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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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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13일 12시 50분 등록
너무 오래걸렸습니다. 사실 중간엔 각각의 사건으로 10대 풍광에 번호를 다는 걸로 편집을 바꿔보았는데 왠지 제 글 같지 않아 원래대로 했습니다. 그저 조금 사이를 띄어보았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에겐 바뀐 게 눈에 안 띌지도 모르지만 제 나름으론 꽤 크게 바뀌었고 더 가벼워졌고 그래서 더 힘이 납니다. 저 스스로가 꿈프로그램 마치면서 쓴 회고를 읽으면서 그걸 현실의 계획속에 집어넣자 이건 정말 꿈 아니면 슈퍼맨의 계획이겠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 자신에게도 현실적인 무게감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이젠 정말 현실이 될거 같습니다. 아직 풍광의 마지막 000 하나는 못 찾았지만 그건 회고에서도 2년 뒤 고민하는 거니까ㅎㅎ...;;;;
내일 학원 아침수업 복습예습이 아직이라 원랜 저녁에 끝내고 자는데
회고 마무리한 저에게 주는 선물로 바로 잘까 합니다. 새벽에 하려구요^^
이 글 읽어주시는 날. 멋진 하루 만드세요~

<2007.1.6-8 생각작업 中>

작가
경영인
통역사
여행가
무대연출가
상담가
교수


기질 : 외향적, 사람관계는 내향적, 열성적, 창의적, 감정이입, 비판적, 계획적, 목표지향적
재능 : 꾸미기(그림), 단기암기력, 조직화, 설득하기, 열정
경험 : 가르치는 일, 미국연수시 통역한 일, 글로 상 받은 일, 수업 중 연극 기획, 연기한 일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정말 아름답고 치열했던 30대가 내일이면 끝이다. 우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나는 숫자 하나를 더해 40이 된다. 내 인생 최고의 10년이었고 다가올 40대에 또 다시 한번 ‘최고’라는 형용사를 붙일수 있을 그 디딤돌이 되어줄 10년이었다. 나에 대해 건방지고 불안했던 서른살이 시작되는 무렵 나는 결국 스스로 해답을 찾지 못하고 꿈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그 곳이 내 출발점이었다.

막연한 꿈이었던 작가가 되었다. 나는 이제 그다지 재정적이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쓸수 있게 되었고 통역일을 하며 내가 원하는 세상에 몸담게 되었고 6여년간 준비해왔다 할 수 있는 집으로 지난 해 말 이사했다. 그다지 크진 않지만 너무도 꿈꿔왔던 2층 집. 1층엔 나머지 집과 다소 독립된 공간으로 서재겸 나의 작업공간 혹은 나와 지인들만의 카페가 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30살에 5년간의 교사일을 마무리하면서 출간한 문제집은 고민의 시간을 제공해준 교사일의 마지막 깔끔한 매듭이었고, 여전히 적지않은 수의 학생들이 그 영어책으로 인해 영어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작은 내 자랑이다.

30대 첫해 떠났던 뉴욕여행. 1년전부터 약속했던 지인들과 함께였다. 11월 통역대학원시험을 앞두고였다. 도착한지 이틀 되던 날이었던가. 눈을 떴는데 5시였고 나는 24살에 맨발로 걸었던 브루클린 다리가 홀로 너무 만나고 싶어졌었다. 메모 한 장을 남기고서 센트럴파크 서쪽에 위치한 민박집에서 나왔지만 버스를 타고 싶진 않아 공원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싱그러웠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공원엔 나와 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희망이랄지 설렘이랄지 또는 다른 생각의 자락 하나씩을 들고 뛰거나 걷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앉아있었다. 타임스퀘어를 지나고 내가 너무 사랑하는 스트랜드 중고서점을 지나고 윌스트릿을 지나 브루클린 다리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시계가 없어 몇시간을 걸었는지 알수 없었지만 저릿저릿한 발바닥은 왠지 모를 쾌감이었고 나는 운동화를 벗어 손에 들고 다리로 올라갔다. 큰 마음을 먹고 시작한 한해였지만 불안함과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지도 모를 경우를 대비한 비겁함으로 교사일을 병행하면서 통역, 글쓰기를 준비하느라 광대가 줄타는 심정이었던 나는 맨발로 선 브루클린 다리위에서 그만 너무 가벼워져 버렸다. 빈 속으로 더듬어갔던 6개월전처럼 빈 속에 맨발로 선 나는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고 이기지 못할 일이 없는 듯했다. 그때 나의 마음은 너무도 행복충만한 그것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들은 거의 지인들의 뉴욕여행 가이드였지만 새로운 결심을 다지고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지금생각하면 큰 자산이 된 듯하다.

2007년 말 이화여대통역대학원 합격자가 발표되고 난 뒤 언제나 크리틱하게 잘못된 부분을 잡아주시고 칭찬은 많지 않으셨던 은천성 선생님께서 짧게 very good이라고 해주셨던 순간, 부족한 마음에도 자랑스러워하며 학원홈페이지에 합격수기를 남길 때는 정말 가슴이 뜨거웠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매달릴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만큼 학교일과의 병행끝에 거둔 성취였기에 누구보다 내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시작한 본격적인 통역공부는 통대준비보다만만치 않았지만 한국어외 또다른 모국어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처절하게 매달렸고 2009년 졸업과 동시에 나에겐 드디어 합법적으로 통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만약 내가 단지 영어동시통역만을 원했더라면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10년전 오늘날에 대해 그렸던 큰 꿈이 있었기에 나는 비단 영어공부에만 매달리지 않았고 일어, 불어는 동시통역까진 아니지만 순차통역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통대 재학시절이었던 2008년 겨울, 누가 추울 때 파리를 가지말라고 했던가. 겨우 5일간이었지만 초보자수준으로 겨우 듣기만 되던 나는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마자 파리를 방문했고 줄리앙을 5일 내내 괴롭히면서 나의 가이드를 부탁했고 의료기계분야에서 일하는 그는 너는 곧 불어도 모국어처럼 쓸수 있을거라고 힘을 주었다. 그는 여전히 나의 좋은 불어조언자다.

통대공부를 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진정 꿈꾸었던 것은 통역사라는 직업이 아니라 언어로 다른 세상의 사람과 통한다는 그 느낌이 나를 그 자리로 잡아끌었다는 사실을. 다시 나는 2007년 1월 그때-이 순간은 그저 그렇게 살아도 살아지는 일상과 타협하고 싶은 나를 지난 10년간 잡아준, 겉보기엔 조그맣지만 놔두면 불편하고 종국엔 마음아파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양심의 밑바닥, 혹은 지금의 나를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한 기준점이었다-처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난 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참 많이 고민했다. 나는 여전히 바라는 것들을 세가지속에 집어넣지 못하던, 온갖 삶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그 서현주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시간을 끝내 준 것은 2007년 첫해 통대대학원과 함께 시도하려했던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시도를 과감히 포기하게 만들었던, Carlyle이 말한 “The weakest man, by concentrating his powers on a single object, can accomplish something; whereas the strongest, by dispersing his over many, may fail to accomplish anything." 라는 문장이었다. 단순하게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니 웃기지만 다음은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의 과정이다.
<<어릴 적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노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다”라는 말에 감동받았었다. 그럼 난 어떤 노인의 얼굴을 가지고 싶을까? '죽음이 근처에 온 노인일 때의 나'라...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당당하지만 여유롭고 지혜롭고 온화한 아름다운 노인의 얼굴이고 싶다. 그럼 그러한 얼굴을 가진 노인은 어떤 생을 살았을까? 어떤 사람일까? 1.자신의 길에서 최고에 이르러본 사람이어야 한다. 한 길에서 최고에 이른 사람들은 지치지 않는 인내, 꿈, 열정을 가지고 남들은 상상치 못할 노력을 해 본 사람이므로. 2. 그 길을 관통하는 삶과 사람에 대한 철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철학이 없으면서 최고에 이른 사람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평범을 택한 사람보다 못나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3. 쓸모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돌아보고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 4. 어느 순간에도 흔들림없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고 세상의 변화에도 여유로울 수 있다. 5.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때문에 언제나 겸손하고 열려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자락에서 나는 희미하나마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10대 풍광이자 앞으로 10년간 추진해나가야 할 OOO을 찾게 되었다. 그 고민의 시간에 다시 한번 감사!

그렇게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는 남편을 따라 영국(미국이 될지도 모릅니다)에 가게 되었다. 몇 해전부터 예정되고 계획된 일이기에 꿈을 따라가고 있다는 예감에 설레기만 했다. 희곡을 전공하면서 잊었던 문학에의 사랑이 되살아나 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일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우리끼리 각색해 만들었던 연극 무대는 정말 잊을 수 없다. 그 때 영국에서 모은 이쁜 소품들은 지금 우리집의 한 구석들을 장식해주고 있다. 아 영국에 머무르는 기간동안 내 방학때 거의 의형제 수준인 발레리, 샤무엘과 다시 만났던 일도 잊을 수 없다. 내 나이 23세, 샤무엘 20세, 발레리 26세에 만난 우리들은 그 이듬해 로마에서 다시 만나 1주일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30세 2월에 중국에서 일하던 샤무엘이 잠시 서울을 방문에 만난 걸 제외하면 셋이 만난 건 꼬박 10년만의 일이었다. 각각 독일, 이탈리아에서 일하고 있는 이제 30, 33, 36세가 되어버린 우리들은 10년의 세월이 가져다준 주름과 더불어 여유있는 웃음을 가지게 되었기에 함께하는 그 여행이 우리 셋 모두에게 큰 의미였던거 같다.

대학원공부를 시작하고 학부시절부터 믿음의 시선을 거두시지 않으셨던 강태경교수님과 도서관올라가는 길 카페에서 커피 한잔씩을 받아들고 나무둥지에 자리잡고 앉았던 날이 기억난다. 학부졸업후 5년만에 찾은 제자를 누구보다 반겨주셨던 분. 꿈 프로그램에서 완성한 내 나름의 10년 계획을 들으시고 응원해주셨다. 내가 현대영미희곡때 받은 감회를 되새김질 하노라니 그저 삶을 배움에 대해 갈구했던 제자를 떠올려주셨다. 이젠 교수에 대한 ‘반드시’라는 욕심없이 내 길을 가면서 시작한 공부를 그래서 더 훌륭하다 해주셨다. 5년전부터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는 더욱 자주뵙게 되었다. 배움의 삶이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보여주시는 분이다.

몇차례 등단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마침내 출간된 나의 책에 나의 성장을 지켜봐오셨던 분들의 추천사를 받아든 순간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예전에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성장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아슬한 줄을 발가락 끝에 잔뜩 힘을 주고 옮겨가고 있는 자식을 행여나 떨어지면 밑에서 받아주기라도 할 요량으로 염려와 지지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신, 그래서 덜 불안한 발걸음을 옮기게 해주신 분들에게 인사드리는 기분이랄까. 이루어낸 책이라는 성과물 때문이 아니라 내 30대를 불안하지만 내색않고 믿고 지켜봐주셨음에 대한 벅찬 감사의 눈물이었음을 아셨을는지 모르겠다. 그랬다. 30년 살아온 것보다 더 한 일이 많았던 10년이었고, 내 마음에 무엇보다 솔직했고 내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10년이었다. 마지막 매듭을 짓고 가리란 욕심에 놓지 못했던 학교 업무로 늦게 잠든 밤에도 그 다음날 있을 학원수업 준비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던 그 갈등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오늘 하루만 그냥 고개 숙이고 발표말자. 그럼 2시간 더 잘 수 있어. 산다는 게 뭐 별거 있다고 이렇게 힘겹게 일어나야해? 이러다 건강해치면 다 소용없어‘ 하지만 많은 고민끝에도 어느 꿈하나 버리지 못한 것은 나였고 그게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내야 했다. 몇초도 되지 않을 순간에 이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고 마침내 갈등은 종지부를 찍고 나는 힘겹게 일어나 아직도 푸른빛인 창가에서 기지개를 켰었다. 나를 더 이상 변명하지 말자. 아무리 남들 눈에는 위험해 보일지라도 진정 혼을 담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거라고 믿자는 각오로 아침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지내온 10년. 29세 늦가을 29세라는 그 숫자를 제목에 달아주신 김달국 선생님과 그 분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되었던 꿈프로그램에 너무 감사한다. 멘토는 물론이고 내 평생의 꿈벗이 된 이들, 그리고 지난 10년간 많은 지침서들로 나를 버티게 해주시고 응원해 주신 김달국 선생님과 구본형 소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나는 꽤나 다른 길에서 선택의 문제를 놓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주 우리집 집들이에 이들만을 초대했던 것은 표현 미숙한 나만의 깊은 감사였었다. 내 카페겸용 서재가 그들의 존재감으로 너무도 작아보였고 그리고 너무도 따뜻했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와주세요^^. 아, 내 인생 최고의 선물, 너무도 믿음직한 동반자인, 존경해 마지 않고 사랑해 마지 않는 남편. 10년전 나의 진로고민을 불확실함속에서 믿어주고 10년간 가장 큰 응원자였던 그에게도 깊이 감사한다.

이제 마흔이다. 나는 다음주 뉴욕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다. 벌써 설렌다. 10년 전 여름에 그랬듯 나는 4시간은 족히 걸어도 아프지 않을 편한 운동화를 제일 먼저 가방에 집어넣을거다. 첫 등단은 소설이었지만 작년에 나온 책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통역가일에 관한 것이어서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온라인상의 공간을 만들고 앞으로의 10년간은 OOO을 추진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될 듯하다. 참으로 멋진 세상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내 눈앞에 있는 책장에 내가 쓰고 번역한 책이 다섯 권이나 꼽혀있고, 외국어 세 개를 자유자재로 하고, 자그맣지만 너무도 편안한 내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회고를 쓸 수 있을 줄이야 짐작이나 했던가. 똑같았던 24시간이 2박 3일간의 짧은 시간을 통해 전혀 다른 질의 24시간이 되었고 내가 원하는 10년을 만들게 했다. 이젠 한치의 의심없이 꿈의 힘을 믿는다. 함께 해주는 가족과 벗들와 스승들의 감사함을 안다. 이제 난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진실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 그리고 두려움없이 그 길을 따라가라. 10년전 주변의 기대에, 세상이 그려놓은 잣대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속으로 작아져만 가던 나에게 마음대로 니 인생을 디자인해봐라 하셨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남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었다. 그 믿음이 있었는지 조차 희미해져 갈 때 그 말씀대로 내 마음대로 인생을 디자인해보면서 난 진정 내가 이 생애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가게 되었다. 죽을 때 내가 이 세상에 있었음으로 인해 이 세상이,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음, 행복했음 좋겠다.
내가 어떤 노인의 얼굴을 가지게 될지 지켜봐 주시라.

2017. 1. 23.
IP *.204.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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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1.24 08:48:39 *.70.72.121
글을 읽으며 님의 바램처럼 멋진 하루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지난번부터 자꾸 부르크린으로 향한 마지막 비상구 연주곡이 떠오르는 군요. 할 줄 알면 배경음악으로 깔아드리고 싶은 맘이 들어요. 그녀는 창녀였지만 그 자신의 지난 삶과 현실을 끊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자유와 희망을 찾아 부르크린을 향해 탈출했지요. 그녀의 몸은 찢기었으나 그녀의 영혼은 전혀 다르게 새롭게 태어나길 갈망하며..

"남들은 상상치 못할 노력을 해본 사람들".. 꿈 벗에 대한 정의가 아름다워요. 지켜보며 배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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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승재
2007.01.24 08:54:14 *.235.90.3
10년 후 아니 20-30년 후의 현주샘 모습이 그려지네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아낸 사람의 얼굴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깊고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려집니다. 낼모레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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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어당팔
2007.02.13 10:33:17 *.224.76.40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꿈의 씨앗을 찾아 정성껏 물을 주고 가꾸어 꽃을 피우고 또 열매를 맺게 하는 삶은 무엇보다도 값진 삶입니다. 서현주님의 삶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현주님의 꿈나무에 나의 작은 거름을 묻어두고 싶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가슴 찡하며 눈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꿈을 가진 현주님과 그 삶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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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주
2007.02.13 13:01:54 *.204.66.45
그저 한때 꿈을 꾸었노라 회상하지 않게 계속계속 기억해내겠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뿌리도, 뻗쳐올라갈 하늘도 없어 성장을 멈춰버린 나무가 머리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땅에 뿌리내리고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우연이든 인연이든 제 주변엔 어쩜 이리도 스승삼고 배울 분들이 많은지 참 복된 삶이란 생각이 듭니다. 제 꿈을 읽어주시고 지켜봐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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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2.17 00:18:19 *.70.72.121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지독하고 혹독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적인 기도라고 생각해요. 지난 번 보다 훨씬 가뿐하고 구체적으로 느껴지네요. 그대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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