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다으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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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다듬어지지 않은 글솜씨로 고수들의 장에 얼굴을 들이밀기가 무척이나 쑥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듬어지고 빛나는 보석이 없는 것처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으로 용기를 내 보렵니다.
일단 평생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짐인 숙제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 못이겨, 저의 인생2막을 열어간 10대풍광을 다듬지 않은 초벌 그대로 올려봅니다.
머쓱하기만 했던 출발이었지만, 신 맛 나는 레몬 주스(?)와 함께 시작된 2박 3일의 여정 속에서 구본형 선생님을 모시고 구구이삼(9923-구본형과 아홉명의 아이들, 23기)우리 동기들과 웃고 울면서 마무리한 그 추억은 나에게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좀 더 일찍 이 여행을 떠났더라면, 좀 더 일찍 이 벗들을 만났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부러움으로 2박3일 동안 꿈벗 동기들과 함께 했습니다.
MBTI 결과를 가지고 상담하던 가운데 평생 생각치도 못했던 저의 내면에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겪었던 그 사건으로 인해 제 인생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제 인생의 과정에 늘 올가미처럼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것 같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는 홀가분하게 털어버리고 갈 수 있어야겠죠. 이 또한 쉽지 않은 숙제가 되리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꿈벗 동기들과 사부님을 만나게 되어 마음 한편은 든든해졌습니다. 언제든지 제 닫혀있던 어두운 내면을 열어젖히고 속내를 털어놓게될 친구들이 생긴거라 믿습니다.
아무튼 서툴고 거칠지만 저희 구구이삼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숙제 제출했다는 점에 위로삼으며 저의 10대 풍광을 그려봅니다.
<나의 50대, 인생 2막><Rev.00>
1. 드디어 D-DAY. 아침부터 맑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눈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그 해의 첫눈이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던 아내와 잠시 춤추는 은빛 눈송이를 바라보며 동심에 젖었다. “맑은 하늘에 눈이 오면 길조라면서요? 게다가 올해 첫 눈이기두 한데, 우리 대박 나는 거 아녜요?”라며 아내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축하객들이 찾아왔다. 인생의 멘토이신 구본형 사부님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동기들 구구이삼의 멤버들이었다.
2. 공식 예약 손님 1호 가족이 입국하는 날이었다. 혹시나 빠트린 부분은 없는지 아내와 함께 숙소의 비품들을 확인하였다. 식단과 기타 준비내용은 아내에게 맡긴 뒤 공항으로 향했다. 약간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초겨울의 오후. 영종대교 양쪽으로 보이는 인천 앞바다의 수면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셨다. 준비된 안내판을 들고 잠시 출구 앞에서 기다리자 네 명의 가족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제일 먼저 안내판의 이름을 확인하고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이랏샤이마세, 요오코소”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계획이 실현되어 가는 순간이라는 생각에 하늘을 나는 듯 마음이 들떠 있었다.
3. 노모와 함께 2박3일로 방문했던 다카하시 가족이 귀국하던 날, 준비된 노모의 연필초상화를 액자에 넣어 전달했다. 혹시 맘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도 잠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이 벅차 올랐다. 한 달 뒤, 일본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날아들었다. 지난 달 다녀갔던 가족의 노모께서 별세하셨단다. 그 때 전해드린 초상화를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는 전언과 함께.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에 와서 보낸 추억과 함께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초상화를 선물해 드렸다는 사실에 늘 마음이 뿌듯하다.
4. 모처럼 아내도 들떠있었다. 몇 년만에 찾는 일본이지만, 감회가 남달랐다. 지난 여름 다녀간 시즈오카에 사는 다나카 씨 가족이 우리를 집으로 초청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일년만의 일이다. 다나카 씨 가족이 좋아하던 김을 한 꾸러미 사들고 아내와 함께 공항으로 나섰다. 시즈오카로 향하는 비행기 차창 밖으로 후지산의 눈부신 만년설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짧았던 서울 체류 기간 중 모든 것에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던 전형적인 일본인 가족이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돌아가면 꼭 한번 초대하겠노라고 했지만 인사치레로 넘겼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정말로 그 약속을 지키고자 여러 차례 메일과 전화로 연락을 했었다. 아내와도 몇 번을 망설이다가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었다. 이런 서로의 정을 확인하는 기회가 점점 더 늘어나고 가족들끼리의 교류가 활발해 진다면 멀게만 느껴졌던 한일간의 거리도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5. 그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했던 홈스테이 희망 가족 가운데 세 가족이 연말에 집으로 모였다. 다음달 일본 가족들을 맞을 준비도 서로 확인할 겸 송년회를 하기로 한 것이다. 두 가족은 이미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었고, 한 가족은 현재 일본회사의 한국법인에 근무하고 있었다. 모두들 처음 경험해보는 홈스테이에 사뭇 걱정반 기대반의 상기된 얼굴들이었지만,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새로운 손님을 맞는 들뜬 기분으로 알싸한 포도주의 향기와 함께 송년회의 밤은 깊어만 갔다.
6. 가족대상으로 소개할 만한 맛집과 역사적 장소, 놀이문화에 대한 정보까지 1년여에 걸친 D/B가 거의 완성되었다. 기존의 관광소개 책자나 안내서와의 차별화를 위해 직접 방문하여 확인한 내용을 위주로 작성하였다. 사진과 함께 간단한 느낌 코멘트에 이르기까지 아내의 노력이 컸다. 언제 그 많은 내용의 자료가 수집되었는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한 여름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구석구석을 헤맸던 기억,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자료집과 사진기가 젖지 않게 하려고 온 몸을 적셨던 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시린 손 호호 불며 붕어빵 한 조각에 언 손을 녹이던 날, 그 모든 힘들었던 기억이 비로소 언 눈 녹듯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7. 지난 1년 동안 홈스테이를 유치했던 가족들 8가족이 모여 단체로 일본을 방문하기로 했다.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아이들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창밖의 구름사이로 보이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중나와 있던 시미즈 씨 가족과 마츠오카 씨 가족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몇 달 전 서울에서 만났던 아이들은 어느 새 서로 다소 서툰 한국어와 일본어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이제 우리의 만남이 어른 세대를 거쳐 우리의 2세들에게 전달되어 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머지 않은 미래, 한일 양국간에는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우리세대에서 껄끄러웠던 문제가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고 순조롭게 타협되는 날이 올 것이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가 아닌 서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부르는 날이 올 것이다.
8. 그 날은 한국방송공사에서 취재를 나오기로 한 날이었다. 그 동안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 소개되었던 적은 있었지만, 공중매체를 타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PD와 카메라맨이 약속시간에 맞춰 찾아오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 다녀갔던 가족들의 사진과 함께 연필초상화가 걸린 거실 및 계단이 집중 소개되었다. 방송이 나가던 날, 한국의 홈스테이 가정으로부터 축하의 안부전화와 메일이 쇄도하였다. 그러다 화가로 데뷔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진심어린 격려도 쏟아졌다. 이제 시간을 내어 홀로 지내시는 독거노인들을 찾아 그 분들 살아계신 동안에 한 분이라도 더 즐거움을 드리는 실천을 옮기게 되었다.
9. 3년 만에 새로이 집을 지었다. 3가족이 동시에 묵을 수 있는 아담한 복층 구조의 양옥으로 지었다. 두 방에는 온돌의 느낌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고, 한국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도록 곳곳에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맨 먼저 다녀갔던 가족부부가 다시 첫 손님으로 방문하겠노라고 몇 번이고 연락이 있었고, 이미 그 달의 예약은 다 차 있었다.
10. 그 동안 한일 양국을 다녀간 가족들의 체험담과 수기를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한일 양국에서 동시 출간하기로 하였다. 제일 먼저 구본형 사부님께 보내드리는 한편 각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글과 함께 보냈다. 책장을 넘기며 각 가족의 초상화를 보며 그 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의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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