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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그곳엘 오르고 싶어 하는가?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 등정에 성공했던 힐러리 경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고 했던가. 나는 그런 거창하고 철학적인 답변을 하고 싶지는 않다.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물었다. “그 운동을 하게 된 동기가 뭐예요?” 나는 들러대었다. 건강에 도움 되기에 혹은 전투본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어울리는 종목이어서. 그런데 나의 진정한 속마음은 그게 다였을까.
낡고 초라한 자동차가 있었다.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그런데 그 차는 평범한 차가 아니었다.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차였다. 007 시리즈로 유명한 이언 플레밍의 <치티치티 뱅뱅>을 읽은 소년은, 주인공인 그 차와 자신을 동일시하였고 신드바드의 양탄자와 같은 차를 동경하게 되었다.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현실적 제약과 굴레를 벗어 던지고 남들이 와하며 탄성 지르는 그런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되고 싶었다.
출간이후 우연찮게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교육 파트의 업무를 하고 있기에 나름 말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어 호기 있게 나섰으나,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의 책을 써보겠다고 멀리 지방에서까지 상경한 사람들의 눈길을 보자 걱정이 앞섰다.
‘내가 뭐 잘난 구석이 있어 이 자리에 섰을까.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는지.‘
수강생들에게 화두 하나를 던졌다.
“나는 왜 나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내기를 원하는가?”
중요한 질문이었다. 어떤 일이든 명확한 개념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올 때 쉽게 좌절하고 허물어진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뼈 빠지게 고생하고 있을까.’
‘자식들, 남편도 아무 소용이 없어.’
‘누구처럼 농땡이 부리지 않고 야근 및 주말까지 나와서 근무한 결과가 결국 정리해고인가.’
그러기에 사람은 때때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의 가치관은’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내 인생 후반부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이 같은 질문에 특히 중년 이후의 나이에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오지 않는다면 삶의 공허감과 허무함은 필수적으로 찾아온다. 뜻밖의 무거운 질문이었는지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던 중 한분이 이런 답변을 하였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요.”
영향? 좋은 단어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한다. 자신의 능력 및 성공을 통한 모델링과 역할로써. 그런데 그것이 진정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이유일까.
그는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스무 살 청춘의 여운이 남아있는 나이에 어렵사리 신학교 문을 두드렸다. 면접 시 담당 신부님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왜 신부가 되고 싶은가?”
그는 준비된 답변을 하였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섬기며 등등. 한마디로 모범적인 해답을 말하였다. 신부님은 그의 말에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짓더니 다음과 같은 응답을 하였다.
“당신이 원하는 신부는 죽었다 깨어나도 될 수 없다.”
그는 적잖이 당황이 되었다. 무슨 소리야? 그럼 신부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 거지. 그는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외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욕망들을.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싶었다. 로만칼라와 검은색 수단이라는 외부로 상징되는 표징을 통해, 신분상승의 기회와 존경을 받고 싶은 세속의 꿈을 꾸고 있었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기나긴 여정으로서가 아닌 이카로스의 허물어진 날개만을 쫓고 있었다. 임제선사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였거늘, 자신의 그릇된 우상을 죽여야 진정한 낮은 곳으로 임하거늘 그는 그 허상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답변한 분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금 물었다.
“영향을 미치고 싶다? 그것이 당신이 책을 내고 싶은 진짜 이유인가요. 당신은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아닙니다. 나는 뜨기 위해서 책을 출간 했습니다.”
그렇다. 공부를 진정 좋아서 하는 이가 많지 않듯이 글도 정말 쓰고 싶어서 쓰는 이는 흔치 않다. 아무리 자기가 선택하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그 내면 숱한 굳은살의 아픔이 배어 있는 길을 자청하여 걸어가고자 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이다. 황금 같은 주말에 엉덩이에 맺힌 쓰디쓴 땀띠를 참아가며 당신은 책상 앞에 앉아 무얼 기대하고 있는가. 흩날리는 벚꽃 잎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당신은 왜 골방에 박혀 문을 걸어 잠그고 글을 쓰는가. 좋아서 혹은 체질에 맞아서. 천만의 말씀이다. 솔직해지자. 내안엔 세상에 대한 분노의 욕구가 가득했다. 시쳇말로 책이 팔리고 이름이 팔려서 나를 무시하고 깔보았던 사람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었다. “행복한 사람은 성공 못해요. 분노가 있어야 일을 하죠.”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영화 속 대사에 공감이 갔다.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풍족할 만큼 돈을 벌고 있어, 구태여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당신은 어찌하겠는가. 숭고한 가치와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글쎄, 그것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평범한 대부분의 이들은 금전과 명예 등의 세속적 기준과 평가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칼럼 작성을 위해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타이핑을 쳐보지만, 금세 몸이 근질거리고 유혹이란 놈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여러 형태의 모양으로 오늘도 기어오른다. 얼마간을 헤맨 끝에 겨우 마음을 잡고 글감을 찾아 거친 항해를 떠나보지만 흘러가는 건 쏟아지는 졸음과 아쉬운 시간뿐이다. 그러기에 안간힘을 써보지만 남는 건 어쭙잖은 글의 흔적들. 읽어보니 이게 아니다. 다시 지우고 쓰고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그럼에도 몇 장의 글이 나오질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고 긴긴 터널의 절망감을 통과할 때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왜 이일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승산이 있는 게임의 패를 쥐고는 있는 건지. 어떤 날은 승자로 그렇지 않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은 하루에도 몇 차례나 찾아온다. 내 글은 왜 이럴까라는 자조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면 그것을 억누르거나 승화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헤매고 다닌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의식혁명>에서 언급했듯 분노란 놈은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망의 위 단계로써, 상위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전초전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개인뿐만 아니라 소문화권도 질식시킬 수 있는 ‘무기력’ 상태보다는 더 활기찬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더라도 현실은 개인차가 있듯 쓰디쓴 레벨의 수준이 우리에겐 존재를 한다. 암벽의 정상에 서고 싶어도 기술과 능력이 미치지 못해 밑에서 바라만 봐야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우주에서 유영하듯 바다 속에서 한 마리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듯 잠영을 하는 이들이 있다. 한편의 아크로바트를 보듯 자연스럽게 다리가 머리위에 올라가고 몸이 꼬이는 곡예사의 묘기에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질투와 시샘이 일어난다. 하지만 거기엔 기나긴 연습과 끊임없는 몸부림이 뒤따라온다. 비교됨의 무기력으로써의 추락이 아닌, 꿈의 도화선의 불을 지피는 분노라는 비수의 무기를 가슴에 품고. 그놈은 때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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