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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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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10시 48분 등록
2018년 1월 1일 나 자신을 찾기 시작한 십 주년에 즈음하여

40대 십 년 간의 발자취
1.
십 년 전 꿈 벗 프로그램을 통하여 내가 흥분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윤곽을 처음 그렸던 계기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하였다.
지난 십 년 간을 돌아보니 이런 것을 이룰 수 있을까 하면서 반신반의 하면서 출발을 하였지만 차곡차곡 준비함으로 오늘의 이 모습으로 바뀔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먼저 꿈 벗 프로그램을 다녀온 후에 나를 재미있고 흥분하게 만드는 세가지 테마를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세가지 테마는 프로그램 삶과 죽음 그리고 회계사 이고 재능 측면에서 보면 그 동안 삶을 지배했던 삶과 죽음이라는 종교적인 성향과 숫자에 대한 재능이었다.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뿌옇게 보이던 앞길이 조금 보이게 되자 평소에 아침 시간을 할애 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찾았다. 꿈 벗인 류춘희님과 최금희님이 나의 강점들을 보면서 주셨던 힌트들을 참고해서 더욱 더 구체화 했다.

그 때 당시에 십 년 후에는 반드시 도달하게 된 노령화 사회와 많은 질병으로 인한 인간다운 삶과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나를 들뜨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일이다.

꿈 벗 프로그램에서 돌아온 후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획하고 이루어내었다. 삶의 전반전에 나의 생각을 사로잡았던 삶과 죽음과 딱딱할 것 갈은 프로그램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헤매었던 것을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치열하게 찾고자 했기에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한국에서 프로그래머로서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어서 미국 행을 택했다. 미국 행을 떠나기 전에 영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주 단기간 집중적으로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언제나 떠남에는 기대와 걱정이 함께 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실력을 갖추어서 전 세계를 상대로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였다.
미국으로의 이주를 준비하는 동안 내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정의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아침 두 시간을 꾸준히 투자하여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했다. 인생에 있어서 반전이기는 하지만 전반기의 경험이 전혀 쓸모 없는 생뚱한 방향이 아니라 전반기에서 늘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던 내용을 꺼낼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행운이다.

사십 대에 들어서면서 나머지 인생을 위한 준비기간 5년을 목표로 잡았고 이루어냈다. 먼저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실제로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관계로 미국대학의 유명한 온라인 강좌를 듣기 시작하였고 심리학에 대한 개론서부터 해서 2년안에 100권의 책을 읽었다. 또한 죽음과 삶의 이야기를 다룬 인문학 철학서적 50권과 고등학교 시절 상업수준의 회계실력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고 이루었다. 전공인 프로그램에 대하여도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 2년을 투자해서 집중적으로 했다.

그 후 4년 동안은 기존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밥벌이를 계속하면서 인생의 목표를 위해서 노인병원과 중환자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 하였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실제로 책에서 배웠던 내용과 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도 알고 삶의 완성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로서 밥벌이 하는 것 또한 재미있었지만 가까운 미래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통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신이 났었다.

오랜 준비 끌에 드디어 1년 전에 내가 꿈꾸던 미국 서부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4년간의 봉사활동이 밑거름이 되었음을 물론이다. 그때 만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지금도 감사를 한다.

===
2.
1년 전에 서비스를 시작한 후에 자잘한 문제들은 많이 발생했지만 이제는 큰 무리 없이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내가 투자하는 일의 시간을 15%를 투자하던 부분을 30%로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밥벌이에 더 적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되고 내가 지구라는 땅에 태어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된 것에 대하여 즐겁다.

노인층과 시한부인생의 삶을 관리해드리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나 자신인 것 같다. 사십 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많이 위축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인정하면서 남은 삶이 풍부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 처음에는 그들의 죽음을 부정하다가 결국에는 수용의 과정을 거쳐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런 분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정리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고 설득해서 그의 몸과 물질을 모두 사회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매우 보람 있게 생각하는 일이다.

미국은 그래도 기부문화가 많이 발달을 해서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지만 조국 한국을 생각하면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한국에 살 때부터 느꼈지만 한국은 아직도 내 핏줄주의가 여전하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을 했지만 아직도 기부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미국에서 이제 조금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는 서비스를 어떻게 한국으로 옮길 수 있는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아직은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찾지 못했지만 어릴 시절 김치 나눠먹고 이웃집 그릇이 몇 개인지 서로가 알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은 오히려 미국보다 더 가능성이 많은 곳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아직은 시도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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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나 혼자 뛰어서는 그런 최적의 서비스를 여러 곳에서 실시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었는데 서비스를 시작한지 6개월쯤 생각하게 된 것이 첫째, 그간의 봉사활동에서 얻었던 지식들과 짧은 기간의 서비스 경험을 포함하여 책을 내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둘째, 서비스에 대한 노하우들을 공개하여 다른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양성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첫번째, 책의 경우는 하루 한 시간씩 꾸준히 준비한 것이 이제 막 마무리를 짓는 중이다. 원고를 마무리하고 쓰는 것이 더 좋았겠지만 하나 하나 이루어지는 그 뿌듯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정리를 해본다.

두번째, 같은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양성 프로그램은 지난 주에 이미 시작되었다. 기본적인 노하우를 전수 한 뒤에 그런 노하우를 무료로 제공하고자 한다.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관심들이 너무 많아 매우 기쁘다.

바쁜 와중에 창문을 내다보니 비가 온다. 십 년 전 꿈 벗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도 오늘 처럼 봄비가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푸근한 봄비가 산과 들의 생명들을 돋아나게 했던 것처럼 그날 흘린 눈물이 오늘의 나로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생각나니 가슴이 울컥하고 또 눈물이 난다.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 말이다.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내 밥벌이를 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남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나의 새로운 희망이다.

또 눈을 감고 이제 앞으로 십 년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본다. 아마 앞으로 오십 대 십 년은 중반 이후에는 아이들도 독립을 하고 아내와 나 둘이 밥 먹는 것만 해결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5~6년 동안은 일에 대한 총 시간 중에 지금의 비율을 유지하고 십년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는 더 많이 봉사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내가 세상에 잘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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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18년 5월19일 토요일

오늘은 꿈 벗 총동창회가 있는 날이다. 꿈을 찾아 헤매는 창조적 부적응자들이 그 동안 많이 늘어 56기까지 배출이 되었다.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참석을 하지 못한 몇 명을 제외하고 정말 다양한 벗들이 모였다. 벗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그때의 고마웠던 감정 그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말 나에게 좋았던 인생반전의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 후로 힘든 일이 있을 때 같은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직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시는 사부님께서는 예순을 넘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하시고 정정하신 것 같다. 인사를 드렸는데 그 많은 동기생들의 사연을 잘 기억하시고 계신 것 같다.

십 년 전 그날 아침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게 된다.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그것이 좋았는데 내가 꼭 필요한 충고를 해주셔서 내가 어려워하던 문제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 전날 까지도 나는 그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기들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모습을 깨닫게 깨우쳐 주셨다.

나 자신 안에 내가 과다하게 걱정하는 이런 점을 고쳐야 하는 것야. 반드시 풀어야 해 하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내 자신을 농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말로만 그러지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사부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첫째, 내 안에 어머니가 그런 와중에도 키우셨던 생활력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셨다. 겉모습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을지 몰라도 많은 특성을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다는 것 사실을 인식하게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둘째, 또 하나 기억 나는 것이 내가 살아온 것을 들으시면서 이미 그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아주 좋은 레슨을 받았다는 이미 살아온 세월이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다.

그 날 아침 식사를 하고 발표시간에 처음으로 웃으면서 내가 살아온 세월 중에 아팠던 일들을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심각하게 문제였던 것 실제 심각한 문제였다기 보다는 내 안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문제들이 치유되고 있는 모습을 느끼면서 나머지 인생의 밝음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 전반기 세월을 되돌아 본 결과 나는 스스로 치유에 노력을 기울였고 방향만 조금 제대로 잡지 못했을 뿐이지 잘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날 아침 지금의 나에서 유체이탈을 하여 어릴 적 시절로 돌아 가본다.
어린 내가 자고 있는데 솥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있다가 보니 장독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님이 술을 드시고 하는 자주 있는 일 들 중의 하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어제의 전투(?)의 결과가 정리가 되었는지 변소간 쪽에서 집 쪽을 바라본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어머니의 그 차분한 정리 솜씨가 발휘되어 원상 복구 되어 있다. 잠시의 깨끗해짐과 정전상태에 어린 나는 안도를 하고 있다.

많이 힘들어 했구나. 자식 그래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컸어 하는 생각이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바보 사춘기 도 제대로 못 보내서 나이들어서 까지 고생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 때문에 폭력과 정신과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일은 그 뒤의 나를 많이 묶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 술을 끊었다가 드셨다가 하면서 폭력에 대한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말 다행히도 정말 운이 좋아서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을 얻게 된다. 시점 시점에 중1시절의 류두연 선생님, 중3때 김형경선생님, 고1때 김성룡선생님, 고2시절 라오박사 류영훤선생님, 고3 담임 신진철 선생님 김철우 교수님 그리고 구본형 선생님 정말 나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 정말 행운이다.

가난했음에도 가난에 대해서 부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그리고 없다는 것이 그리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배움을 얻은 것도 제 2의 성장기인 사십대를 사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돈이 쪼달리면서도 돈은 꼭 필요한 만큼은 언제든지 마련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성격의 외향성은 아마 그때에 강화되지 않았나 싶다. 집에 있기 보다는 집에서 일찍 나와서 학교에서 공부를 늦게까지 하다가 가고 주말에도 학교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인 것도 그때에 습관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닌가 한다. 외향성과 함께 내 인생을 함께 했던 내부지향성 또한 아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점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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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18년 1월 10일 수요일
오늘은 결혼 이 십 주년 기념일 오늘은 도자기혼식이라 불리는 날이다. 지금 유럽 로마에 아내와 와 있다. 지금 시간은 5시 40분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사랑스럽고 고맙다.

결혼 할 때 IMF가 터졌다는 핑계로 신혼여행을 강원도 설악산에 갔다가 고향에 다녀왔다.. 그리고 결혼 십 주 년에는 유럽여행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시켜주지 못했다. 9 년 전 한국을 떠나면서 결혼 이 십 주년에는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지금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지난 9년간 낯선 땅에서 새롭게 정착하느라 힘들었지만 아내와 그리고 두 딸 모두 열심히 살았기에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딸들에게 모두 고마울 뿐이다. 아내와의 사이는 결혼 전반기의 십 년 보다 더 좋아졌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꿈 벗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나 자신의 모습과 나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방법에 대하여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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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그 동안 이야기 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철들고 나서 그 때까지 살아온 나의 이야기에 대한 것을 담았는데 거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담겨져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내속에 있는 아버지를 놓아주기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며 그 과정을 힘들어 하고 있고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눈물 많은 아내와 한 참을 같이 울었던 것 같다. 우는 것이 그렇게 시원했던 적은 없었다. 그 동안 아내를 좋아하면서도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꺼내지 못한 밝히고 싶지 않았던 벽장 속의 해골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나를 묶어 두었던 끈을 놓아 줄 수가 있었다.

권태기가 찾아왔을 지도 모르는 중년의 시절을 그런 벽을 허물고 나를 놓아주어 더 자유롭고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십 년 결혼기념일인 오늘 살고 있는 미국이 아닌 로마의 호텔에서 맞이하는 결혼 기념일이 나에게는 무척 새로운 느낌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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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18년 9월 3일 월요일
첫째 딸 연우 대학교에 들어가다.

9년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를 결정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이 사랑하는 두 딸이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기대 이상으로 자신의 적성 잘 찾아서 자란 딸이 자랑스럽다.

10년 전 내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장 힘들어 했던 부분이 사랑하는 두 딸에게 상처를 덜 주면서 잘 자라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어떻게 하는 것이 딸들을 잘 키우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뜻하는 바와는 다르게 사소한 일에도 소리 지르고 내 안에 억누르고 있던 것이 터져 나오는 출구가 되었던 것 같다. 머리로 배운 것과 내 감정이 내 지르는 소리 사이에서 많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프로그램 참가 후에 내 안의 문제와 직면하고 아이의 성격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어 아이와의 관계가 점차 좋아지게 되었다. 큰 딸아이의 경우 소리에 민감하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호기심도 많고 수학도 좋아하고 과학실험도 보는 것 보다는 직접 해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 당시 한국에는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아이의 창의성을 오히려 죽이는 교육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하여 나도 반대를 하고 아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의 독특한 자기만의 특성을 살려야만 하는 시대가 다가옴에도 부모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의 독특한 특성을 죽이는 쪽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안타까웠었다.

사부님의 코치로 실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나 자신의 완벽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매일 같이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설명하지 않고 같이 놀아주도록 노력하고 때로는 불같이 화를 내고 그런 모습이 내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아주 자연스러운 한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 해 꿈 벗 프로그램을 마치고 여름에 미국여행을 갔다. 디즈니랜드와 같은 재미있는 곳도 가기는 했지만 나의 계획을 세계에서 좋은 대학과 박물관 같은 것을 구경시켜 주는 것이었다. 꿈 벗 프로그램 가기 전에 계획을 했었지만 여유있게 돌아다니도록 만들고 동부의 대학들과 박물과 서부의 대학들을 구경했다.

그 때를 계기로 내 생각이 바뀌었던 것 중의 하나가 딸의 앞길을 디자인 하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많은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노력했고 아이와 친하고자 노력했고 아이는 스스로의 재능을 찾아갔다.

스스로 선택한 길을 찾아가는 아이가 자랑스럽다. 그렇게 클 수 있도록 격려를 해 줄 수 있었던 나 또한 자랑스럽다. 남편을 믿고 같이 아이들이 자기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같이 힘 써 준 아내도 자랑스럽다.

둘째 아이 또한 자기가 선택한 일을 가고 있다. 자신이 할 때 재미를 느끼는 분야를 찾은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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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17년 3월 23일 9주년 꿈벗 16기 동기모임을 마치고

많은 배움을 얻었던 꿈 벗 동기들이 가족 동반으로 모였다. 서로의 꿈을 브레인 스토밍 하면서 서로 돕고 도움을 받았던 시절이 기억이 난다.

우리 클럽 몽치는 9명의 9명으로 카페가 영속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힘들다는 예상을 꺽고 꿈을 실현해 나가는 장면들이 담긴 소중한 공간으로 엮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각자가 꿈을 실현하면서 느끼는 좌절과 희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카페가 하나의 모범이 되어 꿈 벗 동창회 중에 가장 본이 될 수 있는 몽치가 되었다.

아홉 명 하나하나 각자가 서로 같은 성격이 하나도 없는 팀. 그래서 인생의 비빔밥이 생각나는 모임이 되었다.

=

8.
2016년 노인요양원 자원봉사장면

어른들을 공경하고 어른들과 함께하는 세월이 참 좋았다.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어른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어른들 또한 나를 매우 좋아한다. 미국노인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관심을 가져주고 들어주면 다들 좋아하신다.

처가 살이를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결혼하자 마자 얼마되지 않는 시점에 대전의 직장을 그만두고 벤쳐 회사에 취직하려고 서울로 올라왔다. IMF가 발생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대전의 집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처가집에서 일년을 살았는데 손위 동서 또한 같은 회사에 다니고 대전에 있다가 서울로 같이 오는 바람에 같이 처가집에서 보냈었다.

그런데 위에 동서는 아침을 먹지 않지만 나는 아침을 챙겨먹기에 밥상머리에서 장모님의 인생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처가집의 사정을 참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밥상을 같이 하고 어른과 이야기를 하는 것 이 좋아다.

여기 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히려 미국노인 분들이 그런 관심에 더 목말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저분한 일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단지 생각만 바꾸었을 뿐인데 세상이 다르게 보이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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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14년 11월 30일
도서관

이제 목표했던 공부의 마무리가 한달 있으면 끝나는 시점이다. 오년 간의 목표했던 공부가 끝난다고 하니 내 자신에게 또 기특하다고 하면서 칭찬의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줄까? 나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

또 하나 해냈구나. 내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았구나 참 장하다.


10.

2018년 1월

사랑하는 후배이자 가슴 속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성득이와 영진이 가족들이 내가 사는 미국에 다녀갔다. 정말 내가 비뚤게 나갈 수 있었던 많은 시절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는 말을 하면서 배우는 스타일이다.) 같이 고민했 주었던 친구들이다.

너무나 고맙고 반갑고 그랬다. 미국에서 가장 좋은 곳을(내가 좋아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구경시켜 주었다. 요즘은 인터넷이 좋아서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통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얼굴을 맞대는 것이 좋다. 이제 사십 대 후반에 이른 성득이와 영진이도 나름대로 나이에서 흘러나오는 인생의 맛을 풍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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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안에 이루어야 할 일.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이번 기회에 얻은 목표에 대해서 한달 동안 정밀검토하기
(아침 5시부터 ~ 7시의 시간을 전적으로 여기에 투자한다. 30 x 2시간 )
내 시간 배분에 대한 정의하기 일과 가족과 봉사의 균형을 정하기.
내 자신에 대하여 편안히 받아들이는 훈련 시작하기.

6개월 안에 해결해야 할 일.
나안의 강점을 살리는 약점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영어수준 확보하기
하버드 대학 무료 인터넷 온라인 강의 수강 시작하기.
미국에서 밥 벌이에 대해 알아보기.(당장의 밥벌이와 미래의 비젼을 생각해서 밥법이에 가중치를 너무 많이 두지 말 것. 먹고 살정도만..)
두 딸에게 한국만의 두 딸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두 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외유명대학 구경시켜 주기.
서울 시내에 있는 궁의 역사를 공부하기

12개월 안에 해결하기.
고궁에서 외국인에게 안내를 하는 자원봉사 및 영어 회화 실습 시작하기.
외국인 친구 집으로 초대하기. 외국인 12명 초대하기.
중간과정으로 미국에서 직장문제 해결.
미국으로 이민.
회계사 관련 공부 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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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3.24 18:05:05 *.141.253.215
형 나야~^^
2박3일을 같은 방에서 지냈는데... 방에선 정말 잠만잤어..ㅋㅋ
형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5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어..
우리아버지와 형 아버지가 참 비슷했거든.....
형 웃는 모습이 참 멋져. 그거 잘 모르지..ㅎㅎ
형 크게 웃어봐..... 4월에 그 웃음 꼭 보고싶어. 이게 내 힌트야..
나에게 형이 생겨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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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5 02:51:52 *.36.210.80
생각이 많으시군요. 아이들에 대한 교육걱정, 가장의 의무, 아버지로서의 자세,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연민, 성공적 인생을 살고 싶은 의지...

하나하나 차근히 잘 해결하시고 품은 뜻 원활히 잘 풀어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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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3.25 05:24:01 *.140.155.61
홍현웅 형제. 고마워. 그래 내가 머리만 대면 잠만 자는 사람이라 말도 못하고 잠만 잤지.

현웅형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

4기 연구원 현웅 형제랑 같이 나도 공부를 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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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님..

고마워요. 미래에 대한 그림까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키워드는 찾은 것 같아요. 가족,친구,봉사,일...

그리고 사부님과 이야기 하면서 의무감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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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3.25 06:38:45 *.140.155.61
현웅아.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에게 물어봤어..

나 웃는 모습 어때?

귀여워 하던데..

현웅이가 한 충고 이제 가슴까지는 온 것 같아.

머리에서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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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3.25 07:25:22 *.117.68.202
거봐 형~~
아마 제일 좋아하실 분이 형수님일꺼야...
형 크게 웃어.. 눈에 선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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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경민
2008.03.25 12:12:11 *.243.13.160
햇빛 오빠. 서울 궁에 대해서 공부 할때 꼭 나 불러.
나 궁 좋아해. 특해 창덕궁과 종묘.
창덕궁의 비원을 돌아 연경당으로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워.
특히 11월말 쯤의 늦가을.
잘은 모르지만 고건축에 대해 조금은 말해 줄 수 있을것 같애.

그리고, 몇번이나 말하면서 풀고 정리하려는
오빠의 간절함이 정말 마음아펐어.
우리이제 과거때문에 마음아퍼 하지는 말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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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3.25 15:33:52 *.117.241.251
경민아 고마워..

홍스 또 고마워..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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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2008.03.26 07:16:06 *.234.78.45
현덕이가 만든..음..정확히 말하자면 현덕이 와이프가 만든 동영상보면서 형이 제일 부럽더라구요..형 얼굴이 제일 많이 나왔어요..ㅋㅋ
그만큼 형의 웃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런 느낌이(이 말 좋아한다고해서 특별히 내가 써준거에요..ㅋ)들었던거 같애요..

편지를 써서 우표를 사고 그 위에 스탬프까지 찍어서 두딸에게 보낸 편지..넘 기발하고 따뜻한 이벤트같아요..나도 나중에 써먹어봐야징..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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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03.27 00:14:06 *.100.108.99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나 느낌센서를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호식이, '울기'에서는 도저히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금희를 제끼고 가장 많은 눈물을 다양한 느낌으로 쏟아냈던 호식이, 말 많은 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몽치스 3인방(경환, 범용, 나)도 두손 들게 할만큼 토해내고 토해내도 끝이 없는 마음속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호식이, 주윤발만큼은 아니지만 몽치스 멤버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인정했던 50만불짜리 미소를 가진 호식이, 꿈의 방향성만 조율되면 거의 대부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일찍 일어나기 엔진과 스스로를 격려할 줄 아는 힘을 가진 호식이를 알게 되어서 좋다. 앞으로 같이 잘 뒹굴어 보자.. 호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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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2008.03.28 15:38:14 *.143.170.4
가족,친구,나눔,일,, 형님의 세심한 배려와 존중, 사랑 그리고 웃음,,,멋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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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사랑
2008.03.30 02:32:43 *.187.95.178
햇빛오라버니.
그리도 토해낼게 많았수.

나를 많이 이해해 주던 오라버니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해.
사부님한테 우리 중 제일 많이 에너지 받은 것 같아 부러웠어.ㅋ

가족, 친구, 나눔, 일.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성취하고 싶은 바램이지.
오라버니는 누구 못지않게 잘 할거라 믿어..
거기다 우리 몽치스의 응원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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