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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9일 09시 52분 등록

주제 (강유원 서평집)

강유원, 뿌리와이파리, 2005.12.20

 

1. ‘손꼽을 교양인

■ 강유원(鈕遠, 1962~)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철학자다. 자기검열이 돋보이는 철학자다. 그의 말은 적절하며 비유는 날카롭고 예시는 기가 막히다. 제도 철학 밖의 그는, 기름진 학계를 비웃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나는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그 내려놓아진 지위가 마음에 든다. 그는 대한민국의 인문학자다. 철학과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다양한 매체에 서평이나 칼럼을 기고하며, 주로 대학 밖에 있는 공공의 영역에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1962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서방 부근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1971년 서울로 이사해서 홍제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한 이후, 대성고등학교를 거쳐 1980년 동국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홉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1992년 헤겔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강의하다가 그만둔 이후 회사원으로서 일하면서 번역가와 서평가로 활동했다. 이때 "회사원 철학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2. ‘주제(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이 몇 권 있다. 아니 다섯 권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오디세이아, 오이디푸스 왕, 신곡, 정신현상학 (p. 2)

 

1. 책과 고양

교양이란 무엇인가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지한 우리가 뭔가를 알고자 하는 이유는 놀라움 때문인데 과연 그런 놀라움이 우리를 지식 탐구의 길로 이끌어가는 출발점일까? 어쩌면 우리를 지식 탐구의 길로 이끄는 것은 뭔가 알고 있다고 잘난 척하고 싶은 지적 허영이 아닐까? 지적 허영은 남을 의식한 것이므로 오로지 의식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지적 허영 자체도 사실 불가능하다. 위에서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이를 느끼는 자는 자기를 무지한 자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경이를 거친 무지의 자각은 진리로 나아가는 참된 출발점이다. (p. 13)

 

□ 지적 허영이 목표로 하는 것은 박식함이나 전문성의 외양을 띨지라도 그 본질은 장식용 지식이다. (p. 14)

 

Ü 가식을 파고 든다. 나는 이런 게 좋다.

 

□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교양의 마지막에서 말하는 정신의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형식이며 다른 사람의 거울 속에 자기를 비추어 보는 형식인 교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해도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최신 보고서를 만들어 주어도 우리는 그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할지언정 감동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려면 지식 쌓기 이상의 것이 드러나야 할 터인데 그것은 바로 교양이라 할 수 있다. (p. 16)

 

Ü 나는 교양이라는 의미에 대해 새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교양이라는 것은 아래 글에 매우 가깝다. 길어서 글자체를 작게 한다. 아래의 글은 김규항씨의 글이다.

교양 (김규항)

서울 나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정확하게 말해서 버스 기사가 저 들으려고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승객 가운데 하나인 나에게 들려온다. 처음 듣는 프로그램이지만 사람들이 전화로 자기 사연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걸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이 듣는 식인 모양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남의 체험을 즐긴다. 젊은 여자가 재미없는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은 다음 등장한 남자다.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피디수첩' '정범구의 세상읽기'도 아닌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한 '구사대'에 내 귀는 긴장한다. 그러나 긴장은 이어지지 않는다.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는 '구사대'를 모른다.

"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뭐라구요?"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구사대? 구사대가 뭐지?"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구사대라, 회사를 구하는 대다 이건데, 어쨌든 그래서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는 어물쩍(방송용어로 순발력이라고 하는) 넘어간다
.

'
구사대'라는 말을 모르는 30대 여자와 40대 남자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 나는 당혹스럽다. 나는 '교양'에 대해 생각한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교양이 문화적인 지식이나 감정표현의 절제, 우아한 말과 행동 따위라는 생각은 봉건적이다. 그것은 결국엔 맨얼굴이 될 유한계급의 사회적인 메이크업일 뿐이다
.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보수적인 교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
.)

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라디오 소리는 디젤엔진에 묻힌다. 나는 '구사대'를 모르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의 애처로운 교양과 그들이 꾸려주는 허섭쓰레기를 들으며 피곤한 저녁을 맞는 근로대중들의 가소로운 교양 환경을, 사회문화적인 이슈만 있으면 유럽과 비교하여 제나라를 비하하는 게 일인 문화인들(유럽형 한국인)의 안개 낀 교양 환경과 비교한다. 나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의 애처로운 교양을 용서한다. 나는 다시 썩은 세상을 욕하면서 그 기원인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강북 아저씨들의 시궁쥐 같은 교양과, 여전히 옛 여당을 그리는 강남 아줌마들의 암내나는 교양과, 조선일보를 보며 하루를 안도하는 파시스트들의 구역질나는 교양과 그 이빨에 편승하여 안도하는 중산층의 악어새 같은 교양에 대해 생각한다
.

서럽게도 이 나라의 어디에도 조직적인 교양은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이 나라는 봉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윗줄에 있는 놈들은 여전히 '마님'의 교양(사람의 귀천은 하늘이 정한 것이며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을 유지하고 아랫줄에 있는 이들은 여전히 '머슴'의 교양(모든 것은 운명이며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죽은 듯이 일한다)을 간직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이 나라의 나머지를 머리통 속에 넣고 검색해 보지만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의 폴더에 다다르자 또다시 미궁에 빠진다. 글쓰는 일을 '내공'이니 '진검승부'니 하며 한낱 재주 겨루기로 여기는 그 양아치 같은 교양과, 사상이라는 패키지 상품을 10년에 한번씩 개비하는 그 이동변소 같은 교양과... | 씨네21 1998_9

 

□ 사대부들만의 교양의 총화라 할 수 있는 성리학적 세계가 파탄에 이른 뒤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배 시대를 거치면서 그리고 잠시도 쉴 틈 없이 현대사를 겪어온 한국인들에게도 교양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치장이나 우아 떨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이것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이론과 실천의 도야를 이루려면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p. 17)

 

Ü 이론과 실천의 도야는 헤겔이 정의한 교양이다. 순간 나는 책을 빨리 집필해야 함을 각인한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 책을 한 권도 써보지 않은, 오로지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저자를 무조건 신뢰하고 들어가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 저자가 내놓은 제목에 따라 책이 얼마나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p. 18)

 

□ 한편, 그 책이 쓰인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도 알려주면 좋을 것 (p. 19)

 

진정한 교양을 위해 해야 할 일

□ 교양을 이처럼 고정된 그 무엇으로 파악하는 것, 즉 교양을 물화하는 것은 교양 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교양은 오히려 끊임없이 스스로를 계발해가는 과정 그 자체라 해야 옳다. 교양을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지식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더 나아가 지속적인 자기반성을 거듭하는 것만이 도야로서의 교양의 참된 의의라 할 것이요. 이렇게 해야만 교양은 앎과 삶의 일치가 될 것이다.  (p. 21)

 

Ü 다양한 교양의 정의 가운데 가장 넓은 의미의 교양이다. 어쩌면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내면과 자신을 알아가는 그 과정이 교양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함인지 모른다.

 

공부를 시험공부와 똑 같은 것으로 여기는 한국. 정답이 두 개니 한 개니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 뿐이다. (p. 22)

 

Ü 제 아무리 떠들어도 가망 없는 나라다.

 

신곡을 읽는 방법

죽을 날짜를 받아두었다고 해보자. 뭘 읽어서 지식을 쌓는 것도 무의미한 지경이다. 무심의 이 시기에 딱 한 권 잡으라면 나는 단테의 신곡을 쥐겠다. 소설은 스토리를 따라가야 하니 처음부터 읽어야 하고 시집은 너무 얇아 금방 뒷장에 다다라 다른 걸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제법 두툼하고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무방하며 유장한 통찰까지 담긴 책을 잡겠다는 의도다. (p. 24)

 

□ 루이스가 인용하는 조나단 겔러시의 말처럼 단테는 이탈리아어를 고전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한 최초의 인물이다. 이른 바 천 년을, 아니 그 이전의 로마제국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을 지배해온 언어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것을 오로지 단테가 해내었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것을 자각적으로 사용하여 사랑의 언어, 역사의 언어, 종교의 언어, 철학의 언어, 이 모든 것을 담은 서사시를 창조한 시인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대자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단테는 새들의 짹짹거림에 지나지 않던 소리를 언어로 재창조 해낸 것이다.

 

사람들은 단테를 가리켜 최후의 중세인 최초의 근대인이라 한다. 그러나 단테는 도시인, 도시인이면 충분하다. 더 말하고 싶으면 단테는 피렌체 사람이었다. (p. 25)

 

Ü 이쯤에서 단테와 그의 시대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지난 날 스승이 내린 축복으로 나는 신곡을 슬쩍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아래의 글은 그때 발췌해 놓은 것이다.

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

 

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 생의 굴곡을 반영이라도 하듯 긴 이름을 가졌다. 단테는 1265, 13세기 중반에 피렌체에서 태어난다. 13세기의 유럽, 그 중에서도 피렌체는 인류가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던 흥미진진함이 있었던 곳이다. 봉건제도가 서서히 그 명을 다해가고 있었고 새로운 계급, 또 다른 힘이 사회를 움직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 등으로 신에 이름으로 벌어지는 많은 전쟁에서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사랑을 동시에 느끼던 시기였다. 과학과 미술 기법이 발달하고 고전에 대한 재해석이 봇물 같이 터져 나오던 시기다. 뿐인가, 대륙 이웃나라 프랑스에서는 세기의 건축물 노트르담 대성당(1163~1250)이 고딕 양식의 절정을 완성했고 미술에서는 피렌체의 조토 디 본도네가 명암과 단축법의 혁신을 이루었고 이후 마사초와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로 이어지는 콰트로첸토의 서막을 장식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유럽의 분위기, 특히 피렌체의 자유의 공기는 그 어떤 시기보다 맑았다.단테는 이 시기를 살았다. 간략하게 그의 연보를 본 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Dante Alighieri
간략 연보

1265:

1274: Beatrice를 처음 만난다. 곧 사랑에 빠진다.

1283: 아버지의 죽음. Gemma와 결혼

1289: Campaldino 전투에서 기병으로 참전.

1290: Beatrice의 죽음

1292: ‘The Vita Nuova’(새로운 인생) 집필

1294: Charles Martel of Anjou의 참모로 활동

1295: 약제상 길드에 가입

1301: 사절단 자격으로 교황Pope Boniface VIII(보니파키우스 8) 를 만나기 위해 로마 방문

1302: Guelf당 실정(失政), 단테는 추방당함

1304: ‘De vulgari eloquentia’(속어론) 출판

1315: Cangrande della Scala(베로나의 전제 군주)의 초대로 Verona

1317: ‘Inferno’ (지옥편) 출판

1319: Ravenna로 옮김

1321: 914일 사망

 

단테는 1265 3, 그러니까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두란테’(Durante)였지만, 이듬해에 유아세례를 받은 이래로 줄곧 ‘단테’(Dante)로 불리게 되었다. 알리기에리 가문은 원래 귀족에 속했지만 단테가 태어날 당시에는 사실상 몰락한 상태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임대 및 대부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1272년에는 어머니가, 1280년대에는 아버지가 사망함으로써 장남인 단테는 10대 후반에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재산이 좀 있어서 특별히 어려운 생활은 아니었다.

 

그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베아트리체는 빠뜨려서는 안 될 사람이다.

1274 5 1, 아버지를 따라 유력자인 폴코 포르티나리의 집을 방문한 단테는 폴코의 딸인 베아트리체(비체)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9, 그의 나이는 10세에 불과했지만, 이날의 경험이야말로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관습에 따라 단테는 마음에 두었던 베아트리체가 아니라 부모님이 정한 상대와 맺어지고 말았다.  

 

겨우 13세 때인 1277 2 9, 단테는 피렌체의 또 다른 유력자인 마네토 도나티의 딸인 10세의 젬마와 약혼했고, 9년 뒤인 1286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에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1283 5 1, 단테의 일생에서 또 한 번의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처음 만난 지 정확히 9년 만인 바로 그날, 베아트리체가 길에서 단테를 보고는 인사를 건넸던 것이다. 단지 의례적인 인사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황홀해진 단테는 그날 밤에 꿈속에서 그녀와 함께 사랑의 신을 목격한다. 잠에서 깨어난 단테는 그때부터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을 담은 시를 쓰기 시작한다. 인문 교육을 받은 단테는 라틴어에 능통했으며, 키케로와 보에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를 비롯한 고전 작가들을 숙독했다. 그러나 1290 6, 베아트리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슬픔에 빠진 단테는 그때까지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쓴 시를 엮어서 새로운 인생’(1295)이라는 책으로 간행한다.

  

피렌체에서의 정치 활동과 망명 생활

 

단테가 살았던 14세기 후반의 피렌체는 당파 싸움이 한창이었다. 당시의 정치적 배경은 이 저명한 시인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당시 피렌체를 양분하는 세력이었던 교황파 겔프당과 황제(신성로마제국)파 기벨린당은 종종 음모와 무력을 동원해 가면서 권력을 뺏고 빼앗기며 각축전을 벌였다. 단테는 이 가운데서도 겔프당에 속했으며, 이 당이 또다시 상인파 비앙키(백색)당과 귀족파 네리(흑색)당으로 갈라지자 전자를 지지하고 후자와 대립했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요직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비교적 당리당략에 좌우되지 않고 공평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1295
년에 피렌체의 약제사 조합에 가입함으로써 정계에 입문한 단테는 머지않아 탁월한 지성과 언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임기 2년의 피렌체 행정부 최고위원 3인 중 1인으로 재직할 때에는 비앙키당과 네리당 간의 분규를 주도한 양측의 문제 인물들을 시외로 추방함으로써 명성과 아울러 원한도 만들게 되었다. 1301년에 프랑스의 귀족인 샤를 백작이 교황의 요청으로 군대를 이끌고 피렌체로 진격하자, 단테는 교황을 설득해 전쟁을 막기 위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로마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로마에 머물던 11 1, 샤를이 피렌체에 진입함과 동시에 그 위세를 업은 네리당의 주요 인사들이 권력을 장악한다.

1302 1 27, 단테는 최고위원 재직 당시의 뇌물 수수 및 각종 비리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선고를 받는다.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돌아오던 단테는 이 소식을 듣고 귀향을 포기했으며, 이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줄곧 타향을 전전하는 신세가 된다.

단테의 최고 걸작인 신곡은 그의 삶에서도 가장 어두웠던 바로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다. 1312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새로운 황제 하인리히 7세가 군대를 끌고 이탈리아로 내려오자, 단테는 그 위세를 업고 피렌체로 돌아가려는 꿈에 부푼 나머지 황제 치하의 정치에 관한 이상을 담은 제정론을 저술 하지만 하인리히 7세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1년 만에 사망함으로써 단테의 꿈은 다시 한 번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평생의 대작 [신곡]의 완성과 단테의 최후

1312~18년까지 베로나에서 머물렀던 단테의 말년이 딱 그러했다. 1314년에 [지옥]이 간행되어 명성은 크게 올랐지만, 망명객인 그의 내면은 한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내면의 고민이 외면으로도 드러났던 것일까. 조반니 보카치오의 전기에 따르면, 당시 단테를 처음 본 베로나의 어떤 여자들은 그 꾀죄죄한 행색에 놀란 나머지 “저 사람 행색을 보니 정말로 지옥에 다녀온 모양”이라고 수군거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물론 피렌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315, 전쟁을 목전에 둔 피렌체의 네리당은 다급한 마음에 내부 결속을 위해 단테를 비롯한 여러 추방자들에게 사면을 제안한다. 그러나 막대한 벌금과 굴욕적인 공개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단테는 그 부당성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 파란을 일으킨다. 우려했던 전쟁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지만, 네리당은 대신 단테에게 칼끝을 겨눈다. 이제는 아예 사형을 선고하고 재산을 모조리 압류했으며, 피렌체에 남아 있던 그의 세 아들에게도 사형을 언도했다(다행히 그들은 무사히 도피했다.)

 

1318, 단테는 베로나를 떠나 라벤나에 머물면서 신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천국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라벤나의 외교 사절로 베네치아에 다녀오다가 병에 걸려 1321 9 14일에 사망한다. 56년간의 삶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19년을 망명객으로 보낸 뒤 맞이한 쓸쓸한 죽음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넘어서야 실책을 깨달은 피렌체는 단테의 유골을 모셔오려 했지만 라벤나는 번번이 거절했다. 1519년에 교황이 그 분쟁에서 결국 피렌체의 손을 들어주자, 라벤나는 단테의 유골을 몰래 빼돌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모처에 은닉되었던 유골이 발견되어 라벤나의 작은 교회에 안치된 것은 무려 1865년의 일이었다. 사후 500년이 되어서야 단테의 긴 유랑은 비로소 끝났던 셈이다.

참고) 위키피디아, 네이버캐스트 인물 정보 등

 

□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아주 오래 전 길을 떠났던 길가메시처럼 끊임없이 방랑한다. 방랑 끝에 아내에게 받는 질문이 당신의 가문과 어디서 오셨는지?’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도 마찬가지다. 온갖 고생 끝에 고작 자기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결국 무지한 자기를 벗어버리고 본래의 자기를 찾아 절대적으로 앎으로 가는 여행이다. (p. 26)

 

Ü 신곡은 이와 다르지 않다. 자기를 찾아가는 길고 철학적인 여행인 것이다. 교양인의 원조

 

이로써 자기를 찾는 과정으로서의 교양개념을 펼쳐 보이는 그의 여행은 궁극적으로 별을 향한 것이었으며 그 추진력은 사랑이었음이 확인된다. (p. 27)

 

Ü 스승의 그것.

 

□ 보르헤스의 단언처럼 신곡은 모든 문학의 절정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를 외면하는 것일 까? 단테와 같은 나라 사람인 그람시의 물음은 항상 유효하다. ‘왜 이러한 책들 (통속적인 소설들) 은 항상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자주 출판되는가? 그것들은 어떤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어떤 열망을 채워주는가? 이 너절한 문학 속에 어떤 정서와 의견이 담겨 있기에 그토록 광범위한 호소력을 갖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p. 30)

 

Ü 그 질문 참 좋다. 한번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해 볼 만 하겠다.

 

2. 역사

역사책들에 대하여

□ 역사 공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호기심만으로는 부족하고 이것이 진정한 학적 욕구로 이어지려면 관여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p. 35)

 

역사서술의 객관성과 당파성

□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재판정이기를 포기하는 것 역시 역사를 대하는 하나의 입장이며 이는 역사들로부터 가치판단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전제한다. 사실은 사실일 뿐이다. (p. 40)

 

헤겔에 따르면 근원적 역사는 사건의 정신 안에서 살고 아직 사건 밖으로 넘어서 있지 않기 때문에 반성과는 관계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해당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조망을 갖지 못하는 재구성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즉자적 서술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이 객관적인 한국전쟁사를 서술하는 것이 옳은 일일 수도 있다.

 

 한계가 있기는 하나 물론 사실의 보고는 역사의 소재가 된다. 다만 소재로 취해지기 전에 원칙적으로 당파성에 종속되지 않는 방법과 기준을 통해 타당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홉스봄) 타당성을 검증 받으면 사실은 객관성을 승인 받을 수 있고, 그로써 역사서술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일차적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또한 객관성에 더해서 역사에는 구조적 연관의 충족이라는 요구가 있다. 한 인간의 생은 역사적 시간에 비하면 지극히 짧고 그의 보고는 단편적이다. 역사는 이것들을 소재로 삼지만 그보다 넓은 범위를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 시간 속에는 너무 지속적이어서 구성원들의 무의식이나 무지 속에서 지양되어버린 구조나 혹은 변화가 너무 장기적이어서 당사자들의 경험 지식으로는 그 변화를 포착할 수 없는 구조도 존재한다. 이때 사회과학이나 학문으로서의 역사만이 당시를 살아가는 세대들의 경험 단위를 넘어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코젤렉)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 해도 당대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으며 저변에 놓인 장기지속은 더군다나 파악할 수 없다. (p. 41)

 

Ü 광범위한 지적 기반과 과학적 사료 발굴, 사회 문화 정치 등의 연계성을 포괄하는 혜안을 가진 다음에야 역사 서술이 가능하구나. 그렇구나. 그러나 그 안에서 이념적 균형이나 당파성을 제거하는 일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누군가 얘기하기를 모든 인간에게 무전제성 즉 절대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떠한 역사라도 그 객관성을 승인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승인에 참여한 인간의 무전제성과 객관성에 대한 균형감각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또 모든 역사는 허구일 수는 없는데

 

□ 역사가가 당파성을 가진다는 것은 최소한 홉스봄의 촉구 (‘원칙적으로 당파성에 종속되지 않는 방법과 기준을 통해 타당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 를 수용하여 역사의 이데올로기화를 막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 사회집단이 역사 위에 존립한다면 공식화된 사회적 과거를 만들어내는 일은 역사가의 임무이며 이렇게 역사를 생산해낼 때 역사가의 당파성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를테면 과거의 한 사건을 쿠데타로 규정할 것인가, 혁명으로 규정할 것인가, 어떤 역사적 인물을 독재자로 명명할 것인가는 몰가치적 균형의 입장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료 자체로부터 얻을 수 없고 사회적 올바름에 대한 관점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역사가가 가지는 당파성인 것이다.

 

사료는 우리가 오류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지만,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코젤렉) (p. 43)

 

Ü 역사인간이 해석하기에는 근본적인 오류를 지닌, 가장 어려운 학문일 수도

 

역사를 보는 두 관점

□ 마르크스주의가 내놓은 충격적인 관찰 사례는 다음과 같다. 종교 개혁 자체가 경제적인 원인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찰, 30년 전쟁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것은 경제적 원인 때문이라는 관찰, 십자군은 봉건적 토지에 대한 갈망에서 가족의 발전은 경제적 원인에서 그리고 동물을 기계로 보는 데카르트의 관찰은 매뉴팩처 체제의 성장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관찰

 

19세기의 충격을 소화하면서 역사학에서는 관념론적 틀을 유물론적 틀로 바꾸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그에 따라 정치사가 몰락하고 경제사나 사회학적 역사가 발흥했는데 그 배경에는 점점 더 긴급해져가는 사회문제들의 충격이 있었다. 이 점은 역사학이 현실세계와 능동적으로 대화하기 시작한 증거라 하겠다. 현실세계와의 능동적 대화에 마르크스주의가 강한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이때 역사학을 변화시킨 주된 추진력은 역사지향적 사회과학 (이를 테면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 으로부터 그리고 특히 마르크스로부터 나왔다경제 결정론이라는 용어를 부인하는 것과는 별도로 또한 마르크스는 자신이 역사발전의 경제적 토대가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 또는 인간의 역사를 일련의 사회-경제 체제의 역사로 서술했던 최초의 사람이라는 점을 확실히 부인했다그러나 이런 부인은 헛일이었다. (p. 48)

 

Ü 아르놀트 하우저는 그의 저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봉건제도를 보는 관점을 마르크스가 보는 시각과 같이 하고 있다.

 

 봉건제도는 9세기 중장비 기병대를 창설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출해낸 제도였던 것이다. 왕은 별다른 수단이 없던 나머지 그들에게 토지와 면세특권과 영주로서의 권한, 예컨대 징세권과 재판권 등을 주고 그 대신 군사적인 임무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특권들이 봉건제도라는 새 제도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p. 244)

 

 이때부터 한동안은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국가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통일적인 행정기구도 없고 국민으로서의 연대감도 없었으며 신하들을 묶어주는 일반적이고 공식적 법률적인 여하한 근거도 없었다. 봉건시대의 국가는 말하자면 추상적인 한 점을 정점으로 가진 피라미드형의 복합사회였다. 왕은 전쟁의 주관자이긴 하지만 통치자는 아니었다. 실질적인 통치자는 대지주들이었다. (p. 245)

 

Ü 무정부적 지역 공동체. 봉건제도는 잘만 활용하면 매력적인 커뮤니티 사회로의 이행에 결정적 힌트를 주는 체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가 자본주의 이전, 합리주의 이전의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던 것에 상응하여 시대의 정신상황 일반도 개인주의 이전의 양상을 띠고 있었던바, 이러한 사실은 개인주의가 원래부터 경쟁의 원리를 포함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한층 이해하기 쉽다.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적인 규정은 무엇인가? 사회현상의 위계질서를 주장하고 자기 지속적인 체제의 경향에 반작용하는 내적 긴장(모순)이 사회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p. 49)

 

□ 마르크스주의는 역사 발전의 동인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역사학에 기여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원시 공산주의에서부터 자본주의에 이르는 인간 역사의 발전이라는 전반적인 형태에 대해 대략적인 묘사나 힌트를 주는 일반이론(유물적 역사관)과 특정한 과거의 측면, 시기, 문제들과 관련된 구체적 관찰 모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의 핵심 테제를 천명하고 있는 공산당선언의 첫머리-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를 읽어보자. 마르크스는 물질로서 역사의 전개과정을 설명한다. 여기서 물질은 자연과학적 의미의 물질이나 형이상학에서의 관념론에 대비되는 의미의 물질이 아니다. 이는 경제적인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1차적 의미이다. 인간의 생산활동이라는 실천은 관계-자본과 노동도 이러한 관계의 하나이다-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제도를 통해 구조적으로 고정되며 이 단계에 이르면 실천은 조직과의 관계에서 생겨나게 된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구조화된 관계가 물질의 또 다른 의미이다. 이는 물질화된 사회관계라 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자본순환과 사회관계의 접합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급은 사회적 관계이다. 따라서 계급투쟁은 사회관계들 사이의 투쟁, 달리 말해서 물질적 이해관계의 투쟁인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물질적 배경을 가진 관계 속에서 형성되므로 이것들 역시 물질화된 관계이다. (p. 50~51)

 

Ü 이제 조금 밝아진다. 경제적 차원에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 중 가장 공고했지만 저항을 많이 받았던 관계가 계급이라는 사회적 관계다. 이 관계의 본질은 물질이라는 이해관계다. 이러한 이해가 항상 상충되어 억압과 반발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제 이런 반목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겠다.

 

우파 역사가의 거대서사

□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접하기 전에 그의 의식 안에 자리잡은 일종의 선경험 또는 선이해라는 형식을 띠고 있을 터인데 이것들 역시 역사가 개인의 삶의 경험, 공부의 과정 등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므로, 결국 역사가의 시각과 그가 낳아놓는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러한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p. 54)

 

Ü 홉스봄의 촉구 (‘원칙적으로 당파성에 종속되지 않는 방법과 기준을 통해 타당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 는 한 단계 더 전진한다. 역사를 승인하는 자의 개별적 삶의 경험, 공부 과정 등을 살펴 봐야 절대 객관성의 일부라도 확보하는 것.

 

□ 역사가는 당대의 일생에 매몰되어 살고 있거나, 단 하루 전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정신에서 수천 년을 넘나들 수도 있다. (p. 54)

 

Ü 멋진 시간일 게다.

 

역사와 당대의 현실

□ 지배계급은 사회적 갈등과정에서 생겨난 집단이익을 의식하고 그에 걸맞도록 조직되어야 하며, 수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헤게모니 지배를 성공적으로 실현하려면 다른 계급이나 계급 분파 또는 사회계급과 동맹을 맺어야만 한다. 또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계급은 조직화와 동맹의 결성 이외에도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지배계급의 이념을 지배이념으로만들어야만 한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이념을 대중 속에 침투시켜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이념으로 만들어 내는 이러한 시도에서 지식인들의 노고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지배계급의 이념을 지배이념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교육기관 등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동원되며 이때 역사문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하층계급들이 지배계급의 경험, 관심, 열망뿐만 아니라 전체 민중 내지는 국가의 경험, 관심,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느끼는 과거 및 과거와 현재의 관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해석을 정교화하고 장려하는 것이다. (p. 58)

 

Ü 현재의 사회적 가치와 대중이 선호하는 이념, 즉 지배계급의 가치이자 이념. 헤게모니는 앞서 저자의 다른 책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에서 소개되었다.

 

근대 정치학에서 권력의 요소는 무력과 설득력이다. 정치적인 목적은 이 두 가지에 의해 성취되고 그것을 완비하면 무기를 든 예언자가 된다. 무력에는 경찰, 군대, 법률, 제도 등이 있다. 설득력은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이데올로기다. 이 두 가지가 잘 짜여졌을 때 시스템이 단단해 진다. 사실상 무력과 설득력은 현대 국가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이다. 이 두 개를 장악하는 자가 사회를 움직인다. 이 둘은 한 마디로 압축해서 말하면 헤게모니.’

 

인민들아, 잘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계급의 어떤 지배이념을 강요 받고 있는지를.

 

□ 정치인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 기업인들이 돈을 대고 지식인들이 나서서 공교육의 역사 교과 과정을 손본다. ‘공교육의 역사 교과 과정은 국민국가의 선별된 전통, 즉 국민 국가의 거대 지배 서사를 가장 공식적이고 권위 있게 정교화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헤게모니 장악 프로젝트의 핵심적 목표 (거의 틀림없이 가장 핵심적 목표) 일 것이다.

 

Ü 오늘 자 (6/13) 신문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기사는 위의 커넥션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다소 길지만 모두 인용한다.

 12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 위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소위원장 권혁부) 회의장에선역사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121일부터 33일까지 퍼블릭 액세스 채널 RTV를 통해 방송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심의 안건으로 올라온 탓이었다.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두 편이 RTV를 통해 방송됐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이후 유튜브에서는 이미 200만 건을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각각의 시리즈에는두 얼굴의 이승만’, ‘프레이저 리포트-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는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심의는 두 편에 대해 별도로 진행됐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심의위원들의 의견은 예상대로 여당 측과 야당 측으로 갈렸다. 여당 측 위원들은역사왜곡이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이라며 중징계 의견을 냈고, 야당 측 위원들은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공정성 심의 대상이 안 된다며 문제 없다는 의견을 냈다.

권혁부 위원은이승만의 두 얼굴편에 대해이 프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전면 부정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왜곡한 구석이 드러났다이렇게 매도해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공정하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편향적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엄광석 위원은증오의 먹물로 써내려 간 역사물이라며엄청난 역사왜곡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엄 위원은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비판이 함께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오로지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적 면만 강조했다이런 건 우리 방송에서 허용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성희 위원은음란물이나 폭력물만 위험한 게 아니라 역사 왜곡물도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이승만을 악마화해서 문제가 아니라 어느 한쪽 면만 부각시킨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라며이걸 덥석 방송이라는 매체에 뿌린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중징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여당 추천 위원들은 최고 수준의 징계인관계자 징계 및 경고의견을 냈다.

 

 반면 김택곤 위원은이 프로그램처럼 철저히 고증과 자료에 의존해서 풀어간 프로그램도 본적이 없다사실 기술에 있어서 크게 어긋남이 없다문제 없음의견을 냈다. 그는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의 모습을 제대로 담았다문제를 제기한다면 어떤 게 왜곡이고 사실이 아닌지 설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장낙인 위원은이 프로그램은 이승만 대통령의 또 다른 모습을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는 내용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장 위원은공과 과를 다루는 입장에서 서로 상반된 시각에서 한 인물을 평가할 수 있다 “(그건) 논쟁과 토론의 영역이지, 심의대상이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각하의견을 낸 것이다.

 

 곧바로 이어진프레이저 리포트-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는가편에 대해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됐다. 위원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한강의 기적경제개발 5개년 계획등에 대해 저마다 다른 평가를 내놓으며 해당 프로그램을 심의했다.

 

 엄광석 위원은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우리 민족중흥을 일으킨 지도자, 북한보다 국민소득이 낮았을 때 그걸 극복해서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지도자라고 평가하는데 이런 다큐의 시각과는 차이가 크다그야말로 증오의 시각으로 써내려간 것 아니냐. 이런 게 어떻게 방송에서 가능하겠냐고 강조했다.

박성희 위원은경제개발을 미국이 주도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심한 억측 아니냐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객관적 사실을 하나하나 따질 생각은 없다면서도큰 틀에서 역사를 조명하는 방송사의 태도나 사명감을 지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혁부 위원은()만을 부각한 부정적 시각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은경제개발이라는 게 설사 계획을 (미국에서) 짜줬다 하더라도 추진력이나 통치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일본 총리 앞에서명치유신의 지사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에 대해이렇게 매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택곤 위원은미국이 당시 한국을 공산화로부터 지키기 위해 최소한 경제발전을 이뤄야겠다고 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며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굳이 토 달 게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리포트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미국이 짰고,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해서 성공시켰다는 내용도 있다자료 왜곡이나 편중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낙인 위원은 ““미국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봤는지 전달하는 내용이라며악의적 평가를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장 위원은미국이 제안한 걸 박정희 대통령이 받아서 한 게 박 대통령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라며 역시각하의견을 냈다.

 

 여당 측 위원들이관계자 징계 및 경고의견을 내고 장낙인 위원이각하의견을, 김택곤 위원이심의보류의견을 내면서 결국 합의는 무산돼 전체회의로 넘겨졌다. (기사 인용 끝)

 

어찌 생각하시는가?

 

과거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충실히 보여줌으로써 과거에 누가 더 많이 뜯어먹었는지 오늘날의 부자들이 과연 어떻게 그 부를 쌓았는지, 그 부를 쌓아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덜 났는지, 그러니 이제는 누가 양보해야 하는지만이라도 밝히고 지나가야 할 때인 것이다. (p. 60)

 

Ü 내 말이다.

모든 불행한 사람은 그가 하고 있는 지금 그 일 때문에 행복한 사람에게 종속되거나 종속 되어진 사람이다.

 

3. 근대

개인주의

□ 인간의 의식 속에는 모든 사회적 행동의 출발점 역할을 하는 세계상이 존재한다.

집단 속으로의 통합이 당연시된 곳에서는 개인의 존재가 의문시되지 않는다. (p. 63)

 

내면의 성찰은 근대적 현상이다. 이것이 있어야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free and equal individual 이 가능하며 이들에 근거해서 근대 사회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는 일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래에서는 그 긴 도정의 몇몇 사례를 사례다. (p. 64)

 

아우구스티누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닌 실존 고백자로서의 아우구스티누스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실은 그가 신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 what am I 를 물었다는 것이다. 이는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본질을 알려는 물음이다. ‘한 사람 person으로서 그는 신을 대면하고 신과 자신을 비교한다. 고백하는 상대는 신이며 신 이외의 모델은 필요하지 않았다.’ (p. 64)

 

Ü 신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던 모세를 기억하라.

 

아동의 탄생

□ 어린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러니까 특정 계급의 어린이가 아닌 어린이 일반의 삶이 어떠한지를 한 사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해보는 건 어떨까? (p. 69)

 

Ü 좋은 생각이다. 한 사회의 건강지수를 체크하는 데 가장 지표적 기준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의 삶이 어떻게 존중 받고 있느냐다. 어린이,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중세에는 아이는 어머니나 유모의 끊임없는 염려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되자마자, 어른과 구별되지 않고 곧장 어른의 세계에 합류했던 반면, 17세기 이후에는 아동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되 그 시기(연령)에 해당하는 고유한 특징이 있음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아이들을 무시하다가 17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아동에 대한 의식이 생겨났는가?

17세기가 지나 18세기가 되면 부르주아의 시대가 무르익는다. 이는 소유권의 변화가 진행되고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 부르주아는 더 이상 전통적인 공동 경작에 의존하는 계급이 아니라 개별 단위로 활동하고 그의 재산은 가족에 국한된다. 따라서 아동의 탄생은 엄밀히 말하면 부르주아적 아동의 탄생이라 하겠으며 이 점은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아동이 여전히 중세적인 노동에 동원되고 있음을 통해 입증된다. (p. 71)

 

Ü 흥미로운 관점이다.

 

직물 산업에서 아동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면서 혹시 19세기 전반에 후퇴가 일어난 건 아닌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아동 노동은 중세 사회의 이러한 특징, 즉 어른 세계로 곧장 이행하는 조숙함을 계속 유지해왔다. 모든 생활 양상은 부르주아와 하층계급의 아이에 대한 교육적 차별 대우 때문에 변했다. 따라서, 근대적 연령층과 사회계급 사이에 주목할 만한 동시성이 존재한다. 양쪽 다 18세기 말이라는 동일한 시기에 부르주아지라는 동일한 계급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는 곧 아동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다. (p. 72)

 

Ü 부르주아지의 탄생 à 부르주아지 아동의 탄생, 권력세습과 부의 확대 재생산! 그 동시성이란 이런 것, 일하는 자 청,장년층, 보호 받는 자 아동, 노인

 

근대사의 주제들

□ 뉴턴의 목표가 신이 자신의 피조물의 세계를 참으로 통치하고 존속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에 있었음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데카르트와 같은 기계론 철학으로 위장한 이교도들의 주장에 맞서기 위한 것임을 이 글(윌리엄 L. 랭어의 뉴턴에서 조지오웰까지’)을 통해서야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p. 73)

 

□ 그런데 그는 비물질적 존재인 힘의 원천을 알 수 없었다. 신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신앙의 대상이지 물리학의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경험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그는 세계에 관한 설명에서 궁극 원인을 그에 따라 궁극 목적을 배제해버렸고 그 결과 그가 옹호하고자 했던 신의 존재를 학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린 셈이다. 그는 괴로웠을 것이다. (p. 74)

 

Ü 신의 일은 신의 일로 남겨 두는 것. 인간이 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 아마 영원히 찾을 수 없겠지만 그 노력을 끊임없이 해대는 어리석음도 가끔은 필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은 신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문맹자가 한 명도 없다 해서 그 사회가 계몽된 것은 아니다. 말과 글로 만들어진 우상이 사람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p. 75)

 

Ü 이 나라는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지만 문화적으로 가장 빈한한 나라 중 하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문화인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매해, 매 정권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 수백 년 동안 큰 전쟁 없이 사회혁명과 기술혁신 - , 진보 - 에 몰입하던 서양의 문명이 역설적이게도 대량학살로 치달았다는 것, 우울하지만 그것이 이 전쟁의 진실이다. (p. 76)

 

□ 인간사를 조직화하는 이데올로기의 상대주의가 없다면 남는 것은 오직 순수한 절대적 인간성이다순수한 절대적 인간성,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p. 77)

 

Ü 이념, 가치, 윤리, 사상이 없는 절대 인간굉장히 매력적일 것 같다. 혹 한다.

 

□ 제임스 버크의 우주가 바뀌던 날 (지호), 근현대 지성사의 틀이 잡힐 것이다. (p. 77)

 

자연과학이란 무엇인가

□ 오늘날의 사람들은 물리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수학으로 표현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자연철학(물리학)은 검증가능하고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표현된 법칙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원칙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숨겨진 힘이 눈에 보이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과학이 되고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마술이 되는가? 뉴턴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해답, 즉 기계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제1원인은 비물체적이며 생명 혹은 지성을 가진 편재하는 존재자로 바꾸어 말하면 신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뉴턴의 해답이 신이라면 프랑스의 데카르트주의자인 퐁트넬이 뉴턴의 중력에 대해 그야말로 스콜라 철학자가 숨겨진 성질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p. 80)

 

Ü 나는 책을 읽고 받아 적기 바빴고 사유를 깊이 행하지 못함을 알았다.

 

□ 신이 자신의 피조물의 세계를 참으로 통치하고 존속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뉴턴의 생애를 건 목표였다그는 궁극적 원리가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힘이라고 간절히 믿었다. (윌리엄 L. 랭어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p. 81)

 

Ü 신에 대항한 자 (니코스카잔키스), 신을 아는 자 (카를 융), 신을 원망한 자 (예수), 신에 다가간 자 (부처), 신에 굴복한 자 (뉴턴)

 

칼 마르크스

□ 일제 군국주의의 찌꺼기인 유사-파시스트적 한국 우파 (p. 84)

 

마르크스는 여기에 계급적 위치와는 무관한 보편적 이해관계란 있을 수 없다는 당파성을 덧붙여 그것을 중심으로 삼는다. 물질적 노동을 역사에 중심에 놓게 되면 정신의 역사철학에는 필수적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통찰과 그것들의 통합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사상의 근원적인 핵심 요소를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이라 한다면 그것과 필연적 연관에 있는 일종의 하위 범주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계급 간의 투쟁의 역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이론을 비롯한 정치적 프로그램; 노동가치론, 착취와 잉여가치에 관한 이론, 경제 위기론. (p. 85)

 

Ü 같은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마르크스는 물질로서 역사의 전개과정을 설명한다. 여기서 물질은 자연과학적 의미의 물질이나 형이상학에서의 관념론에 대비되는 의미의 물질이 아니다. 이는 경제적인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1차적 의미이다. 인간의 생산활동이라는 실천은 관계-자본과 노동도 이러한 관계의 하나이다-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제도를 통해 구조적으로 고정되며 이 단계에 이르면 실천은 조직과의 관계에서 생겨나게 된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구조화된 관계가 물질의 또 다른 의미이다. 이는 물질화된 사회관계라 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자본순환과 사회관계의 접합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급은 사회적 관계이다. 따라서 계급투쟁은 사회관계들 사이의 투쟁, 달리 말해서 물질적 이해관계의 투쟁인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물질적 배경을 가진 관계 속에서 형성되므로 이것들 역시 물질화된 관계이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를 언급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북리뷰 때 알아보도록 한다.

 

사회와 역사에서의 인간 노동의 중요성이라는 테제로 수렴된다. 마르크스 사상은 인간 노동이 중심인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때 유물론은 형이상학의 한 태도로서의 유물론이 아니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자신의 생애에 대한 청사진을 세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든 외면적, 소외적 상황 속에서도 자기를 자신의 곁에 머무르게 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p. 86)

 

Ü 마르크스는 버티는 게 이기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저자)

 

□ 모든 진정한 철학은 당대 지성의 정수이기 때문에 철학이 내적으로 그 내용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외적으로 그 형식을 통해서도 당대의 현실 세계와 접촉하고 상호작용할 때가 와야 한다. (마르크스) (p. 90)

 

□ 그는 현실에 부딪히면서도 시간이 나면 곧바로 이론적 연구에 몰두한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이 문제에 대해 공부해 보겠는가하는 자세다. (p. 90)

 

Ü 정말 중요한 자세다. 지금 안 가면 갈 수 없고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는 것.

 

역사란, 창조적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과 외부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라고 결론지었다. (벌린) (p. 92)

 

Ü 마르크스의 생각에 대한 벌린의 결론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본질을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연의 왕국에 속해 있으므로 자연의 왕국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신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곧 인간이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의 노리개에서 벗어나 그 힘들과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이다.’ (벌린)

 

자유가 현실성 현실적으로 실현된 이념- 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p. 94)

 

Ü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아 자신을 지배하는 것.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필요하다.

 

정념과 오성 : 마르크스의 경우

□ 사람들은 열망, 이상주의 등에서 낭만주의적 감성을 감지한다. 낭만적 감성은 냉정하고도 엄밀한 학적 인식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 자리잡고서 사람의 행동을 일으키는 강력한 힘이다.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현실에 직면했을 때, 현실은 거대한 덩어리로 다가온다.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은 고사하고 정확한 파악조차 버겁고 고통스러울 수가 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는 쉽사리 좌절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몰역사적 시공간으로 들어가 타인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타인의 삶을 살아간다. 몸은 자유로운 듯하나 정신은 타인에게 지배되고 있는 실체적 부자유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p. 102~103)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정을 가지고 나서나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진다.

 

Ü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자신의 실존이 자신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지금 자신의 실제가 자신인지 아닌지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지침이다. ‘윌리엄 L. 랭어 뉴턴에서 조지오웰까지

 

자본가 계급과 지식인 : 공병호의 경우

속도감, 이것이 핵심이다. 산업교육 강사들은 입만 열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이 날마다 변하는가? 자신이 오늘 직장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어제의 것과 다른가? 6개월 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가? 독서를 빨리 해야 할 만큼 지식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가? (P. 107)

 

안토니오 그람시

□ 그러면 서구의 시민사회는 어떻게 해서 현재의 구조를 획득하였는가. 어떤 이념들과 지적 조류들이 이 과정을 지도했고 이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통로들에 의해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 세력들과의 연관 속에서 작동하였는가.

 

헤게모니 : 계급지배와 지적, 도덕적 지도의 결합

기왕에 구축된 모든 질서, 모든 새로운 역사적 블록은 지배계급의 폭력과 국가기구의 강제적 집행력뿐만 아니라 지배계급 특유의 세계관에 피지배자가 동의하는 과정에서 지배계급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구심점을 갖는다. 그리고 연속적인 보급과정을 거친 지배계급의 철학은 상식이 된다. 다시 말해서 지배계급의 철학은 대중의 철학이 되며, 대중은 이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윤리, 풍속, 행동규범을 받아들인다. (P. 113)

 

Ü 이것이 헤게모니가 구축되는 메커니즘이다.

 

벤야민과 파사젠베르크

□ 사진 몽타주는 본질적으로 무엇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실재가 더 이상 지각에 의해 포착될 수 없었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사람들은 실재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였다. 전혀 가필되지 않고 도식화되지 않은 실재가 몽타주를 규정하는 차단의 원리 prinzip der unterbrechung’에 의해서만 구성된 것이었다. 벤야민에 있어 이 몽타주 기법은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 인용기법 즉 과거의 잃어버린 형식으로부터 현재의 형식을 독해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브레히트는 이 차단에 의한 조직 과정을 소외화라고 불렀다.

 

드러냄이면서 동시에 봄, 즉 관조이다. 거기에서는 보는 것, 보는 자, 보여지는 자가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동시에 보는 과정까지도 통합되어 있다. (p. 119)

 

Ü 이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

 

도시와 근대성

□ 데이비드 하비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생각의나무 2005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명료한 설명 이전에, 마음을 움직이는 일, 그 설명을 손에 잡고 눈에 담게 하는 일이다. 그런 까닭에 계몽은 정신이 아닌 몸을 향하는 일이다. (p. 124)

 

□ 파리의 진정한 모습은 역사를 알고 있는 자, 이해하는 자에게만 드러날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 이 도시가 은폐하고 있는 자본의 지정학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니 어렵게 물을 것도 없이, 타워펠리스에 대해서, 거대 할인 매장에 대해서, 뉴타운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궁리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p. 125)

 

Ü 천박하지만 안타깝다. 도와줄 수 없다.

 

자본주의 시대의 사랑과 상품

□ 과거에는 증여가 시장에서의 교환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모든 에 인격이 부여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서 피 흘리는 혁명의 과정을 거쳐 상품이 탄생했다. 호혜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던 이 시장에 들어가 상품이 되려면 인격성의 제거라고 하는 존재론적 차원의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본래 부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속하지 않는 것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대지의 선물과 같은 말로 그것을 표현하기도 했던 것이다.

 

체제 안에 부의 원천을 갖지 못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해서 가치를 증식시키게 되는가? (p. 126~127)

 

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야기 한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부르주아지는 타고난 상전들에 사람을 묶어 놓던 잡다한 색깔의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뜯어 버렸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말고는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았다. 부르주아지는 신앙심 깊은 광신, 기사의 열광, 속물의 애상 같은 성스러운 외경(畏敬)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얼음처럼 차디찬 물 속에 빠뜨려버렸다. 부르주아지는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 가치로 해소해 버렸으며, 문서로 인증되고 정당하게 얻어진 수많은 자유를 단 하나의 인정사정 없는 상업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 때문에 은폐되어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무미건조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지는 이제까지 존경 받았던, 사람들이 경외하며 바라보았던 모든 직업에서 그 신성한 후광(後光)을 벗겨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 등을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놓았다.’

 

이보다 명료할 순 없다.

 

□ 자본가가 활용하는 대지의 선물은 자신의 전 인격의 일부를 상품화하여 계약을 통해 판매하는 노동자의 노동력인 것이다. 바로 이점을 은폐하기 위해 공병호와 같은 쓰레기 지식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자기계발 뷔페를 차려 놓고 노동자들을 현혹함으로써 자본가에게 기여한다. (p. 128)

 

Ü 적어도 쓰레기는 되지 말아야겠다.

 

칸트와 마르크스의 윤리적 개입

따라서 코뮤니즘에 대해서는 이 임노동(노동력 상품)의 폐기가 핵심이다임노동의 폐기란 바로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고 하는 말의 현실적인 형태그것을 폐기하는 것은 윤리적인 개입이다. , 그것은 자유의 차원에서만 오는 것이다.’ (p. 130)

 

Ü 노동이 계약관계이니 만큼 계약이라는 것 안에서 수단과 상품, 효율, 효과 등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그러나 그 차원을 뛰어넘는 사명의 부여, 스스로의 소명의식이 바로 일을 대하는 인간적인 태도라 할 수 있겠다.

 

□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것이지 역사적 법칙(자연과정)의 필연은 아닌 것이다영미계의 윤리학이 칸트를 배척한 것은 사실 칸트 철학 안에 자본제 경제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p. 132)

 

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 데모크라토스, 앙드레 보나르의 텍스트가 부재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수단의 사회화 국유화가 아니다- 를 통해서만 왜곡된 인간관계를 되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회복의 상태가 공산주의 이것은 사적 소유는 그대로 두고 공적 통제를 도입하는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분배문제에 치중하게 되는 사회민주주의와 구별되어야 한다-라고 결론 내린다.

 

□ 선남선녀들이 옛날부터 어찌해왔는지 와는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윤리학적 술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게도 사람이 수단화되는 것이 인간성에 거슬리는 것 아니겠는가. (p. 134)

 

□ 윤리는 결국 현실세계에 대한 충실한 이해나 관계구조의 파악과는 다른 차원에 놓인 결단에의 요청이다. 그런 까닭에 칸트와 마르크스의 윤리적 개입의 요청은 모든 인간관계가 물질화된 상황을 그대로 둔 채 또는 현 체제가 오랜 옛날부터 그래왔다고 여기고 기술의 진보와 체제의 능력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인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물질화된 인간관계 그 자체라도 의문시하고 붙들고 늘어지며 그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탐색해보는 것이 인간적인 것인지를 묻고 스스로 답을 내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p. 135)

 

Ü 모두를 경쟁으로 몰아넣고 야만을 일삼는 파괴적인 이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 자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것.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것.

 

4. 파시즘

 

파시즘의 정의

□ 잠정적이기는 하나 결론을 선취하자면 파시즘은 어설픈 체제이다. 물론 그 어설픔이 연약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폭력배들의 정치운동 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p. 139)

 

□ 네오클레우스는 파시즘은 근대성 속에 내재하는 정치학으로 민족주의적 반혁명적 목적을 위한 대중동원, 군사적 행동주의, 엘리트주의적 권위주의적, 억압적 국가 장치의 운동을 수반하며 자연과 의지에 관한 모호한 생철학을 통해 표현된다.

 

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은 파시즘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프롤레타리아를 억누를 수 있는 국가의 합법적 수단이 불충분하다고 판명되었을 때,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와 싸우는 데 동원한 도구 (p. 140)

 

권위주의 독재와 파시즘을 가르는 핵심요소는 일당독재대중동원인 것이다. 권위주의 독재는 교회, ,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과 같은 기존 보수파의 힘을 통해 나라를 지배하고 여론을 분산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파시즘 정권은 일당을 통해 지배하고 열광적인 대중을 정치에 동원하고자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p. 142)

 

좌파와 우파 모두가 헤게모니 (무력, 설득력)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 이는 파시즘의 핵심적인 등장배경이다. 일당독재와 계급 연대 상황에 따라 특정 계급과 연대하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계급의 당 all class party을 추구 : 준군사조직, 경찰조직 등과 같은 체제 : 계급과 성별을 넘어서는 초민족주의 그리고 외국인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인종주의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 : 여성을 포함한 모든 대중의 밑으로부터의 동원 및 이들의 국민화 nationalization 를 위한 운동. (p. 143)

 

Ü 파시즘의 등장배경과 구조

 

파시즘의 근본원리

□ 파시즘은 necrophilia . 파시즘을 밀고 가는 열정은 죽음에 대한 찬미이고 그에 따라 파시즘 체제 속의 mass –mass는 대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톨릭의 성체 미사를 뜻하기도 한다. 성체 미사는 예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식을 핵심으로 가진다. 그렇다면 이 역시 necrophilia?- 는 시체 애호증 환자들이며 이러한 애호증이 체계적으로 전개되면 규모 있는 기계적 대량 살육이 되거니와 이를 정당화해주는 것은 신성한 전쟁이라는 이념이다.

 

파시즘은 근대의 세 요소, 즉 형이상학적 원리로서의 기계론, 자각적 시민이 기계적 체제 속에서 전락한 모습인 대중 그리고 마모된 의식의 마지막 형태인 니힐리즘이 집약된 것이다.

 

파시즘의 멘탈리티와 그것의 수행은 한마디로 최절정에 이른 근대 니힐리즘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니힐리즘은 파멸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그 속으로 들어간다.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 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핵심 규정이 근대에 이르러 집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p. 145)

 

Ü 파시즘이라는 정치적 체제와 신학이라는 종교적 권위는 구원이라는 허망함 가치에 부합한다. 이로써 둘은 저속한 세속 정치의 한 부류들로써 의기 투합하며 전략적으로 반목하기도하고 화해하기도 한다. 고대와 현대의 인간의 삶은 이리도 같아진다. , 이 시간의 간극을 통합하는 한결 같은 인간의 속내.

 

□ 요아힘 페스트가 지은 히틀러 평전에서 인용한 레오폴트 랑케의 말 : ‘인간과 국가의 내부에는 본성으로 뒷받침되고 습관으로 강력해진 어떤 충동이 들어 있다. 이 충동은 그들이 한 조각 힘을 가지고 있는 한 계속 그들을 앞으로 몰아 간다. 자신을 억제하는 것은 거의 신적인 경지에 이른 사람들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파멸을 보면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 – 대중과 니힐리즘의 결합.

 

자본주의 체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상부구조를 가지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안티테제를 가진다. 마르크스주의의 도전에 직면하여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노동계급을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구조 속에 편입시키는 민주주의의 확충이라는 위장 전술을 펼친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여전히 불안하다. 정치적 자유가 삶의 안락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Ü antithese 안티테제 : 인식이나 사물 발전의 첫 단계인 정립을 부정하는 헤겔 변증법의 둘째 관계, 최초 명제를 부정하여 새로운 주장이 세워짐.

these 테제 : 정치적 사회적 운동의 기본 방침이 되는 강령

 

□ 파시즘은 계급을 해소해 버리고 피로 채워진 단일체인 민족을 신성한 자리에 등극시키는 동시에 교묘하게 사회주의의 껍질을 차용한다. 여기서 탄생하는 새로운 구호 민족을 위한 사회주의’, 이는 눈속임이다. 민족과 사회주의의 결합은 벌써 형용모순이다. 계급 중심적인 현실이 민족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무계급적인 통일체로 재해석된 것일 뿐이다.

 

Ü 교묘한 파시즘

 

□ 테일러주의와 과학적 관리가 수용소 관리에 적용되고 착실하게 살육을 준비하고 수행해간다. – 항구적 전쟁에 이바지하는 기술.

 

Ü 경영학은 이렇게 파시즘에 복종했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생활 속의 파시즘에 종사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인종 학살의 피해 족속들이 이제는 악랄한 가해자가 되어 총질을 하고 있고 발칸 반도에서도 인종 청소가 벌어졌다. 유에스는 어리석은 대중의 대표자인 의회의 승인 아래 세계 여기저기를 체계적으로 난도질하며 사람들의 뇌리 속에 살인의 추억을 남기고 있다. 파시즘은 현재 진행 중이다. (p. 148)

 

Ü 성스러움에 덧입혀진 내면의 더러움을 빗대는 것인가.

 

파시즘에 있어서 대중의 국민화

mass dictatorship 대중독재,

 

이후 165페이지까지의 북리뷰 내용은 PC System 불안으로 소실됨. 안타깝고 허망하여 다시 작업하려 했으나 혼을 쏟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함. 그러나 이 또한 커다란 집착으로 남의 지식을 받아 쓰는 것이 왜 내가 안타깝고 아쉬워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함.  북리뷰를 할 때 마치 내가 저자와 합일에 이르러 나의 생각을 저자의 논리 위에 놓고 또 다른 사유를 파생시키려 했던 것. 그것이 내가 학습하고 배우는 방법이었던 것을 알게 됨. (배움 단상)

 

상징의 정치화 정치의 심미화

散花 : 이 말은 원래 불교에서 사개법요라는 복잡한 불교 법의의 일부로 부처를 기리는 뜻에서 꽃을 뿌리는 것을 가리켰으나 일제 군부는 이 말의 의미를 불교용어의 본래적 의미와는 전혀 동떨어진 것으로 바꿔 전사를 꽃처럼 지는 것이라고 미화하기 위해 이용했다. (p. 163)

 

본래 그런 뜻을 가지지 않았던 의미나 가치 등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자연화 과정은 천황제의 개조, 근대적 군대의 구축 그리고 사쿠라꽃의 의미 변용 등을 포함한다. 즉 천황제, 군대, 사쿠라 꽃이 본래는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어떤 수단을 통하여 그것이 변용되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고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수용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p. 165)

 

Ü 아직도 무수히 많은 이런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 내 존재의 억압을 풀어나가는 과정일 테고 나의 길일 터!

이사야 벌린(영국의 철학자 1909~1997) 은 말한다. 이 책 94페이지에서 말한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본질을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연의 왕국에 속해 있으므로 자연의 왕국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신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곧 인간이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의 노리개에서 벗어나 그 힘들과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이다.’ (벌린)

 

자유가 현실성 현실적으로 실현된 이념- 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자는 또한 말한다. 구만리 장공을 날으는 붕새도 바람을 받아야만 날개짓을 할 수 있으니 모든 존재는 조건 속에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자유 찾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바다에 빠지거나 어부에게 잡힌다. 어부는 바다에 빠진 붕새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다. 우리는 이 현실의 파괴력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파괴력은 다음과 같다 했다.

선표는 그의 속마음을 길렀으나 그의 외형을 호랑이가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장의는 그의 외부의 사귐을 잘하였으나 그의 안에서 병이 그를 공격했습니다.’ 구조적 인간의 한계

 

1889년의 대일본제국헌법 제 3 : 천황은 신성불가침하다.

3조는 천황을 정치를 초월한 곳에 위치시킴으로써 정치적 책임에서 해방시킴과 동시에 정치가들은 천황을 손 안에 든 옥으로서 제멋대로 가지고 놀 수도 있었다. (p. 165)

 

□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근대가 과연 제대로 된 근대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자각적이고 주체적 개인이 아닌 군국주의 신민을 만들어내면서 물질적 산업화의 성과만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대로 간주해버리면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건설한 공장과 철도도 근대의 업적이 될 것이며 이를 식민지배의 긍정적 성과로 인정하는 식민지적 지식인들은 꽤 된다. (p. 167)

 

Ü 복거일이 그렇다.

 

□ 권력은 넓은 의미의 교육을 통해서 이러한 정치화된 상징을 보급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힘의 토대인 권력관계를 은폐한 채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다시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며 그런 점에 이는 상징 폭력의 형성과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p. 168)

 

Ü 권력의 폭력적 재생산

 

□ 군부가 사쿠라 꽃을 말할 때면 그것은 천황을 위한 죽음을 의미했고 젊은이가 말할 때면 환생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의사소통이 결여되어 있었고 또한 그러한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각자의 이해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공존할 수 있었다. (p. 169)

 

Ü 자기식 변용이 가능했다.

 

□ 남성상의 강요 (p. 170)

 

Ü 울어선 안돼, 약해선 안돼, 패배해선 안돼

 

□ 계급을 초월한 민족공동체를 주장하는 사회운동과 민족주의자들은 한 패가 될 수 있는가. 거기에 접점을 가질 수 있는가.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애국심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이념인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사용되는 이러한 상징 기호들은 로만틱한 열정에 호소할 뿐이다. 지금, 여기의 나의 구체적 삶과는 무관한 것이다. (p. 171)

 

Ü 알 수 있는 건 딱 하나 제국주의 산화를 빌미로 야스쿠니에 안치될 수 있는 신이 되어라 호도된 그들의 죽음이 개죽음이었다는 것뿐이다. (저자)

 

계몽주의와 민족정신

□ 민족, 상상된 공동체 Imagined communities ,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의미가 부여된 것이므로 불변의 것일 수 없으니 사람들의 경험이 변하면 그것에 부여되는 의미 역시 달라질 것 (p. 173)

 

Ü 베네딕트 엔더스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21세기 한국의 민족주의는 진지한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일종의 강령이다. 그것은 사회의 현실적 모순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땜질용 접착제이기도 하고 전체주의와 그것에서 파생된 배타적 국수주의의 대열에 쓰이는 슬로건이기도 하다.

 

21세기 남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규정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소비대중으로 전락한 군집이라는 사실이다. (p. 173)

 

Ü 저자의 통찰은 탁월하다. 시선의 균형과 관점이 매섭다.

 

□ 황폐해진 정신을 가진 고독한 군중들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들은 몸도 마음도 상실되어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지도자나 조직체에 몸도 마음도 다 내맡기고 기다리고 있다. (p. 175)

 

□ 정신이 주도하던 인간의 삶은 마침내 집단의 배타적 가치에 광분하는 인간과 흐느적거리는 무골 인간, 이 둘 사이의 무시무시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만남에 서서히 자기 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 것. 특수성의 인정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무차별적 획일화를 분석한 바로 다음. (p. 176)

 

□ 민족적 특수성을 내세우는 것은 언제든지 배타적 민족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고 보편적 계몽주의를 옹호하는 일은 무분별한 획일화를 강요할 위험이 있다. 그러면 어떤 입장을 취할 것 인가. 공산당 선언에서 천명된 프롤레타리아에게 조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세계주의. (p. 178)

 

Ü international!

 

현대의 인종주의

□ 인종주의의 잔인한 살육, 팔을 자른 뒤 거기서 나오는 피를 마시게 한다든가, 집단 강간하여 난도질하여 죽인다든가 하는 짓이 웃음 속에서 행해진다. (p. 190)

 

Ü 후안 고이티솔로 전쟁의 풍경

 

잔인한 살육을 만들어내는 것은 원리주의가 아니라 그것으로 치장된 손해와 이익의 냉철한 현금계산임을 알게 된다. 이른바 분쟁지역에서는 그러한 계산이 종족, 민족적, 국제정치적, 경제적 차원에서 복잡하게 얽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p. 193)

 

Ü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도 이와 같이 말한다. ‘부르주아지는 타고난 상전들에 사람을 묶어 놓던 잡다한 색깔의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뜯어 버렸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말고는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았다.’

 

시민공동체와 파시스트적 잔재의 청산

□ 우리 사회의 모든 당사자들이 취하는 태도(즉 행위 전략)는 나름대로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을 한 다음에 나오는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 적대적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니 나서서 움직여봐야 자산만 까먹을 테고 그러니 부동산 임대수입을 취하거나 수출로 벌어들인 자산을 경영권 방어에 돌린다. 가장 안전한 가족주의라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대박을 노리는 개인들 역시 국가와 사회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계산 끝에 내 한 몸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가족주의에 기댄다. 소극적이라 해도 이것 역시 전략이다. (p. 194~195)

 

□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지. Vs 혹시 다른 사람들은 안 하고 나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Vs 나는 안 해도 누군가는 하겠지.

이러한 상황 역시 개인이 합리적이라 해도 그 합리성은 사회적 합리성을 가져오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호 신뢰가 없다면 합리적 개인은 무임승차에 끌리게 되고 만다. 우리는 당사자들 사이의 신뢰, 그것을 공증할 공권력 그리고 공권력 자체에 대한 신뢰가 이기적 개인들이 모인 사회의 작동에 필수적 조건임을 알 수 있다.

 

Ü 공권력의 필요와 죄수의 딜레마 à 리바이어던의 도입 (홉스) : 약속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철권, 개인은 공권력에 의해 철저하게 규제된다. 과소사회화된 상태에서 과잉사회화된 상태로 옮겨 가는 것 (저자)

 

자신이 열정적으로 가담한 집단에서 배반을 맛본 이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절대로 가담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전략을 취하는 이가 늘어나면 결국 내 한 몸 편하면 그만이라는 가족주의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합리적 전략으로 남게 된다. (p. 198)

 

Ü 이러한 가족주의의 폐해는 학교폭력과 사회적 폐륜, 연장자에 대한 무시와 경멸로 이어진다.

 

□ 시민공동체 형성이 치명적 장애물은 전체주의적 지배이다. 전체주의적 지배는 사회의 구성원들을 합리적 개인이 아닌 종속적 신민으로 전락시키면서 그들 사이의 공동체 형성보다는 수직적인 충성심만을 강요한다. 한국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경험, 박정희의 유사-파시스트 또는 권위주의 독재 체제를 거쳐 오면서 신민만을 양산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사회적 자본이 극심하게 고갈된 상태에서 갑자기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놓이게 되었다. 시민적 공동체의 전통이 견고한 곳에서도 신자유주의의 침탈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신민들이었던 사람들이 이기적 개인이 되어 버림으로써 신민상황에서 유지되던 봉건적 공동체마저 완전히 파괴되고 사회는 완전히 파편화 되고 만 것이다.

 

시민공동체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이 상황에서 과연 자유주의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을까? (p. 199)

 

Ü 거의 전 부문에서 수직적 사회구조가 만연한 한국이라는 커뮤니티가 처한 사회적 문제는 파편화된 개인의 공이 크다 하겠다. 기형적이고 열광적이고 무개념의 자본주의의 사회적 병폐는 이 나라에서 깊이 탐구할 만하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적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이윤의 극대화와 축적은 자본주의 성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홉스봄)

 

서구에서 기존의 사회구조와 가치체계가 마모되고 해체되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위험 모두를 가져왔다. 서구는 근대적 시민공동체의 구축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신민적 의식과 구조를 전 사회에 뿌리박아둔 파시스트적 잔재의 청산이다. (p. 200)

 

공화주의에 대하여

□ 자유는 우선 외부로부터의 속박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p. 201)

 

Ü 자유를 갈구했던 인간, 장자의 자유, 카잔차키스의 자유, 니체의 자유, 마르크스의 자유, 구본형의 자유그리고 나의 자유.

 

~로부터의 자유를 넘어서 ~에 대한 자유를 가질 때에야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자기자신의 지배자이고자 하는 개인의 바람으로부터 자유는 나온다. 적극적 자유는 문자 그대로 적극적인 자기 지배이자 의사결정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Ü마르크스는 역사의 본질을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연의 왕국에 속해 있으므로 자연의 왕국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신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곧 인간이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의 노리개에서 벗어나 그 힘들과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이다.’ (벌린)

 

자유가 현실성 현실적으로 실현된 이념- 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p. 94)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아 자신을 지배하는 것.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필요하다.

 

주관적 자유가 외부의 제약과 어떻게 관련을 맺을 것인가? (p. 201)

 

□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보수 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민주 세력에 의해 버려진 것이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이처럼 철저한 왜곡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한탄처럼 한국에서 진정한 리버럴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p. 202)

 

Ü 내가 아는 몇몇의 리버럴 중에 고종석이 포함된다. 나는 리버럴일까? 좌파적 자기 검열이 빈약한 걸로 봤을 때 좌파에 명함을 내밀긴 힘들다 하겠다. 비록 임노동자 입장에서 세계를 놓고 계급화된 사회를 씹어대는 걸로 봐선 좌파에 발 한 짝 걸쳐놓았다 한들 말이다.

 

□ 개인의 자유가 실현되려면 무엇보다도 적극적 의미의 자유가 요구되며 이때의 개인은 자기 이익 중심의 시민이 아닌 공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공동체는 정치적 제도를 통한 이들 개인의 자유의 실현으로까지 그 임무의 범위를 넓혀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그것은 이미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거니와 그때에 대두되는 이념은 공화주의다. (p. 203)

 

공화주의는 민주주의가 일련의 절차적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제대로 작동하고 발전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그 의미가 발생한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한 사회의 시민의 성격, 시민의 질적 내용, 민주주의와 사회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태도와 깊이 관련된다공화주의는 공공선에 대한 헌신, 공적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모든 시민이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시민권의 원리, 시민적 덕에 대한 강조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p. 203)

 

Ü 민주주의가 공공선에 도달하지 못할 때 공화주의가 이를 이어준다.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하고 있는데 도대체 공공선을 추구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자본가 헤게모니를 위한 위원회로 전락했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 영주들의 지배 아래에서는 피억압자 신분이었고, 꼬뮌에서는 무장한 자치 연합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적인 도시 공화국이었고, 다른 곳에서는 군주국의 납세 의무를 지닌 제3신분이었으며, 그 다음에 매뉴팩처 시기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평형추였으며, 대군주국 일반의 주요한 토대였다가 마침내 대공업과 세계 시장이 갖추어진 이래로는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인간의 삶은 주관적 개인과 사회적 공인, 모두에 걸쳐 있다. 따라서 완성된 삶은 어느 하나도 소홀함 없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본질이 자유라면 그 본질의 실현은 소극적, 적극적 자유 모두가 완성될 때에만 가능할 것이며 이때 후자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공화주의에 대한 고려는 항상 대두되는 것이라 하겠거니와, 이는 헌법 1조가 천명하고 있는 한국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연관에 놓인 과제라 할 수 있다. (p. 207)

 

Ü 스승이 자신을 넘어서라 했을 때는 공화주의적 개념이었을 것. 내자유가 궁극적인 실현을 맛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배하는 소극적 자유 너머에 현실 정치를 바꿔야만 하는 과제가 숨어 있다. 공적 자아 말이다.

 

5. 전쟁

 

전쟁, 잔인한 교사

□ 한국전쟁에 가담한 군인들의 평균 나이가 17, 그렇다면 한국전쟁은 10대들의 전쟁이었던 셈. (p. 211)

 

도대체 전쟁은 뭘까?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이의 실존은 이것에 비끄러매여 있다. 투기디데스는 전쟁이 인정사정 없는 잔인한 교사라 말한다. (p. 212)

 

Ü 내 부모가 그렇고 내 부모의 부모가 그렇다. 그들 모두는 전쟁의 상흔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으며 나 또한 그 상흔의 일부를 몸으로 배워가며 자라났다. 어찌 지금 우리는 전쟁 밖에 살고 있다 할 수 있는가. 전쟁을 똑바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턱대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들의 가장 훌륭한 도구가 그때를 기억하자인데 알고 보면 그들의 그 기억들은 대부분 왜곡되어 있지 않은가. 제대로 봐야 한다.

 

□ 클라우제비츠 전쟁은 정치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도구이고 정치적 교류의 연속이며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적 교류의 실행이다. (p. 214)

 

Ü 이건 개소리다. 어찌 전쟁이 정치인가. 정치인이 나서지 않는 전쟁인데 말이다. 정치가 끝나는 곳에 전쟁이 있는 것이다. 전쟁하는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격을 스스로 상실한 것이다.

 

개인수준의 자기 생존의 추구와 타인 살해의 시도는 사회 수준에서는 절멸주의로 연결된다. 폭력의 증가는 가공한 학살로 나타났고 사태가 역전되었을 때는 다시 끔찍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피의 보복이 진행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폭력의 악순환이었다.’

 

폭력은 가장 직접적인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은 전염되고 유전된다. 한국민족의 민족애는 남북간에서도 남남 간에서도 철저하게 와해되었다. 같은 민족이라 해도 증오의 대상인 족속들이 북쪽에 살고 있으며 6.25 때 미처 제거해버리지 못한 공식적으로 처치해버릴 수 있었을 원수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버린 것이다. 말로는 민족주의를 내세우지만 지방 갈등과 타인 증오가 끈질기게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제 한국에 민족은 없다. (p. 219)

 

Ü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는 이 이야기가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재미있었지만 잔인했던 기억이 난다. 그 잔인함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더 잔인하다.

 

한국은 취약한 정치력과 군사력, 경제력을 전쟁으로 인해 각종 원조로부터 강화되었고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하위체계로 편입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전선기자에 대하여

평화란 힘센 놈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었다. 이것은 폭력의 원천을 묻지 않는 비폭력주의가 가진 허구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 폭력으로써 평화를 짓밟은 이들이 폭력을 버리지 않는 한, 대항폭력을 행하는 이들에게 비폭력을 강요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다. (p. 230)

 

Ü TV를 보며 이라크 시민들이 죽어나가거나 세르비아 내전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비폭력을 운운하는 개자식들은 제 어미나 제 자식이 죽어가는 앞에서 그들에게 눈길 조차 건넬 수 없는 그 상황을 만들어낸 자들과 같다.

 

중립이란 말은 백인, 기독교, 자본주의, 서양중심주의로 무장한 국제 주류언론들이 떠받드는 신줏단지였다. 그 이들은 그 단지 밑에 숨어 자본을 증식해왔을 뿐이다. 그런 국제 주류언론들 입장에서 벗어나면 지금까지 어김없이 중립성 논란이 일었고 그 당사자는 몰매를 맞았다. (P. 230)

 

Ü 중립, 개나 줘라. 나는 교양 없이 편협하고 편향적이고 편파적이다. 어쩔 텐가.

 

□ 테러리스트는 미국에 해로운 행위를 하는 개인, 집단, 국가이다. 어떤 집단이 사악한 짓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P. 231)

 

Ü 더러운

 

탈레반을 쫓아내겠다고 나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어떤가? 애초에 탈레반은 미국이 창조해낸 부패한 작품일 뿐이다. 미 중앙정보국이 불법 이란 혼란 조성용 자금가운데 일부를 파키스탄 정보국을 거쳐 물라 오마르에게 지급함으로써 탈레반이 태어났다그리고 미국의 이슬람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뒷돈을 대고 파키스탄 병참기지 노릇을 하면서 탈레반을 키워냈다.” 그래놓고도 유에스는 쓸모가 없어진 탈레반을 폭격으로 갈아 치웠다. “남은 것은 외세가 득실거리는 아프가니스탄 뿐”.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한반도 통일이라는 주제를 놓고도 ‘6자 회담을 해야 하는 형편 아닌가. (P. 232)

 

Ü 그랬던 거였구나그랬어

 

6. 한국과 동아시아

 

조선 사회의 유교적 변환

□ 제사와 상속, 세습 재산은 제례 행위를 지원하는 수단이었고 장자에게 모두 제사의 의무와 세습 재산의 상속 권리가 이양되게 된다. 여성은 이러한 단계에서 점점 경제적 지위를 상실한다. (P. 240)

 

Ü 아빠 : 세현아 왜 딸꾹질 해?

세현 : 개구리가 들어있어

아빠 : 어디?

세현 : 여기 (입안을 가리킨다)

아빠 : 그럼 개구리 나오게 해야지

세현 : 가짜야 ㅋㅋㅋ

아빠, 세현 : 하하하

(2013 4, 집에서 세현이와의 대화)

 

주희의 커리큘럼과 조선의 官學

19세기 중국과 조선은 서구라고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만난다. 이제 이들과의 대화가 시도되어야 했다. 지금까지 이 상황에 대해 오늘날의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왔다. 중국과 일본이 그 도전에 그렇게 다르게 반응한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중국은 그렇게 느렸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13~14세기까지 그렇게 찬란하게 발달했던 문명이 그 이후 그렇게 서구에 못 미치게 추락했고 뒤진 것을 만회하는 데 그런 엄청난 문제들에 직면 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내재하는 것은 동아시아는 서구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견해였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거꾸로 질문을 내놓는다. 왜 서구는 동아시아의 유가의 품위 있는 행위에 부합할 수 없었는가? 왜 서구는 세계 도처에서 칼자국을 내 타국을 괴롭히기보다 중국과 일본 및 한국이 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 자신의 집단을 정돈하고 모국에 머무르는 그런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는가? (p. 249)

 

Ü 이것은 통찰이다. 흔히 우리가 던졌던 질문의 방식이 우리도 모르게 비뚤어져 있었는지 잘 알 수 있게 한다.

 

논어를 둘러싼 계면쩍은 장면

□ 논어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내려면 먼저 논어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수행하여 그것을 기초로 논어가 가질 수 있었던 보편적 의미를 해명하는 철학적 작업을 진행한 뒤, 다시 또 현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시도하여 현대의 철학적 의미를 드러낸 뒤, 양자의 역사철학적 성과를 대조 비교할 때에야 가능할 것이다. (p. 257)

 

Ü 그리하여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 도대체 한국인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p. 266)

 

Ü 이것 참한국인이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국 현대사의 공포

□ 한두 번 두려워해서는 공포가 내재화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 공포를 심어 놓으려면 엄청난 살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p. 272)

 

Ü 상상하라. 그 살육을

 

□ 한 마을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 속으로는 저 자가 내 할아버지를 죽인 자임을 알고 있고 저 자의 할아버지를 내 할아버지가 죽였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p. 274)

 

Ü 그 잔인함을

 

친일 수구 세력이 온갖 짓을 다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의 진상이다. (p. 275)

 

Ü 옳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과 그들이 말하는 애국심은 실은 자신의 가계와 자신들의 계급을 위한 일이다. 계급이라 언급하는 것이 거북할 수 도 있겠으나 그들은 엄연히 이 나라 대다수가 속한 노동 대중의 계급과 극명하게 차별되는 계급에 있으면서 여전히 헤게모니를 누리고 있다. 그들에게 두려움은 체제의 전복이며 과거 부의 집적 과정에서 벌였던 잔혹한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무엇하는가? 일어나라.

 

해방공간의 시대정신

□ 딱 한 줄이면 끝날 주장을 펼치기 위해 더러는 짜증스러운 어투로 더러는 훈계조의 명령들로 더러는 고상한 말씨로 원고지 10여 매를 채우는, 세월 지나면 무게로 달려서 폐지가 될 화끈한 논객들의 글보다 강준만의 글은 소장가치가 있다. (p. 277)

 

□ 해방공간의 기반은 식민지적 착취라고 하는 경제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해방공간의 시대정신은 민족/반민족도 좌//중간도 아닌 식민지적 착취에 기반을 둔 지배/피지배 관계의 완전 해소라고 할 수 있겠다. (p. 280)

 

Ü 멋진 통찰이다.

 

□ 유에스 점령정책의 핵심 원리는 반혁명주의와 반공주의이며 이를 실현하는 방안은 낡은 질서의 유지다. 미군정은 일제의 잔인하고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를 가능케 했던 경찰의 지배력에 주목하고 그것을 적극 활용한다. (p. 282)

 

Ü 여전히 그들은 근본 없는 개아들이다.

 

□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키고 유지시킨 대한민국 역사 그 자체라고 하는 말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넘는 역사에 대한 총평이라고 정리한다. (강준만)

여운형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자

질문 : 인민공화국은 빨갱이라 할 수 있습니까?

대답 : 웃을 수 밖에 없군요. 일제로부터 해방된 민주조선을 건설하는 데 조선에 빨갱이가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 대중을 위하는 것이 공산주의라면 나는 공산주의자며 우익이 반동적이고 억압적으로 나오면 공산주의 혁명을 가속시킬 뿐이오. 나는 공산주의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극좌 이론에 동조하지도 않습니다. 인민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은 소학교 1년생의 애들이 욕지거리하는 것처럼 유치한 짓입니다흩어지면 망할 것이오. 뭉치면 살 것입니다결정은 인민이 내리는 것입니다. (p. 284)

 

Ü 자신이 인민들 위에 서서 무언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의 유치함을 알 것인가. 그 유아적 열정이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사로잡히는 대중이 어리석은 것. 인류가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온 거대한 세월을 그들에 모조리 갔다 받칠 셈인가.

 

3. ‘니 주제를 알라(내가 저자라면)

 

어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모든 걸 삼키는 일상에 흔히 묻히고 만다. 이 시대, 그리고 인간으로 살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교양 없는 사람이라 한다. 상식적인 것을 아는 것, 그것은 수학의 공식, 영어의 단어, 알 수도 없는 영어 약자를 아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시공간의 지금과 여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 환경의 제약이 자신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 지에 대한 자각, 그것이 우리가 가진 어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첫 고비일 터.

 

책은 잊고 있던 주제파악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이 시대에 때묻지 않은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저자는 책으로 만났건 실제로 만나 교감을 나누었건 간에 내가 아는 교양 있는 몇 안 되는 인류 중에 하나다. 그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그가 이 책에서 꺼내 놓았던 여러 책에 대한 주제를 다시 곱씹어 읽어 볼 생각이다. 우선 나는 그가 말한 이 세상의 중 한 권을 읽어 보려 사 두었다.

 

내 주제를 아는 것, 내 문제를 스스로 풀 줄 아는 것, 나의 오지로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나 자신을 알게 되면 인류를 알게 될 터이고 인류를 알게 되면 신을 만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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