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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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
덟다. 다행이다.
어제는 결혼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결혼 안한 내가 뭐가 할 말이 있을까마는, 나는 우스워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자꾸 떠올라서 우스워서 이야기에 계속 끼어들었다. 아이같은 남편과 사는 친구, 마님처럼 사는 친구, 이제 막 갈등을 겪는 친구. 나는 많이 웃었는데, 본인은 심각했을 거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한동네에서 자랐어. 동갑내기이고, 어려서부터 소꿉놀이 하다가 20세에 결혼을 하고는 21세에 나를 낳으셨지. 난 이맘때 생겼어. 어머니 말씀으로는 보리가 팰때라고 하데. 지금쯤인가? 봄에는 다 사랑을 나누잖아. 뒷산에 새들도 시끄럽더라. 어머니 말씀 때문인가 나는 봄에 열기가 확 오를 때쯤이면 왠지 이상하더라. 어른들은 원래 봄되면 여자들이 봄기운에 가슴이 요동을 친다고 하더구만. 그래서 그랬나, 보리가 팰 때 들판에서 사랑을 나누게된 건. 그래서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잘 살다가 겨울에 두분의 결혼식 때, 어머니가 신부가 쫄쫄 굶어서 배가 고프다가, 하여간 우리 어머닌 입덧도 심해서 내가 뱃속에서 거의 뭘 못 먹고 비슬비슬하게 태어났지. 3월 하순쯤 태어났지. 3월이 생일인 사람들을 보면, 이 양반도 사랑을 많이 받고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봄기운이 가득할 때 사랑을 하면 10달쯤 있다가 그때 태어나니까.
대학생 때 였는데, 그때 무슨 별자리그런 게 유행했어. 연예인에 관심을 조금 가질 때였었거든. 연예인 누구는 황소자리네, 예술가 피카소는 물고기 자리네, 아인슈타인은 물고기라네 하는 말들을 들었지. 내가 물고기 자리라서 난 물고기 자리밖에 기억못해. 그리고 내가 물리학과 잖냐. 겁나게 유명한 그 양반이 물고기 자리라니 괜시리 나도 그양반 마냥 될 것같은 착각도 하고 말야.
도서관에 가서 별자리 책을 찾아서 쫙 읽었지. 뭔 신화에 별자리 전설이 나오는에, 물고기는 안나오더라. 별 이야기가 아니었었나 몇 권을 뒤적여도 안나오데. 그러다가 인디언 이야기를 보다가 찾았어. 나는 그 이야기를 참 좋아해. 음. 왜냐면, 말야. 이야기해줄께. 인디언 마을에... 그 마을에는 성인이 되면 소원을 들어주는 풍습이 있어. 아이가 어른이 되는 기념으로 그 소원을 꼭 들어주지. 그런데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 어느날 이상한 존재를 만나. 지금은 그게 뭔지 기억이 안나. 그 존재가 말하길 소원으로 '여름'을 갖고 싶다고 그걸 가져다 달라고 하라고 일러줘. 아이는 여름이 뭔지 몰랐어. 그 인디언들이 사는 나라는 매우 추웠거든. 너무 추워서 살기 어려웠어. 그래서 내가 그 이야기에 끌렸나봐. 나도 추위를 많이 탓거든. 나는 늘 추웠거든. 하여간. 그래서 아이는 성인식 전에 여름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 그래서 부족의 어른들이 그 여름을 찾아나서. 산을 넘어가고, 강을 넘어가고 세상 끝까지 여름을 찾아 나서지. 세상 끝일까, 음, 아주 높은 산에 올랐는데, 인디언들의 머리가 뭔가에 부딪힌 걸 알았어. 높은 산에 올라서 하늘에 머리가 닿았던 거지. 보이지는 않았는데, 뭔가가 있으니까 그걸 자꾸 머리로 받고 그래서 틈이 생기고 거기에서 바람이 불어 나왔어. 따뜻한 바람이었어. 그래서 인디언들은 그 구멍을 자꾸 두드리고 해서 더 넓히고 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갔지. 그들이 올라선 그 곳은 따듯하고,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갖자기 열매가 열린 곳이었어.
그런데, 하늘에 사는 신들이 하늘에 구멍이 난 걸 알았어. 따듯한 바람이 빠져나가고, 찬 기운이 들어온 것을 알았거든. 그래서 그곳이 어딘지 찾아보니 인디언들이 와 있어서 그들을 쫒았지. 인디언들은 놀라서 도망쳤는데, 신들을 따돌릴 수 있을까. 던진 창에 꾀어졌지. 그들의 신체 일부가 꾀어졌다고 하더라고. 나는 그 부위를 지느러미로 기억하는데..... 하여간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지. 하지만 그때 하늘을 빠져나온 하늘의 여름이 1/4쯤 되었나봐. 그래서 그때부터는 땅에도 일년 중에 석달은 여름이라고 하더라구. 그때 창에 꾀어 지느러미가 엮어진 물고기는 하늘에 있고.
왜, 춘분점에 있는 물고기 자리가 여름 이야기일까? 물고기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데, 난 그걸 하늘에서 찾을 수도 없어. 그걸 찾아보지도 않았지. 그때 쯤에 본 과학동아에서는 춘분점 부근에 있기 때문에 별로 밝지 않아도 중요한 별자리로 관측되었다고 말이야. 그때부터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지. 난 따듯한 게 좋더라. 난 여름이 따뜻해서 좋아.
물고기 자리 주인공은 여름을 달라고 한 소년일까? 그 이야기 뒷부분에 소년은 거의 등장하지도 않아. 여름을 찾는 모험을 떠난 어른과 그들이 결국은 여름을 세상에 가져와서 소년에게 주었다는 게 주요 이야기이지. 하늘에서 가져온 따듯한 기운. 여름을 찾으러 간 어른들이 목숨과 바꿔서 가져온 그 여름. 난 그걸 사랑이라고 보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 부모님은 봄기운이 가득할 때, 곧 여름으로 가려할 때인가? 그때쯤에 내 생명을 주셨지. 난 그래서 3월 하순에 태어나고. 물고기 자리가 좋더라. 만물이 살만하게 따뜻한 기운을 가져다 준 사랑이야기라서.
덮다. 봄처녀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는 그 기운은 이제 가시고, 여름이다. 다행이다. 그게 뭔지도 모를 기운에 휩쓸려서 들판을 헤매지 않고 잘 보내서. 그런데말야, 그래도 꽃날리고 할 때 사랑하고 픈 마음은 있지. 사랑, 그거 여름이면 어떻고, 가을이면 어떻고, 겨울이면 어때. 사랑할 수 있다면 좋지.
어제 만나서 수다를 떤 친구들이 난 부럽더라. 많이 웃었던 것은 재미있기도 했고, 그렇게 별 거 아닌 걸로 심각해 하는 것도 우습고, 또 내 부러움도 있어서 더 많이 웃었지. 심각해도 웃고, 별거 아닌 거에도 웃고, 웃는 거 말고는 뭐 어떻게 하겠어?
난 여름이 좋아. 그건 사랑이라고 그러더라구. 물고기 자리만이 아니라, 동양의 다른 이야기에서도 그랬어. 남쪽에 동물은 주작인데, 그건 붉고, 그리고 그건 사랑의 기운이래.
"스승님, 음과 양은 무엇입니까?"
"나는 음양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양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말해줄 수 있다."
"양은 어디에서 옵니까?"
"따듯함은 남쪽에서 온다."
헤헤헤. 여름이라서 다행이다. 오늘은 또 다른 친구놈이 결혼한다. 만나면 항상 가방이 무겁지 않냐며 들어주던 놈이라 참 이쁘게 봤는데, 그 착한 놈이 결국은 결혼을 한다. 다음엔 사람들이 살만하게 만드는, 그 뭐시냐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것들, 남쪽기운 가득한 그림을 이야기하자. 나중에 또 보자.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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