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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홍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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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5일 13시 01분 등록
내 생에 아름다웠던 장면 하나,

스물세 살의 신년, 나는 대학 졸업식도 마치기 전에 농활 다니던 지역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거처로 석봉이 아저씨네 사랑채를 얻어 놓았지만, 동네 열 여덟채의 집 전부가 모두 친척 집같았다. 나는 아무 집이나 일손이 필요한 곳을 도와 일했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 먹었다.

강원도 산골마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야트막한 산을 한 바퀴 돌며 이루어진 마을이라 햇살이 잘 드는 양지말, 산 밑으로 자리잡은 음지말로 나뉘어져 있었고, 우연히 양지말 사람들의 형편이 조금 나았다.

동네 앞으로 작은 강줄기가 깎아 지른듯한 뼝창<절벽의 사투리>을 휘돌아 가고 있었고, 모래사장까지 있어 물고기를 잡으면 그 곳에서 매운탕을 끓여먹곤 했다. 강기슭을 타고 조금 올라가면 개발되지 않은 동굴이 현란한 종유석을 숨기고 있었다.

면에서 들어오는 버스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생필품은 홍씨노인이 도맡았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밭작물을 내다 파는 수집상이면서, 돌아올 때는 이 집 저 집에서 부탁한 생필품을 사다 주는 식이었다. 머리가 벗어진 고령의 노인이 집집마다 조미료 한 봉지, 운동화 한 켤레를 잊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눈밭에서 산토끼를 잡으면 다져서 만두 속을 넣었다고 부르러오던 사람들, 논이 없다보니 점심식사는 옥수수로 해결했고, 자연 옥수수를 재료로 한 음식들이 많았다. 시루떡도 옥수수로 하고 올챙이묵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당시 농민들의 자조적 경제협동단체로 막 태동되던 신협교육 등에 주민과 함께 참여하기도 하고, 고추와 마늘같은 그 동네의 특산물을 서울로 직거래하여 다소의 이익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홍씨노인의 생업을 훼방놓은 셈이었다.

자연친화적이고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나의 기질과 딱 어울리는, 모두가 동화같은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런 장면이다.

그 날 나의 일은 석봉이 아저씨의 막내를 돌보아주는 일이었다. 아기를 업고 집 앞에서 서성대고 있는데 마을 꼭대기 이장네 너른 고추밭에 비닐을 씌우느라 여럿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잘 다듬어놓은 붉은 밭고랑이 보였다. 더펄이 승진이가 비닐을 허리에 붙들어 매고 밭고랑을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군데군데 고랑에 서 있던 사람들이 흙으로 비닐을 고정시킨다. 공기가 들어가면, 바람에 쉬이 벗겨지므로 잘 밀착시키고 흙도 꼼꼼하게 얹어야 한다.
꽤 큰 밭이라 열 명가까운 사람들이 품앗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왜 나의 가슴이 그토록 홧홧해졌던걸까.

자연 속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다! 이것은 내 20대의 꿈이었고 그 장면은 내 꿈의 총화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말할 수 없는 흥취에 젖어 맨발로 근처의 밭으로 들어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흥얼거리며 발목이 시큰거리도록 붉은 흙을 밟고 또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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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힘이 없어’ 이것은 삼순이의 어록이지만, 나역시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글을 쓰다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꾸 망서려졌다. 하지만 동시에 말레이시아의 화가 라트의 그림책 “캄펑의 개구쟁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벌거벗고 살던 원시같은 어린 시절을 독특한 그림으로 다시 살려낸 그 그림책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어쨌든 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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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에 아름다운 장면 하나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수 있는 풍광좋은 야산 자락이면 좋겠다. 서너 가족이 모여 살면서 약간의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는 땅이 필요하다. 분명 농사일이 몸에 배지 않은 구성원일테니, 그리 넓을 필요는 없다.

개별적인 주거공간 외에 공통의 공간은 세 채이다. 하나는 생계수단인 보리밥집이다. 보리밥집의 메뉴는 단순하다. 직접 농사지은 야채를 쓴 보리밥과 한 가지 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일손도 줄이고 너무 생업에 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구성원은 일 주일에 3-4일만 일하면 된다. 밭일이든 식당 일이든 교대로 투입된다. 업무 자체가 단순하고 이미 파악된 일이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없다. 나머지 시간에는 여행을 가든, 독서를 하든 온전히 개인적인 시간이다.

두번째로 문화공간은 그야말로 다목적 공간이다.
만약에 구성원 중에 그림이나 사진, 시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되면 상설전시도 가능할 것이고, 아니면 가능한 초대전을 기획한다. 초대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주변동네나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정그룹이 확보되어야 한다. 모든 분야의 모든 작가가 바쁜 것은 아닐 것이므로 진정 문화를 사랑하는 마인드가 있으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물론 일반인이나 청소년을 위한 단기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프로젝트를 위시하여, 자연과 문화, 공동체의식을 공유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세번째 공간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이 없을 때에는 예약제로 일반손님이 숙식을 할수도 있다.
우리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일반인이 언제고 우리의 후원자요, 참여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우리 공간을 개방한다.

이 공간의 경제적인 기초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다. 의기투합한 1대 참여자들이 몇 년에 걸쳐 답사끝에 합의를 보고 공간을 확정하게 되면, 분할등기에 의해 개인재산으로 등록된다. 가볍게 생각할 사람은 없겠지만, 살다보면 불가피한 일로 떠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때 자기 지분을 처분하고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유연하고 개방적이다. 예기치않게 등장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구성원의 애정어린 해결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새 역사를 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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