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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8일 11시 46분 등록
나의 직업 나의 미래 version 4.2

평생토록 살아가면서 사람은 누구나 세 번 정도의 기회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준비를 많이 한 이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명민한 사람은 그 때를 놓치지 않는다고 하죠.
되돌아보면 수많은 기회들이 제 옆을 스쳐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면서 눈앞에 있는 찬스를 왜 그냥 보내냐고 소리치던 기회들을 외면했던 지난 시간들이 가끔씩은 아쉬워지기도 했습니다.
재수를 하던 스무 살 시절, 고시공부 한다고 깝죽대던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땅 사라고 조르던 건설회사 다니는 후배한테 콧방귀 뀌던 IMF 시절, 마지막 몇 달을 참지 못해 눈물 머금고 회사를 매각해야 했던 몇 년 전, 어찌 보면 그 시절 그 시간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기회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소위 세 번 중의 한번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가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어떻게 준비하시겠습니까?
연구원을 하면서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고, 식당을 하면서 돈 버는 방법을 알게 됐고, 책을 쓰면서 전문가로 변하는 자신을 보면서 뭔가 잘 모르지만 어떤 무엇이 절 향해서 다가오고 있다는 감을 느끼곤 합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음 이 글을 올릴 무렵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요.

1. 거꾸로 마케팅

3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보냈습니다. 식당이 손님으로 가득차고도 넘치고 넘쳐 끔찍하리만큼 바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식당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다행히 저희 식당은 손님들이 많이 와주어서 고맙기만 합니다.
3월 1일 하루의 매상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는 주간 기록을 갱신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날이었습니다. 얼마 전 올린 ‘거꾸로 마케팅’의 효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죠. 4월도 그 여세를 몰아 급기야는 대기표를 만들어 나눠주지 않으면 손님들끼리 서로 차례다툼을 벌일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해피데이를 통해 꽤 많은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같이 일하는 직원 분들에게 작은 성의나마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광우병 파동과 AI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출이 저조해야 할 이 시기에 힘이 되어 준 것 같구요.

2. 첫 강의

3월 초 처음으로 외부강의를 하러 갔을 때의 기록입니다. 지금도 가슴 떨리는 순간이며 잊지 못할 첫 강의의 느낌입니다.

“강의실을 가득 채운 40여명의 외식경영자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담당 교수님의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올랐다.
떨린다. 말이 목을 타고 정확하게 나오는지 궁금했다.
차분하게! 침착하게! 천천히!
첫 10여분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참이 흘렀을까? 그제 서야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내가 말하고 있는 내용과 차트가 보였다.
불고기 부라더스의 정인태 사장, 발효퓨전한정식의 대가인 박명서 할매집 사장, 한국외식정보의 박형희 대표, 경기대 진양호 교수, 놀부의 김순진 회장, 약선요리로 성공한 권수열 도리원 사장 등 외식업계의 기라성 같은 분들이 강연자로 예정되어 있는 이 과정에 내가 첫 강연의 테이프를 끊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혹 첫 강의 예정자가 펑크를 내서 대타로 뗌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아직도 버릴 수 없긴 하다.)
이것이 책을 쓴 힘이 아닐까?
책을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강의를 할 수 있었을까? 또한 책이 아니었으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광주를 비롯해 영광, 화순, 순천, 담양, 전주에서 온 그들에게 내가 겪었던 지난 몇 년의 풍상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던 힘도 책을 쓰고자 했던 지난한 과정에 있었을 것이다.
강연 한 번이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가슴 설레는 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강의 후 책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하던 어느 사장님의 미소가 떠오른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출발선상에 서 있다는 느낌에 이 봄이 그리 싫지만 않다.”

3. book-fair 그리고 두 번째 책

책을 낸 후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것을 알면서도 두 번째 책을 향한 열정은 쉬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말은 원고를 어느 정도 썼고 어떻게 할 거라는 둥 립 서비스만 난무하던 중 book-fair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첫 번째 행사를 보고 바로 두 번째 행사에 신청하였습니다.
성격상 마감시한이 정해져야 막판 피치를 올리는 스타일이라, 운동을 해도 늦게 몸이 풀립니다, 부랴부랴 내용을 보완하고 원고도 다시 준비하였습니다.
발표를 한 후 선생님께서 몇 가지 지적을 하셨고 다시 방향과 목차 그리고 내용에 대한 수정작업을 하였습니다.
출판사와 미팅을 하게 되고 어느 정도 윤곽을 잡게 되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기 전 원고를 마무리하고 가을경에는 둘째를 순산할 예정입니다.

4. 다시 서울로

작년 가을부터 내심 기대하고 정말로 많이 준비했던 ‘요리아카데미’가 3월 13일 홍대 앞 린나이 요리교실에서 열렸습니다. 2001년 양재동 아케이드 식당에서 무참하게 패배하고 천안으로 쫓겨 내려간 지 7년만의 서울입성을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번엔 현장이 아닌 교육 쪽으로 시도했습니다. 제 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요리와 외식경영에 관한 교육을 통하여 ‘외식산업의 구 본형’을 꿈꾸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했습니다.

스무 번도 넘게 준비모임을 했고 1,700통 가량 우편발송도 했지만 결과는 수강생이 고작 6명에 불과했습니다. 8명만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진행 팀에서 먼저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다들 제 얼굴만 쳐다보고 있더군요.

다시 내려와야 했습니다. 아직 서울은 저에게 자리를 허락하지 않나 봅니다. 하지만 이대로 호락호락 물러설 거라면 애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조금 다른 방법으로 가을경에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계획과 방법은 나쁘지 않았는데 너무 조급하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4개월 동안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적잖은 돈이 투자되었던 이번 비즈니스가 아쉽게 중단되어 마음은 쓰리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다시 도전할 기회가 아직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5. 우리는 작가다

4월 초 4기 연구원들과의 첫 만남을 속초에서 가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진전사에 4기 연구원과 저희들한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4기 여러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1년 동안 ‘양’에 대한 훈련을 해야 한다. 괴로운 훈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은 그들 보다 괴롭진 않다. 때때로 회의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생이니, 그것을 담기 위해 1년 훈련을 하자. (이 대목에서 갑자기 사부님은 앞줄에 앉은 송창용 선배의 빨간 모자를 벗어다 쓰신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이 모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이 모자를 쓴 훈련 조교는 무엇이든 명령할 수 있다. 훈련을 받는 사람은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한다. 1년 동안 허벌난 채찍이 가해질 것이다. 4기 연구원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렇게 1년이 지나면, 그 다음은 조교 없는 고독의 기간이다. 혼자서 길을 가야 한다. 선생이 없는 싸움이다.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하면 엉터리다. 자기 내면의 영웅을 꺼내야 한다. 어제 여러분은 장례를 치르고 이미 죽었다. 죽음은 계속 된다. 계속 죽으며 고독과 싸워라. 그렇게 가는 것이 너희들의 인생이다.”(이한숙님께서 올린 진전사 10분 스피치 중에서)

지금 1기와 2기 그리고 3기 연구원들은 조교 없는 고독의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홀로 전쟁터에 뒤처져 생존의 힘든 싸움을 준비해야 할 시기죠.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되는 시간입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헤치고 살아와야 할 고난의 행군입니다.
저희 연구원들은 각자 또는 함께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아줘야 합니다. 각자의 짐을 지고 함께 길을 걷는 것이죠.
우리들은 이런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하려 합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연구원 동문회입니다.

어쩌면 ...

혹 어쩌면 말입니다. 이런 생활들이 저한테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더라는 겁니다.
새로운 기회, 앞은 보이지 않지만 무엇인가가 절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확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냥 휙 하고 지나가는 기회가 아니라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그것을 잡아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이 지난 몇 년의 수련을 감내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오대영이란 오명 속에서도, 프랑스와 영국에 연패하면서도 서서히 준비된 영광을 맞으러 갔던 2002년 월드컵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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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8 12:51:21 *.36.210.11
갑자기 '오대영'이 아무개 이름인 줄 알았네. ㅋ

있어야 할 자리라면 반드시 나타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님의 봄 함께 피어나는 꿈을 향한 행보가 아름다운 벗에게 취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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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05.19 07:05:08 *.254.17.78
맨날 저의 문장력을 부러워만 했는데 이렇게 책을 내게 되었노라고 적어서 책을 보내 주었지요.
책이 계기가 되어 쟁쟁한 외식업체 운영자들과 나란히 강의를 하게 되고, 또 두 번 째 책을 쓰기 시작했구요.

이 모든 조건이 퍼즐 조각처럼 완성되어 '기회'가 오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는 기분, 알 것 같아요.솜털이 오소소 서는듯 살아난 감각을 가지고 '기회의 파도'를 맘껏 즐기기 바래요. 자로님의 '이야기'가 무르익는 냄새가 납니다. ^^

자로님의 행보가 있어서 우리 연구소에 또 하나의 경험이 축적됩니다.
제 문장력이 별 것도 아니지만,
문장보다는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사업자등록 열 번의 행동력이 집대성되어, 이제 책으로도 마구 터져나올 것이 믿어져요. 저술도 훈련일꺼고, 이미 첫 발을 떼었으니까요.

자로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 그리고 나눔의 정신으로 원하는 고지까지 치고나갈 것이 믿어집니다. '요리 아카데미'에는 아직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이겠지요.

딸애가 휴학을 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모색중입니다. 책에서 배우는 아이가 아니고 현실감각이 뛰어난 편인데, 외식업에 관심을 보이네요. 조만간 찾아갈게요.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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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8.05.19 09:21:35 *.193.194.22
박노진선생님의 모범을 보이시는 모습에 늘 감동입니다.

그런데 한명석선생님, 얼마전 오정희님의 별리라는 소설을 조금 읽었어요.
뒤쪽 부록의 대담도 읽었는데. 거기서 오정희님이 궁긍적으로 바라는 것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문장가. 소설가라기보다 한 줄이라도 명문을 짓고 싶다는 열망으로 귀결되는 대담을 읽었어요. 한선생님의 글쓰기훈련이 그런 희대의 명문을 짓기위한 과정은 아닐까. 그런생각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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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8.05.19 12:08:58 *.254.17.78
아~~ 선이씨, 섬세한 참여에 감사해요. ^^

선이씨의 논지는 이해하지만,
논픽션작가와 순수문학을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보통사람도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책을 씀으로써,
전문성을 인정받고 도약을 꿈꾸게 된 것은 논픽션분야일꺼구요,
연구소에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쪽을 지향한다고 보여지구요.

선이씨는 순수문학 - 시를 지향하고 있고,
나도 상대적이나마 그 쪽으로 슬쩍 기운 셈이네요.
조직생활 경험이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내가 분야를
철학동화로 정한다든지 하면,
선이씨가 말하는 표현력이 좀 더 절실해 질 꺼구요.

나는 이제서야 '서드에이지'를 내 주제로 삼아 후벼파기 시작했지만
자로님의 식당경영이나, IT분야에서의 병곤씨의 경험은 이미 상당 기간이 축적되어 있는 거지요. 요한씨나 용규씨도 물론이구요.
그 경험을 전달하는 데에는, 명문이 아니라 정보의 양과 질이 중요해지는 거구요.

그래서 실제적인 체험이 부족하고, 기질상 관념적인 내 기획력이
떨어지는 이유기도 하구요.

연구원을 수료한 정도이면, 기본적인 전달력은 충분하다고 봐요.
그렇다면 내 분야에서 얼마나 독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해지고, 그건 '내 주제'에 대해 얼마나 집중하고 시간을 할애했느냐의 문제인거지요.

순수문학은 너무 광할하고, 너무 어렵고, 끝이 없는 분야로 보여서
범위를 조금 좁혀 '내 주제'를 갖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가령 류시화의 영역을 침범해가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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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8.05.23 15:31:19 *.77.6.211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게끔 환경을 만드시는 자로님...

감나무의 감은 모두 자로님의 것입니다.
훌륭하군요. 성실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수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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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수
2008.05.25 00:37:59 *.140.173.213
안녕하세요. (--)(__)
유현수입니다. 이권이와 함께 형님을 찾았던...

그날.
형님이 이권이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 실은 제게 더욱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른다섯. 무엇을 마음먹기에 그리 빠르지도, 그리 늦지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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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8.06.11 08:31:01 *.193.194.22
어제 오후에 다시 들어와서 보다가
엉뚱하게도... 자로 = 磁路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든든한 磁路가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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