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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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연에서의 이름은 ‘뽕공’이다. 뽕나무에서 나온 공주라는 뜻이다. 나는 천상의 공주였다. 공주는 지상에 내려와 뽕나무 밭을 쏘다니며 놀기를 좋아했다. 초록빛 넓은 잎사귀가 너풀대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보랏빛 열매가 열리는 뽕나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공주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천상에서 옷감 짜는 하얀 벌레를 훔쳐와 뽕나무 밭에 풀어놓았다. 천상에서 입는 비단옷을 인간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천상의 규율을 어기는 일이었다. 그리스신화에 인간을 사랑해 하늘의 불을 훔쳐와 이롭게 한 프로메테우스가 있다면 여기에 그녀가 있었다. 지상에서 짠 비단옷감은 천상의 것보다 훨씬 고왔고 인간은 선녀처럼 아름다워졌다. 그런데 세상을 내려다 보던 천상의 왕은 인간들이 비단옷을 입은 것을 보고 크게 노했다. 공주가 저지른 일임이 발각되어 천상의 공주는 벌을 받아 뽕나무 안에 갇혀 살게 되었다. 천 년이 지난 어느 날, 천상의 공주는 그녀가 좋아한 인간으로 태어났다.
이것이 내가 만든 나의 신화이다. 말이 좋아 신화이지 그리스신화를 패러디 한 나만의 이야기이다. 나는 자원봉사로 집단상담과 숲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만난다. 이 이야기로 나를 소개한다. 아이들은 귀가 솔깃하여 듣다가 그 공주가 나라면 이내 피식 웃는다. 신화가 그렇듯이 나의 신화도 대상에 따라 조심씩 달라진다. 유치원생을 만나면 못된 할머니가 등장하여 벌레를 가져오게 하고, 청소년을 만나면 뽕밭에서 일하던 젊은이를 사랑하는 로맨스가 더해진다.
나는 아이들이 자연을 상징으로 하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자연에 자기 이야기를 더함으로써 더 친밀하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 바람이든 바위든 나비든 아무거나 좋다. 자연은 사람만큼이나 변덕스럽고 불완전하다. 유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특히 변화무쌍한 아이들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이고,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이다.
우리집 작은 딸 수영이는 매우 소심하다. 낯선 사람 앞에선 머리가 자동으로 숙여지고 목소리는 입만 벙긋거릴 뿐 나오지 않는다. 친구들한테도 치이기 일쑤다. 나는 수영이를 ‘햇살’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어려서 햇살이지만 언니가 되면 해님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태양이 될 거라고 말해준다. 햇살의 유용함은 좀 많은가? 상황마다 햇살에 수영이를 투영하여 갖가지 이야기를 들여준다. 수영이는 햇살을 이야기하면 활짝 웃고 햇살에 나가 앉아있기를 좋아한다. 나는 수영이가 햇살과 교감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햇살 수영이가 자라면서 태양처럼 정열적인 아이가 되리라 믿는다. 나는 아이들이 자연에 교감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줄 작정이다. ★
특징없는 수영이의 태몽도 태양이야기로 바꾸어 들려주었습니다.
"네가 엄마 뱃속에 생길 즈음 신기한 꿈을 꾸었어.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방문이 환~한거야. 문을 열고 나가니까 커~다란 벌~~건 해가 중천에 떠있는 거야. 놀라서 '아이쿠야, 아침이 늦었다.' 싶어 얼른 부엌으로 가는데 이웃 할머니가 들어오면서 '오늘따라 해가 유난히 크네'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잠을 깼지.
외할머니가 그러시는데 태양은 남자를 나타낸대. 그런데 태몽에 여자가 나오면 딸이란다. 낳아보니 진짜 딸인거야. 넌 남자로 태어날 수있었는데 그 할머니 때문에 여자가 된거야. 너는 분면 씩씩하게 세상을 빛내는 사람이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