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뎀뵤
  • 조회 수 2177
  • 댓글 수 18
  • 추천 수 0
2013년 7월 11일 08시 50분 등록

나는 저녁 9시 42분을 좋아한다. 달리다 쉬다 하면서 동네 공원 앞 운동장을 15바퀴 돌고, 줄넘기를 300번 하고, 공원에 줄줄이 놓인 운동기구를 사용법에 맞춰 하고 나서, 공원 옆 놀이터 그네에 올라 앉는 시간이다.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그네에 시동을 건다. 점점 높이 올라가던 그네는 다리 운동을 멈추는 순간 올라가던 속도를 멈춘다. 나를 철봉 높이까지 밀어 올리던 그네가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갈 때쯤 나는 다시 다리를 접었다 편다. 오늘은 이제 그만! 내가 그네에서 내려오고 싶을 때까지 이 시간은 계속 된다.

 
두 달 째,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쏙쏙 들어가는 뱃살이 주는 뿌듯함도 아니요, 피곤해서 골아 떨어지는 단잠도 아니다. 바로 운동의 마지막 단계인 그네타기 때문이다. 미끄럼틀 위의 풍향계가 가리키는 바람의 방향과는 상관 없이 그네의 오르락 내리락에 따라 바람이 느껴진다. 아주 오랜 기억을 더듬어 동요를 흥얼거려본다.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도 배웠다. 내 그네 옆 자리에는 매일 다른 사람이 앉는다.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첫 날 만난 친구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탄 그네 높이만큼 올라가려고 속도를 조절했다. 우리는 같은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같은 속도로 내려왔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둘 다 신나게 웃었다. 어제 만난 친구는 자기가 그네를 서서 탈 수 있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다. 그 친구가 그네 위에 꼿꼿이 올라 섰을 때 위험하다고 그네는 앉아서 타야 한다고 충고하고 싶었지만 손 꼭 잡아야 해. 라며 웃고 말았다.


이 시간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네타기는 내가 하루에 하는 일 중에 유일하게 내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제 그만!을 외칠 때까지 계속 해도 된다. 어느 날 되돌아 보니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시간과 공간 또 사람들의 시선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온통 잘못만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껏 살아보지 못하는 걸까.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하루라는 시간이 다 흘러가는데도 무엇 하나 내 마음껏 해 본 게 없다는 자각은 나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그리고 그네타기는 그 깊은 슬픔에서 나를 건져내 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작은 시간이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이 하나를 나에게 허락하고 나면 하지 말라고 나를 옭아매는 일들 열 가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하루에 하는 수 십, 수 만가지 중 단 하나라도 내 마음껏 해 볼 수 있다는 단순함이 주는 충만함이다.


하루에 하는 일 중 한가지는 내가 하기 싫을 때까지 해 보자는 이 결심, 실천하기에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좀 특별한 시간, 준비된 상황에서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이 취미, 어쩌면 나는 오래 전부터 즐겨왔다. 나는 욕실에서 딱딱한 비누를 손에 넣고 돌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손을 씻으러 갈 때면 오랫동안 비누를 손 안에서 돌리면서 녹인다. 지금은 5살이 된 조카가 3살이었을 때, 그 아이의 손을 씻겨준 적이 있다. 잡으려고 하면 자꾸 미끄러져 도망가는 비누가 재밌고 신기해서 욕실이 떠나가도록 까르륵거렸다. 비누를 손에 넣고 돌릴 때마다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이 좋아서 내 얼굴에서 빙긋 웃음이 사라질 때까지 비누를 손에서 돌려본다. 내가 욕실에서 비누 거품을 손에 가득 묻히고 있을 때 그 누구도 나를 찾은 적이 없다. 나를 즐겁게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러니 내가 맘껏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때는 마냥 그 시간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보다도 뭔가를 내 마음껏 즐겨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 더 나를 위로 해 준 것 같다.

 
누구에게나 이런 작은 순간들이 있으리라. 하루에 과연 몇 가지 행동을 할까? 그 중에 딱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오랫동안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일을 선택하고 싶을까? 한 순간이라도 나에게 기쁨이었던 순간, 그 시간들을 늘려보는 거다. 아무도 나의 즐거움을 방해할 수 없는 일과 시간을 찾아내어 맘껏 할 수 있도록 나에게 허락하는 일, 해 보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근사한 시간이 된다. 책 읽을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운동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우리의 하루에서 기쁨이 모조리 사라질 수는 없다. 아주 작은 기쁨, 내 마음껏 해 볼 수 있는 한가지를 찾아 즐기는 것만으로도 내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그 시간을 허락하자. 걱정하지 말아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려운 만큼 형편 없는 사람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니까.


아 참, 내가 두 달 내내 하루도 빠짐 없이 운동을 했다고 상상하지는 마시라. 저녁 약속 있는 날 빼고, 비 오는 날 빼고, 야구가 연장 12회까지 꽉꽉 채워서 너무 늦게 끝나는 날 빼고. 괜히 귀찮은 날 빼고. 그리고 하루도 빠짐 없이 했을 뿐이다. 이 취미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하기 싫은 날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

 

IP *.169.218.58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09:43:07 *.244.220.254

역시 미영이는 일상의 순간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능력이 탁월하구나~ 역시 혼자놀기의 달인! ^^*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23:13:28 *.169.218.58

므하하하하하 요즘 이러고 다니느라 무쟈게 바빠요. ㅋㅋㅋㅋㅋ ;;;

돈이 안 되는 것이 쵸큼 그렇지만~ ㅎ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09:57:54 *.46.178.46

역시..... 

선배의 일상 들여다보기, 재미 있습니다.

저랑 비슷하기도 하고요

 

^_______________________^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23:29:33 *.169.218.58

나는,,, 오빠랑 비슷하다는 말이 왜 이렇게 좋죠? ㅋㅋㅋㅋㅋ

나도 조금은 내향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줘서 고마워요. ^-^

열심히 오빠 따라해 봐야지~ ㅎ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11:42:42 *.50.146.190

강.미.영. 요 녀석!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23:45:15 *.169.218.58

아하하하 막 고기 땡기죠~ ^^ ㅋㅋ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13:21:01 *.216.38.13

묭! 놀기 시리즈 칼럼, 기대 만빵!

프로필 이미지
2013.07.12 00:12:27 *.169.218.58

어케바뤼! ^^ ㅋㅋㅋㅋㅋ

일단 출발은 했는데, 어디로 갈진 나도 모르겠넹. ㅎ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13:22:45 *.91.142.58

완죤 잼있게 있었습니다.

일상의 활력이 되어 주는 글이네요.

 

특히 마지막 문장 무~~~지 맘에 들어용 ^^*

" 이 취미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하기 싫은 날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 

 

미영님의 글을 항상 기다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3.07.12 00:30:41 *.169.218.58

아하하. 역시 지니언니!!! ^^

언니 저 띄엄띄엄 사는 사람이라서,,,

제 글을 기다리다가는 언니가 지칠지 몰라요. ㅎㅎㅎ

그래도 열심히 달려 볼께요. ;;;

자주 만나요~ 여기서! ^^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13:35:17 *.131.45.203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그네!

하루에 한가지씩 내가 하기 싫을때까지 해보기, 요즘 아이들에게 더욱, 꼭! 필요한 사항인듯. 

프로필 이미지
2013.07.12 00:32:59 *.169.218.58

언니,,, 저 어른들을 위한 놀이 쓸꺼예요. ^^;;;

아이들 말고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이야기 해 주세요. ㅎㅎㅎ

그나저나 언니는 왜 그네를 무서워해요? 전혀 의외~

왠지 언니는 널뛰기, 그네타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잘 할 것 같은 이 막무가내 느낌은 뭐임? ㅎㅎㅎ

프로필 이미지
2013.07.12 11:53:39 *.131.45.203

어젯밤에 뎀뵤를 위해 그네 사연 써야지 하고 앉았는데

 옛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라 한 줄도 못쓰고 머리 싸매고 잠.ㅎ

프로필 이미지
2013.07.12 16:54:06 *.11.178.163

언니,,,

그르지 말고 그냥 오늘 저녁 살롱에서 만나서 이야기 해요. ㅋㅋㅋㅋㅋ

난 이래저래 사람 잠 못자게 만드는 캐릭터. ㅎㅎㅎㅎㅎ 아놔! ㅋ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16:22:50 *.43.131.14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도 하루 중 마음껏 하고 싶어하는 게 한 가지씩은 있어요.

수채구멍 들여다보기, 교회 첨탑 그리기, 열린 문들 다 닫기, 비누칠하기.....

저는 반경 1미터 안에 화분 놓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즐기기^^ 

 

프로필 이미지
2013.07.12 00:53:10 *.169.218.58

엄마낫! ^^ 언니 이렇게 좋은 사례들을 막 얹어줘도 되는거예요? ㅋ

연구원 칼럼에 올린 보람을 마구마구 느끼게 되잖아요! ㅎㅎㅎ

이 원고 고쳐서 책으로 엮게 되면 언니가 알려준 것들 중에 하나를 추가해야지! ^^

언니,

언니가 화분에 선풍기 돌려 줄 만큼 식물들을 사랑한다는 거, 이제서야 안거 있죠.

반성하고,,, 앞으로 글 열심히 읽겠슴미당! ^^

 

프로필 이미지
2013.07.11 16:44:56 *.249.254.12

네 글 처음 읽어본다.

느낌이 좋다. 일관되게 끄는 힘이 있다.

'혼자 놀기'라는 말이 낯설었는데 감이 확 온다.

고맙다. msn039.gif

 

프로필 이미지
2013.07.12 01:02:08 *.169.218.58

오빠 쫌 그래!

어쩜 내 글을 이제서야 본담?

관심 좀 가져주세욧! 흥!!!!!

앞으로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꺼예요! ㅎㅎㅎㅎㅎ

- 선플에 악플다는 게시자 씀 ㅋ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72 발레를 할때면 나는 자유 그 자체입니다. file [8] 오미경 2013.07.15 3562
3571 평범함이 죄악인가 ? [4] jeiwai 2013.07.15 2209
3570 그땐 울어도 될 것 같구나 [7] 유형선 2013.07.15 1859
3569 #11. 작가는 왜 일찍 죽는가? [5] 쭌영 2013.07.15 2740
3568 Climbing - 15. 아날로그에 취하다 [2] 書元 2013.07.15 1967
3567 #11.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 2.0 : 창조적 전문가들의 집단을 꿈꾸다 [7] 땟쑤나무 2013.07.14 2219
3566 [날팸]#1 상상 - 들어가는 글 [8] 땟쑤나무 2013.07.11 1961
3565 퐁네프다리 위에 서서 [8] 효인 2013.07.11 2772
3564 자연과의 교감, 자신만의 이야기 갖기 [11] 정야 2013.07.11 2336
3563 결혼식 후 백일 즈음 [15] 콩두 2013.07.11 2437
» 맘껏 하고 싶은 한가지 [18] 뎀뵤 2013.07.11 2177
3561 [날팸] 개인영업, 딜레마에 빠지다 - 괴물이 출현하다 [15] 거암 2013.07.10 2172
3560 발칙한 인사1. 회사에 규정이 없다면? [11] 강훈 2013.07.10 2264
3559 (No.3-2) 역사기록-참을 수 없는 존재의 먹먹함-9기 서은경 [3] 서은경 2013.07.08 2300
3558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무지 [2] 오미경 2013.07.08 2043
3557 인생의 화두 [4] 유형선 2013.07.08 2257
3556 #10. 대수지몽 [17] 땟쑤나무 2013.07.08 1989
3555 바람도 소망도 없는 [4] jeiwai 2013.07.08 2296
3554 Climbing - 14. 앨리스 이상한 나라에 가다 [2] 書元 2013.07.08 2040
3553 [7월 2주차] 역사가 주는 메시지 그리고 태몽_박진희 file [12] 라비나비 2013.07.08 2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