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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3일 11시 59분 등록

나의 직업 나의 미래 -version 2.6 (병술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감하며)

올 해의 출발은 마음은 편했지만 몸은 가볍지 않았다. 작년 여름에 운영하고 있던 식당을 정리하고 또 다른 급식업장도 후배에게 운영을 위임해 놓은 상황이라서 소위 ‘자발적 백수’를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수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내 몸 속에서는 노동에 대한 거부본능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했던 밥장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이러다간 평생 이 짓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결정을 서두르게 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처럼 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마음껏 쓰고 한가하게 가족들과 놀러 다니는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런 백수생활을 며칠이나 했는지 ······.

6개월 동안의 백수생활은 재미있었다. 작년 9월부터 올 2월까지 반년을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보다 늦은 세수와 아침을 먹으면서 마누라도 출근시키고 나면 혼자 집안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책을 보다 잠이 들고 그러다 눈이 떠지면 운동도 하고 배고프면 혼자 밥 차려먹고 그러다 저녁에 나가 술 먹고 ······ 다시 가보지 못할 꿈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팔자(?)가 일복을 타고 났나 보다. 어찌 어찌해서 다시 식당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3월 1일 마실을 오픈했으니 어쩌면 올 한해는 마실과 함께 살았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난 움직여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타입이다.

작년 이맘 때 쯤 올 해의 꿈을 그렸었다. 서예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마라톤도 하고, 영어도 공부하고 가을엔 새로운 보금자리로 입주하고 당시 생소했던 ‘노동과 경영’이란 공부할 주제도 정했다. 첫 책을 내겠다고 하였으며 매 주 한 꼭지의 칼럼도 쓰고 50권의 독서도 하리라 생각했다. 마음은 벅찼으며 가야 할 길은 먼 새내기 달리미같은 기분이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꿈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믿고 싶었지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솔직했으리라. 젊은 시절 그토록 많은 시간들을 낭비한 자신에 대한 불신이 불혹을 넘긴 지금에까지 끈질기게 꼬리표를 달고 쫓아다닌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불신에 시달려야만 했다.

늦었다 할지라도 시작해야 했다. 달리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처음 두 달은 생각보다 잘 했다. 1월 중순 보름간의 여행도 꿈의 하나였으니 전반적으로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3월 마실을 오픈하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꼬박 두 달을 시스템 정비와 메뉴 개발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새벽시장에 가서 장사할 재료를 사야 했고, 업장관리와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과 메뉴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점심과 저녁에는 장사도 해야 하는 하루일과들이 그동안 몇 달간의 휴식과 소중한 꿈들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그런 와중에서 4월 초 다산초당과 구강포를 다녀왔다.

아홉 개의 강이 모여 하나의 포구를 이룬다는 구강포를 바라볼 수 있는 초당의 천일각에 올라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많은 상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빗소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었던 얘기들이 다시 떠올랐다. 식당비즈니스와 글,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라 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그것으로 하고 싶은 일에다 접목하는 것이 내가 잘살 수 있는 것 일거야. 혜장선사와 다산선생이 걸었음직한 오솔길을 따라 가면서 돌아오는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래 할 수 있어. 자로, 너는 할 수 있어.

덜컥 울트라마라톤을 신청해 버렸다. 그것도 한 여름에 말이다. 연습도 거의 하지 않고 술과 담배도 끊지 않고 무모하게 덤벼들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신기하다. 밤새도록 달리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내가 싫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여름 내내 첫 책의 원고 작성에 매달려 식당에도 소홀했고 가족들한테도 제대로 못한 것이 많은 상황이었다. 비슷한 때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어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기도 했다. 표현은 자축의 의미라고 했으나 실은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마땅한 아웃풋이 없는 상황을 반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장장 10시간의 마라톤은 한계점에 다다른 인간의 나약함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 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이때의 경험이 12월 20여 일 동안의 단식(식이요법)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이때부터 주위에서는 독한 놈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 난 독한 놈이야. 마음이 여리고 누구보다 성실하다고 자부하지만 독한 면이 없어 항상 손해만 보고 살지 않았냐? 이제부터라도 남 좋은 일보다 좀 챙길 줄도 아는 인간이 되자. 아내는 항상 이렇게 살지 못하는 남편이 서운했었나 보다. 그래도 사람 나쁘다는 말은 듣지 않았으니 그걸로 위안 받았다고 생각하는 아내한테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 긍정적이고 순한 방향으로의 독종이 되어 보자. 누구보다 일도 열심히 해서 남보란 듯이 성공하고 책과 글도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서 아이들한테는 자랑스러운 아빠, 아내에게는 든든한 가장, 젊은 꿈 벗들에겐 선생님보다야 못하겠지만 나름대로의 역할 모델이 되고 싶었다.

식당비즈니스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는 일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 보다 즐겁지 않았다. 폼이야 나겠지만 매 주 이틀의 시간을 송두리째 쏟아 부어야 하고 매일 아침 영어 학원을 다니게 했으며, 시험과 레포트에 하루의 반 이상을 소비하게 만드는 고달픈 행군의 시간을 요구하였다. 주말도 반납해야 했으며 친구들로부터는 얼굴 잊어버리겠다는 서운한 소리도 들어야 했다. 다행이 마실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렇게까지 힘들 줄 알았으면 뱅곤이 충고처럼 다니지 않는 건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똑 같은 마음이다. 그래도 어찌 하랴. 체면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유생의 후손이라 시작한 일은 그만두지 못하고 앞으로 1년 반을 더 고생해야 하는 것이 팔자라면 감수해야지.

어찌 하다 보니 한 해가 다 지나가고 황금 돼지가 온다는 새 해가 되었다. 아마 병술년 작년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된 해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어떤 해보다 소중한 시간들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꿈 벗들이 느끼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 90점 이상을 주고 싶을 만큼 잘 살았던 한 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쉬운 점도 많겠지만 조금씩 고쳐 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첫 책의 제목을 ‘어제보다 나은 식당’이라고 했을까. 내 인생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꿈 벗들에게, 아니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열심히 살자. 부지런히 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살아보자.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의 금전적 손해를 보았을 때도, 누군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배신당했을 때도, 체력이 바닥나고 더 이상 걸을 힘마저도 없어 같이 뛰던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편하게 갈 때도, 뱃가죽이 등에 붙어 눈에 보이는 돌이라도 삼키고 싶을 때에도 나를 지켜주고 버티게 한 것은 이대로 살다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열심히 살자. 하루도 아니 한 시간도 헛되이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꿈을 향하여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노력이 열심히 사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잘 살고 싶은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은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러한 과정을 가고 있는 역할 모델을 찾아 그들만큼 우리도 성실하게 살아보자. 난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 1년의 역사가 나의 직업 나의 미래 version 2 시리즈에 나와 있다.

작년과 올해 세 개의 비즈니스를 정리했으며 두 개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다. 10여 년 전부터 해왔던 급식사업체 2개와 큰 손해를 봤던 고깃집을 정리했고, 마실과 외식경영연구소를 창업하였다. 마실은 식당비즈니스의 현장이고 외식경영연구소(어제보다 나은 식당)는 식당비즈니스의 이론적 연구의 장이자 교육·훈련을 담당할 경영연구의 공간이다. 이로써 지난 10년 동안 10개의 사업자등록을 한 셈이다. 남들은 얼마나 일을 못했으면 열 번이나 일을 중도에 포기했을까 하겠지만 나에게는 10번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본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나의 직업은 사장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인생경험과 험한 비즈니스 세상을 배웠다. 이제 시작한 이 두 개의 비즈니스는 앞으로 10년 동안 나의 꿈을 현장에서 풀어나갈 발이자 손이고 뜨거운 가슴이 될 것이다.

매일 조금씩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을 수련하는 생활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고 진행된다. 병술년 한 해가 주는 의미만큼 내가 살아갈 더 많은 의미를 챙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해년 내 년에는 더 큰 가치가 살아 움직이는 하루를 만들어 나가려 한다. 실수한 것들과 잘못한 과정들과 시행착오를 겪었던 행동들을 말로 풀어내려면 쓴 만큼 더 해도 부족할 터이다. 그렇지만 나는 성격상 잘못한 부분보다는 잘한 부분에 대한 말을 많이 한다. 그것이 다음의 더 잘함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주위에서는 낙천적이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낙천적이기 때문에 마흔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고 꿈 벗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일 조금씩 노력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함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야말로 변화의 엔진이 되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믿어라. 믿지 않고 어떻게 이룰 수 있단 말인가!

IP *.145.23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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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7.01.03 15:55:42 *.142.145.9
저는 이곳에 들어오면 제가 써놓은 글을 반복해서 봅니다.
오늘 아침도 그랬지요. 그런데, 오늘은 이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찡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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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1.03 23:07:24 *.70.72.121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감한 한 해였습니다. 미처 다 읽어 볼 수도 없겠는 많은 글들로 자신을 채찍하며 성실하려 애쓴 흔적을 느끼며 그 강인함에 몸서리쳐지더이다.
경험 많이 쌓으신 것이 재산이 될 것 같습니다. 건강과 여유를 갖으시며 잘 관리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부럽습니다. 게다가 더욱 나아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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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1.04 03:16:01 *.39.179.239
형. 다 좋은데 버전관리 좀 해.
3.0에서 2.6으로 변경된 건 꿈이 후퇴한 건 아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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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1.04 08:55:01 *.152.82.31
버전이 3.0은 2007년 버전이고, 2.6은 2006년 마지막 정리를 의미하는 것이라 읽는 분들께서 잘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버전 3.0이 먼저 나온 것은 한 해의 계획을 조금 빨리 만들어서 그것을 올렸는데 ....
알아서 잘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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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1.04 09:48:31 *.145.83.203
"由豫 大有德 勿疑 朋 합簪"
<여유를 가지고 대비하며 대덕의 덕을 베풀며 타인을 의심치 말고 가지련한 생활이 그대의 목적으로 인도 할 것입니다.>

자로님의 글을 읽으면, 끓임없이 자기 개발을 이룰려는 강한 의지가 보입니다. 여백이 없이 명작을 가득히 실려있는 복잡함이 아마도 결점일 것 입니다. 그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목적을 이루려는 급한 욕망 때문에 자기를 비우지 못함에 비릇하는 것 같습니다.

언잰가는 초연해 질 것입니다. 그때 의인이 모이고 훌륭한 글과 자로님의 향기가 널리 퍼질 것입니다.

"入于血 有不速之客三人 來 敬之 終吉"
<천지인 삼인을 공경하라 그는 항상 그대곁에 있다. 그러면 뜻을 이루리다.>

부디 정해년은 願을 이루도록 기원합니다. -겨울 바다, 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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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일
2007.01.04 22:07:18 *.46.159.113
항상 새로운 버전을 통해 꿈을 보여주시는 자로 형님은 이미 큰 역할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병술년이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오늘 무기력한 모습에 스스로 답답했습니다. 글에서 용기를 얻고 남은 하루, 알차게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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