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 자로
  • 조회 수 3912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07년 5월 7일 00시 51분 등록
나의 직업 나의 미래 version 3.2

싱가폴 여행을 다녀온 이후 한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 대학원이 개강한 이유도 있었지만 봄이라 왠지 몸이 부산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일거리들도 만들어졌다. 올 해가 시작될 즈음 서두르지 말고 조급히 행동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던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아마도 내 팔자는 가만히 앉아 있지는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병곤이네 가족들이 천안에 내려 왔을 때에도 시간을 같이 냈으면 했는데도 마음과는 달리 일에 매여 보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스승께서도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흠뻑 주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폼이 한동안 지속될 것 같아 보인다.

3월 중순 하프마라톤을 달렸다. 유관순마라톤이었는데 천안에서 열려 클럽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마침 대전MBC에서 우리 클럽 회원 중에서 2명과 인터뷰가 달리는 도중에 있다고 해서 전반 10km는 보조를 맞추는 도우미역할을 하였다. 이때까지는 km당 6분 페이스로 아주 천천히 몸과의 컨디션도 맞추면서 후반전을 준비하여 기분 좋은 레이스가 될 수 있었다. 후반전 약 10km는 거의 전 구간이 오르막인데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기온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전반에 워낙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그런지 갈수록 힘이 넘치는 기분이 마지막 서프트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작년 연말에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 것 같았고 싱가폴에서도 3일 정도 달리기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바로 다음 주에 있었던 동아마라톤을 참가하기로 하였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빠져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다. 지금도 몸이 무겁거나 컨디션이 나쁠 때는 한 두 시간 야외로 뛰러 간다. 적당한 땀과 운동이 무거운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준다.

2월부터 4월 말까지 신촌 모 요리학원에서 ‘소스아카데미’라는 교육을 받았다. 총 14주 과정이고 매 주 목요일 3시간 정도를 배우는데 생각보다 시간안배가 힘들었다는 생각이다. 꽤 유명하다는 식당이나 레스토랑의 현역 주방장이나 조리책임자분들이 강사로 나와 자신들이 직접 요리하고 있는 베스트 메뉴의 레시피를 시연과 함께 강의해주는 교육이라서 꽤 비싼 수강료를 내고 들었다. 몇 몇 강좌는 생각보다 내용이 충실하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강사분들이 전문적인 강의를 하지 않는 그야말로 칼잽이들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열강을 해 주셨다. 몇 몇 요리의 레시피는 앞으로 내가 해 나갈 식당비즈니스에 긴요하게 쓰일 것 같은 예감을 주기도 하였다. 당장 4월에 시작한 새 식당에도 적용한 메뉴도 있을 정도로 꽤 괜찮은 교육이었다. 혹 식당에 관심이 있으면 예비 창업자들도 한번쯤 들어볼 만한 교육이라고 생각된다.

역시 대학원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이번 학기에는 내가 싫어하는 산수과목이 두 개나 있는데 ‘관리회계’와 ‘재무관리’가 그것이다. 대기업에서나 적용 가능한 회계지식을 알아야 하고 계산을 해야 하는데 매 주 레포트와 퀴즈가 번갈아 제시되어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어떨 땐 이 과목들 때문에 학교가기가 싫은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인사관리’나 ‘국제경영’은 그래도 좀 나은 축에 속한다. 4월 마지막 주 중간고사를 보면서 주어진 시간보다 더 빨리 답안지를 제출한 과목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무지의 한계와 게으름을 탓해야만 했다. 시험이 끝나고 천안에 모임이 있었는데 아주 폭음을 할 정도였다. 이번 학기만 잘 보내면 다음 학기는 과목이 좀 쉬워 보이기는 하던데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요한과 병곤 그리고 미영의 첫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면서 예의 조급증이 발동되었나 보다. 그냥 고민 없이 먼저 연락 온 출판사랑 출간계약을 해 버렸다. 조그마한 출판사인데 사장과 편집장이 직접 만나러 와서 얘기를 하는 성의(?)를 보인 정성에 의리 빼면 시체인 내 성격이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게 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몇 가지 내용을 챙겨서 새로운 목차에 맞춰 원고내용은 수정하지 못하게 하는 좀 까다롭게 하였다. 5월말까지 수정한 원고를 보내고 7월이나 8월에 출간하는 것으로 하였고, 계약금이라고 받아 마누라한테 주니 기분이 좋은지 형님네랑 같이 한 턱 낸다. 글을 써 처음 받는 수입이라 나도 좀 얼떨떨하기는 하다. 그나저나 5월에는 꼼짝없이 원고 마감에 시간재촉 받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띵하다.

“이제 마흔이 넘고 한 발 물러서 지나온 날들만큼 남아 있는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며 항상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모든 것들을 어여삐 여기게 된다. 여기 저기 후원하던 부분들과 가치 없이 쓰여 지고 버려지 것들을 아껴 세상을 빛내고 나아지게 만들 어린 꿈들에게 투자하려 한다. 작은 마음이나마 그들의 움추린 어깨를 펴게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밝고 환한 새 날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올 해 만들고 싶었던 장학회를 생각하면서 쓴 대목이다. 새로운 식당을 오픈하면서 약속했던 부분을 기억하면서 또 다른 후원을 만들게 되었다. 아직 작지만 나의 도움을 소중한 힘으로 받아들이는 몇 곳의 공간들이 생겼다. 이왕 이렇게 시작했으니 같은 생각을 하는 지인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아마 장학회의 대장 역시 허 회장님이 맡아 주실 것 같다. 언제나 믿음직한 분이다. 버는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데 아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마실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4월은 매출이 조금 떨어졌지만 3월은 내가 생각해도 아주 좋은 성적을 내 주었다. 4월 마실에는 조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지난 1년 동안 나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주방의 찬모와 또 한명의 직원 그리고 자금을 관리했던 형수님을 새로 시작한 식당으로 발령을 냈고, 메뉴개발과 원가관리를 담당할 영양사를 채용하였다. 조그마한 규모의 식당이라 이만한 일에도 허둥지둥 자리 잡기가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손님들의 불만도 예전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가끔 들렸고 새 식당에 매여 거의 한 달 동안 가보질 못해 마음이 안타까웠다. 아내가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모양이다. 새로 입사한 영양사는 급식회사를 할 때 같이 일했던 친구로 나와는 띠 동갑이다. 안산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천안으로 이사까지 내려오면서 같이 일하게 되어 부담도 되지만 나와는 생각이 잘 맞는 친구라 마음이 든든하다. 이제 마실은 창업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식당비즈니스’를 펼칠 마실 2기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지난 두 달간의 하이라이트는 새로운 식당을 오픈하게 된 일이다. 구정 전 지인으로부터 고기집 하나가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탐은 났지만 워낙 조건이 틀려 인연이 되기는 어렵구나 하고 말이나 넣어 달라고 매파를 보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구정 이후 본격적으로 협상을 해서 3월 말 극적으로 합의를 보고 4월 1일 열쇠를 넘겨 받았다. 식당 이름은 ‘백석고을’이고 규모는 마실의 배 정도 되는 꽤 큰 고기집이다. 여기를 오픈하기 위해 서울에서 대구까지 벤치마킹한 식당만 열 곳이 넘을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또한 이곳에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들을 투입하였다. 주방 책임자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마실의 찬모를 배치하였고 홀 실장은 예전에 했었던 고기집에서 같이 있었던 분을 삼고초려 끝에 데려왔다. 식당일을 하지 않으려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을 간신히 설득하였다. 고기집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기가 80%를 차지한다. 최고의 고기를 써야만 고객들이 알아줄까 말까할 정도다. 새로 개발한 돼지목살갈비는 벌써 히트예감일 정도로 반응이 좋다. 주변 사람들도 소고기보다 더 맛있다고 하니 기분이야 좋지만 매상이 줄어들어 걱정도 반반이다. 이런 고기를 위해 육부장도 신뢰할 만한 사람을 채용하였다. 그리고 자금관리와 전반적인 운영을 형수님께 맡겼다. 자리가 잡히면 형수님과 형님께 식당을 넘겨줄 생각이다. 6개월만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고 투자하고 노력한다면 마실에 부족하지 않는 식당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책 읽는 것에 한동안 소홀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 저러한 일에 많이 매달려 있었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읽고 쓰는 일에 소홀히 하다가 “빼먹기만 하고 채우기를 게을리 한다면 곧 겨울이 오고 추위 속에서 한 끼 양식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과 하나 틀리지 않을 것만 같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일이다.
병곤이가 다녀간 이후 며칠 있다가 은미사장과 슬미가 다녀갔다. 보성에 갔다 올라가는 길에 들렀다 한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다른 꿈 벗들과는 한동안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이렇게 찾아오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예전과는 달리 인원들도 많아졌고 새로운 얼굴을 익히는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3기 연구원들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더구나 남해에도 가지 못했으니 이제 ‘자로’라는 이름을 떼야 할 때가 된 것일까?
글 쓰는 것에도 많이 게을러졌다. 몸이 바쁘니 손이 일 할 틈이 없어진 덕분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일상화하리라 마음먹지만 언제나 아침은 마음으로만 끝나고 만다.

얼마 전 글 하나를 올렸다가 지운 적이 있었다. 다른 일에 신경 쓰는 것보다 내 일이나 잘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가 삭제한 글이었는데 지금도 내 마음이 다른 이의 고민과 사색에 같이 있지 못하여 안타까운 적이 많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낫다고 했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고민이다.
20대 내 삶을 결정했던 자유와 희망이 시장경제환경에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 소부르주아에 불과한 것일까?
아직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 .

IP *.152.82.31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05.07 01:24:12 *.112.72.193
노진이형,
그간 고민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새 식당 오픈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읽고 쓰는 것의 소홀함에 허탈하시지요..? 힘 내세요.
요즘 뵐 기회도 없고, 가끔 뵈어도 거의 말도 못나누고 바삐 내려가시는 모습에 조금 어리둥절 했었더랬어요. '3기가 마음에 안드시나?'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구요ㅎㅎ

하지만 일에는 다 때가 있는 것을 압니다. 사람이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알고 있구요. 지금은 더 큰 도약을 위해, 더 자유롭게 꿈꾸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풍광을 조율하는 모습만 보아도 형의 진지함(?)을 느낄수 있는걸요.

형, 파이팅하세요.. 조만간 천안 집에 내려갈텐데 연락드리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5.07 01:52:50 *.70.72.121
자로님! 일전에 올리신 글 저 보았답니다. 덧글도 입력하고 나서 다시 보니 금새 지워져서 내 덧글이 맘에 안드시나 했지요. 설마...
그때 그 글 보았다면 좋을 텐데. 꼭 그 마음 그 말 전하고 싶었지요.

혹시 오래 가려나 했는데, 역시 사부님의 엄격 한 말씀 쓸데 없는 소릴랑 집어치우라는 듯 일축하셨는데, 정말 애제자 자로님 맞네요. 이런 모습 보이는 걸 보면.

너무나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사는 모습이, 배우기보다 벅차서 무서울 지경이랍니다. 형님을 돕겠다는 것에 진심으로 숙연해 지고요.

정말 장하세요. 대단한 분이랍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절대 용납하지 않으실 거에요. 변.경.연은 자로님같은 분이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잠시라도 잊어서도 안돼며 그럴 리도 없는 곳이니까. 자로선배 짠(?)맛 보여주소.
경상도 사내의 무지랭이 본때 보여달란 말입니더. 같이 연수가십시다!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7.05.07 08:49:37 *.221.217.143
우리 연구소의 한 쪽 좌표에 자로님이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인정하듯, '현실적인 인식과 힘'이라는 좌표이지요.

홈피에 올라오는 여러 글을 읽으면, 사람이 자기 울타리를 깬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것을 자주 느끼지요.

백인백색 - 모두가 저마다의 꽃으로 힘껏 피어나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비전이라 할 때, 자로님답게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나는, 연령차별주의의 실상을 드러내고, 살아있는 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역할모델이 됨으로써, 연구소 안에서 또 하나의 축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글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7.05.08 13:16:35 *.109.50.48
글쎄,
어째 자꾸 보고 싶었을까? 나는 자주 그 이유를 생각했네...
보이던 사람이 안 보여서라고만은 할 수가 없지..
뭔가 중요한 몫을 하는 자리가 비어있는 것 같아서
그랬다는 생각이 맞는듯 하네.
이 동네 사람들은 자로 라는 두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을 거네...
프로필 이미지
천장
2007.05.11 11:39:39 *.103.178.123
가끔 업글되는 자로님의 Version 에 모든 실상이 녹아있어 보기 좋습니다.
내공이 쌓인다는 것은 여러가지 일을 효율적으로 잘 처리할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식객을 대하는 사업이라 많은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특별할 줄 압니다.
부디 넓고 깊게, 꿈 사업까지 줄줄이 번창 하시길...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