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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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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1일 23시 24분 등록
가슴뛰는 2박3일을 보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10대 풍광을 다듬고 완성했습니다.
다행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미쳤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만 흐흐
10대 풍광을 실현시키기 위해 앞으로 제가 할 일들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구본형 선생님이 계시고, 꿈벗들이 있기에
화이팅!입니다~

꿈벗 역사상 첫 2인분 참가자(임신 5개월)를 많이 배려해주신 선생님과 꿈벗 동기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10대 풍광 (2010년 9월)

1. 부암동 우리집

마당 한 쪽 구석 사과나무에 사과 알이 제법 튼실하게 열렸다. 작년에는 사과가 많이 열리지 않아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1년간 정성을 들인 덕이다. 아이들은 나란히 잔디밭에 나란히 엎드려 책을 보고 있다. 누나가 하는 것은 뭐든지 따라하는 둘째가 첫째는 영 성가신 모양이다. 읽지도 못하는 책을 거꾸로 들고 누나처럼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나, 그런 동생을 보며 기가 막힌 듯 웃지만 은근 챙겨 주는 모습이 참 귀엽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10여년 전 나만의 꿈 보드에 오려 붙여놨던, 성북동 어딘가에 있다는 살림의 귀재 ‘효재’씨의 집만큼 크고 좋은 집은 아니지만, 작은 잔디밭과 사과나무, 크고 작은 꽃나무들과 채소를 심어놓은 작은 텃밭이 있고, 천정이 높은 거실과 햇빛 잘 드는 서재까지 우리가 꿈꿔왔던 모습 그대로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온 날, 대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과나무였다. 이미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난 이미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작은 돌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서니 아무렇게나 방치된 작은 앞마당과 옛날식 이층집이 있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서 그 마당은 잔디밭으로, 구식 이층집은 아담하고 아늑한 우리 집으로 바뀌어있었다. 집 자체는 옛날 식으로 지어져서 거의 새로 짓다시피 해야 했지만 집의 크기라든지, 인왕산 중턱 쯤 잡은 위치라든지, 왼쪽으로는 자하문고개가 내려다보이고, 오른쪽 저 멀리에 빼꼼이 남산 타워가 보이는 경치는 환상 그 자체였다. 왼쪽편 어딘가에는 우리가 처음 부암동으로 이사를 오며 살았던, 첫 아이를 낳고, 부암동 이층집의 꿈을 키웠던 그 전셋집이 있겠지. 첫 아이는 그 전셋집에서 가졌고, 둘째는 지금 이 집에서 가졌다. 둘 다 부암동 새소리와 물소리로 태교를 했고, 부암동의 공기를 마시며 자랄 수 있었던 건 더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2. 내 책

책 3권을 썼다. ‘아이들 마음 키움 프로젝트’를 통해 떠났던 국내 여행들을 묶어서 낸 책이 나의 첫 책이었고, 마음 키움 프로젝트의 해외 여행 버전이 그 두 번째였다. 처음 국내 생태 여행의 기록들을 블로그에 남기고, 그 기억과 경험들을 몇 군데 칼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첫 책이 작은 성공을 거둔 뒤로는 글을 쓰고 공유하는 작업이 쉬어졌다. 칼럼을 써달라는 제안도 꽤 여러 군데서 들어왔는데, 조선일보에서 정기적으로 칼럼을 써달라고 제안해 왔을 때 거절했던 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래 한 푼이 궁하다’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 ‘이 칼럼을 계기로 더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라며 혼자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조선일보의 논조와 저는 맞지 않아서 칼럼 제안을 정중히 거절합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통장 잔고와 핏덩이 같은 아이가 눈에 밟혀 괜한 짓 했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건 잘 한 일인 것 같다.
세 번째 책은 큰 애와 다녀온 세계 여행에 대해서 쓴 가벼운 책이었는데,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이 서점에 많이 나와 있어서 걱정되기도 했지만 역시 큰 애를 전면에 내세우길 잘 한 것 같다. 반응이 괜찮았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은 건  엄마가 절대로 널 팔아서 돈을 벌고자 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흐흐. 지금은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진행했던 ‘엄마 고향은 말야’ 프로젝트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다. 내가 아이들의 마음 키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엄마 고향은 말야’ 프로젝트였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여행 후 달라진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과 소통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정말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 또 몇 권의 책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통해 나의 경험을 나누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풍요롭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3. 인터뷰 하는 내 모습

인테리어 생활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 2010년 10월호가 드디어 나왔다. 책을 받아들고 페이지를 펴는 순간 허걱! 아름다운 내 모습에 내가 다 반할 지경이었다. 뛰어난 포토샾 기술과 조명, 촬영 기술 만세! 아이들의 마음 키움 기획자라는 다소 엉뚱한 내 모습을 재미있게 담아낸 사진과 나의 소소한 일상과 일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풀어낸 글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긴 했지만 그 동안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날 인터뷰하러 온 기자 아가씨가 날 좋아하는 것 같더라니. 책을 들고 혼자 신나서 베시시 웃고 있으니 아이들이 이상한 얼굴로 쳐다본다. “짠~ 이게 엄마지롱~”하니 첫째는 “우와. 사진빨” 둘째는 “엄마 이쁘다~”한다. 아까 사온 맛있는 호두파이, 둘째만 몰래 한입 줘야겠다.


4. 내 가족과 함께 한 세계여행

큰 아이가 6살 되던 해 (아직 둘째는 없을 때) 신랑과 셋이서 6개월간 장기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의 체력을 고려해 이동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힘이 덜 드는 코스를 고려했다. 중국을 통해, 티베트, 네팔, 인도를 거쳐 중동을 갈까, 아프리카를 다녀올까, 남미를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첫 장기 여행은 남미로 정했다. 가기 전 아이와 남미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루트를 의논하던 일은 여행 그 자체 못지않게 가슴 벅찬 일이었다. 나름 책에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그런지 아이도 남미 여행에서 원하는 바가 분명히 있었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볼리비아...그리고 칠레까지. 뜨거운 태양 아래 먹었던 노점상 과일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해변, 사람들의 미소와 어딜 가든 끊이지 않았던 음악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화려하고 정열적이었던 브라질의 카니발을, 신랑은 하얀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투어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고, 아이는 책에서만 봤던 페루의 맞추픽추와 짝사랑하던 멕시코 민박집 주인 아들 호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여행을 다녀 온 후 둘째가 생겨 아직 우리 네 가족 장기 여행을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둘째 아이가 5살이 되면 시간을 내서 다시 도전해보려고 한다.


5. 멘토를 만나다.

7년이 넘는 회사 생활 동안 나는 존경할만한 선배는 딱 한분 만났다. 그것도 겨우 1년을 함께 근무했을 뿐,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를 이끌어주고, 내게 동기부여를 해주며, 조직 생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항상 그런 멘토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0년 전 드디어 나의 멘토를 만났다. 그 분을 만난 후 내 삶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나의 멘토는 내가 다소 불확실하고 막연한 새 출발에 힘들어할 때마다, 나의 열정을 자극해주었고, 다시 컨베이어 벨트 위처럼 편하지만 목적 없는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이겨내게 도와주셨다. 신랑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진심으로 염려해주셨고, 가족들끼리도 자주 교류하며 깊은 관계를 키워갔다. 롤 모델이 있다는 게,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그때 그 분을 만난 뒤로 처음 깨달았고,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6. 나만의 카페

카페를 연 지 7년째. 10여년 전 유행처럼 번졌던 와플 카페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웰빙 오곡빵 카페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우리집 카페 메뉴도 유행 따라 조금씩 변화를 겪었지만, 소통의 장,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아이들을 위한 발전적 모임이라는 메인 테마는 변화가 없다. ‘힘들게 살아가는 모범생’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신랑의 코칭도 5년 전부터는 제대로 자리를 잡아 이 공간을 소통의 공간으로 함께 활용하고 있는 덕에 우리 카페는 삶을 더 발전시키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처음 카페를 준비하면서 신랑과 친구들을 동원해 시장 조사를 하고, 유동 인구를 파악하고, 매 주말마다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벤치마킹 포인트를 찾아내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장소를 물색하고, 인테리어 콘셉트를 고민하고, 세부 메뉴와 직원들을 결정하는 일까지... ‘우리 카페나 할까’라는 책에서 보여주었던 무시무시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과정이 과장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 노력 끝에 연 카페는 스타벅스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정이 묻어났고 편안함을 주는 모습이었다.
카페를 처음 연 날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구본형 선생님과 꿈벗들, 블로그를 통해 많은 소통을 나눴던 엄마들, 예전 회사에서 나에게 유일하게 비전을 제시해주셨던 김지희 팀장님과 신랑의 코칭 멘토, 동기들, 제자들, 그리고 이제는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폭탄주 친구 몇 명이 모였다. 금요일 저녁 카페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새로운 출발에 가슴 벅찼다. 컨베이어벨트에서 과감히 뛰어 내려 나의 열정을 찾아 달려온 3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신방과, 언론, 광고라는...내가 10년 넘게 몸 담았던 익숙한 틀을 깨고 나오는 일이 처음에는 두렵기만 했지만, 스스로 한발 한발을 디디며 나는 많이 성장해 있었고, 뜨거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7년이 흘러 이 자리에 선 것이다. 오전 11시. 어김없이 문이 열리고, 반가운 단골손님이 고개를 내민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 가슴이 뛴다. 


7. 아이들 마음 키움 프로젝트의 성공

‘아이들 마음 키움 프로젝트’는 이제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블로그를 통해서, 그리고 오프라인 모임과 우리의 카페를 통해서 의견을 주고받고 소통했던 사람들에게서 나는 많은 영감을 얻었다. 꿈벗 동기인 도원이가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사와 함께 크는 아이’ 프로그램과 추진하고 있는 정기적인 워크숍도 대성공이다.
처음 시작은 일종의 ‘어린이 생태 학교’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소그룹 단위로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자연을 체험하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였고,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했다. 정읍 내장산 아랫자락에서 민박을 하며, 감자를 구워먹는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해맑았다. 그 곳에 있으니, 나와 인솔 선생님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모두 무장해제가 되었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들이 조금씩이지만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의 경우, 그 프로그램이 끝난 후 부모님과의 만남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했다. 국내 여행을 위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간 후에는 가까운 해외 여행을 추진했다. 첫 여행지는 중국 원난성이었다. 소수민족 마을에서 1주일을 보내면서, 아이들은 ‘유럽 박물관 투어’ 같은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체험했다. 
국내건 해외건 모든 여행은 아이들의 마음을 키우는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췄다. 프로그램이 알려지면서, 공동육아에 참여하는 부모들처럼 프로그램 인솔자를 자처하는 유능한 부모들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여행은 그 규모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점차 풍성해졌다.


8.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했던 동남아 여행

아이들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내가 가장 잘 했던 일 중 하나는 바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엄마 고향은 말야’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봉사활동을 통해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마음을 키우는 프로그램,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의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피부색이 다른 엄마와의 소통이 중요했는데, 엄마의 고향 나라를 방문해서 직접 체험을 하는 일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엄마 고향은 말야’ 프로젝트는 후원을 조금 받아서 무료로 진행되었다. 첫 프로젝트는 필리핀 엄마를 둔 아이들 몇 명과 함께 필리핀을 방문, 필리핀의 문화와 생활을 직접 체험했고, 그 중 형편이 되는 아이들의 외조부모는 우리 캠프를 직접 방문해 아이들을 잠깐씩 만나기도 했다. 엄마가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어렸을 때는 어떤 음식을 먹었고, 무슨 놀이를 했는지 알아가는 일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엄마 고향은 말야’ 프로젝트는 필리핀 이후로 1~2년에 한번씩 시행이 되고 있고, 다문화 가정 엄마들의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앞으로 그 횟수를 더욱 늘려갈 예정이다.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이 서울이 아닌 경기도 이남에 분포해있고, 엄마들이 대부분 맞벌이이거나 가사 노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해서 카페 소모임에 나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프로젝트 이후 카페를 방문하고, 블로그를 이용하는 엄마들이 많이 늘고 있어 기분이 좋다.


9. 자원봉사 경험

10년전 시작했던 자원봉사가 이제는 나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다. 아이가 3살이 되던 해부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기구에서 운영하는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자원봉사는 아이들에 대한 내 애정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도 자원봉사 활동은 많은 도움을 줬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 생각의 크기는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과 첫 해외 봉사활동에서 만난 케냐의 아이들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사실 '자원봉사'라는 말도 어색하다. 내가 봉사를 하며 그들에게 주었던 도움보다 내가 그들에게서 얻은 것들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봉사를 받은 꼴이다.


10. 지도력(?)을 발휘하다.

조직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지만, '규모가 줄어드는 공기업'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나는 후배들이 많지 않았었다. 10년 전 우리 회사에는 20대 정직원이 단 한명도 없었을 정도이니. 8년차였지만, 막내였고 영수증을 처리하고, 복사기를 고치고, 나이든 선배들이 엑셀이나 한글 프로그램을 하며 헤맬 때 도와주는 해결사였다. ESTJ는 타고난 관리자, 지도자라 했건만, 그런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내게는 없었고, 어떤 그룹에서건 리더가 된다는 거, 내 목소리를 낸다는 거, 그 그룹 앞에서 뭔가를 정식으로 이야기 한다는 거는 내게 너무 생소하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들 마음 키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카페를 시작하면서 나의 지도자적 면모가 그 진가를 발휘했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과 크고 작은 모임을 구성하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룹의 방관자로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이 영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20~30명의 엄마들 앞에서 편안하게 강의를 할 정도로 변해있었다. 10년 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나의 꿈을 발표하고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조차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를 가늘게 떨었던 나였는데, 편안한 모습으로 강의까지 하고 있노라니 감개가 무량했다. 나와 생각을 깊이 공유하고 소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들을 통해서 배우고 느낀 점을 다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새로운 소통의 통로를 만들어 내는 일이 참 행복하다는 것을 하루 하루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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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
2009.09.22 00:22:39 *.187.189.251
영은 누님 프로젝트 곳곳에 저의 수익이 그려집니다. 후후후.
합력하여 선과 부를 이뤄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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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2009.09.23 13:39:51 *.35.50.136
쪼우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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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2009.09.22 05:45:05 *.50.177.50
영은이 글에서 잔잔하고 따뜻한 정겨움, 감동이 베어 나오네...^^
한국 최대(?)의 다양한 컨텐츠를 보유한 조선일보의 칼럼 기고 요청을 거절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
부디 인테리어 컨셉, 가구는 나랑 상담하자구 ㅎ
꼭 꿈을 이루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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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2 08:57:10 *.223.42.210
영은, 오늘 아침 샤워하면서 든 생각. 너의 글은 참 따뜻하고,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진다는 생각이 들었어. 부암동의 집 광경을 묘사할 땐, 나도 모르게 그 장면이 떠오르며 행복한 가정에 미소지어 지더군. 그런 의미에서 조선일보 거절, 충분히 가능한 컬럼니스트가 될 것 같아. 오늘 하루도 솔이에게 좋은 엄마 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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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2 10:32:02 *.100.182.69
올려주신 10대 풍광 잘 보았습니다. 비슷한 꿈을 꾸는 분을 만나서 너무 반갑습니다.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이 저의 꿈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나중에 저의 카페와 네트워크 만들어서 좋은 프로그램 함께 나눕시다. 호호 
꿈을 꾸며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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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2009.09.23 14:22:17 *.35.50.136
흐흐 네네~ 좋은 인연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

정말 모두모두 화이팅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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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09.22 14:17:08 *.248.235.10
내가 아직 말을 하지않은 비밀이 하나 있는데...
다음에 만나면...... 술 한그릇 사줄게요.

그동안 솔이 잘키우고 잘 지내요.
솔이는 뱃속에서 꿈벗 만났으니 뼛속까지 꿈벗이 될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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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2009.09.23 13:50:38 *.35.50.136
아흑! 술 한그릇 사주실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세월이 긴데요? 히힛
비밀이 너무 궁금해서 집중이 안되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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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
2009.09.24 08:49:00 *.138.22.47
영은!
서영이요..ㅋㅋㅋ.
우리 꿈벗들을 통해 나의 모습의 다른버젼을 보는듯 하네...

나 또한 그대의 역사(History)에 동참하여 함께 하겠소..
아니 우리 꿈벗 모두 함께 합시다..^^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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