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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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버썬' 보스가 죽었다. 국내 최대의 범죄조직인 '실버썬'은 골프장사업과 건설 등 꽤나 많은 사업에 손을 대며 기업형 조직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넘버 2, 3, 4를 비롯하여 일선에서 물러난 과거의 넘버 1까지 보스의 장례식에 모였다.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는 서로 서로 인사를 주고 받고 보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견원지간인 넘버 2와 넘버 3, 보스 자리에는 그다지 관심없는 넘버 4, 자신에게 돌아올 무언가가 없는지 음흉하게 눈치를 살피는 옛 넘버 1.
얼마 뒤 보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후계자 선출을 위해 이사회가 소집될 예정이다. 넘버 2는 지략가답게 자신의 세력들과 함께 이사진들을 포섭해 나가고, 꽤나 악독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넘버 3는 자신의 세력들과 함께 힘으로 이사진들을 협박, 회유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옛 넘버 1은 넘버 4와의 연합을 꾀하지만 넘버 4는 그리 탐탁지 않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우두머리(보스)가 없는 조직은 말 그대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다.
#2 B사의 회사경영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재계에서도 꽤나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그 기업에 딸린 식구, 즉 임직원만 해도 수천명이며 하청업체와 그들의 가족들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몇 배로 불어난다. B사는 많은 회사들과 거래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JOINT VENTURE처럼 타사와 같이 경영(운영)하는 분야도 있다. 그런 B사의 경영이 위태로워지자 B사의 제품을 구매하기로 한 고객부터 그들과 JOINT VENTURE를 맺고 있는 A사와 C사 그리고 D사도 노심초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얼마 뒤 B사는 결국 파산신고를 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공황상태에 빠졌지만 가장 바쁜 이들은 JOINT VENTURE를 맺고 있는 A,C,D사이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B사에게 받아야 할 돈이 얼마이고, 그 돈을 받지 못했을 때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인지……. 하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끈 – 손해에 대한 모든 검토가 끝난 – 그들의 다음 단계를 불보듯 뻔하다. B사와 진행하고 있는 JOINT VENTURE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들 자신이 투자를 늘려 단독으로 운영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파트너사와 함께 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파트너사로는 A사가 적합인지 C사가 적합한지 D사가 적합한지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어제의 적이자 동지가 쓰러졌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B사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날랜 움직임으로 어떻게 효율적이고 재빠르게 차지하는가이다.
인간의 역사는 경쟁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수렵시대에는 옆집에 사는 친구와 사냥감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하였다. 이 때는 빠르고 힘세고 정확한 놈이 그 사냥감을 먼저 차지했다. 그런 동네 안에서의 경쟁은 어느 덧 세력을 키우기 위한 경쟁이 되고 힘있고 리더십 있고 매력 있는 놈이 동네의 우두머리가 되게 됐다. 인류가 언어를 알게 되고 소통을 하게 되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경쟁을 둘러싼 형태는 조금씩 체계를 갖추게 된다.
우리는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경쟁의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경쟁의 장에 맞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위의 첫 장면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조직에서는 일단 힘의 논리가 적용된다. 힘이 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이란 뜻이다. 두번째 장면의 상황에서는 빠른 판단력과 정보력, 그리고 시장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약육강식의 시대 , 적자생존의 시대(survival of the fitest)이다. 혹자의 말대로 '비즈니스는 전쟁'이다. 어제의 경쟁자이자 협력자이자 때로는 동지였던 회사가 무너지자 이해를 따지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그들의 영역을 누가 먼저 차지할 수 있을 지에 혈안이 되는 것이 우리 모습니다. 다리를 다친 초원의 코끼리, 그리고 그 코끼리가 쓰러지기 만을 기다리는 호랑이와 하이에나 그리고 독수리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며 야생적인 모습과 다를바 없다.
기원전 5세기에서 3세기의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경쟁'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시대였다. 전국칠웅 중의 강자로 부상한 진나라를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합종(진을 상대로 나머지 여섯제후국이 힘을 뭉치는 형세)을 하는 위, 한, 조, 연, 초, 제 . 그리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여섯제후국 간의 합종을 깨뜨리고 진과 결탁(연횡)을 하게 되는 그들. 그들간의 합종과 연횡을 종용하는 전략가들. 전국 칠웅이라 불리는 그들은 오로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합종과 연횡, 결탁과 배신을 밥먹듯이 하였다. 자신의 땅을 때주고 진과 화친을 맺으면서 그 힘을 빌려 주변 제후국들의 견제를 막아내기도 하고, 또는 강성해지는 진이 두려워 제후국들과 합종하여 진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격하기도 한다. '경쟁'이란 개념을 이처럼 현실적이고 처절하게 보여주는 역사도 없을 것이다.
전국시대를 주름잡던 지략가들, 연나라 소진과 진나라 장의 또는 진기한 사람에 투자한 조나라 여불위나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오나라의 손무 등 이 시대 이름을 날리던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들의 지형과 자원이 경쟁에서의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주변 제후국의 상황이 어떤지를 알았던 것, 즉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는 것이다. 흔이 말하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무패라는 말이 적격 아닌가 싶다. 수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대의 경쟁사회에서도 통용되는 법칙도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조직의 보스 자리를 놓고 겨루는 모양새나, 경쟁자가 사라진 마당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이해가 맞는 경쟁사와 앞다투어 결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흐르는 인간의 속내는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살아감에 있어 '경쟁'과 '생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요즘 부쩍 '상생'을 외치지만 결국 그 누군가와의 경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상이 가진 자원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지금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 경쟁을 꼭 해야만 하는가?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경쟁인가? 경쟁하지 않고 이길 수는 없는가?' 경쟁에 임하기에 앞서 우리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에 놓여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정확히 간파한다면 전국시대의 많은 지략가들이 어려운 형국을 유리한 형국으로 바꾸었듯, 우리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와닿네. 평화롭고 공동의 삶을 중요히 여기며 스스로 자연이라 생각했던 아메리카인디언들 그 옛날 모계의 문명들은 다 소멸되었지. 역사를 보면. 그 지점이 나를 가장 가슴 아리게 하는 부분이고 경쟁과 생존의 현실이 냉정한 인간사임을 받아들이는데. 40년 걸렸다.
나는 고등학교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도 왠지 노자가 막연히 끌렸고 지금도 역시경쟁코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늘 찾았는데 인간사가 이미 그런것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것이기도 하니.. 대수의 글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구나. 잘 읽었어. 나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