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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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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6일 07시 39분 등록

1970년대 후반 법정 스님은 전남 순천의 조계산 중턱에 ‘불일암(佛日庵)’을 지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스님은 암자와 그 둘레를 직접 가꾸고 다듬었고, 언젠가부터 자신의 거처를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면 말 그대로 ‘물 흐르고 꽃 피는 곳’이라 부를 만큼 아름답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은 <텅 빈 충만>에서 당신의 거처에 붙인 ‘수류화개’라 문구를 중국 송대의 시인이자 서예가 황산곡(黃山谷)의 시에서 따왔다고 말합니다. 황산곡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구만리 푸른 하늘에 (萬里靑天)

  구름 일고 비 내리네 (雲起雨來)

  빈 산에 사람 그림자 없이 (空山無人)

  물 흐르고 꽃이 피더라 (水流花開)

 

법정 스님은 “‘수류화개실’이란 내 거처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스님 성격의 일단과 마음이 무엇에 끌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몇 자 안 되는 글귀에 푸른 하늘과 구름과 비, 산과 사람과 물과 꽃이 들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직선적인 성미에 맞는 글이다. 황산곡의 서체처럼 활달하고 기상이 있는 내용이다.”

 

어느 날 한 젊은이와 찾아와 스님에게 ‘수류화개실’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네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라고 답했습니다. 스님 책을 읽고 궁금해서 물었을 청년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텅 빈 충만>을 읽으며 ‘수류화개’에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는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이 ‘물 흐르고 꽃 피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말합니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곳이 어디이겠는가? 물론 산에는 꽃이 피고 물이 흐른다. 그러나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곳이 굳이 산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설사 도시의 시멘트 상자 속 같은 아파트일지라도 살 줄 아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삶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그 둘레에는 늘 살아 있는 맑은 물이 흐를 것이다.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에 종사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건 간에 자기 삶 속에 꽃을 피우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 사는 일이 무료하고 지겹고 시들해지고 만다.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두고 딴 데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뿐.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지금 바로 그 자리가 자기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자기답게 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남이 아닌 내 안에서 물이 흐르고 꽃을 피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 나름의 눈빛과 목소리와 성격과 특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 눈빛과 목소리와 성격과 특성대로 살라는 뜻”입니다. 스님은 말합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 막히지 않고 팍팍하지 않으며 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곳에 고이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게 마련이다. 강물처럼 어디에고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꽃이 피어나는 것은 생명의 신비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성과 잠재력이 꽃으로 피어남으로써 그 빛깔과 향기와 모양이 둘레를 환하게 비춘다. 그 꽃은 자신이 지닌 특성대로 피어나야 한다. 만약 모란이 장미꽃을 닮으려고 하거나 매화가 벚꽃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란과 매화의 비극일 뿐 아니라 둘레에 꼴불견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여기서 자기 자신의 길을 찾고 만들어가는 사람의 삶에 맑은 물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핀다는 가르침입니다. 법정 스님은 1986년에 쓴 글에서 자신의 거처와 그 둘레에 꽃이 피고 물이 흐르게 하고, 자신의 내면, 즉 “속뜰에도 꽃이 피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나 또한 남이 아닌 나답게 살며, ‘훗날 저기’가 아닌 ‘지금 여기’를 삶의 바탕으로 삼겠다고 다짐합니다.

 

20130708-1.jpg 

법정 저, 텅 빈 충만, 샘터, 2001년 10월

 

* 알림 : 저자 강연회 <문요한의 인생고민 상담소>

마음의 이해를 넘어 마음의 훈련을 통해 사람들을 도전과 성장으로 이끌어오고 있는 정신과 의사 문요한의 인생고민 상담소가 7월 17일 저녁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열립니다.

 

‘인생의 맷집을 키워라’라는 주제로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생의 맷집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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