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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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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일 16시 42분 등록
일요일 저녁

그냥 짜장면이나 시켜먹을까 싶습니다.
아침에 서둘러 나가서 교회 다녀오고 오후에 돌아와서 일주일 엉킨 가방 속에서 버릴 것만 골라내도 저녁입니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이것 저것 빵이나 과자를 먹고는 아침, 점심을 때웠습니다.

몇 주일째 식탁을 전혀 봐주지 못했습니다.
아침은 아빠가 밥솥에 든 밥을 퍼주면 김에 말아 몇 숟갈 먹고 갑니다.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저녁은 할머니 댁에서 해결하게 했습니다.

씽크대 밑을 뒤지니까 싹이 길게 난 감자 몇 알이 나옵니다. 깎아서 채를 썹니다.
냉동실에는 유효 기일이 지났을지 모르는 동그랑땡 사둔 것이 반쯤 남아 있습니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후라이팬에 튀깁니다. 후라이팬은 뭘 해먹었는지 달걀 말이를 해도 다 붙어 버려서 막 긁어내야 하네요.

아이들이 ‘맛있다’를 연발하며 상에 달라붙어 동그랑땡과 감자 튀김, 계란 야채 말이를 먹습니다.

엄마가 참 오랜만에 밥을 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었구나 싶습니다.

여섯살, 일곱살 되는 아이들을 버스에 자기들끼리 태워 보낸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아찔한 기억들을 다 한번씩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딸이 초등학교 들어가다니 싶었는데 엄마 손 미치지도 못하는 가운데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밤에 엄마 얼굴을 보면 새끼 고양이가 얼굴을 부비듯 엄마 어깨에, 팔에 달라붙어 자꾸 부빕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집에서 우두커니 자기들끼리 있을 어린아이들 생각에 일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아리지요.

이렇게 새끼들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새끼들 굶겨가며 일을 해야 하나라고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를 좋아해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요.

- 내게 가장 소중했던 기억은 무엇이지?
-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 지금 나는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 거지
- 지금 이순간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하고 감사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아이들입니다.

정말 많이 지친 날은 아이들을 불러 들여서 엄마 옆에서 잠깐 누워있게 합니다.
습관이 되어서 “엄마 옆에 잠깐만 와봐.” 하면 하던 일을 관두고 옵니다. 축구에 미쳐 있는아들 녀석이 스포츠 뉴스에 빠져 있을 때는 안 통하지요.

아이들을 양쪽에 눕히고 한번씩 동그란 어깨를 으스러지게 안아줍니다. 그리고 중간에 누워서 책을 읽어 줍니다.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은 자기들이 직접 못 읽게 하고 꼭 내가 읽어 줍니다. 읽어 주면서 엄마는 주책같이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산 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일곱 살짜리 아이의 경이감, 슬픔, 두려움, 안심 모든 느낌이 내 살갗에 느껴집니다.

아이들은 엄마는 약간 히스테릭한가보다고 그러려니 하는지, 아니면 같이 감동을 받는지 어떻든 잠잠합니다.

이삼십 대에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미친 듯이 일하고 늘 더 잘하고, 인정 받고 싶었습니다.

마흔 가까이 되어 결혼을 하고 얻게 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야 비로소 무대의 중앙에서 비껴 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내가 받는 갈채보다 아이들이 받는 박수가 더 소중하고 기쁩니다.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은 그들만의 것임을 또한 압니다. 비겁하게 어른의 책략으로 아이들을 조종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상한 척 하다가 돌아서면 잔소리에 고함도 지르고 을러댑니다.

-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걸까?
- 그것이 내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해줄까?

답은 우리 아이들이 아름다운 땅에서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몫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왔다 간 보람을 느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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