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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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은 일반인들이 대상이 아닌, 현장에서 영업하는 보험에이전트를 대상으로 쓰는 글입니다.
특히 보험에이전트가 VIP시장 공략을 위해 왜,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실무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날팸은 쓴다~
제1장 동면
제1절 개인영업, 딜레마에 빠지다.
밥 그리고 영원한 미성년자
퇴근길 지하철을 이용해서 귀가를 할 때면, 낯설지만 다양한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사람, 부족한 잠을 채우는 사람, 연인에 열중하는 사람…… 다양한 풍경들을 관찰 할 수 있지만, 역시 가장 많이 보이는 풍경은 녹초가 되어 피곤에 찌든 얼굴들이다. 가끔은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되뇌이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 그것은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다. 우리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지구라는 별에 왜 왔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소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치열한 것은 밥이라는 존재가 원래 치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먹는 모든 음식물은 원래 살아있던 존재들이다. 이 살아있는 존재를 죽여야만 먹을 수 있고,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 죽음을 통해 삶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밥은 치열하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일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작가가 쓴 밥에 대한 통찰을 보자.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이다. 돈과 밥 위에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직설적이면서도, 통찰적이다. 밥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에게 돌직구를 던지는 글을 본적이 없다. 이 글은 마초를 대표하는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씨가 아들에게 띄운 편지의 일부분이다. 그렇다. 밥의 존귀함을 모르는 사람은 영원한 미성년자이다. 우리는 밥을 찾기 위해서 항상 촉수를 곤두세워야 한다. 밥 앞에서 주접을 떨지 말아야 하고, 어리광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눈 앞에서 방카슈랑스라는 괴물에게 우리의 밥을 고스란히 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강탈당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밥에 대해 뼈 속 깊이 마음 속 깊은 곳에 각인해야 한다. 하지만 밥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지 말자. 지금의 시장상황을 한탄한다고 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열받는 마음을 추스리고, 냉정한 마음으로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동부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초원이 있다. 바로 끝없는 평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렝게티이다. 이 초원의 제왕은 단연 ‘사자’다. 사자의 하루 일과를 관찰해 보면, 대부분은 그냥 누워 있거나, 자고 있다. 만사가 느긋하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천하의 한량 사자들이 상당수 굶어 죽는 다는 사실이다. 용맹하게 싸우다 죽는 것이 아니라, 밥을 굶어서 죽는다고 한다. 사자는 보통 3일에 한 번 정도 사냥을 한다. 평균 사냥의 성공률은 10번 쫓으면 3번 정도만 성공한다. 그것도 단독 사냥이 아니라, 무리 사냥임에도 말이다. 만약 무리를 이뤄 협동사냥을 못하거나, 상처를 입는 경우는 그 날이 제삿날이다. 거듭된 사냥의 실패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태어난 새끼 사자가 어른 사자가 되는 확률도 30%에 불과하며, 우두머리 사자가 되는 비율은 3% 미만이다.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서 살고 있는 사자들은 생존률이 10%이하다. 천하의 사자도 매 사냥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비즈니스 세계는 맹수가 우글거리는 세렝게티 초원이다. 새로운 밥을 위해 항상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세렝게티 맹수들의 특징은 대부분의 시간을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사냥감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맹수들의 가장 우선하는 특징은 ‘끝임 없는 관찰(觀察)’이다. 서광원씨의 <사자도 굶어 죽는다>라는 책을 보면 관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관찰(觀察)의 어원을 분석해 보면,‘관(觀)’은 황새를 뜻하는 관(雚)에 견(見)이 합해진 글자다. 새를 가리키는 ‘추(隹)’ 위에 도가머리(++:새의 머리에 길고 더부룩하게 난 털)과 두 눈(ㅁㅁ)이 있다. 물새의 일종인 황새처럼 ‘예민하게 잘 본다’는 뜻이다. 여기에 빠짐없이 생각하여 살핀다는 ‘찰(察)’이 합해져 관찰(觀察)이 된다. 견(見)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보여지는 것을 보는 것이라면, ‘관찰’은 보는 것 이후를 염두에 두고 보는 것이다. 맹수들은 보는 것을 통해 새로운 사냥의 기회를 발견한다. 비즈니스라는 세렝게티 초원에서 맹수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의 현실을 관찰해야 한다. 그 현실 속에 함축되어 있는 밥의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험시장이라는 초원에서 맹수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존의 단초를 함께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