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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9일 22시 48분 등록
꿈벗 17기 '벌렁벌렁'의 구자훈 입니다.

아..누구도 쉽다 하는 사람 없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안다는것이 쉽지 않다는 것. 지난 짧은 3일간의 시간동안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확실한건 하나도 없다는.

이 아래에 쓰는 내용도 제목 그대로 draft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범위를 좁혀서 수정하든지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6월 7일

내 나이 이제 마흔이로구나. 20대에 이제 서른으로 불리는 것에는 별반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데, 마흔이라니. 이건 좀 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 겉모습은 전보다 세월을 많이 느끼게 하고, 체력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지지만, 그러면 어떠랴. 지난 10년의 변화는 내게 내 인생을 가져다 주었으니, 나를 더더욱 변화하게 만들어줄, 내가 맞닥뜨릴 수많은 사람과, 만남과, 기회들에 대한 기대로 늙어감에 대한 서글픈 생각 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오늘은 꿈벗 17기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딱 10년이 되는날. 그때에는 배도 곯아가면서, 밥도 굶어가면서, 시디신 레몬물도 먹어가면서 얘기듣고 얘기하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생각들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알지못한채.

1. 8년전, 결단을 내리고 미국에 있는 건축 대학에 갔었던 것은, 물론 그 과정엔 돈도 문제였고 부모님과도 그렇고 많은 충돌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건축에는 많은 분야가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것은 일률적인 아파트가 아닌 개개인들의 삶에 가장 적합한 집을 짓는데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고객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하여 그들의 Needs를 알아내고, 그저 최초에 집을 지을 당시 주어진 상황과 정보만 가지고 집을 지어놓고 완료하는게 아닌, 자녀가 자라나면서, 가족과 함께 성장하는 집을 짓는 것이, 공간과 기능 그 사이에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나의 첫번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 어릴적 꿈과 나의 가족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돈을 벌 수 있었기에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어릴적 기억에 남는 일은 미래에 내가 살 집을 그렸던 것이었다. 커다란 저택에 가족들을 위한 방 뿐만 아니라, 수영장, 도서관, 천문관등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모두 그집에 있었다. 지금 보면 몇평 몇평 하는 얘기가 터무니 없는 숫자이기도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싶은게 많았었다. 수영도 하고 싶었고, 별도 보고 싶었고, 내 도서관도 가지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난 내집에서 하고 싶었다.

여전히 공사중이긴 하지만 수입으로 내집을 짓는데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그래 제 2의 전공을 살려서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
건축공부를 가지고 내가 원했던 일중 하나가 바로 내가 어릴적 꿈꾸었던 그 집을 짓는 일이었기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을 하랴, 집도 지으랴 바쁘긴 하지만, 지금 어느때 보다도 난 힘이 솟는다.

2. 건축일을 하면서 또 하나 하고 있는 프로젝트. 제 3세계나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은 돈을 가지고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그들의 위생과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을, 현지의 재료를 가지고 짓도록 하고, 현지 기후등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내서, 결국 그들이 그들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도록 하는 일을 하고있다.
물론 이일을 위해서는 내가 기존에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접근방식 이외에 또 다른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들의 현재의 생활방식이나 앞으로 가지게 될 꿈에 따라서, 그 공간또한 탈바꿈해야 하며, 그들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해 그다지 넉넉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나는 해당 국가의 정부로 부터, 여러가지 지원을 얻어내야 했고, 세계 여러나라들의 시민단체나 국제기구등과 연합하여 그에 필요한 예산을 얻어내야 했다. 단지 집을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지구의 시민으로서 그들이 가져야 할 기본 자세?를 갖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3. 이렇게 집을 지을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환경에 주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건축자재와 이에 드는 비용, 환경에 대한 문제는 항상 부딪혔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고려했던 것은 가장 환경 친화적인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집을 지을때는 가장 적은 자재를 가지고 사용하고 소비하도록, 집을 이용할때도 가장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예전에는 소비자가 사용하기에 가장 편리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내가 몸을 써서 움직이지 않아도 말 한마디로 모든게 자동으로 되는 SYSTEM을 구축한다거나 하는, 하지만 이제는 지구의 시민으로서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영향을 무엇보다 고려하게 되었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남을 고려하는 삶, 나의 꿈을 펼쳐나가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각자의 삶의 이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여기 지구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생활과 환경친화적인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건축학 석사뿐만 아니라, 환경공학에 대한 석사를 공부해야만 했었던 것도 이때문이었다.
(아 인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데 ㅠㅠ 공부할게 너무 많다….)

4. 내 대학원 석사 논문에 대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건축학 – 홍익인간형 집짓기와 그 사례에 대한 고찰
홍익인간형 집짓기란?
최소한의 비용으로 각기 지역상황에 맞는 자재를 이용하여, 인간의 몸에 이롭고, 개개인의 꿈과 기호에 맞는 디자인을 가진 집 짓기. 이를 통해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인간의 무절제한 소비에 대한 느낌과 반성을 생활을 통해 곳곳에서 그대로 느끼도록 하고,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본인이 아니라 언제나 타인과 다른 생명과, 이 지구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됨. 또한 실제적인 수치를 통하여, 그 집의 건축 내역/비용, 그 집에 거주하면서 변화하게 되는 소비행태, 소비의 양을 산출하여, 건강한 살아가기에 기반이 되는 집 짓기

5. 미국에서 공부하는 일이 항상 즐거웠던것 만은 아니었지만, 정말 즐겁게 땀흘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껏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하루를 충만하게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처럼 술자리가 잦은것도 아니고, 몸에 좋지 않은 기름진 음식은 가까히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6일은 내게 필요한 것만 먹으면서, 먹는시간을 충실히 즐겼다. 혀로 느끼는 맛, 이로 음식이 갈리는 느낌,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과 수분 후에 느껴지는 포만감. 내 삶을 살기 위한 에너지를 얻었다는 기쁨에 감사했다.
대학때 전공이 환경이나 건축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독서량으로 내 빈한한 지식을 채워나가야 했다. 수업이 아닌 대부분의 시간은 도서관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고 어느정도 그러한 지식들이 소화될 무렵,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내 일에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할 수 있었다.

6. 10년전 한국에서의 준비기간은 쉽지 않았었다. 두해 동안 월급을 아꼈고, 투자를 통해서 학비를 마련하였고, 그사이에 GRE는 물론 필요한 시험과목에 대한 공부와, 점수, 학교 교수님들의 추천서와 회사로 부터의 추천서, 영향력있는 미국변호사로 부터의 추천서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 사이에 내가 만났던 또다른 세상은 바로 ‘작곡’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디아나 존스의 주제가는 내게 모험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 뛰게 만들었고,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들은 나를 가을바람같은 차분함으로 이끌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니메에 나오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내게 하늘위를 걷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난 이러한 창조가들이 내게 준 느낌, 감흥에 푹 빠지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 또한 그러한 감흥을 타인에게 주고 싶었다.
원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직업 하나만 가지고도 먹고살기에 힘든데, 다른데 힘쓸 여력, 내가 가진 다른 흥미나 재능을 펼쳐나갈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을까 하고 의아해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15년전 날 가르치던 네트워크 관련 강사는 원래 오케스트라 작곡자라고 했고 그 또한 바이올린 연주가였다. 머리가 하얬던, 하얀 수염까지 가지고 있었던 할아버지, 네트워크에 대한 지식과 오케스트라라는 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지만, 그는 그랬다.
그래서 시작했다. 중고 키보드도 한대 들여놓고, 홍대에 있는 학원에도 열심히 다녔었고, 항상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생각나면 바로바로 적으려고 했고 배워 나갔다. 유학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를 하다가도 기분전환을 위해서 음악을 듣고, 악보도 그려보고 나중엔 컴퓨터로 작곡도 해보고.
제일 처음의 습작은 당시 유행했던 와인만화 ‘신의물방울’의 주제음악을 만드는 일이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와인전문가, 난 나의 음악을 듣고 그 사람들이 유려함을 느끼길 바랬다. 적포도주의 적갈색 액체에 온몸이 젖는 기분, 백포도주의 한때 시큼함에 온몸을 떨길 바랬다. 그리고 당시 제작중이던 ‘신의물방울’드라마 제작팀에 내 음악을 테마음악으로 보냈다. 다행히 당시에 운이 좋아서, 지금은 간간히 건축 프로젝트의 사이사이 휴식기가 있을 때마다, 밀려들어오는 작업요청중 하나를 선택하여 같이 작업을 하곤 한다. 난 건축과 음악에 서로다른 소스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7. 건축과 음악..이 두가지의 분야에서 필요한 내 창의력 소스를 채우기 위하여 난 여행이 필요했다.
대학원에 합격통지를 받고나서 학교를 다니기 까진 6개월이란 시간이 내게 있었다. 현지 생활을 준비해야 하는 기간을 제외하면 4개월? 이때는 2008년 내가 가고자 했던 루트를 가고 싶었다. 초기 여행 계획은 자전거 계획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발로 땅을 딛고 내 힘으로 이동을 하면서 세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미리 내가 여행중 이라고 상상해 보아도 사람사는것 다 똑같겠지만, 그러면서도 각자 하나하나가 Unique한것이 사람이기에. 하지만 이번엔 4개월이란 한정된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꼭 가보고 싶은 곳중에 몇군데를 골라서 일단 가보기로 하였다.
- 스페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 도보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여행하기
-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북한에서 유럽까지 횡단하기
- 티벳고원에서 네팔로 넘어오는 길
- 멕시코에서 칠레까지 중남미 종단
- 중국내 고대한국 유적 탐방
- 몽골 초원 생활
- 동생이 있는 태국으로 다이빙하러 가기
못가는 곳은 1년 중, thanks giving과 Christmas season을 이용해서 그리고 여름에 2주간 짬을 내서 가곤 했었다.
이렇게 다녀온 곳들에 대해서 난 아내의 사진기술로 포착한 멋진 정경과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책을 몇권 펴냈다. 그렇게 펴낸 책 ‘XX와 함께하는 가족여행 시리즈’는 지금 4권까지 나왔고, 책과 블로그를 통해 얼굴이 공개된 첫애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둘째도 조금만 자라면 유명해 지겠는걸? ^^ 그리고 그 인세는 불우아동 후원이나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쓰여졌다.

8. 아..내 아내..지금의 아내는 이런 날 잘 이해해줬다.
회사를 다니면서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그녀는 나와같이 자신의 꿈에 목말라 하던 참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바라는 안정, 결혼, 육아도 중요하지만, 그녀와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에게 필요한건 자아 실현이었다. 나와 함께 2년? 3년이라는 시간을 그녀또한 준비해야만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했기에 서로 짜증낼때도 있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지만, 우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나이가 훨씬 어렸지만, 나보다 인내심도 많고, 이해심도 많았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분명했고 그를 위한 충분한 추진력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샘이 날 정도로 잘 놀기도 했다. 정말. 사람과 생명을 사랑할 줄 알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던 나도 그녀의 얘기는 귀귀울여 들었고, 특히 금전을 투자하는데 있어서는 그녀의 조언은 절대적이었다.

저어기 볕이 잘드는 풍광이 잘 드는 방한켠에 ‘기억의 벽’이라는 곳이 우리집엔 있다. 그녀와 같이 공부하느라 고생했던 일, 카미노 데 산티아고 를 걷다 저 너른 초원가운데 우리둘만 점같이 나온 사진들,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우울증이 염려될 정도로 힘들어 했던 시간, 세상에 눈을 뜬 우리의 아이들 모습,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기억의 벽’에 담겨있다.

9. 난 1년에 한번씩 한국에서 파티를 열었다. 장소는 서울에 있는 지인의 저택이었다. 나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빛나는 몇 안되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었다. 대학때 교양수업에서 만난 반짝거리는 눈을 가졌던, 지금은 훌륭한 인터뷰어로 성장한 후배로부터, LG에 다닐때 같이 일했었던, 나중에 유학할때는 고마울 정도로 많은 도움을 줬던 미국변호사들, 삶의 고비에서 만났던 많은 스승, 멘토들,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NGO사람들까지,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을 엮고 싶었다. 내가 이 좋은 사람들을 서로 알게된 것처럼 이 사람들도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했으면 하고 바랬다.

10. 나의 아이들 이야기
지금 첫애는 5살, 둘째는 3살이다.
첫아이가 태어나면서 나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와 아내의 인생만 존재했던 우리사이에 우리둘의 관심을 모두 끌어다 놓은 사랑스런 아이가 있다는 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난 우리 아이들이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있게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부모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함께 나가고 인도할 것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키워주기 위하여 내 모든 역량을 다할 것이며, 그로인해 아이 스스로 자기의 인생을 살아나가는 독립적인 존재로 키워 나가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나의 인생과 내 아내와 나의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 것이다.


여전히, 나를 제대로 잘 들여보지 않은 결과라서 마치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저의 10대 풍광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전혀 건축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건축 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로 창조한다는 것 이외에 제가 아는것도 없고, 마음이 벌렁벌렁 거리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계시판에 들어오시는 변경영 가족분들께 하나는 약속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무엇인가 확실하지 않다고,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미루거나 끝을 흐지부지 하지는 않겠습니다. 거기까지가 내가 가진 능력 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거기서 부터 다시 세워나가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꿈벗 17기 동기 여러분~여러분이 가진 꿈들은 정말 싱싱한 것이었 습니다. 그제 가졌던 회상의 시간이 10년 뒤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힘내세요!! ^^
IP *.38.6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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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열
2008.06.09 23:36:47 *.119.111.55
내가 1빠인 줄 알았는데...같이 올리고 있었구나.
오늘 출근하고 일하느라 바빴을텐데 부지런하군!!
욕심쟁이 구자훈의 꿈과 미래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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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원
2008.06.10 11:47:12 *.128.155.174
초인종 울리면 젤 먼저 뛰어나가시고, 지원자 없으면 젤 먼저 자원하시던 두분이 제일 먼저 올리셨군요~^^ 역시 대단합니다. 두분의 풍광을 읽으니 저도 가슴이 뛰네요. 구자훈님의 꿈과 미래, 저도 회장님과 함께 찬사를 보내며, 꿈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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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큼이
2008.06.10 18:45:42 *.63.237.105
제일 먼저 올리셨네요...
이곳을 통해 보니...더 반가운것 같아요.
역시 내향적인 성격에 비해서
열정이 묻어 나는 것 같습니다.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만날 날이 고대 되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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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06.11 20:26:54 *.254.13.103
건축에 대해 쏠리는 마음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아 한 수 거들어봅니다.
조형과 실용, 연민이 집대성되는 생활예술의 백미 건축... 자훈씨가 써 놓은 관점과 아주 비슷한 책이 있어 추천합니다. 읽어보았는지요?

안드레아 오펜하이머 딘, 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space 2005


열정적으로 나를 찾아가는 발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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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훈
2008.06.16 09:41:32 *.247.145.8
아..정말 님들은 못말리는 사람들이네요.

위에다가도 썼듣이 이 생각들로 굳어진 것들도 아니고, 세부적인 것들도 없고, 모래위에 지은 누각처럼 머리속 생각으로만 써놓은 것 같은데, 이렇게 열렬한 지지라니..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요 ^^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오늘을 살아가시길 바래요!
저도 이제 여러분의 꿈에 대한 열렬한 써포터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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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큼이
2008.07.11 15:40:24 *.63.237.105
홍대 모임이 끝나고 찜질방에서 계란을 먹다가 문득,

일상을 잘 영위하시는 구나...했습니다.

그리고, 조근 조근 읽어본 10대 풍광은 스케일이나 하고싶은 측면에서 굉장히 컸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에 비해서요...또한 크지 못한 저의 풍광을 다시금 바라바야지 해 봤습니다.

10대 풍광으로 일상이 억수로 열심히 뛰어나가시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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