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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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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4일 07시 48분 등록

나의 신화 - 다이달로스의 미궁(라비린토스)

 

나는 다이달로스이다. 나는 아테네 왕족의 후손이며 최고의 예술가였다. 건축, 조각, 기계 발명에 나를 따를 자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용서 받지 못할 크나큰 죄를 범하였다. 누이 페드릭스의 아들인 조카 탈로스를 제자로 키웠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천재였다. 뱀의 턱뼈에서 영감을 받아 톱을 발명할 정도였다. 나는 조카의 천재성을 시기하였다. 그래서 아크로폴리스의 탑에서 조카를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그리고 아레이오파고스 법정에 소환되어 추방판결을 받았다.

도시국가에 추방당한자는 야생의 들판에서 맹수의 먹이감이 되어버린다. 나 하나 죽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내 아들 이카루스까지 죽일 수는 없었다. 들짐승과 배고픔에 죽을 고비를 넘기는 나와 아들 이카루스를 거두어 준 왕은 다름아닌 크레타의 미노스왕 이었다. 그는 영악한 야심가였다. 포세이돈 신을 설득하여 형들에게서 왕위를 빼앗을 만큼 교활했다. 또한 살인죄를 저지른 나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미노스 왕국의 군대를 최강으로 만들어줄 각종 전쟁무기를 만들도록 했다. 이카루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전쟁무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는 신을 원망하고 운명을 원망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 두 손을 잘라 버릴까? 내 두 눈을 파버릴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저들은 하나뿐이 내 아들 이카루스를 해칠 것이다. 이 모든 업보가 나의 잘못이지 결코 철없는 어린 아들 이카루스의 잘못은 아니다.

미노스 왕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이 번뜩였다. 그래! 이번에는 전쟁무기 혹은 금단의 장난감을 만들라는 명령이 아니다. 어쩌면 내 일생일대 최고의 건축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정성을 들였다. 나는 이 미궁을 만들며 마치 우리네 인간 삶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예술작품을 빚어내고 싶었다. 아니, 내 인생을 표현하고 싶었다. 인생은 미궁이다. 입구도 출구도 어디인지 모를 끝없는 길 위의 나그네 삶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이라는 미궁을 벗어나는 방법은 오로지 죽음뿐이다. 아니면 저 하늘로 날아 오르던가. 조카를 죽이고 전쟁무기와 환락을 위한 장난감을 만들어온 나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변신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만든 미궁의 종착점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몄다. 그러나 그 정원의 어느 구석에는 미노타우로스라는 식인 괴물이 살게 했다. 미노타우로스는 곧 나의 업보이며 내 인생이다.

이번에는 왕국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나를 찾아 왔다. 그녀의 눈물은 정직했다. 욕심에 눈이 먼 그녀의 부모들과는 다른 영혼을 가진 이가 아리아드네 공주였다. 그녀는 내게 눈물로 호소 했다. 자신의 사랑 테세우스를 위해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궁을 건축하면서 나는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이 미궁을 통해 소멸해 버린 줄 알았던 나의 영혼이 아직도 저 심연의 밑바닥에 살아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말라 비틀어져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나의 영혼이 내게 말했다. 아리아드네를 도와주라고. 저 아름다운 사랑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탈출의 비법을 알려주었다. 미궁의 한복판까지 충분히 늘어뜨릴 수 있는 실과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수 있는 단검을 테세우스에게 직접 그러나 은밀히 건네 주었다. 만일 테세우스를 보고 그가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건네 주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의 기상은 남달랐다. 이 젊은이라면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실타래와 단검을 아리아드네가 전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건네주었다. 젊은이여! 부디, 이 모든 악행의 근원을 해소해주게나!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면 나의 미궁은 더 이상 죽음의 미궁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 꽃피고 새가 우는 심장을 가진 생명의 궁전으로 변한다네! 부디 그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테세우스는 성공했고, 아리아드네와 파이드라 두 공주까지 모두 데리고 섬을 탈출했다. 역시 미노스 왕은 영악했다. 미궁을 빠져나올 방법을 알려줄 이가 나 밖에 없음을 금새 깨닫고서 나와 내 아들 이카루스를 미궁에 가두었다. 그리고 입구를 봉쇄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이 모르는 것 한가지가 있다. 드넓은 미궁은 나의 작업장만큼이나 갖가지 도구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는 아들과 나에게 거대한 날개를 달았다. 그리고 하늘을 날았다. 탈출은 성공했다. 그러나 아들은 아직 어렸다. 내 말을 듣지 않고 태양 가까이 날더니 날개를 몸에 붙인 밀랍이 녹으면서 날개가 해체되면서 바다 한폭판에 떨어져 사망했다. 자식을 먼저 잃은 슬픔은 바다보다 넓고 깊다. 나의 가장 큰 죄는 내 자식에게 나의 길을 따라오게 한 것이다. 자식을 죽인 죄인이 바로 나다.

그날 이후 나는 이름도 과거도 모두 잊고 길을 걷는 방랑자로, 옛이야기를 노래하는 가객으로 살고 있다.

 

후대인에게 전한다.

 

우리의 인생은 곧 미궁이다. 시간이라는 절대 절명의 미궁 속에서 태어난 자가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태어나면서 동시에 미궁에 던져진 불쌍한 존재들이다. 인생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죽음밖에 없다. 기억하라. 죽음만이 너의 마지막 종착점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미궁을 탈출하고 싶은가?

변신하라! 다른 존재가 되어라! 창공으로 도약할 수 있는 독수리의 날개를 키워내라. 막다른 벽을 부숴버릴 곰의 주먹을 키워내라. 땅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두더지의 발톱을 키워내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어설프게 미숙하게 다루지 말고 제대로 경영하라! 무엇보다 사랑을 가꾸어라. 사랑이 미궁의 출구를 보여줄 것이다.

 

죽음인가 도약인가? 너의 선택은 무엇인가?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이 자신의 것이 아닐 때, 우리는 소외된다. 다이달로스의 후예, 아담의 후예, 즉 노동하는 인간이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영원한 굴레가 우리의 미궁이다. 그러나 도대체 왜 남의 일을 하고 사는가 물으면 우리는 늘 자식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 신화를 읽어보고, 그리스 신화를 해석한 사람들의 저서를 읽어보아도, 다이달로스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승우 소설가의 미궁에 관한 추측에서 힌트를 얻었다. 자비의 마음으로 다시한번 다이달로스를 바라보았고, 다이달로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2013-06-22 坡州 雲井에서

IP *.65.15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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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4:22:49 *.62.173.151
"철학이여! 다이달로스의 운명을 변화시켜라!" 철학하는 아빠의 첫 책 컨셉입니다. 죽음의 미궁과 생명의 미궁은 결국 철학의 차이! 이땅의 수많은 다이달로스들에게...
제 머리와 가슴속 카오스에서 한덩이가 빠져나와 서서히 모양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지켜보며 중계방송 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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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6 14:05:20 *.94.41.89

그때 수업할 때는 잘 몰랐는데,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고 나니 '미궁'이라는 게 참 여러 은유적 표현이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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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6 18:28:25 *.91.142.58

네 첫 책 컨셉 쥑~인다!

다이달로스를 변호하며 다이달로스의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그 여정까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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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5:14:44 *.50.65.2

'남의 일을 하고 사는가'라는 질문에

정말 '자식 때문이고 가족 때문일까?'라고 사람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다이달로스의 또다른 해석, 

형선이가 나의 편견을 깨쳐주었네. 


유~~~유함 속에 깃든 뜨거운 피를 가진 철학하는 남편
형~~~ 형체속에 깃든 정신을 깊이 파고 들어
선~~~선물은 '철학하는 아빠'가 되어 책을 쓰고 ,

           철학하는 아빠 강의를 하면 완전 대박날 것 같은 예감이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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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6 13:33:56 *.58.97.22

달로스야 달로스야

집을 지어다오

집을 지어다오

 

웅녀가 명하노니

우리 집을 지어다오

 

내가 이야기하면

네가 진짜 집을 지어다오...

 

능력남, 다이달로스이자

정열적인 즘승남 형선이.

 

그대는 정말 대단한 에너지 덩어리!

달로스의 천재적인 장인 기술을

잘 다루어서 사용하기만 하면...... 으악~ 형선이는 큰 일 낼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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