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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 박웅현 <책은 도끼다>
운동을 끝낸 후 뜨거운 땀을 식힐 겸 옷을 홀라당(?) 벗고 샤워를 하노라면 괜히 누군가에 의해 주눅이 들곤 한다. 떡벌어진 어깨, 울퉁불퉁 팔뚝의 근육과 우람한 대퇴부. 같은 남성의 입장이면서도 은근히 눈길이 간다. 물론 구력의 차이가 그런 외견을 만들었겠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 몸매를 자랑하는 나는 비교가 되는 게 사실이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외적으로 다듬어지고 잘빠진 몸매에 관심이 많아졌다. 물론 클라이밍이라는 것이 보디빌딩처럼 근육을 키우고 우람하게 만드는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이라는 요소가 기본적으로 받쳐주어야 하기에 아령을 들고 벤치프레스에 열중을 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빨리 근육을 키울 수 있나요?”
파워의 부족함을 적잖이 실감한 내가 어떤 비법이 없을까하여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에 강사는 시간을 따로 내어 일부러 무엇을 하기보다 일상생활에서의 단련을 강조한다. 즉,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 출퇴근 시 에스컬레이터 이용 보다는 계단 오르내리기, 대중교통 이용 시 뒤꿈치 들고 서있기, 스마일 볼로 쥐었다 폈다 하기들이 그 예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무언가 시시하다. 그런 것은 솔직히 평소에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떤 특별한 것을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나의 경우 사무실에서의 내근 보다는 외부에서 진행되는 업무가 많다. 30대 파릇파릇한 시절 때에는 매주 3박4일의 지방출장을 일 년이 넘게 다닌 적도 있었으니.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도 외부로 이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기에 주위 분들은 이야기한다. “책은 어떻게 읽고 글은 언제 쓰나요.“ 처음엔 나도 그게 고민 이었다. 체력도 딸렸지만 앉아서 책을 보고 차분히 책상에 앉아 생각하고 글 쓸 시간이 만만치 않았으니. 그러다 방법을 발견 하였다. 남들과는 다른 직업적 환경의 이점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OO씨는 왜 출장 가서 그냥 올라오나요. 업무가 끝나면 그곳의 특색 있는 문화들을 접하고 오면 좋을 텐데.”
부서 직원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답변은 이렇게 돌아온다.
“올라오기도 바쁜데 다른 것을 볼 겨를이 없어요.”
그럴까? 기차 창밖으로 때때마다 추억이라는 옷을 갈아입는 계절의 시간들과, 저마다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고간다. 나는 그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그런 풍경들과 동화되고 조우하며 학습을 이어나간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오백년 왕조의 정취를 느끼며, 광주 비엔날레를 통해 현대 예술의 조류를 경험하며, 순천만의 방문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하며, 통영의 바닷가를 통해 유럽 이상의 남부럽지 않은 한국의 정취에 젖는다. 물론 이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체력적인 부담과 이동 중 잠을 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깨어있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탐색을 계속하는 과정을 이어나가야 하니.
이런 일상 수련의 특별함을 잘 묘사한 영화 한편이 있다. <The Karate Kid>. 우리나라에서는 베스트 키드로 상영이 되었고 친숙한 배우인 성룡(Mr. 한 역)이 주연을 맡았다. 쿵푸 고수였지만 현재는 평범한 아파트 관리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Mr.한(성룡)’. 그에게 베이징으로 이민 와 친구들 괴롭힘에 시달리는 외톨이 미국 소년 ‘드레(제이든 스미스)’가 나타난다. 우연히 소년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인연으로 무술을 가르치게 되는데, 그 지도방법이란 것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단지 입고 있는 재킷을 벗고 줍고 옷걸이에 걸고 다시 입는 수련뿐. 그렇기에 소년은 불평불만이 가득하다.
‘이게 뭐야. 내심 그의 멋진 무술 전수를 받아,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과의 대결에서 코를 납작하게 이겨 주겠다는 기대를 하고 왔는데.’
이런 소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지도는 계속된다. 똑같은 행위의 끊임없는 반복. 그러던 어느 날 참지 못한 소년은 드디어 폭발을 한다. 이게 무슨 수련이람. 이런 식으로 가르치니 제자들이 없지. 그런데 이게 웬일. 생활 속의 수련이 단순한 단련이 아닌 무술로써 표현될 수 있는 행위이자 패턴의 유형이었던 것이다. 소년은 놀란다. 자신이 해왔던 일련의 동작들이 무술로써 대련 시 훌륭하게 응용될 수 있는 동작임을. 성룡은 영화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이 바로 쿵푸다. 재킷을 입는 것, 벗는 것,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 모두가 쿵푸다. 쿵푸는 생활 그자체야.”
나는 그가 내뱉는 이 대사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특별함 혹은 기발함의 요소들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닌, 체육관에서 샌드백을 두들기고 기와를 격파하는 것이 아닌, 쿵푸가 생활 그 자체의 소산에서 나온다는 사실. 또 하나 이 영화가 우리에게 중요하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성룡이 소년에게 재킷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훈련을 시킨 연유이다. 소년은 평소 어디서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을 경우 정해진 옷걸이에 걸기 보다는, 바닥에 내려놓는 경우가 많아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오던 터였다. 이것을 유심히 바라봤던 성룡이 무도 수련의 방법으로서 응용하였고, 뿐만 아닌 생활 습관 개선의 처방까지 염두에 두고 훈련을 시킨 것이다. <쿵푸 팬더>의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절대고수로써의 인연을 점지 받았음에도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깨달을 수 없었던 팬더. 그런 그에게 사부는 우연히 무술의 인자를 발견한다. 그것은 그가 식탐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도 강해, 그것을 모티브로 수련을 이어나가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리더를 지향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업무 과정에서 직원들의 특질들을 캐치하고 그 능력을 임파워먼트 해주는 혜안과 식견이 필요하기에.
주어진 일상에서의 남다른 직업적 소명과 수련을 통해 자신의 위치에서 정상에 선 은둔의 고수들은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그런 그들을 소개한 것이 <생활의 달인>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이다. 여러 출연자들 중 대전 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는 분이 있었다. 다른 경쟁자들은 모두 폐업한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그곳만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으니. 어묵이나 튀김의 남다른 요리 비법도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게 와 닿았던 것이 손님의 계산이후 건네는 그분만의 인사법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사업주이고 매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구입한 후 출입구 쪽으로 향할 때, 당신은 그 손님을 향해 어떤 멘트로 인사를 건넬 것인가.
① 감사합니다.
② 또 오세요.
③ 탁월한 선택이셨습니다.
④ 내일도 당연히 들릴 분이기에 굳이 별다른 인사말이 필요 없다.
그는 달랐다. 인사 하나에서도. 그렇기에 달인이라는 프로에 소개까지 된 것이리라.
“감사합니다. 기다릴게요.”
어떤가. 무언가 다른 포스가 느껴지는가. 모르겠다고? 다시 한 번 위의 멘트를 곱씹어보라. 여기에는 놀랄만한 심리학적 소스가 숨어있다. PD가 손님에게 질문 하였다. 그런 인사말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하냐고. 손님은 “왠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부담이 되고 내일도 들러야 될 것 같다는 의무감이 든다.” “다른 곳에 가고 싶어도 이곳을 이용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가 이런 멘트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의 찰나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원짜리 떡볶이를 먹는 손님이더라도, 내일 이 손님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조금의 절박함 끝에 이런 멘트를 출현시키게 된 것이다. 나는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사원들에게 이를 적용해 보았다. 방문시 어떤 인사를 주로 나누느냐는 주제로써.
“안녕하세요. 고객님.”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누구나 흔히 쓰는 인사법이었다. 반면 그의 인사말은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생활과 직업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성찰하였기에 주어진 선물이다. 이것이 일상을 특별함의 요소로 연출해내는 비법이자 기적인데, 무엇보다 이는 지나치는 일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세와 태도가 준비되어 있어야만 이 가능하다. 범인들은 색다른 것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기에 오늘도 여념이 없다.
“이번 달 뭐 쌈박한 프로모션이 없을까.”
“색다른 판촉 이벤트가 있으면 매출이 팡팡 튈 텐데.”
그런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소함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기적을 만들어라. 해답은 거기에 있다. 다만 발견하지 못했을 뿐.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르고 있는지도, 우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 거예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릴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만물(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을 안을 수 있을까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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