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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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Black Monday, Blue Monday, Mondaysickness, 즉 월요병
‘월요병’이란 단어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월요일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콩나무시루 마냥 먹고살기 위해 직장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빡빡하다. 직장인 김여정씨도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김여정씨의 마음은 직장이 아닌 다른 곳, 콩밭에 가 있다….
‘출근 시간 전에 끝내야 하는데… 이번엔 무슨 주제로 글을 써봐야 하나……’
김여정씨는 사설연구소(변경연)에서 연구소 견습생 신분으로 있다. 그는 매주 소화하기 꽤나 어려운 책 한권을 채하지 않게 꼭꼭 씹어먹듯이 읽어야 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옮겨야 한다. 또한 그 책과 관련된 주제의 짧은 글 하나를 써야 한다. 지원과정을 포함해 대략 석달 가까이 되는 일정을 소화했음에도 그의 머리 위엔 여전히 ‘적.응.중.’이란 노란 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이번주도 마찬가지였다. 눈도 잘 안 떠지는 새벽에 일어나 속독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눈을 좌우 상하로 요리조리 잽싸게 움직여 보지만, 말 그대로 ‘눈(알)만 움직인다.’ 글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 여정씨……
‘도대체 이 사람, 중구난방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그렇게 몇일을 보내고 주말이 되어서야 여정씨의 여정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새벽같이 움직여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자니, 그것도 한 두번이지 여간 눈치가 보이는게 아니다. 그래서 이번엔 결국 대학교 근처의 카페로 자리 잡았다.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라 김여정씨 같은 죽돌이 죽순이 학생들이 태반이다. 부담없이 돌입하는 여정씨…… 한페이지, 두 페이지…. 더디기만 하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아, 이 얘기를 안했군. 그가 이번 주에 봐야 할 책은 ‘신화와 인생’이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이자 비교종교학자인 조셉캠벨의 책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쓴 책이 아니라 그의 강의를 들은 다이앤 k 오스본이라는 분이 엮은 책이다.
‘신화와 인생이라…. 어떤 이야기들이 있지…… 종교, 신, 사랑, 결혼… 기독교…. 힌두교…. 깨달음… 마야……. 보디사트바……만주스…..리…… 니르바….나…… 제임스 조이스………… ……… 도대체 [신화]얘기는 언제 나오는거야?!!!!!!’ ….
주말 이틀간 책과 씨름한 끝에 결국 여정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신화와 인생’은 ‘신화’와 ‘인생’을 직접적으로 엮어 놓은 것이 아니라, 신화학자로 잘 알려진 조셈캠벨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체력과의 싸움이기도 한 이틀간의 일정을 끝내고 귀가한 여정씨는 더 이상의 여정을 소화할 만한 체력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잠자리에 누웠다. 물론 이틀동안 아빠의 얼굴 몇 시간 보지 못한 아이와 뒹굴며 잠시 잠깐의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일 새벽과 아침, 못다한 분량을 어찌 소화해야할까 라는 생각들이 여정씨의 머리 속 여기저기를 탐색하듯 비행하고 있었다.
월요일 새벽 네 시 반,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여정씨, 지난 주말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급히 독후감을 마무리 했다. 이제는 칼럼을 작성해야 할 시간……
‘저자 조셉 캠벨은 이 책에서 인생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신, 종교, 신화, 인생, 결혼, 예술가의 삶, 작가론…. 어떤 것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거지?!'인생에 대해 논해볼까? 에이... 내 나이에 무슨 인생에 대해서.....'
여정씨의 머리 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여정씨.
'칼럼을 어떻게 쓴다.. 휴.... 어떤 방식으로, 어떤 흐름으로 쓰지.....'
쓰.지.
쓴.다.
쓴.다?
그래, [쓴다!]
바로 그거야 '쓴다'!
여정씨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책을 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한 세상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름 석자 남기지 않으면 도대체 뭘 남기란 말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을까’ 간간이 이런 고민을 휩싸이곤 했던 여정씨의 결론은 ‘책’이었다. ‘내 평생을 살면서 언제가 됐든, 어떤 식으로 든, 내 이름이 찍힌 ‘책’ 한 권 출간하리라.’ 여정씨는 이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책을 쓰겠다는 그 생각은 여정씨에게 뜻밖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언제였던가, 새벽기상을 할 때 즘이었나. ‘아름다운 인생 10대 풍광’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이를 글로 풀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여정씨는 일단 썼다. 그냥 썼다. 하지만, 그 순간 여정씨를 사로 잡는 묘한 경험…. 전 국회의원 정봉주는 이를 두고 '폭풍집필'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라 칭했고, 매슬로우는 '절정경험'이라 했던 것 같다. 조셉캠벨은 이를 두고 'bliss(천복 또는 희열)'이라 했다. '그래, 몰입' 여정씨는 글쓰기에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잇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글쓰기가 재미있다’, ‘글쓰기가 내 답답한 인생의 돌파구’가 될지 모르겠다.
이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책을 쓰겠다는 그의 목표는 ‘글쓰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변경연 문을 두드렸다.
여정씨가 변경연 문을 두드릴 때, 그리고 문을 열고 입장했을 때, 글쓰기는 그에게 상당한 도전이었다.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글쓰기를 많이 접해본 적이 없는 그였다. 이과에 공과대학 출신이었고, 전공을 바꾼 뒤에서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경영학을 택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글을 쓴다니 당연히 도전 아니겠는가.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술술 쓸 수 있을까'
몇 번의 고민과 시도 끝에 여정씨는 글쓰기와 자신의 글에 대한 몇가지 원칙을 정해 놓았다.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나름 효과를 보았다고 여정씨는 생각한다.)
첫째, 일단 쓸 것. 쓰는 것에 주저하지 말 것.
둘째, (일단 쓰고,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것.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쓸 것.
셋째, (일단 쓰고,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 것, ‘내 글을 누가 좋아해줄까 말까?!’ 고민하지 말 것.
넷째, (일단 쓰고,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쓰려하지 말 것! (어차피 나는 완성형이 아니고, 불완전하고도 불완전한 직장인에 불과하니……)
다섯째,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 즐길 수 있는 글을 쓸 것! (그렇게 즐기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글이 아닌 자연스러운 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여섯째, 자유로울 것
일곱째, 남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것.
여덞째, 이야기를 쓸 것
아홉째, 남과, 그리고 남의 글과 비교하지 말 것
열번째, 수많은 도전을 할 것
열한번째, 가능하면 일상을 담을 것
여정씨는 연구원 견습생 과정에서 몇 번의 폭풍집필을 맛보았다. 이는 여정씨가 글을 잘 쓰고 글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는 글쓰기를 온전히 ‘자기방식대로’ 즐겼고, 글쓰는 방향 또는 온전히 ‘자신의 생각대로’ 썼기 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들을 가지고 있는 여정씨임에도 주변사람들의 시선(평가)과 보이지 않는 관념들이 그를 괴롭히곤 한다.
그런 수많은 고민들과 질문들 사이에서 여정씨가 중심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런데, '신화와 인생'에서 조셉캠벨은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일단 나오는 말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말이 나오도록 내버려 둬라.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비판적 요소는 그냥 놓아 버려라."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 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
어둠 속에서 빛을 본 듯 하다.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발견한 듯 하다.
마치 고뇌하는 여정씨를 위해 캠벨이 직접 전하는 말 같았다.
'그래! 20세기 대표 작가인 조셉캠벨로 이런 말을 했네. 내가 했던 방법은 잘못된게 아니었어!'
여정씨는 또 다시 힘을 얻었다.
주변에서 사이사이 불어닥치는 비바람들 - 편견과 고정관념, 내 글에 대해 남들이 할지도 모를(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로 부터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조금 더 얻었다.
여정씨는 오늘도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내일도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여정씨는 오늘도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내일도 글을 쓰고 싶어할 것이다.
수 많은 작가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여정씨 같은 하찮은 사람이 글을 써야 할 의무(darma)는 없다.
다만 그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있다. 그는 글을 통해 몰입(bliss)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꾸준히 글을 써가는데 조셉캠벨의 말은 큰 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불완전한 여정씨는 과연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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