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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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를 공부하고 신화에 대해 알아가면서 이상한 궁금점이 생겼다. 어쩌면 신들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제우스, 그는 왜 이름만 널리 알려져 있지 자신만의 유명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일까? 조금 질문을 바꾸어서 그는 왜 신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스 신화를 접해갈 수록 궁금했다. 가장 위대하고 능력자였고, 신들의 왕중의 왕이였던 제우스, 모든 것을 갖춘 신, 하지만 왜 그는 신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걸까?
그는 모든 신화 이야기의 훌륭한 조연이였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샀다는 이유로 매일 의미없이 돌을 날라야 하는 시지포스의 이야기, 트로이 전쟁을 만든 헬레네 이야기의 시초는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와 동침한 제우스 때문이였다. 미노스를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든 크레타 섬의 이야기는 제우스가 흰소로 변신하여 에우레포를 납치한 까닭이였고, 유명한 헤라클레스 역시 제우스와 헤라의 신경전에서 비롯된 인물이였다.
그리스 신화의 다양한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알아가다 보면 항상 보이는 제우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그 근원이 되는 신,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제우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비련의 주인공을 만들어내거나 이야기의 갈등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소스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이유가 뭘까.. 왜 제우스는 조연의 역활만 하는 것일까? 혹시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 단언컨데 사람들은 제우스를 좋아한다. 그가 모든 신화 이야기의 단골 레파토리인 까닭이다. 그의 호방함, 유일하면서 독보적인 캐릭터, 그를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에게 연민을 갖기 힘든 까닭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대학 수업중 시나리오 수업을 들을때였다. 늦은 여름이였던 것 같다. 교수는 자신이 만든 습작 시나리오와 영화를 가지고 우리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공책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던 그날, 난 교수입에서 '공감'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서는 '공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만 그랬던걸까? 나에게는 그 단어가 굉장히 강렬히 다가왔다. 그 어떤 기법과 방법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에서 인물, 특히 주인공을 설정할 때 중요한 요소가 두가지가 있다. 바로 '호감'과 '연민'이다.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도덕적이거나 정직하거나 하다못해 잘생겨야 한다. 연민의 장치는 조금 복잡하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모든 것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좋은 시나리오의 승부처다. 작가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요소를 흘린다. 장치들이 너무 어설퍼서도(이야기가 시시해진다) 너무 정교해서도(예술 영화가 목표가 아니라면) 안된다. 그리고 이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감'의 코드이다.
청소년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에게 입시 스트레스, 친구와의 갈등, 사춘기와 부모와의 갈등 등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 주인공에게 시련을 줘야한다. 그에게서 연민이 느껴지는가? 사랑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에게 이복동생과의 사랑, 갑자기 등장하는 전 애인, 사랑을 반대하는 부모와 그 밖의 여러 방해요소를 덮어 씌워야한다. 막장 드라마 느낌이 나지만 관객들이 그들에게서 연민이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철저히 외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만들어야 한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모든 고난과 풍파를 불쌍한 주인공에게 퍼붓어줘야 한다. 관객들이 자신이 힘들었던 기억을 주인공에게 투영시켜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주인공은 이겨낼 것이다. 그는 적대자와 방해자를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캠벨이 말했던 영웅의 귀환처럼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후에 당당히 원래의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관객은 감동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고 초라했던 자신에게서 영웅의 모습을 찾아내고 자신의 영웅성을 찾아준 주인공에게 감사할 것이다. 훌륭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제우스가 주연배우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그가 조연배우로 밖에 살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우리는 그에게 호감은 갖지만 연민을 느낄 수 없다. 그는 너무나도 완벽하기에 어떠한 부족함도 없다. 그의 완벽함은 모험을 떠날 이유도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이유도 없게 만든다. 우리는 그를 보고 아파하지도 응원하지도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평화롭고 시시하다. 무엇보다 나를 투영할만한 교훈이 없다.
혹시라도 제우스가 시련에 의해 모험을 떠나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고난을 겪고 이를 극복한 후 영웅이 된다면... 그리고 영웅이 된 후 특유의 바람끼를 없앤다면 언젠가 한번은 주연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여전히 제우스가 좋다. 아니 좋아할 것이다. 그게.. 사실 난 주연배우보다 조연배우를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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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신화 이야기의 훌륭한 조연이였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샀다는 이유로 매일 의미없이 돌을 날라야 하는 시지포스의 이야기, 트로이 전쟁을 만든 헬레네 이야기의 시초는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와 동침한 제우스 때문이였다. 미노스를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든 크레타 섬의 이야기는 제우스가 흰소로 변신하여 에우레포를 납치한 까닭이였고, 유명한 헤라클레스 역시 제우스와 헤라의 신경전에서 비롯된 인물이였다.
그리스 신화의 다양한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알아가다 보면 항상 보이는 제우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그 근원이 되는 신,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제우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비련의 주인공을 만들어내거나 이야기의 갈등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소스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이유가 뭘까.. 왜 제우스는 조연의 역활만 하는 것일까? 혹시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 단언컨데 사람들은 제우스를 좋아한다. 그가 모든 신화 이야기의 단골 레파토리인 까닭이다. 그의 호방함, 유일하면서 독보적인 캐릭터, 그를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에게 연민을 갖기 힘든 까닭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대학 수업중 시나리오 수업을 들을때였다. 늦은 여름이였던 것 같다. 교수는 자신이 만든 습작 시나리오와 영화를 가지고 우리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공책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던 그날, 난 교수입에서 '공감'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서는 '공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만 그랬던걸까? 나에게는 그 단어가 굉장히 강렬히 다가왔다. 그 어떤 기법과 방법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에서 인물, 특히 주인공을 설정할 때 중요한 요소가 두가지가 있다. 바로 '호감'과 '연민'이다.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도덕적이거나 정직하거나 하다못해 잘생겨야 한다. 연민의 장치는 조금 복잡하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모든 것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좋은 시나리오의 승부처다. 작가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요소를 흘린다. 장치들이 너무 어설퍼서도(이야기가 시시해진다) 너무 정교해서도(예술 영화가 목표가 아니라면) 안된다. 그리고 이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감'의 코드이다.
청소년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에게 입시 스트레스, 친구와의 갈등, 사춘기와 부모와의 갈등 등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 주인공에게 시련을 줘야한다. 그에게서 연민이 느껴지는가? 사랑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에게 이복동생과의 사랑, 갑자기 등장하는 전 애인, 사랑을 반대하는 부모와 그 밖의 여러 방해요소를 덮어 씌워야한다. 막장 드라마 느낌이 나지만 관객들이 그들에게서 연민이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철저히 외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만들어야 한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모든 고난과 풍파를 불쌍한 주인공에게 퍼붓어줘야 한다. 관객들이 자신이 힘들었던 기억을 주인공에게 투영시켜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주인공은 이겨낼 것이다. 그는 적대자와 방해자를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캠벨이 말했던 영웅의 귀환처럼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후에 당당히 원래의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관객은 감동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고 초라했던 자신에게서 영웅의 모습을 찾아내고 자신의 영웅성을 찾아준 주인공에게 감사할 것이다. 훌륭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제우스가 주연배우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그가 조연배우로 밖에 살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우리는 그에게 호감은 갖지만 연민을 느낄 수 없다. 그는 너무나도 완벽하기에 어떠한 부족함도 없다. 그의 완벽함은 모험을 떠날 이유도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이유도 없게 만든다. 우리는 그를 보고 아파하지도 응원하지도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평화롭고 시시하다. 무엇보다 나를 투영할만한 교훈이 없다.
혹시라도 제우스가 시련에 의해 모험을 떠나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고난을 겪고 이를 극복한 후 영웅이 된다면... 그리고 영웅이 된 후 특유의 바람끼를 없앤다면 언젠가 한번은 주연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여전히 제우스가 좋다. 아니 좋아할 것이다. 그게.. 사실 난 주연배우보다 조연배우를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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