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367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3년 7월 9일 08시 10분 등록

‘무심(無心)’은 어떤 마음일까요? 불교와 영성 관련 책에서 종종 접하지만 내게는 어려운 마음입니다. 그저 ‘나(自我)’가 없는 마음, 혹은 나에 대한 집착(我執), 아니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 없는 마음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깊은 몰입 혹은 삼매(三昧)가 무심에 가까운 경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을 읽으며 무심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1986년에 쓴 ‘빈방에 홀로 앉아’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제는 창을 발랐다. 바람기 없는 날 혼자서 창을 바르고 있으면 내 마음은 티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하다. 무심의 경지가 어떻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새로 바른 창에 맑은 햇살이 비치니 방 안이 한결 정갈하게 보인다. 가을날 오후의 한때, 빈방에 홀로 앉아 새로 바른 창호에 비치는 맑고 포근한 햇살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주 넉넉하다. 이런 맑고 투명한 삶의 여백으로 인해 나는 새삼스레 행복해지려고 한다.”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있는 그 넉넉하고 아늑한 장면 하나가 그려집니다. 법정 스님은 당시 근래에 알게 된 영담(影潭) 스님이 손수 만든 한지로 창을 발랐습니다. 영담 스님은 법정 스님에게 시험 삼아 만들었다는 한지 몇 장과 함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님, 진달래꽃물 종이입니다. 연사흘 저와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 다섯 분과 열심히 따모은 진달래꽃을, 곱게 찧어 항아리에 한 달 동안 삭혔다가 고운체로 밭쳐낸 꽃물을 들여보았습니다. 그런데 착염제로 쓴 백반이 무쇠솥의 녹물을 쉽게 우려내리라는 예상을 못한 어리석음으로, 그만 제 빛깔을 죽이고 이런 색깔의 종이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잠시 선홍빛 진달래의 설움이 제 설움이 되어 가슴 아렸지만, 한 마음 돌려서 다시 보니 이 빛깔 또한 좋고, ‘얻기 어려움’이라 싶어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는 진달래꽃 제 빛 종이를 실수 없이 만들어 내리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종이 만드는 일에 긍지를 가지라고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이 일을 하는 데 대해서 긍지도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그저 좋아서 만들고, 만들며 잊으면서 늘 자취 없는 마음입니다. 종이를 많이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몇 장이나마 스님의 즐거움이 되시기를 바라옵고 수줍게 올립니다.”

 

사연 속에 담박한 마음이 흐릅니다. 영담 스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편지글만 봐도 순수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한 마음 돌려서 다시 보니 이 빛깔 또한 좋고, ‘얻기 어려움’이라 싶어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그저 좋아서 만들고, 만들며 잊으면서 늘 자취 없는 마음”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나 봅니다.

 

“무슨 일이건 그저 좋아서 하고, 하고 나서는 잊으면서 늘 자취 없는 마음이라면 그 일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일을 하면서도 그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대개의 경우는 자기가 하는 일에 얽매이게 마련인데, 자취 없는 마음, 즉 빈 마음이라면 어디에도 거리낄 게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일도 이와 같이 할 때, 거기 삶의 무게가 내릴 것이다.”

 

‘무슨 일이건 그저 좋아서 하고, 하고 나서는 잊으면서 늘 자취 없는 마음’,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경구입니다. ‘늘 자취 없는 마음’으로 흘러가는 삶을 상상해봅니다. 가벼움과 깊음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속성이 합쳐진 삶이 그려집니다.

 

나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고 예민한 사람입니다. 그런 내게 ‘그저 좋아서 하고, 하면서 몰입하고, 하고 나서는 잊는 마음’은 어려운 경지입니다. 그럼에도 ‘얻기 어려움’을 즐기는 영담 스님처럼 나도 그 어려움을 즐겨 따라 가볼 생각입니다. 잘 안 되겠지요. 그럴 때마다 한 마음 돌이키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돌이키겠다는 정신만 있으면 희망 또한 있음을 믿습니다.

 

20130708-1.jpg

법정 저, 텅 빈 충만, 샘터, 2001년 10월

 

* 공지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2.0 출범식’ 초대

지난 4월 구본형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미래에 관해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논의를 결집하여 7월 12일 금요일 저녁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2.0 시대를 여러분과 함께 여는 행사를 갖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 공지 : ‘이너스 목관 5중주’와 함께하는 ‘살롱 음악회’

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목관 연주단 ‘이너스 목관 5중주(Inners Woodwind Quintet)’와 함께 하는 ‘살롱 음악회’를 개최합니다. 본 음악회는 ‘한 여름 밤의 꿈’이라는 주제로 7월 20일 토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20130708-2.jpg

 

IP *.34.180.24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6 [화요편지]4주차 미션보드_가지 않은 길을 걸어보다 아난다 2019.08.06 815
1035 [수요편지] 잘 사는 나라 장재용 2019.08.07 734
1034 [금욜편지 100- 백번째 편지와 첫 만남] 수희향 2019.08.09 844
1033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우리나라' 와인 file 알로하 2019.08.11 1119
1032 역사는 처음이시죠? - 한국사 file 제산 2019.08.12 1001
1031 [화요편지]4주차 워크숍_사랑하는 나에게 file 아난다 2019.08.13 880
1030 [수요편지] 에어컨이 없어야 장사가 잘 된다 장재용 2019.08.14 998
1029 [금욜편지 101- 책쓰기와 글쓰기의 차이점] 수희향 2019.08.16 864
1028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우리나라 와인 2 file 알로하 2019.08.18 972
1027 역사는 처음이시죠? - 세계사 제산 2019.08.18 843
1026 [화요편지]5주차 미션보드_내 생의 마지막 날 아난다 2019.08.20 870
1025 [수요편지] 학교 가기 대소동 장재용 2019.08.21 948
1024 [금욜편지 102- 책쓰기준비 1- 진짜욕구] 수희향 2019.08.23 944
1023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곰팡이 핀 치즈, 먹어도 될까요? file 알로하 2019.08.25 13491
1022 신화는 처음이시죠? - 그리스 로마 신화, 한국 신화 제산 2019.08.25 916
1021 [화요편지]5주차 워크숍_ 내 생의 마지막 10분 file 아난다 2019.08.27 867
1020 [수요편지] 그리고 비엔티안 장재용 2019.08.27 898
1019 목요편지 _ 여행, 그 후 운제 2019.08.29 897
1018 [금욜편지 103- 책쓰기준비 2- 시간] 수희향 2019.08.30 881
1017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맛있는 와인, 어떻게 골라야 할까요? file 알로하 2019.09.01 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