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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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라는 말은 농업적 관점이 만든 단어입니다. 경작하는 농작물과 양분 또는 햇빛을 다투며 그 생육을 방해하는 모든 풀이 ‘잡초’인 셈이지요. 나 같은 사람이야 모든 풀을 생명으로 여기고 그래서 특별히 ‘잡초’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꺼리는 축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면적당 생산량을 고민하는 입장에 서면 그런 풀은 모두 ‘잡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많은 관행 농가에게 ‘잡초’는 제거의 대상이었고 현대 농업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제초제의 보급은 종일 뙤약볕을 견뎌가며 손으로 풀을 뽑아야 하던 시대의 비효율성을 한 방에 넘어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최근에는 제초제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잡초’가 출현한 것입니다. 5~6년에는 제초제를 한 번만 치면 사라졌는데 이제는 네 번을 쳐도 죽지 않는 ‘잡초’가 생겨난 것입니다. 농도로는 예전대비 열배의 농약을 투입해야 겨우 죽는 ‘잡초’가 생긴 것이지요. ‘물달개비, 올챙이고랭이, 알방동사니, 피, 올챙이자리, 물옥잠, 미국외풀, 새섬뫼자기, 올미, 쇠털골’ 등... 녀석들은 주로 논 농경지를 주 무대로 번식하고 있고 우리 국토의 전역에서 관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잡초만이 아닙니다. 여우숲에서도 이 즈음 흔하게 관찰되는 ‘갈색여치’ 같은 곤충도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잎, 열매, 심지어 죽은 동족까지 뜯어먹고 사는 ‘갈색여치’에게 가정용 살충 분무제를 흠씬 뿌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녀석은 그 다음날까지도 버둥거리며 목숨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문명이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기후변화가 거대한 불확실성으로 다가오고 있고, 생태계에 의해 스스로 억제되어 그 과격함을 드러내지 않았던 생명들이 점점 확산되는 징후도 포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원인과 결과는 명백합니다. 오랫동안 항상성을 지켜왔던 기후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생태계의 변화 역시 급진적이고 가시적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삶에 점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문명에 시급한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슈퍼잡초의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내 삶을 더 절박하게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그 실천의 영역을 넓히기로 작정했습니다. 대중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전등의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일이 스위치를 꺼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육식을 줄이고,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방법으로 이동하고 ......
언젠가의 편지에서도 썼듯이 우리 인류는 ‘한 살이’의 패턴에서 곤충이나 미생물, 식물에 비해 열위에 놓인 생명입니다. 아무리 강한 농약을 만들어도‘잡초’와 ‘해충’은 짧은 ‘한 살이’를 통해 그 농약을 이기는 유전자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슈퍼잡초’가 보내는 경고 앞에서 우리 각자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문명의 전환을 위해 지금 당장 작게라도 무엇을 실천할까?’그대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