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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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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3일 09시 39분 등록

 

도시에서 생명과 함께 하는 소비자 활동을 하는 분 몇 분이 찾아왔습니다. 네 명의 여인과 한 명의 사내였는데, 그 중 한 여인이 물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도시에 살지만 가능한 빨리 자연에 깃들어 소로우처럼 살고 싶은데 어쩌면 좋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당장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두 가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도시에서 돈을 버는 남편과 대학생인 자식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것을 극복하더라도 시골의 삶, 특히 시골사람들과 피로를 겪고 되돌아가는 사람의 사례가 자신을 두렵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귀농 혹은 귀촌은 삶의 터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선택입니다. 그러니 가족 모두가 동의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낯선 지역과 문화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의 문제를 포함하면 귀농 혹은 귀촌 희망자들이 필연적으로 만나야 하는 가장 큰 문제들이 바로 이것들일 것입니다.

군대에 다녀온 대학생 아들과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의 밥과 일상을 챙겨줘야 하는 상황인데도 자신은 당장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그 심정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를 물었더니 무엇보다 몸이 도시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도시생활을 아픈 몸이 거부하는데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고... 이런 걸 딜레마라고 불러야 옳겠지요. 나는 마땅히 건넬 조언이 없었습니다. 그분 삶의 맥락을 내가 온전히 알 수 없으므로. 해서 자세히 조언을 건네는 대신 포괄적 방향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첫째, 죽을 것 같으면 다른 것은 생각지 않아야 합니다. 우선 살고 싶어 보내는 몸의 신호에 정직하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도시생활을 해야 하는 가족들을 챙기는 일마저 할 수 없는 몸 상태지경에 이르는 것은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될 테니까요.

둘째, 급할수록 돌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몸을 치유하자고만 떠나는 게 아니라 소로우처럼 사는 삶을 꿈꾼다고 했지만 시골사람들과 섞이지 못할까봐 두렵다는 대목이 무척 중요합니다. 식자들이 머리로 품은 자연에 대한 동경과 철학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성과 합리성보다는 온정과 관습처럼 비서구적 양식이 더 우세한 곳이 시골이니까요.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가고 싶은 지역을 자주 왕래하며 자신이 그들에게 이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셋째, 완충의 지대, 허심의 단계를 두고 한발자국씩 움직여야 합니다. 변화의 첫 모습은 그간 지녀온 내 삶의 맥락이 전혀 새로운 삶의 맥락과 마주하고 부딪히는 국면으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변화는 기존의 내 삶의 일부 혹은 전부가 깨지고 부서지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변화가 근본적 변화이면일수록 내가 마주해야 하는 새로운 맥락은 더욱 크고 견고한 벽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내 삶의 전부를 깨트리라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완충의 지대입니다. 심적으로는 마음을 비우고 기존의 내 맥락과 새로 다가오는 맥락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허심의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가고자 하는 지역에 방 하나를 얻어서 자주 오가며 오래된 내가 새로운 상황 속에 섞여들 틈과 방도를 헤아려 보면 좋을 것입니다.

 

긴 조언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녀는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고 했습니다. 희망을 품으려 왔다가 오히려 더 묵직한 심정을 안고 간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반응이 어쩔 수 없는 것이요 또 당연한 반응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변화의 시작은 늘 진로가 막힌 벽 앞에 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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