 요인도 있어요.
올해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외로운 사람이 글을 쓴다' 였습니다. 저는 그말에 신경질이 났습니다. 하지만 사실인 듯 합니다.
살롱에서 한 특강들에서.... 출판사에서 초대되어 오신분들이 작가들은 어떤 방법으로 소통할 수 없었기에 글로 소통했다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도 외로우셔서 많이 쓰셨나? 콩두님도 외롭기 때문에 자신의 키만큼 글을 썼던 게 아닐까하고....
연구원 2년차는 자신의 고독에 맞서서 혼자서 공부를 해야한다고 하셨던 스승님의 말씀을.... 평생 스스로 찍어버린 낙인처럼 가지고 살아야할 외로움을 대면하라고 그려셨나 보구나 하고 지금 제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그냥 오늘 아침에 콩두님의 글을 후르륵 스크롤바를 내리는데, '이 양반도 외롭구나'라고 느껴졌어요.
그리고 오래전부터...또한 엊그제까지 많은 스승님들이 말씀하신대로... 마음이란 그냥 손을 잡는 것이라고.....
신은 사랑하라고 손을 우리에게 주셨나봅니다.
신경질이 나셨군요. 하하
저도 사부님이 정화님 화실일기에 달았던 그 댓글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정화님 댓글 읽으며 '그런가' 하면서 이틀을 보냈어요.
정화님 안의 외로움, 제 안의 외로움이 닮은 얼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외로움에 쩔쩔 매면서 먹어대고 자버리지만 말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는요 살롱9 5월 31일 모임에서 돌아오면서 재경선배가 주선해서 4기 박중환선배 차를 얻어타고 왔어요.
선배가 듣고 있던 방송에서 회사를 그만 둘 시점을 극화한 게 있었어요.
'처의 동의를 얻는 게 제일 어렵고 힘들다'는 사부님 인터뷰 뒤에
배우가 이야기햇어요. "이 사람은 3년간 4시에 일어나 글을 써서 매년 1권씩 책을 냈어요. 이 사람을 믿어요."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자신에 대한 신뢰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구가 맞아들어가는 일이 많았어요. 정화님 한 글에 두 개의 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