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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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6일 08시 22분 등록
** 10 Great scenery of 10 years

1-1. 10년동안 10개의 기예를 습득하였다.

음악(피아노, 색스폰), 한문, 서예, 음식(청국장, 만두, 갈비, 김치찌개), 외국어(영어, 중국어)

지난 10년 동안 하루를 즐기고 기록하는 삶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능력들을 배우고 익혔다. 음치대신 배운 피아노는 색스폰까지 확대되었고 모임에서 부는 연주는 기분 좋은 관계를 맺어주고 있다. 마흔 초반에 시작한 서예와 한문공부는 중국어까지 공부하게 해 주었다. 이 세 가지는 비슷한 연관을 가지고 있어 큰 부담은 되지 않았고, 직업과 취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였고, 중국 business를 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영어는 이미 원어민과의 자연스런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저명한 외국서적을 3권이나 번역케 해 주었고, 내 글이 영역판으로 출간되게 만들었다. 30대 음식관련 사업을 한 연유로 health-care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청국장과 만두, 갈비는 직접 만들고 재워서 여러 지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나눠먹게 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찌개는 우리 집 단골메뉴이자 술안주로도 일품이다. 이제 마라톤은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매년 하프와 풀코스 시합에 다녀 마흔 아홉 되던 해 드디어 풀코스 50회 완주를 달성하여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1-2. 가족 여행

한두 달에 가는 정기적인 국내여행은 평균 일 년에 열 번 정도 여행을 다녔으며, 국내 가족단위로 다닐만한 곳은 거의 섭렵하였다. 등산도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매년 지리산, 설악산 종주를 한다. 남미여행을 시작으로 싱가폴, 일본, 미국, 유럽(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스) 등을 꼭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이런 여행을 통하여 삶의 새로운 여정을 느낄 수 있었고, 이제 청년이 되어버린 정규와 고운이는 세계를 누비는 젊은 청춘을 만끽할 수 있었다.

1-3. 책 읽는 가족

매주 1권씩의 독서, 도서정리, 가족서고

연구원활동을 한 이후 10년 동안 매주 1권씩 읽었다. 경제, 경영서 뿐만 아니라 인문, 역사, 철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읽었고 이 책들을 정리한 도서정리는 코리아니티 경영전도사로서의 역할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가족들도 책을 가까이 하였고, 베란다를 개조해 만든 가족서고에는 3,000여권의 장서가 비치되었다.

1-4. 아내

적극적인 사회활동, 가족의 동반자, 자기 삶의 주인공

의무이자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으로서의 일을 그만 둔 이후 아내는 자기의 일을 찾아 나섰다. 풍선아트일을 배웠고 몇 년간은 혼자 일하더니, 이젠 전문 샵도 내고 여러 가지 이벤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픈 몸도 요가를 통해 좋아졌으며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중년의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 언제나 자랑스런 남편, 스스로의 행복으로 가정과 사회에 기쁨을 만들어주고 있다.

1-5. 두 아이

건강한 중·고교 시절, 원하는 대학에 진학

이제 정규는 22살 대학3학년, 고운이는 19살 새내기여대생이다. 코흘리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랑스럽게 컸다니 믿기지 않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상처받고 외로움도 많은 사춘기를 만났지만 잘 넘겼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괜찮은 정도였고, 공부도 썩 잘했다. 정규는 과학자가 되려하고, 고운이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친구와 미래를 사랑하는 젊은이가 되었다.

1-6. 스승의 벗

마흔에 만난 스승께서 세우신 뜻을 받들고 널리 세상에 알리는 일은 나의 의무이자 역할이었다. 스승의 길이 올곧게 세워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그를 보좌하였으며, 스승께서 말씀하신 ‘코리아니티 경영’의 전도사로서 지난 10년간 쉼 없이 정진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으며 스승의 벗이자 동지로서 함께 하였다.

2. 2006년(42세)

첫 저서 출간, 1인 기업 창업,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입학

3. 2007년(43세)

변화경영연구소 사무실 오픈

4. 2008년(44세)

노동과 경영 사례조사 완료(100개 기업 인사-노무관리)

5. 2009년 (45세)

구본형재단 준비위원회 발족

6. 2010년(46세)

5번째 책 출간, 경영학 박사학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임용

7. 2011년(47세)

구본형 재단 출범

8. 2012년(48세)

7번째 책이 밀리언셀러가 되다

9. 2013년(49세)

(주)코리아니티 경영연구소 매출 100억 달성

10. 2014년(50세)

10번째 책 출간, 대한민국 10대 경영컨설턴트에 선정

** 2006년 10개의 풍광

1) 남미 여행

구본형선생님과 15명의 남미 여행팀은 1월 20일 출발하여 보름동안 칠레와 페루 곳곳을 둘러보며 잉카의 후예들을 만났다. 보름동안 우리는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새로운 세상을 만끽하였다. 동행한 아들 녀석은 여행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입맛이 까탈스러워 칭얼댄 것만 빼면 이 세상 부러운 것 없는 아들과 아빠의 여행이었다. 다음 여행은 가족이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2) 12번의 가족여행

매 달 한 번씩 국내 여행을 다녔다. 어떤 때는 도보로 갔다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하였지만 가족 모두의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펜션에서 야외 바비큐를 먹기도 하고, 래프팅을 하면서 물속에서 살기도 했고 조용한 산사에서 자연을 배우기도 하였으며, 역사와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해마다 우린 이렇게 여행을 다닐 것이다. 얘들이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 좀 힘들기는 하겠지만 가능한 한 자주 그리고 같이 다닐 것이다.

3) 1인 기업 창업

[(주)코리아니티 경영연구소] 2006년 1월에 만든 1인 기업이다. ‘세계적 보편성의 한국화, 한국적 특수성의 보편화, 사람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기본 모토이다. 5월에는 서울에 조그마한 연구소를 오픈하였다. 아직까진 매출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 속으로 나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외피로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처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나의 꿈이다.

4) 경영대학원 입학

작년 미역국을 먹었던 서강대 경영대학원에 재도전해 합격하였다. 상반기동안 대학원에 도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였던 나날들이 새롭다. 어렵게 들어온 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그래야겠다. 매 주 이틀씩 강의를 듣고 경영학 전반에 걸쳐 공부하는 즐거움은 천금보다 더 의미가 있었다. 내 꿈은 이렇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

5) 마라톤 풀코스 5회 완주

작년 처음 시작한 마라톤은 2년차를 맞이하여 아주 신났다. 매일 연습하지는 못했지만 봄 대회 때 sub4를 달성하였고 가볍고 즐거운 운동습관은 가끔씩 가는 산행과 더불어 건강을 지키는 듬직한 밑바탕이 되어주고 있다. 덕분에 작년보다 8kg나 다이어트하는 성과도 얻었다. 튼튼하고 날렵한 내 모습에 스스로 반할 때가 많다.

6) 첫 작품 출시

10월, 우여곡절 끝에 내 이름으로 쓴 내 책을 출간하였다. 무려 네 번을 퇴짜 맞고 나서야 초고가 통과되었다. 스승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 지난 2년의 산고였으며 가슴 떨리는 내 이야기는 1인 기업가로 홀로 서는 첫 발걸음이다. 출판기념강연이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감동적으로 이루어졌다. 첫 강연을 위해 난 20번의 리허설을 준비하였다. 톰 피터스의 곰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식식대는 거친 강연자가 나의 또 다른 꿈이다.

7) 영어와 피아노 그리고 붓글씨

2005년 말 세 가지 놀이를 시작하였다. 영어는 30년 동안 포기한 공부였으나 이제 조금씩 재미를 붙이고 있다. 가벼운 프리토킹이 가능해 졌으며 경영원서들도 큰 무리 없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노래대신 시작한 가벼운 취미 피아노는 재즈에 도전하는 중이다. 딸아이와 함께 치는 피아노가 우리 가정을 행복 속으로 밀어주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때 시작한 서예는 천자문을 50번 쓰고, 논어와 맹자 전 글을 직접 필사하고 그 뜻을 일일이 새겨 배웠다. 의암선생님과 황귀남 선배께서 고전의 가르침을 주셨다.

8) ‘노동과 경영’의 실천

나의 전공인 ‘노동과 경영’, 그리고 ‘코리아니티 경영’에 관련된 50여권의 책을 읽고 정리하였다. 그 중 10권의 책은 나의 방식대로 다시 정리되고 덧붙여져 지속적으로 이 분야의 전문지식을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 선정된 기업 100여 곳의 인사담당자와 노동조합관계자들을 서치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3년 계획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코리아니티 경영의 실천적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즐거운 놀이이자 직업이 되었고, 나를 세상 속으로 내보내는 터미널의 역할을 한다. 작년에 이어 하루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루를 승리하고 즐기는 방식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9) 문화궁전

애초 계획했던 것에서 7년 정도 앞당겨 문화궁전을 장만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원주택보다는 아파트생활이 몸에 더 익숙한 것이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배산임수의 풍수에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였다. 서울에 가고 싶었지만 당분간 천안에 더 살기로 하였다. 역과 고속전철, 나중에 들어올 터미널까지 고려한 우리의 문화궁전에 입주한 9월은 행복과 기쁨이었고, 산과 물이 주는 자연환경에 감사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의 서재가 만들어졌고, 하루 일과가 이곳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었다.

10) 꿈 벗들과 연구원

올 해에도 어김없이 꿈 벗들이 배출되었으며 그들은 거대한 네트웍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10기까지 무려 80여명에 달하는 창조적 부적응자들의 집단적 놀이가 사회의 관심 속에 그 구체적인 결과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이속에서 또 하나의 꿈 [구본형 재단]이 잉태되고 있다. 2기 연구원을 맞이하게 된 변화경영연구소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고향집을 개조해 만든 두 칸짜리 연구실은 조용한 집필실로의 역할을 실험해보고 있다.

** 2005년 이룬 나의 꿈

1. 스승을 만나 연구원이 되었다.

옛날 선비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평생을 스승을 찾다가 한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었다 하니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난 셈이다. 지난 몇 년간 이러저러한 일로 마음고생도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그리 넉넉하게 지내지 못했다. 외부의 문제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으로 인하여 그리되었던 것인데 돌이켜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절실한 만큼 바라는 것이 있었는데 우연히 바람처럼 찾아간 ‘내 꿈의 첫 페이지’에서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도 그 때의 간절함과 절실함은 잊혀 지지 않는다. 세 계절을 보내는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고, 배움 역시 적지 않았다. 언제나 모시고 살면서 본받고 싶다.
연구원 활동을 하게 되면서 50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고 ‘노동과 경영’이라는 연구주제도 정하였다. 그리고 내년 10월에 내 이름으로 발간될 책도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스승을 만난 것에서 시작하였으니 평생의 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2. 매일 조금씩 읽고 조금씩 썼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의 성취는 머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끈질기게 오래 앉아 연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궁둥이살로 결정된다고 하셨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평생의 업이 스승의 모습처럼 되는 것이라면 응당 필요한 것은 배움과 학습 그리고 연구일 것이다. 스스로 변화경영의 고수가 되어야 하고 매일 조금씩 읽고 써야 한다고 하셨다. 음주가무는 매일 즐길 수 있었지만 매일 학습은 쉽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무절제한 생활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리도 없겠지만 스승의 말씀을 몸으로 알아듣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러기를 여러 달이 지날 때쯤 어느 한순간 그것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느낌이 들었다. 몸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부터 매일 조금씩 읽고 써는 일이 아득히 먼 옛날부터 내가 해오던 일처럼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8월 추사고택을 다녀온 이후 글쓰기가 두렵지 않았다. 지금은 하루 2시간의 독서가 아주 편안하다. 매일을 기록하고 하루를 즐기는 생활이 나에게는 아주 잘 맞는 듯하다.

3. 마라톤

막연히 시작했던 운동, 이런 저런 운동을 해 보았지만 마땅히 내 몸에 맞는 운동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봄 합천에서 10km를 뛰면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고 10월에 파주 그리고 춘천마라톤을 완주하였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반환점에 접어든 인생의 길을 제대로, 힘차게 갈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4. 가정의 행복, 이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자랑스럽게 그리고 거만하게 떠벌리고 다닌 구절이 하나 있었다. 일과 가정은 양립할 수 없다. 당연히 돈 버는 일이 중심이었고 그러자면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대가면서 저녁 일찍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들을 만들어 냈고, 음주가무를 당연히 즐겼으며, 하늘같은 가장이 큰일을 하는데 사소한 집안일로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기를 십여 년, 돌이켜보면 그 긴 시간을 묵묵히 인내해 준 아내와 가족들이 너무나 고맙고 마음의 빛을 많이 졌다. 修身齊家 라고 했던가 내 몸을 스승에게 맡기고 나니 나를 기다리고 믿고 있는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과 가정이 하나로 만나고, 직업과 삶이 하나로 되고, 하루가 인생의 전 길이로 확장될 수 있도록 배움과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족여행도 다니고, 지난 10여년보다도 더 많이 영화도 보러 다녔다. 토요일 저녁은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고 청소도 같이 하였다. 같이 산도 다녔고, 밤마실도 같이 다니기도 하였다. 그렇게 보낸 1년이 더 없이 행복했다.

** 마치며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성공 뒤에는 성공을 향한 탐욕이 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 이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고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한다.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이 말을 깨닫는 자, 그대는 이미 부와 명예의 월계관을 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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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기원
2005.12.05 23:01:39 *.61.127.104
박교수님 많은 부분에서 동감이 갑니다.
미래를 볼 수있는 눈(觀)과,
그 미래를 믿는 신념
그 신념아래 행할 수있는 계획 완벽합니다.
모두가 얼렁뚱땅인 저와 너무나도 비교됩니다.
꿈벗님들 덕분에...
오늘 참 초라함을 두번 느끼는 날입니다.
꿈벗이 소중함이 더욱더 간절해집니다.
원하시는 큰 일이니 꼭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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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일
2005.12.06 00:35:00 *.100.68.188
이미 이루어 놓은 꿈들이 많으심을 축하합니다.
미래에 펼쳐 질 꿈들도 빈틈없고, 또 그 것들의 규모에 놀랍니다.
작은 꿈을 큰 꿈으로 연계재생산 하시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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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남
2005.12.06 14:26:33 *.48.38.156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가슴에 쩌렁쩌렁 와 닿습니다.
또 이런 말들이 두통조차도 날라가게 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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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강
2006.01.01 23:59:11 *.140.43.17
박사장님 가는 길에 늘 함께 했으면 합니다.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면 영광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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