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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6일 23시 25분 등록

주말 북한산 둘레 길을 다녀왔다. 위로 우뚝 봉우리가 솟은 높은 산으로 숨을 헉헉대며 올라가는 험난함이 아닌, 올망졸망 굽이굽이의 서울 외곽 산길을 적당한 땀과 함께 걷는 재미가 있었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도 있었지만 아기자기 잔잔한 코스에 쉬어가는 곳곳과 전망대 등이 있어 넉넉한 여름의 푸름을 즐길 수 있었다. 모두 다 높은 곳에 오르려하고 그곳에 올라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둘레 길의 상징성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삐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굽이굽이 인생길을 나타내듯 에둘러 팔자 좋은 양반네마냥 뒷짐 지고 여유를 한껏 부리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면 쉬엄쉬엄 각자의 모습으로 발걸음을 놀리기에 목표점을 향해서 혹은 종주를 위해서 투쟁하는 길이 아닌, 함께하는 공존의 어울림과 관계를 맺고 동화가 되어간다. 살다보면 우리 인생에는 여러 갈레길이 있고 예상치 않은 깊은 늪에 빠져 어느 경우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날이 그러하였다. 경찰차 사이렌이 계속 울어댄다. 무언가 사단이 났다보다. 회사 뒤쪽에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하나 있다. 이름을 되면 알만한 브랜드인데 그곳은 평소 어린 소녀들의 팬클럽 멤버들로 가득하다. 소속된 연예인들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고 나중에서야 신문을 보고나서 알게 되었다. 오너의 자살. 한때 무척이나 잘나갔었지만 경영악화로 인한 좌절과 고민 끝에 마지막 자충수를 두었다는 친절한 주석과 함께.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연민의 마음이 들었지만 꼭 그렇게 하여야만 했을까 라는 양가감정은 나만이 가지고 있었음은 아니었으리라.

 

“나, 힐링이 필요해요.”

자동차는 오랜 기간을 달리고 나면 새로운 부속품으로 제때 교체를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사람도 그러하다. 많은 시간을 앞만 바라보고 질주해온 이에게는 더욱더. 최근 마늘님이 경계경보의 신호를 보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단어의 의미를 깊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직생활이 다 그렇지 뭐. 남의 돈 받고 일하는 게 쉬운지 아니.’

‘선수가 왜 그러냐.’

‘주말에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런데 반복적으로 내뱉는 내용의 어감이 갈수록 심상찮아 보인다. 정말 힘든가? 눈치가 평소 시원찮은 나이기에 그녀의 아침 출근길 얼굴 표정을 사뭇 들여다본다. 어둡다. 회사 가기가 싫다고 하기에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달리다 못해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는데 정말 그런가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 본인의 최종 목표점을 향해 쉼 없이 질주만 해온 사람이기에 편하게 한번 쉬어보지도 못했으니 오죽하면 저런 말을 할까. 어느 해 그때도 그러하였었다. 되돌아보면 한편의 추억이지만 당시 무척이나 암울했던 시기였다. 나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라는 의문점 속에 헤매고 있던 터였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의 지독한 상심과 고민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기에 바깥 살벌한 외부환경에 치이고 피곤에 절어 위로를 받고자 함에도 그녀의 모습은 한결 같았다. 전등불이 꺼진 집안 어두컴컴한 거실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울면서 궁상을 떨고 있는. 무슨 일이지. 왜 그럴까. 며칠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오겠지. 그런데 똑같은 증상이 이어져간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왜 그러지. 그러다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12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그 여자가 이해가 되요.”

그랬다. 권태 및 주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로 파국을 맞은 한 가정주부의 기사가 회자가 되었었던 당시였다. 그런데 뭐야? 그녀가 이해가 된다고. 그제야 살벌한 위기감이 캐치 되었다. 그렇구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우울증이라는 질병이구나. 무조건 그녀를 이해하고 넋두리를 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머리로써는 받아들여지지만 날마다 반복되는 궁상떠는 행동에 나 스스로도 스트레스와 짜증이 쌓여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바깥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질질 짜고 본인 가슴에 맺힌 이야기만 털어놓으니.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나도 힘든 게 얼마나 많다고. 그러다보니 속 좁은 나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드디어 넘지 않아야할 능선을 넘고 말았다.

“바깥에 나가 쇼핑도 하고 그래봐. 남들은 그럴 때 잘만 돌아다니더라. 하루 종일 집안에 처박혀 울고 있지만 말고.”

그녀는 그런 나의 말에 더욱 상처를 받은 듯 쉰 목소리의 울음이 더해졌다.

 

떠났다. 힐링이 필요하다는데 까짓것. 그런데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자영업이 아닌 이상 본인이 필요할 때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남들은 법적으로 허가된 연차를 쓰라고 한다. 그래. 연차.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직장 상사한테 ‘제가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 좀 쉬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였을 때 그 상사의 자애로운(?) 얼굴 표정을 본적이 있는가. 이십대와는 다르게 아직은 보수적인 색채로 무장되어, 철야근무와 가정보다 직장이 우선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 그분들 앞에, 그런 이야기를 하였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어떠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떠나야 한다. 일단 사람이 살아야 하기에. 신혼여행이후 둘만이 이렇게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도착 후 불어오는 제주도 특유의 바다와 화산재를 머금은 바람. 달콤 쌉싸래하다. 업무로 그렇게나 많이 와본 곳이지만 이렇게 오니 기분이 색다르다. 렌터카를 대여하고 우린 다음날부터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기보다는 해안도로를 통한 경유지를 쉬엄쉬엄 이어 나갔다.

이국적인 풍차를 만나고

신혼부부마냥 때 이른 유채꽃 앞에서 배시시한 웃음으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도 찍고

호기 있게 회를 사주겠다고 하여 메뉴판을 펼쳐든 순간 놀랄만한 가격에 다른 음식점을 찾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를 뚫고 찾아간 사려니 숲길에서의 고즈넉한 풍경에 취하고

바다를 밝히는 빨간 등대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유럽의 어느 곳에서 봄직한 이국적인 가게에서의 시원한 망고 주스 한잔에 기분은 아삼삼 호사도 부려본다.

그녀는 어린아이마냥 까르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정말 좋은 모양이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왔기에 이런 기회를 만들지 못했으면 어떠했었을까.

 

영업사원을 관리하는 방문판매 사업자들을 업무상 마주하다 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이 있었다. 학벌과 능력이 출중함에도 그것이 필드에서는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는 것과, 반대로 조금은 어설퍼 보이고 저런 분이 어떻게 사업체를 운영해 나깔까 의문점이 드는 이들이 의외로 선전을 하며 롱런을 하는 점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그 해답은 최인호 씨의 장편소설 <상도(商道)>에서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는 계영배(戒盈杯)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계영배는 술잔이다. 그런데 그 잔이 이상야릇한 놈이다. 술이 70%만 채워져 그이상의 넘침을 차단하는 잔이다. 가득참을 경계하는 잔의 의미대로 꽉 차있는 것만이 완벽함의 모습만이 정답이 아닌, 조금의 부족함이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최근 한국 영화의 각종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 이라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브라운관에서 보던 대리석을 깎아놓은 듯한 완벽한 외모만이 아닌, 바보로써의 역할에 소녀 팬들은 열광을 하고 상반된 그의 모습에 묘미를 느낀다.

살다보면 나를 내려놓고 바라보는 제때의 시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눈은 외부로만 볼 수 있게 되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은 스스로의 내면적 통찰과 타인의 시선을 통한 조언과 피드백에 의해 확인되어 진다. 그만큼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싶지 않은 일인데 신이 그렇게 한 이유는, 아마도 내면에 감추어진 무형의 보물들 그것을 애써 탐구하며 찾아보라는 남다른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

정상을 오르지 못할시 때론 우리에겐 변명도 필요하다. 조금의 비겁함이 있어도 좋다. 이솝 우화 <여우와 신포도>에서처럼 ‘아마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는 합리화성 발언도 괜찮다.

높은 산엘 오르는 것만이 정상에 서는 것만이 인간한계를 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에.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고은

 

IP *.39.8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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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7 19:38:58 *.62.164.20
아! 그렇네요.
방금 저도 넓은 물을 돌아다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3.06.23 21:12:16 *.34.227.139

늘 당기고만 있으면 탄성을 잃어버리는 고무줄처럼 사람들도 늘 당기고만 있으면 결국 쓰러질 수밖에 없지. 때때로 놔버려야지. 아! 제주도의 마라도 길 걷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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