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 홍승완
  • 조회 수 3617
  • 댓글 수 11
  • 추천 수 0
2005년 12월 29일 16시 22분 등록
마음 알 알음(Version2)

• 작성자: 홍승완 • 휴대폰 / e-mail: 018-217-9451 / swhong@krconsulting.co.kr



Ⅰ. 일과 직업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1. 직업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동시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 그리고 고단한 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위대한 성취는 고된 작업을 수반한다. 나는 하기 싫은 일 때문에 울고 싶지 않다. 대신에 하고 싶은 일 때문에 울고 싶다. 내가 선택한 일에 긴 몰입으로 임하고, 그 과정을 즐기고 싶다. 일 안에 내 철학을 담고 나의 철학이 일로 표현되길 바란다.

결국 나의 직업관은 나의 ‘핵심가치(core values)’를 믿고 지키는 것이다. 특히, 나는 전문가로써 세 가지 책임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첫째, 나(자기계발)에 대한 책임이다. 나는 늘 배우고 더 나아질 것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나는 퇴보할 것이다. 둘째, 결과(목표 달성)에 대한 책임이다. 나는 결과로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을 하지 않는다. 과정과 결과에서 교훈을 얻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셋째,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나는 나의 직업과 일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 나의 핵심 가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나는 끊임없이 배우고 가르친다.
나는 내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보살핀다.
나는 기본적인 매너를 지킨다.
나는 전문가로서 세 가지 책임을 진다.
- 나(자기계발)에 대한 책임, 결과(목표 달성)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


2. 직업 선정 기준
나의 직업 선정 기준은 한 마디로 나의 핵심가치이다. 나는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일은 삶의 핵심적이 요소이기 때문에 그 둘은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한다. 직업 선정 기준으로써의 핵심가치를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좋아하는 일인가'. 무대 위와 무대 뒤를 모두를 좋아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성과가 좋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믿음이다.

둘째는 '누구와 함께 하는가'.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늘 원하는 사람하고만 함께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 기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잊지 않는다.

셋째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조건이나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는 편이다.

넷째, ‘잘할 수 있는가’. 성과가 없어도 묵묵히 가야할 때가 있다. 하지만 성과가 없으면 쉽게 지친다. 나는 스스로에게 높은 기대 수준을 갖고 있다. 높은 기대 수준도 작은 승리가 받쳐주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다. 나는 특히 그렇다. 그러므로 작은 승리를 이뤄내는 것은 내게 중요하다.

다섯째는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그것으로 인해 궁핍해지고 싶지는 않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풍요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면 된다.

여섯째, ‘이 일은 다른 사람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이것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나는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의미가 없으면 의욕도 없고 성과를 내도 기쁘지 않다. 내가 하는 일과 활동은 다른 사람과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일이어야 한다.


3. 관심 직업 및 그것들의 특성
- 관심 직업: 경영컨설턴트, 작가, 이야기 수집가, 마음을 찾아주는 사람

나의 관심직업은 대개 세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데, ‘커뮤니케이션’과 ‘도움’ 그리고 ‘학습’이 그것이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은 글쓰기와 말하기를 뜻하고, 도움이란 나를 통해 남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직업은 지적 작업이 수반하는 분야이고, 여기에는 강도 높은 수련과 학습이 필수적이다.



Ⅱ. 나의 내면적 자산(기질 / 재능 / 경험)


1. 기질
MBTI 검사 결과, 나의 유형은 ESFJ(외향-감각-감정-판단)이고 주기능은 감정, 부기능은 감각이다. ‘MBTI Form K’의 ‘다면척도’ 중에서 나의 핵심적인 척도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외향(E): 능동성(initiating), 표현적(Expressive), 열성적(Enthusiastic)
- 감각(S): 이 부분은 조금 애매하다. 감각(S)과 직관(N) 사이의 ‘중간 점수’가 많았다. 스스로 내 자신을 보더라도 둘 중 하나로 명확하게 치우치지 않는다. 감각과 직관의 어느 중간이 내 위치일 것이다.
- 감정(F): 정서적(Empathetic), 감성적(Compassionate), 온건한(Tender),
- 판단(J): 목표지향적(Planful), 방법적(Methodical). 이 부분도 분명하지 않은데, 총 5개의 척도 중에서 판단(J)과 인식(P) 사이의 중간 점수대에 위치한 척도가 2개 있었다.

MBTI 검사 결과를 통해 나는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내가 이제까지 주기능인 감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검사 결과가 이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나와 인터뷰한 MBTI 전문가는 20대와 30대 중반까지는 주기능과 부기능을 강화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해주었다. 앞으로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리는 것이 관건이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마음을 존중하고 그것을 따르자. 나의 마음을 속임으로써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자. 마음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약점을 보완해주고 재능을 강화해줄 것이다."


2. 재능
2-1. 갤럽(Gallup)의 스트렝스파인더(StrengthsFinder) 검사
- 강점 테마: 탐구심(Input), 초점(Focus), 관계자(Relator), 신념(Belief), 책임(Responsibility)

2-2.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검사(다중지능 프로필)
- 강점지능: 자기성찰기능(Intrapersonal Intelligence), 언어지능(Linguistic Intelligence), 인간친화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
- 약점지능: 음악지능(Musical Intelligence), 자연친화지능(Naturalist Intelligence), 공간지능(Spatial Intelligence)

2-3.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재능
- 상황판단 능력: 한 마디로 눈치가 빠르다. 영화를 볼 때 영화초기부터 줄거리와 결말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내 판단이 80%이상 적중한다. 어떤 사람의 작고 사소한 행동에서 그리고 어떤 모임에서의 미묘한 분위기를 통해 사람과 조직의 현재 마음과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해낼 수 있다.

- 목적 지향적: ‘목적이 과정을 지배 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그리고 목적은 가치관과 철학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치관과 철학이 중요하다.

- 의사소통 능력: 어릴 적부터 비교적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그러나 남에게 부탁하는 경우와 내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떨어진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학창시절 많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대학 시절, 팀 과제 혹은 팀 리포트 등 공동 활동에서 언제나 리더와 발표자로 활동했다. 글쓰기는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발전했다. 학창시절의 리포트 작성, 경영 컨텐츠 제작, 웹사이트 운영 등 비교적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경험이 도움을 주었다. 의사소통에 있어 표현력은 좋은 편이지만 설득과 협상에는 약하다. 이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3. 경험(성취 경험과 실패 경험)
- 성취 경험
①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일기를 썼다. 매일 쓰지는 않았지만, 1주일에 네 번 정도는 썼던 것 같다. 일기의 곳곳에 자작시도 적어 넣었다. 시의 주제는 대부분 나의 일상과 첫사랑, 친구 등 소소한 것이었다.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그 시 안에는 나의 고민과 사랑 그리고 그 시절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② 나의 고등학교 입학 성적은 형편없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뒤에서 세는 것이 빨랐다. 그러나 공부를 조금씩 열심히 해서 성적이 나아졌다. 2학년 때는 열심히 노력해서 반에서 5등 안에 들었고, 내신 등급은 2등급으로 1학년 때보다 10등급 이상 뛰었다. 졸업할 때의 성적은 전교에서 20등 안에 들었다. 대학 시절에도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특히, 4학년 때는 두 학기 보두 4.5 만점을 받았다. 장학금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고 나는 수석 장학금을 받았다.

③ 1998년 이른 봄, 하고 싶은 일과 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경영 컨설턴트라는 꿈을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몇 가지 다짐을 했다. 다짐에는 '1998년 12월 31일까지 매일경제신문과 일간지 하나를 매일 읽는다', '1년에 백 권의 책 읽는다'는 것이 있었다. 기초가 없던 나로서는 쉽지 않은 목표였다. 2개의 신문 읽기는 해냈는데, 다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날은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신문만 읽은 적도 있었다. 책은 65권을 읽어 목표달성에 실패했다. 돌아보면 미련한 방법이었고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도 있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정한 목표에 대해 열심히 했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얻었다. 이 경험이 힘이 되어 99년부터는 매년 1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④ 대학시절인 2001년 7월 경에 아는 교수님의 권유로 사이버교육 업체인 배움닷컴과 함께 경영 교육 컨텐츠[목표에 의한 관리(MBO)]를 제작했다. 맡은 일은 한 달 안에 책으로 된 일차 컨텐츠를 요약-정리하여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투입하여 10일 만에 완성했다. 당시 배움닷컴의 책임자는 내가 만든 결과물에 만족했고 대학 졸업 후 입사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⑤ 2003년 6월 25일 현재의 직장에 첫 출근했다. 입사 첫날부터 새로운 신규 사업을 준비하는 업무에 참여했다. 약 1년 후인 2004년 5월경에 기업 교육에 필요한 신규 교육 과정을 기획하고 제작해야 했다. 교육 컨텐츠를 담당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고, 회사와 팀 내에서 직접적으로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르바이트 형식의 외부 인력을 몇 명 모았으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 전반적인 기획은 혼자 해야 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는 우여곡절 끝에 6월 말에 11개의 신규 과정을 완성하였다.

- 실패 경험
① 나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입학 성적은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형편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상위 10% 안에 들었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성적은 소위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대학의 유명도에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학교와 학과는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였다. 하지만 고3 시절 첫사랑의 열병에 빠지고 학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아 목표로 잡았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재수하지 않고 충남 아산의 선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한 결과였다.

②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 나의 첫사랑은 길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9년 간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 애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친구들에게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곤 했지만, 정작 그녀에게는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주변에서 머물렀다. 나는 소극적이었다.

③ 대학 졸업 후 2002년 9월 첫 직장에 들어갔다. 대학시절부터 기업과 경영에 관한 웹사이트를 운영하였고 배움닷컴에서의 경험 등이 있었지만 실제 비즈니스 경험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첫 직장에서 나의 역할은 관리자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 사장과 일선 직원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것 모두 쉽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내게 벅찬 직위와 업무였다. 나는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그 직장에서 나왔다. 당시 사장님은 나를 붙들려고 했지만 능력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의욕까지 상실한 나는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④ 2003년 1월, 만 5년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의 잘못은 없고 모두 내 잘못이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고 나를 많이 사랑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너무 아프게 했다.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사랑이었던 것을 그 때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스스로 확신하지도 못했다.

⑤ 2003년 7월,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현재의 직장에 들어 온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기였다. 지난 1년 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었고 자신감과 의욕을 잃기 시작했다. 점점 불평하고 변명만 느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힘들었다. 슬럼프는 3달 가까이 지속됐고, 내가 힘들어하면서 우리 팀의 업무 추진력 역시 떨어졌다. 당시에 조금 더 힘을 냈더라면 우리 팀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Ⅲ. 사랑하는 나의 직업


1. 나의 직업
경영 컨텐츠 전문가 / 마음과 경영의 길잡이
- 여기서 컨테츠는 책, 컨설팅, 강연, 동영상, 온라인교육, 워크샵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다.

“나를 통해 개인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 조직은 새로운 비전을 발견한다.(Finding your potential and passion)”
“나는 사람들이 어제를 치유하고 오늘을 변화시킴으로써 내일을 창조할 수 있도록 힘껏 돕는다.”


2. 나의 직업에 대한 묘사
- 나는 '무대 뒤와 무대 위를 아는 전문가'여야 한다. 나를 통해 나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매력적이고 명쾌해야 한다. 나는 경영과 마음이라는 화두를 갖고 책, 영화, 시, 만화, 스포츠, 개인적 경험 등 다양한 소스에서 영감을 얻는다. 나의 영감은 누군가의 영감이 되고 재료가 되어 그 사람을 돕는다.

- 내가 만든 컨텐츠는 ‘이론과 현실을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믿을 수 있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것을 나에게 적용한다. 학습 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많은 컨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 나는 ‘이야기를 통해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주는 사람’이다. 좋은 이야기는 마음의 문을 열어 준다. 나의 글은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글을 읽으며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잃어버렸던 자신을 발견한다. 묻어두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마음을 짓눌렀던 것들을 인정하고 용서한다. 화해한다.


Ⅳ. 과거가 된 미래의 10년


1. 2005년부터 2014년 사이에 벌어진 12개의 장면
- 2010년의 끝 무렵 지식경영온라인(KMonline)은 메일링 리스트 30만에 하루 5천명이 찾는 경영 분야의 건실한 온라인 미디어로 성장했다. 이것은 지환 님과 나의 오랜 우정의 산물이었다. 온라인에서 인연을 맺은 우리는 10년을 넘게 함께 했다. 우리는 서로 많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성격과 강점을 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도 안다. 부담 없고 편하다. 말을 하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안다. 한 마디가 열 마디다. 마음이 통한다. 우리 둘의 재능이 결합되면 탁월함이 된다.

- 마흔이 되기 전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는 매우 크고 튼튼한 책상, 좋은 의자, 3천권 정도의 책과 그것들을 담을 수 있는 책장, 심플한 디자인의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작은 영화관(음악관)이 있다. TV는 조금 큰 것이고 오디오는 보통 것보다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장만했다. 벽에는 여러 장의 사진을 붙어 있다. 내 사진, 가족 사진, 친구들 사진, 꿈벗과 함께한 사진, 연구원 생활을 함께한 벗들과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그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벽의 한쪽에는 시가 하나 걸려 있다. 꿈벗 중 한 명에게 받은 시이다. 책상 위에는 내가 사랑하는 운명의 그녀가 웃고 있는 사진이 있고, 그 옆에는 사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속의 사부와 나는 웃고 있다. 이곳은 나의 놀이터이자 에너지 충전실이다. 또한 작업실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본다. 누군가와 가볍게 한잔할 때도 있고 혼자 마실 때도 있다. 이곳은 화려하지 않다. 깨끗하지 않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지도 않다. 다만, 이곳은 나를 닮았다. 나의 곳이다. 좋다.

- 나는 30명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맺었다. 그들 중 일부는 관련된 분야에 몸담고 있는 길벗이었다. 그 중에는 ‘내 꿈의 첫페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을 맺은 꿈벗도 있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함께 수련한 연구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갖고 있으며 늘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능함과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있다. 우리는 친구이자 서로의 스승이다. 우리는 놀기 위해 종종 모였다. 물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적합한 사람들을 조직하여 하나의 팀으로 일했다. 우리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성과는 늘 탁월했다. 우리는 고객들을 만족시켰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했다.

- 2005년부터 2007년 봄까지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제1기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나는 조교로써 주도적으로 활동했고 이 기간 동안 3권의 책이 출간됐다. 책의 출간은 연구원으로서 성공적인 졸업을 의미했다. 제1기 연구원들은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으로써 종종 만났다. 나는 제2기 연구원의 조교에게 내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연구원 모집은 매년 계속됐고, 나를 비롯한 제1기 연구원들은 멘토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 우리 팀은 2006년 3월을 기점으로 적자를 벗어났고 연간 매출은 5억에 달했다. 나는 2006년부터 회사(팀)와 1년 마다 계약을 맺었다. 우리 팀의 연봉은 업계 최고이고 컨설턴트를 능가한다. 우리 팀의 복리후생 프로그램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우리는 소수정예주의를 표방해 왔다. 팀워크와 프로페셔널리즘을 통해 매년 성장을 거듭했고, 2008년에는 KR컨설팅 내에서 가장 수익이 많은 부서가 되었다.

- 나는 10년 간 1천 권의 책을 읽었고 700편의 영화를 봤다. 나는 읽고 보고 정리하고 표현했다. 현실에 적용하여 체득했다. 배우며 가르쳤고 가르치며 배웠다. 나는 경영과 마음이라는 화두를 갖고 책, 영화, 시, 만화, 스포츠, 개인적 경험 등 다양한 소스를 활용하여 컨텐츠를 만들어 냈다. 내가 만든 경영 컨텐츠는 실용적이고 역동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마음에 관한 나의 글은 감동적이고 통찰력이 번뜩였다. 나를 통해 사람들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았다. 조직은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고 도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개인과 조직이 어제를 치유하고 오늘을 변화시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힘껏 도왔다. 나는 고단함을 감수했고 성과를 즐겼다. 이것은 나의 보람이었고 삶의 큰 의미였다.

- 나는 책 10권을 냈다. 그 중 몇 권은 구본형 사부와 함께 썼다. 열 권 중 다섯 권은 '조직 경영'에 관한 것으로, 그 책 중 하나의 제목은 '매니즈먼트 인사이트(Management Insight)‘였다. 다른 세 권은 '자기계발'에 대한 것으로 그 중 한 권은 ’프로페셔널 노트'(Professional Notes)‘라는 제목을 갖고 출간됐다. 세 권 중 한 권은 마흔 번째 생일날 출간되었다. 나머지 두 권은 '한국성‘과 구본형 사부에 대한 것이었다.

* 조직 경영: 매니즈먼트 인사이트(Management Insight) / 체인지 인사이트(Change Insight) / 홍승완의 경영수련 / 공익기관의 경영과 혁신
* 자기계발: 프로페셔널 노트(Professional Notes) / 직장인을 위한 시 / 마음과의 대화
* 한국성과 구본형: 대한민국의 에너지 / 변화경영 전문가 구본형 평전

- 나는 33세를 넘기면서 재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공익기관의 경영과 혁신은 나의 전문 분야 중 하나였다. 내가 하는 강연 중 20%는 비영리단체와 공익기관을 위한 무료 강연으로 채워졌다. 발전과 혁신을 모색하는 공익기관에 대해 간접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 아버지의 칠순 잔치는 성대했다. 나는 큰 음식점 전체를 빌렸다. 나의 각별한 부탁을 받은 주방장은 정성껏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잔치에 오신 손님들은 다른 잔치에서는 받기 어려운 선물을 하나 씩 받았다. 나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은 이렇게 하고 싶었다. 돈으로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말고 누구에게 이렇게 해드리겠는가.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도 축하해드렸다. 나는 아버지를 위한 편지를 읽었다. 나는 솔직했다. 손님을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봤다. 눈물이 흘렀다. 사랑이었다. 어머니를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때 쯤이면 나도 결혼을 했을 것이고 아버지가 될 것이다.

- 찬민, 재학, 재범, 종로와 함께 작은 바(Bar)를 열었다. 서울 시내의 골목길, 사람들이 쉽게 찾기 어려운 곳을 택했다. 직원 한 명을 두었다. 그 직원은 동생처럼 편했다. 우리는 그에게 조금 많은 돈을 주었다. 그는 이곳을 잘 지켜주었고 우리만큼 소중하게 여겼다. 이곳에서 우리는 종종 모였다. 이곳은 우리의 자유였고 우정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마셨다. 문 닫는 시간은 우리 마음이었다. 모두 모일 때도 있었고, 둘이 만날 때도 있었고, 혼자 찾을 때도 있었다. 1년에 2번 정도는 가족들을 동반했다.

- 어느 날, 메일 하나를 받았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젊었다. 여자였다. 첫 제자가 여자란 것이 나는 좋았다. 여성의 섬세함과 감성을 나는 좋아한다. 그는 나를 ‘사부’라고 불렀다. 10년 전이 생각났다. 지금도 변함없지만 나도 구본형이라는 평생의 스승을 그렇게 불러 왔다. 나는 나의 첫 제자에게 편한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길을 찾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나는 제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엄격한 수련의 길을 강요하였다. 우리는 그 길을 함께 갈 것이지만, 나는 앞에 있지 않을 것이었다. 때로는 뒤에서, 어떤 때는 옆에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길 바랐다. 그녀는 열심히 수련했고 나 또한 좋은 사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제자의 첫 책에 나는 추천사를 써주었다. 당당히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은 훌륭했다. 그녀의 첫 책이 나오고 3년 후에 우리는 공동 저서를 출간했다.

-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사랑한다.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식장은 평범했으나, 모인 사람들은 특별했다. 주례는 구본형 사부였다. 사회는 후배였다. 사부의 주례는 특별했다. 결혼 전에 사부는 우리에게 결혼식장에서 읽을 마음을 담은 글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을 읽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울었다. 여전히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다. 기념사진을 찍는 순서가 왔다. 친구들과 찍는 사진을 우리는 두 번 찍어야 했다. 친구들이 많았다. 죽마고우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 꿈벗들, 길벗들을 합하니 100명 가까이 됐다. 한 번에 찍기에는 많았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사진기를 바라봤다.


2. 개인사 속의 2006년: 2005년 11월 29일 ~ 2006년 12월 31일

2003년은 전환(轉換)의 해였고, 2004년 수련(修練)의 해, 2005년은 도전(挑戰), 2006년은 도약(跳躍)의 해가 되었다. 자신감과 절제를 통해 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자신감은 나의 마음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 나의 본 모습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할 때 나의 마음을 따랐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절제는 이제까지 내게는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줄이고 비우고 그만뒀다. 말과 행동에서 넘치는 것을 줄이고 비웠다. 파괴적인 감정과 말과 행동을 그만뒀다. 새로운 가벼움을 느꼈다. 가벼워짐으로써 도약할 수 있었다. 나는 가볍고 자신 있게 도약했다.

나는 2005년 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 정리하고 나의 언어로 표현했다. 동시에 배우고 깨달은 것을 나에게 실험하고 적용하고 기록했다. 나는 초점을 유지하고 완전히 터득하기 위해 애썼다. 정신은 넓어지고 깊어졌다. 마음은 밝아졌다. 몸도 좋아졌다. 운동을 2006년에도 지속했다. 일주일에 4번,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고 운동을 시작한지 2년이 넘으면서 나는 활기차고 튼튼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

2006년 나는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 권은 ‘공익기관의 경영과 혁신’에 대한 책으로 상반기 중에 나왔다. 이 책은 연구원인 세나와 구본형 사부와 함께 저술했다. 다른 한권은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가을의 문턱에 ‘마음과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두 달에 한 번씩, 2일~5일에 걸쳐 포도 단식을 했다. 2004년 12월과 2005년 11월에 참여했던 ‘내 꿈의 첫페이지’ 프로그램에서 배운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포도 단식을 통해 절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일상에는 기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6년 3월 우리 팀은 적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연간 매출액은 5억 원에 달했다. 우리는 KR컨설팅 내에서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었다. 우리 힘으로 벌고 썼다. 월급은 올랐고 복지 프로그램도 좋아졌다. 우리는 좋은 팀이 되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고 탄탄한 팀워크를 발휘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했다. 우리는 등산이나 축하행사 같은 이벤트를 종종 가졌다.


3. 2006년 속의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반년

* 하루 : 2006년의 어느 봄날
아침 6시 30분 일어났다. 몇 달 전과 비교하면 1시간 쯤 일찍 일어난다. 아침시간이 여유롭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9시까지는 아직 15분이 남았다. 노트북의 전원을 누르고, 노트북이 정신을 차릴 동안 따뜻한 물 한잔을 마셨다. 플래너(planner)를 통해 오늘의 주요 업무와 일정을 확인하고 수정했다. 하나 둘 동료들이 도착했고, 곧이어 간단한 미팅이 시작된다. 우리 팀은 일을 할 때 몰입한다. 탄탄한 팀워크와 마음을 담은 몰입 때문에 우리 팀의 생산성은 매우 높다.

점심 식사를 조금 일찍 마쳤다. 구본형 사부의 홈에 들어갔다. 새로운 글을 읽고 사람들을 관찰했다. 이곳은 늘 따뜻하다. 따뜻함을 느끼며 나는 졸았다.

오후 내내 교육 컨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현재의 업무와 나의 직업적 꿈은 연결되어 있고, 나는 그 연결을 더욱 견고하고 풍성하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늘 찾는다.

열심히 일한 동료들이 하나 둘 퇴근할 즈음, 나는 책을 폈다. 2시간 정도 읽고, 1시간은 글을 썼다. 나는 1주일에 2개 정도의 완전한 글을 완성하고, 기초 자료와 초안 수준의 글을 몇 개 쓴다. 마음에 대한 글도 한 편 완성한다. 9시가 넘어 사무실을 나왔다. 집으로 가기 전 동네 헬스장에 들러 1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꿈벗들에게 메일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꿈벗들에게 짧은 메일을 보냈다.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벗들에게 ‘꿈벗 메일’을 보낸다. 꿈벗들에게 보내는 메일에는 내 마음을 적어 보낸다. 가끔은 번개나 모임 준비를 위한 글도 보낸다. 이제 시계는 12시를 넘겼다. 자야한다.

2006년의 365일 중 250일 정도를 나는 이렇게 보냈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은 영화를 봤다. 좋은 영화 한 편, 시원한 콜라나 맥주 한 잔, 쵸코렛 하나. 행복한 순간이다. 토요일에는 가끔은 혼자 술을 즐겼다. 혼자 술 마시며 책을 보고 영화를 보는 것이 나는 좋다. 일요일의 한 나절은 읽고 쓰고 실험하는데 보냈다. 시간이 빠듯할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문제는 시간의 부족이 아니었다.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권태와 나태였다. 나는 초점이 분명하고 시간을 덩어리로 잘라 몰입했다. 나는 이런 하루가 365일이 되도록 노력했다.


* 일주일: 2005년 11월 29일 ~ 12월 5일
- 두 번째로 참여한 '내 꿈의 첫 페이지'(The 1st Page of My Dream) 프로그램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직업관’, ‘직업 선정 기준’, ‘나의 직업’과 ‘나의 직업에 대한 묘사’를 다듬었다. ‘2005년부터 2014년 사이에 벌어진 열 개의 장면’을 수정했다. 이로써 ‘마음, 알, 알음’ 버전 2가 만들어졌다. 아마도 매년 이런 조정 작업을 거치지 않을까 싶다.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 ‘공익기관의 경영과 혁신’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몇 가지 책을 읽는 것에서 출발했다. 앞으로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좋은 사례를 모으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 12월 10일에 있을 연구원 전체 모임을 준비했다. 이번 모임에는 충남 아산에 위치한 현충사에 간다. 나는 이순신 장군을 아주 좋아한다. 12월에 만나는 이순신이라, 좋을 것이다. 기대가 크다.


* 한 달: 2005년 11월 29일 ~ 2006년 1월 31일
- ‘마음, 알, 알음’ 버전 2를 2005년 12월 말에 사부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 2005년 12월 송년 모임에서 미영 누나를 만나, 예쁘고 튼튼한 노트 하나를 선물했다. 언젠가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누나에게 작고 튼튼한 노트북 하나를 사주고 싶다. 아니면 내가 쓰던 노트북을 주고 싶다. 누나는 내 마음을 알 것이고 나도 좋을 것이다.

- 2005년 1월 중순, ‘새로운 버전’으로 이력서를 작성했다. 사부가 ‘코리아니티 실험 경영’에서 제안한 포맷을 활용했다. 6개월에 한 번씩 갱신해나갈 것이다.

- 전체 꿈벗들에게 1주일에 한 번 정도 ‘꿈벗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메일 내용은 부드러웠고 가벼웠다. 때로는 진지하고 어려웠다. 많이 깊을 때도 있었다. 너무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완벽함을 위해 뒤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 마음을 내놓기로 했다. 꿈벗들은 고맙게도 잘 받아 주었다.

- 2006년 1월 중순, 처음으로 포도 단식을 했다. 나는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하루는 30분 간격으로 레몬즙을 마셨다. 이튿날부터 3시간 간격으로 포도를 먹었다. 삼일 째에는 북한산에 올랐다. 천천히 걸었다. 산속에서의 포도 맛은 꿈 맛 같았다. 내려와서 샤워를 했다. 단식기간 내내 나는 스스로를 돌봐 주었다. 5일째부터는 엄격하지 않은 보식을 시작했다. 4박 5일 동안의 금주와 금연은 나를 한결 가볍고 상쾌하게 해주었다.

- 공익기관의 경영과 혁신에 대한 연구 과정과 성과 중 일부를 구본형 사부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 반년: 2005년 11월 29일 ~ 2006년 6월 30일

- 공익기관의 경영과 혁신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다. 사부와 세나와 함께 썼다. 사부와 첫 공동저작물이자, 최초로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었다.

- 공익기관의 경영과 혁신에 대한 강연을 틈틈이 준비했다.

- 2006년 2월 중순, 선이 누나와 재동 형이 결혼했다. 결혼식에서 나는 사회를 보는 자리에 서 있었다. 구본형 사부는 주례를 보셨다. 결혼식에는 모든 연구원들이 참여했다. 연구원들 얼굴 하나하나가 눈에 박혔다. 꿈벗들, 연구원들, 선이 누나와 재동 형, 구본형 사부, 그리고 나, 우리의 인연은 꿈만 같다. 꿈처럼 익어갔다.

- 두 번째 책인 ‘마음과의 대화’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지난 6개월 동안 지식경영온라인과 구본형 사부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 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조선 수군과 이순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거스 히딩크’에 대한 글을 썼다. 나는 이 글들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 우리 팀의 도약을 위해 몇 가지 일을 완료했다. 첫째로, 신규 교육 과정의 원활한 개발을 위해 교육과정 개발 인력과 레포트 제작 인력을 정비했다. 두 번째로 가장 머리 아픈 문제 중 하나인 레포트 평가와 관련하여 훈련교사 인력을 모집하고 정비했다. 2006년 3월까지 신규 교육 과정 20개를 개발했다. 레포트 평가와 훈련교사에 관한 문제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 ‘그녀’를 만났다.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고마웠다. 그녀는 착하고 예뻤다. 나는 처음부터 많은 것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 하고 싶은 것들과 해주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조금씩 천천히 즐기기로 했다. 나는 ‘연구원 모임’에 그녀를 데려갔다. ‘꿈벗 동문회’에도 함께 참석했다. 설정이었고 작전이었다. 작전은 기가 막히게 성공했다. 사부는 우리를 보고 웃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그 웃음의 의미를 나는 안다. 연구원들과 꿈벗들은 나를 위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선이 누나와 요한 형을 특히 좋아했다. 그녀는 선해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나보다. 노진 형과 병곤 형이 태클을 걸기도 했지만 귀여운 태클이었다. 누구보다 그녀에게 잘해준 사람이 이 두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나의 매력에 퐁당 빠져 버렸다. 나는 그녀가 ‘운명의 그녀’이기를 바란다.
IP *.120.97.46

프로필 이미지
김미영
2005.12.29 17:26:02 *.210.111.168
귀한 인연에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구체적인 풍광들이 참 멋져요..
2006년엔 우리 조금 더 멋져지기로 해요..
프로필 이미지
홍승완
2005.12.29 17:35:15 *.120.97.46
누나,
2006년 시작되자마자 한 잔 합시다!
프로필 이미지
이은미
2005.12.29 17:57:55 *.110.63.24
멋지다
이 탄탄하고도 흐르는 윤기 부럽다
확실히 재능을 넘어선 탁월함이다
다행이 초코렛을 좋아하나 보다 정말 다행이다
프로필 이미지
사랑의기원
2005.12.29 18:57:42 *.190.84.135
그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녀는 행복하겠다.
이렇게 정감넘치는 완벽한 미래를 그려내는 승완님과 어울리는 그녀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하느님 착하고 아름답고 예쁜 그녀을 빨리 점지해주셔요...()...기원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05.12.29 19:43:54 *.211.61.159
승완씨는 자신의 매력을 일부러 감추고 사는 젊은이 같아. 아니면 발산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하이에나인가? 아무튼 눈 앞에 그림을 그릴 정도 선명해. 새해에 한번 술 한잔 하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새해에는 좀 덜 진지해지기로 했는데 참.....
프로필 이미지
이선이
2005.12.30 11:56:14 *.72.66.253
'사랑하는 나의 직업' 이런 표현 나도 하고 싶다
프로필 이미지
한상진
2005.12.30 18:46:11 *.99.159.175
역쉬.. 멋집니다.
모든 꿈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특히 내년 5월의 꿈벗 전체 동문회에 '운명의 그녀'와 함께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박노진
2005.12.31 00:04:51 *.118.67.206
난 역시 '작은 바(Bar)'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
멋있어.
인생은 말이야. 이런 멋이 있어야 해.
프로필 이미지
정경빈
2006.01.04 09:54:17 *.217.147.199
나도 오늘 10대풍광 조율을 마쳤는데 이런거 보면 조금 더 보완하고 싶단 말이지..ㅎ
근데, 맨마지막 단락의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의 누군가가 나지? ㅋㅋ
아.....난 왜이렇게 아무나 해주기가 어렵지..-_ㅠ
프로필 이미지
신재동
2006.01.04 17:14:56 *.97.228.61
멋지기는 한데 말이지..
허허..... 2월 중순이 아니구.. 2월 하순에 한다구.. 도움이 안되요.. 흐그~~~
프로필 이미지
김진철
2006.03.15 18:48:07 *.97.149.71
며칠전 꿈프로그램에서 만나서 반가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청년이시군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9 이야기 팩토리 - 두번째 보고서 file [4] <몽실이> 유현수 2005.12.26 3470
» 마음 알 알음(Version2) [11] 홍승완 2005.12.29 3617
427 조금씩 굵어지는 10대 풍광들 [2] <몽실이> 유현수 2005.12.31 3090
426 번개몽향 정중동의 10대 풍광 [5] 정중동 2006.01.01 3155
425 흐르는강의 10년 회상 [3] 김영훈 2006.01.01 3366
424 My Way(2.0) [10] <몽실이> 한상진 2006.01.02 3641
423 ------------>[re]060101 [2] 隱湖06년 2006.01.07 5710
422 나의 꿈을 향해 한걸음을 옮기다 [9] <꿈두레>박성은 2006.01.14 3984
421 추억은 힘이 없다구? 주홍빛 2006.01.15 3302
420 항상 혼란은 변화보다 앞에 나타난다. [8] <꿈두레>靑松 安貞彦 2006.01.18 3720
419 꿈과 함께 걸어온 10년을 돌아보며 [9] <꿈두레>최영훈 2006.01.18 3892
418 Bravo My Life! [15] <꿈두레>오병곤 2006.01.22 5885
417 나의 꿈 찾기 [9] <꿈두레> 이경우 2006.01.24 4465
416 질곡의 바다에서 풍요로운 삶을 낚아 올리다. [8] [꿈두레]김용균 2006.01.29 4090
415 ReVitalizer의 10년 - 2005년,2006년 [3] 예닮 2006.01.30 3638
414 자신의 구원은 스스로 말미암는다. [9] <꿈두레> 하나한 김성렬 2006.02.06 4327
413 나의 직업 나의 미래 version 2.1 [3] 박노진 2006.03.10 3914
412 꿈, 이미 이루어진 미래 [5] <참깨> 바람처럼 2006.03.24 3795
411 자유의 독수리. [7] <꿈두레> 明導 赫宰 2006.03.31 3872
410 &lt;참깨&gt;10년 후.. [6] 윈디 2006.04.02 3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