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로
- 조회 수 218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간이역 주막에 대한 회고>에 부쳐
언젠가 나는 이 홈페이지가 작은 간이역 같은 곳이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작은 주막이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살다가 문득 답답하여 찾아 온 곳이며,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며, 홀로 떠난 짧은 여정 속의 썩 괜찮은 쉼터이기를 바랍니다. 종종 아주 유쾌한 웃음과 만남이 이루어 지는 짜릿한 곳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때때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습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은 조언이 필요한 것이 아나라 실천이 중요한 질문입니다. '가서 그렇게 하세요' 라는 말이 그 질문의 유일한 답일 때, 나는 답을 쓰기 어렵습니다. 가야할 길이 험해 보이면 홀로 져야할 짐이 무거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더 참으세요. 조금 더 참으세요' 그게 답일 때 나는 답을 쓰기 어렵습니다. 견뎌야 하는 사람의 고통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먼저 알면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제가 답이 없으면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저 조용히 주막에 들어 와 앉아 술을 한 잔 하고 문을 열고 다시 길로 나서듯 그렇게 생각하세요. 바쁘거나 불친절한 주인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털어 놓고 조금 쉬거나 울다 가는 것이 더 나아 보여서 그러는 것입니다.
홈페이지를 검색하다가 선생님께서 간이역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기억나 그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런 말이 있더군요,
간이역...
침잠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답답하기도 합니다.
'가서 그렇게 하세요.'라는 말이 질문의 유일한 답일 때,
저도 선생님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저도 답을 내지 못하는 그 시간이 되면 그분도 이런 생각을 할까? 고민하면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온전히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병석에서의 면회를 제외하고) 지난 겨울 일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였습니다.
우연히 우리는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갔었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겁니다.
서로의 가족들이 있어 오랜 시간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그날 선생님과 몇 마디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 몸은 어떠십니까?
-괜찮다. 너는 어디 아픈덴 없느냐?
- 저야 술만 먹지 않으면 걱정할 게 없습니다.(웃음)
- 그래. 술 좋지... 그런데 과하면 문제가 되지. 자로 넌 그런 기억이 몇 번 있지? 항상 조심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근데 선생님. 언제 술자리 한번 만들어야죠? 너무 적적한 것 같습니다.
- 그래. 알았다. 조만간 몸이 좀 나아지면 그렇게 하자꾸나.
- ...(침묵)
- 자로야. 잘할 수 있지?
- 네?
- 네가 하는 일, 네가 맡은 일, 네가 꿈꾼 모든 것들 말이다. 이제 오십이 코앞이니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지?
- 아~ 네. 그럼요. 제 앞가림은 할 정도 됩니다.
- 그래. 다행이구나. 책도 너무 소홀히 하지 말고...
대략 이런 얘기들을 나누고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헤어졌습니다.
오십이 코앞이니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지?
이렇게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뜻을 알지 못했던 못난 제자는 지금에 와서야 그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마흔의 나이에 세상과 부딪쳐 실패하고 도망치는 삶이 두려워 만났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벌써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올해가 지나면 그 마흔의 시간이 지나가고 홀로 서야 하는 오십의 시간이 다가오겠지요.
세상과의 싸움에 무던히도 많이 힘들어할 때마다 찾아왔던 이곳.
두려워 도망치고 싶을 때 다시 힘을 불어넣어 준 이곳.
막걸리 한잔에 깍두기 한점. 툭 털어넣고 다시 일어서게 해 주었던 이곳.
저에겐 간이역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겐 오롯한 삶의 충전소였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해마다 '나의 직업 나의 미래'라는 꿈 그림표도 만들어 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젠 우리가 다음 10년을 준비해야 할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과연 그런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살다가 문득 답답하여 찾아 온 곳이며,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며, 홀로 떠난 짧은 여정 속의 썩 괜찮은 쉼터"를
만들 수 있을지요?
그래서 그들이 온전히 세상에 맞서 의연히 홀로 서는 1인 기업가들의 베이스캠프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요?
간이역이란 그런 곳이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 아침입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709 | 횡설수설... [3] | 씨뱅이 | 2013.08.20 | 2311 |
3708 | 세 병을 비우며... [5] | 씨뱅이 | 2013.08.19 | 2292 |
3707 | 뱅쿠버 생활을 접고 [2] | 이수 | 2013.08.17 | 2384 |
3706 | 숲기원이 살다 보니까욤? 벌침을 맞을만했습니다. | ![]() | 2013.08.15 | 2176 |
3705 | 짜증은 혁신을 낳는다! / 곽숙철의 혁신이야기 | 써니 | 2013.08.08 | 3046 |
3704 | 살다 보면... [1] | 햇빛처럼 | 2013.08.01 | 2209 |
3703 | 五友歌 [1] | 자로 | 2013.07.28 | 2070 |
3702 | 뱅쿠버 생활 단상 [3] | 이수 | 2013.07.23 | 2358 |
3701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다 [3] | 범해 좌경숙 | 2013.07.05 | 2644 |
» | <간이역 주막에 대한 회고>에 부쳐 [2] | 자로 | 2013.06.19 | 2189 |
3699 | 거룩한 사랑 [1] | 한정화 | 2013.05.22 | 2312 |
3698 | 사부님을 다시 생각하며 [2] | 이수 | 2013.05.21 | 2172 |
3697 | [세번째] 아는가 모르는가 - 이세방 | 햇빛처럼 | 2013.05.16 | 3186 |
3696 | 사부님을 생각하며 [5] | 이수 | 2013.04.24 | 2772 |
3695 | 보낼사람을 보내야겠지만.. [1] | 햇빛처럼 | 2013.04.22 | 2444 |
3694 | [다시두번째]이타카 - 콘스틴티노스 카바피 | 햇빛처럼 | 2013.04.21 | 2459 |
3693 | [다시첫벗째] 키 - 유안진 | 햇빛처럼 | 2013.04.21 | 3089 |
3692 | 겨울이 버틴다 | 장재용 | 2013.04.20 | 2365 |
3691 | 이리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 | 퍼플레인 | 2013.04.19 | 2499 |
3690 | 사부곡 (사부님을 그리며) [2] | 운제 | 2013.04.18 | 23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