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2006년 1월 18일 22시 10분 등록
나에게 있어 지난 10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간이었다.
그러한 계기는 2006. 1. 7일 2박3일의 꿈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평범한 나로부터 열정적인 나로 변신하였으며,
일반적인 공무원에서 멀티플레어로서의 공무원으로
건조한 가정에서 활발하고 끈끈한 가정으로 변화와 변신을 거듭하였다.
내 인생의 변곡점에 늘 구본형 선생님과
8명의 꿈두레 회원들이 주위에 있었고,
그들은 내게 어떤 때는 칭찬으로 성취를 배가시켜주었고
어떤 때는 냉철한 지적과 함께 적절한 조언으로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내 마음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늘 새롭게 변화의 순간을 즐기고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고치며,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내 마음의 변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주위는 많이 변하였다.
변화 이상의 변화가 내 눈앞에 펼처져 있다.
우선 나의 직업이 바뀌었고, 나를 비롯한 나의 가족, 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빛으로 가득차 늘 신선함과 새로움을 주고 있다.
지난 나의 10년을 돌아보면 아주 짧지만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풍광#1> 2016년 1. 10경..

그 날은 중국 북경에 내 사무실을 개소하는 날로, 이날 북경의 아침은
내가 본 가장 맑은 하늘이었고, 온통 번쩍번쩍 빛이 났다. 주위의 건물,
나의 간판, 사무실 집기 등이 아침에 떠오르는 환한 태양과 더불어
하늘의 푸르름에 빛을 발하였다.
개소식 축하화한 맨 앞에 있는 구본형 선생님이 보내주신 화환도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개소식에는 그 동안 중국에서 사업상 만났던 분들과 꿈두레 분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주었으며, 박성은 님이 친히 카메라를 들고 개소식 행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특유의 제스처와 목소리로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 중 최고로 잘나온 내가 웃고있는 사진을 확대하여 사무실 입구에
걸어두었다.

그간 약간 국제정세 변화를 살펴보면 일본과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경제권과 유럽연합, 중동 등 경제블럭이 발전됨에 따라
과거 아픈 역사를 청산하고 경제공동체로써 출발을 하였고,
일본, 중국, 한국, 홍콩 등 동북아가 한 경제권으로 통합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블럭으로 물류, 금융의 중심지가 되어 새로운 소비도시,
경제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내 직업인 동북아조세전문가도
이러한 환경변화에 힘입어 수요증가하게 되었고, 동북아 3국을 비롯한 대만, 홍콩 등에 본점과 지점이 다양하게 진출해 있어 각 나라의 조세관련 규정의
숙지, 깔끔한 일처리와 상황에 맞는 조세 컨설던트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10년 동안 전문자격사의 취득과 다양한 지식의 습득,
그리고 꾸준한 어학공부, 그리고 현직에 있는 인맥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였다.


그동안 내가 참여한 모임은 다음과 같다.
ㅇ 정책연구회 (고대행정대학원 졸업한 사람들의 연구모임, '2년 가입)
ㅇ 관세포럼 (관세청 직원 + 무역학 교수님들의 모임, 2003년 가입)
ㅇ 관세일어연구회 (관세청 현직 공무원들의 관세일어 연구회,2006년가입)
ㅇ 관세중국연구회 (관세청 현직공무원들의 중국 통관제도 연구회, '6년가입)
ㅇ 조세연구회 (국세청 현직 공무원들의 조세연구모임, 2008년 가입 )
ㅇ 세무사회 (세무사 자격증 소지자 모임,2012년 가입)
ㅇ 국제조세학회 (국제조세 관련 전문가, 2012년 가입)
ㅇ 중국 세무사회 (중국 세무사 모임, 2013년 가입)
ㅇ 일본 세무사회 (일본 세무사 모임, 2014년 가입)

그동안 내가 인맥은 약 600명으로 매년 카드와 소식을 전한다
ㅇ 관세청 현직 공무원 (약 100여명)
ㅇ 세무대 동문 약 300여명
ㅇ 외국 세관 공무원 50명(일본 10명, 중국 20명, 홍콩 10명, 기타 10명)
ㅇ 국내외 사업가(150여명)

나의 사업원칙은 분야가 조세문제인 관계로 항상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였으며, 알게 모르게 원칙을 넘는 청탁도 많아 사업운영에 문제도 있었지만 끝내 바른길의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 처음엔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나의 원칙을 인정을 해주었으며, 위험관리 측면에서도
많은 효과가 있었다.

나의 사업은 10여년의 준비끝에 개업한 관계로 아직 단단한 구조는 아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계속 노력을 해야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때
노력해놓은 것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일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조세전문가로써,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꿈두레님들중 일본에서 학원사업을
하는 김용균님의 복잡한 세금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
용균님은 늘 짱가와 같은 존재로 꿈두레 회원들중 무슨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주시는 분이다.
그런 분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게 되어서 정말 기뻤다.


<풍광#2> 세무사 시험에 합격 - 2012년

2012년 10월 말일이 세무사 시험합격자 발표예정일이었다.
피곤한 상태임에도 합격여부와 갖은 꿈 구상에 잠을 설치면서 뒤척이다가
새벽이 다가올 무렵 잠이 들었는데, 구름위에 두둥실 올라가는
꿈을 한참 꾸었다. 갑자기 아내의 포근한 손과 입술이 다가왔다.
살며시 손을 들어 아내의 얼굴을 만졌는데, 얼굴에 눈물이 있었고,
귀에 들려온 한마디, 자기야 합격했데, 하면서 포옹이 있었다.
이어 원영과 수현, 그리고 막내의 포옹과 아빠 합격 축하해요. 하면서
온 가족이 부둥켜 안고 기쁨을 자축했다.

세무사 시험은 나의 꿈을 이루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시험과목도 많았고, 세무대학을 졸업하기는 하였지만, 업무분야도 틀리고
관련법 하나만 해도 방대한 내용이었다. 그래도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와
나의 꿈에 대한 열정이 밤샘공무와 학원을 오가는 힘든 과정을 거쳐 3번의
실패를 거쳐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세무사 자격증 획득은 또 하나의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관세사와 세무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세무대학 최초의 동문이 되어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으며, 후배들의 축하 전화와 문의로 더욱
나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러한 계기로 다른 모임 가입 및 인맥형성에도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풍광#3> - 멀티 링귀얼 퍼슨 (Multi Lingual Person)
(06년 -영어, 07년 - 일본어, 08년 - 중국어)

세무사 합격과 별도로 동북아 조세전문가로써 중요한 기능이
바로 의사소통이었다. 어학기능을 연마하기 위하여 학원에 끊이지 않고
다녔고, 우연찮게 알게 된 각 나라 친구들의 사귀는데도 정말 열심이었다.
원래 어학이 소질이 없었지만, 막상 나의 큰 꿈을 그리고 막힐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어학도 재미있었고, 또한 나의 외향적인 활동력에 언어까지
뒷받침이 되니 중국이나, 일본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고,
또한 각 나라의 깊은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다.
2006년도에는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였고, 2007년도에는 일본어,
그리고 2008년을 꼬박 중국어 공부에 받쳤고,
어느정도 어학에 대한 자신감이 붙자 3개 국어가 동시에 가능해졌다.
과정이 좀 힘들었지만, 지금도 원영이 영어에 이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어
외국어 교육비도 많이 절감을 하게 되었다.
또한 공인중개사를 하는 아내도 나의 외국어 도움으로
국제거래도 줄곧 하게 되어서 그 효과는 많았고, 자신감있게 외국인가의
대화와 프리젠테이션을 할때면 이루 말할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풍광#4> 셋째아이 입양 - 2008년
2008년도에는 셋째아이를 입양하였다. 입양한 곳은 내가 2005년부터
자원봉사를 하던 보육원에서 하였으며, 봉사활동 내내 잊혀지지 않았던
부모없는 아이들의 허전한 눈동자와 과연 내가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자신과의 싸움,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아내의 설득,
원영과 수현과의 설득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전체 사회에 대한 봉사와 헌신의 의미에서 다들 이해를 해주었고,
셋째는 지금 모든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잘 자라나고 있다.
속도 많이 썩이고 울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새 10살의
어여쁜 소녀로 잘 성장하고 있다.

<풍광#5> 승진 - 사무관 2010년, 서기관 2015년
동북아조세전문가로 출발하는데 현직에서의 직급, 근무성적도 중요한
영향 을 미치게 되어 최대한 승진에 집중을 하였다. 공직사회도 연공서열을
탈피하여 성과관리, 다면평가 등 다양한 형태의 평가가 있었고,
나는 개인의 발전 뿐만 아니라 조직의 발전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였다.
주사승진 이후 최연소 기간인 5년만에 사무관 승진을 하였고, 2015년에
다시 서기관 승진을 하게 되었다.
사무관 승진은 중앙인사위원회에서 하였고, 다시 관세청으로 복귀하여
관세분야에 대한 현장경험을 쌓고 나름대로 그동안의 인맥을 통하여
관세청의 발전을 위하여도 열심히 노력하였다.
2015년에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서기관에 승진을 하게 되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중 하나가 승진이 아닌가 한다.
승진하고 며칠 뒤에 고향에서 잔치가 열렸고,
그 때 아버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축하해주던 말이
지금도 알연히 떠오른다.


<풍광#6> 명예로운 공직의 퇴직 - 2016년
처음 공무원을 입사하면서 명예로운 정년까지 근무하려고 생각을 하였으나,
굳이 공무원을 통한 봉사보다는 조세전문가로서의 활동이 더욱 많았다.
신분제약도 있고, 활동영역도 좁다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아내의 사업도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에 공직생활 27년을 끝으로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비록 정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제 2의 인생을 펼쳤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막상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려고 생각을 하니 일말의
불안감과 아쉬움이 있었지만, 떠날 때를 알고 움직이는 것도 서로에게 좋은 것
같았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또 나는 나 자신의 길을 가고..
명예퇴임식은 조촐하게 이루어졌지만, 나를 따르던 후배들과 동료들이
조촐한 기념식을 마련해주었고, 그 동안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동 영상과 사진을 보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행사를 마치게 되었다.


<풍광#7> 가족과 세계여행 (매년)
지나온 10년 동안 절반은 일본과 중국을 알기위해 부지런히 밖으로 쏘다니던 시간들이었다. 책을 통하여 얻는 지식보다는 현지에 가서 부딪히면서
배우는 직접경험이 더욱 나를 깨어있게 하였으며, 새롭게 열정과 에너지를
충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도 초에는 가족들과 함께 동경을 가서 일본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분위기를 보았고, 특히 결혼 10년을 맞이하여 가는
동경의 밤바다와 디즈니랜드에 가서 아이들이 행복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07년에는 약간 특별한 여행을 하였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아버지와 단둘이 베트남 하롱베이를 여행하였다.
어쩌면 아버지에게는 마지막이 될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신께서 정한 베트남을 돌아다니며 좋은 추억을 남겼다.
아버지는 내내 즐거워 하셨고,
나를 키운 적 힘들었던 때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 외 호주의 광활한 들판, 남아메리카의 억척스러움, 화려한 미국일주, 가을이 멋진 유럽일주 등 가족과 함께 한 해외 여행은 늘 나와 우리 가족을 들뜨게 해주었고, 여행마다 만든 가족앨범을 보면서 지금도 늘 회상에 잠긴다.


<풍광#8> 조세전문가로서 강연과 책 발간 - 2012년 ~ 2014년
2012년 세무사 자격증을 따면서 부쩍 동북아 조세에 대한 강연과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와 약 4년전부터 강연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그 동안 현직의 경험과 이론을 조합하여 늘 강연에 참석한 분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게 되었으며, 2014년에는 그 동안의 상담사례와 실례를 들어 한국, 중국, 일본의 조세에 관한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출판기념회때 구본형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변화와 경영이라는 주제로 간단하게 강연을 해주셔서 참석하신 분들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고, 지금 다시 제 2판을 집필중에 있다.


<풍광#9> (2016년, 경제학 박사과정 입학)
배움의 열정 또한 나를 계속 깨어있게 한 것 같았다. 석사를 마친 후 정확하게 13년만에 다시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국제경제와 디지털 경제학과 관련하여 더욱 전문지식을 쌓고 싶어서 박사과정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교수님들과 연구모임을 계속 지속하였고, 세무사와 관세사를 합격한 덕도 크게 보았다. 48세에 좀 늦은 나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이는 숫자에 불구하였고, 같은 박사과정 동기들과도 재밌게 지내고 있다. 그 동안에도 계속 책을 보고 토론을 하고 칼럼을 쓴 덕분에 재밌게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나이들어 배우는 것 또한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풍광 #10> 전통문화 계승자를 만나다. (2016년)
한국적인 것도 또 나에게 새로운 열정을 둔다. 요즘에는 동양에 대한 자세가 많이 달라져서 동북아시아의 전통이 글로벌스탠더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새해에는 전 세계인들이 주역을 통한 점을 보고 있고, 사주를 보며 인생을 상담하기도 한다. 또한 건강을 지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농산물이 고가로 수출되기도 하고, 외국인들의 특성에 맞는 계약형 재배도 성행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주거도 전통한옥에 대한 많은 관심으로 가장 부자들이 사는 것도 바로 한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는 지금 한옥학교에 다니고 있고, 소목장이라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조그마한 가구를 만드는 무형문화재를 만나 전수받고 있는 중이다. 그전부터 취미로 한옥 및 전통 생활습관, 나무 등을 조금씩 공부를 하는 등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올해 초에 두분의 사부님을 만났고 모임도 가입을 해서 서서히 한국적인 멋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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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경우
2006.01.17 18:33:39 *.39.130.4
최영훈님, 10대풍광 수립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영훈님의 미래를 향한 적극적인 자세와 봉사정신에서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동북아 조세전문가의 꿈, 꼭 이루도록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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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導 혁재
2006.01.18 00:07:47 *.139.244.71
감사합니다. 우도에서 뵐 날을 목빠지게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혼자서 먹기에는 너무 맛있는 해물뚝배기(우도에서 혼자 먹었습니다) 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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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6.01.18 07:35:02 *.229.146.48
풍광이 생생합니다. 성은씨가 찍어놓은 사진처럼 모든 것들이 그대로 이미 이루어진 장면처럼 살아 있습니다. 조세 전문가며 극동의 언어와 영어를 알고 있는 세계인이며, 한국을 사람하는 촌놈 최영훈의 모습이 잘 그려 집니다.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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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1.18 11:02:18 *.248.117.3
사실 처음에는 영훈님의 열정과 조세전문가가 잘 매칭이 안되더라구요. 조세전문가는 왠지 디테일할꺼라는 편견이 있었나봅니다.
멋진 풍광을 읽고나니 너무 잘 어울립니다.
백남준같은 세계인이면서 토종 한국인으로서 일취월장하시길 기원합니다.
PS)꿈두레 풍광에는 어김없이 성은님이 사진기를 들고 등장하는군요.
저도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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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松 安貞彦
2006.01.18 13:46:04 *.82.137.33
ㅋㅋ 저랑 가장 잘 맞았던 최영훈님! 제 생각만 그런건 아니지요?
2박 3일 동안 저랑 가장 잘 맞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북아 조세전문가! 저 2월 10일날 사인 받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10대 풍광중에 마지막 풍광이 가장 맘에 듭니다.
제게 느껴지는 최영훈님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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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2006.01.23 23:35:39 *.21.188.68
제 사업의 세금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즐거운 모습에 꿈두레 님들이 힘을 얻었고 10대 풍광이 이루어질 때마다 짱가처럼 서로 돕는 꿈두레들의 모습이 나타날 것만 같아 너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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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경우
2006.01.27 08:36:34 *.51.26.151
영훈님, 수고 많으십니다. 사진 액자로 빨리 받아 보고 싶네요. 제목으로 Dream Supporters는 어떤가요? 어디서 본 단어인데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참고만 하시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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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6.01.27 12:41:20 *.99.84.60
Dream Supporters가 좋은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액자는 약속대로 2월10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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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2.06 03:07:42 *.75.166.78
배려가 깊으신 영훈님
함께 지내는 동안 바른 생각을 많이 배웠습니다.
영훈님의 이미지가 제기억속의 공무원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복이 참 잘 어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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