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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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다 정리하지 못하여 버전 0.1이 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머릿 속에 담아만
두다가는 끝내 피어나지 못할 것 같아 후끈거리는 낯을 의식하면서도 꿈을 그려
봅니다.
-3. 2005년 15년의 승선을 끝내고 육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치열한 고민 끝에 택한
징검다리. 나를 더 탐색할 필요를 느꼈다.
-2. 2007년 자기탐색의 과정에서 MBTI, STRONG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큰 도움은
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상담도 가끔씩
했다. 2009년까지 약 150건의 상담을 했고, 만남 자체로 인해 내가 배운 경우도
많았다.
-1. 2007년 여름, 변경연 함성사모 영남 모임이 만들어졌고 첫모임에 참석했다.
형산이라는 호를 얻었고, 선한 자극을 주는 많은 동반자를 얻었다.
0. 2009년 가을 마음 속에서 끓어 오르는 '그 무엇'을 주체하지 못하여 고민한다.
모기업으로 부터 분사가 되고 잦은 조직 개편으로 거의 위장병이 생길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서 또 한번의 조직개편이 있었고 드디어는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명상과 정리작업을 거치다가 모닝페이지
쓰기를 시작했다. 2010년 1월 16일이면 12주의 과정이 끝난다. 또 다시 한 그룹의
지지자와 동반자를 얻었다.
1. 2010년 큰 아이의 수능이 끝나는 시점에 첫 책의 초고를 마쳤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쉽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격려가 도움이 되었다.
15년의 항해를 뼈대로 삼은 스토리 텔링 형식의 글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듣고
싶었으나 뒤 늦게야 알게 된 것 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현대의 항해에 관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냈다. 현실적인 제약으로
연구원도 꿈벗도 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 늘 자극이 되어온 변경연에 오래도록
진 빚을 갚는 기분이라 속이 다 후련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운제 선생님의
뒤를 이어 끊이지 않고 책을 내는 것이 또 다른 목표가 된다. 함성 영남에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았다. 늘 글쓰기를 재촉해 온 초아 선생님의 채찍질은 눈을 감아도
떠 오른다.
고향에서 문학회 할동을 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오신 큰 누님의 시집도 발간되어
기쁨이 두 배가 되었다. 등단을 못해 애태우고 있었는데 올 한 해 계속해서 좋은
소식이 들리더니...
2. 2015년 회사와 내가 동시에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내가
이끄는 팀은 GLOBAL TOP 10의 MARINE CONSULTING 조직이 되었다. 합당한
보상과 대우를 받았다.
3. 2017년 큰 아이가 카피라이터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나는 안정된 직장을 떠나
집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르고 뒷 쪽으로 아담한 산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스트로베일 집이고 다락에는 큰 유리 天窓을 내어 별빛도 달빛도 머물도록
만들었다. 이곳에서 회사 다니는 틈틈이 정리한 시와 글들을 정리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와 상담 여행을 즐긴다. 커다란 개 두마리와 거위들로 하루 종일 분주한
마당이 늘 즐거운 풍경이다.
4. 2018년 작은 아이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첫걸음을 내딛었다. 아내는 작은
아이와 한 건물에서 토탈 뷰티샾을 경영한다. 아내의 오랜 꿈인 현장 강의를
돕기 위해 가끔 초청 강사의 역할도 함께 한다. 다분히 통계적이고 서구지향적인
진로상담기법을 다듬을 필요를 느낀다.(구체화 필요)
5. 2020년 고향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지었다. 연구원들과 꿈벗들의 책을 반강제(?)로
기증받아서 서가의 한 켠을 채웠다. 몇 권 되지도 않는 책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읽으며 꾸었던 유년시절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통영의 예술혼을
이어받은 수많은 시인, 작가가 태어날 것이다. 부지는 동네 어른들의 기증을
이끌어냈고, 도서관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출판사들이 도움을 주어서
고민하던 것에 비해 쉽게 건축이 이루어졌다. 이 일을 위해 사부님을 비롯한
변경연의 많은 분들이 성원을 보내 주었다.
6. 2025년 아내와 크루즈 여행중이다. 상선을 타고 함께 여행한 적은 있지만
크루즈 여행은 처음이다. 직업으로써가 아니라 온전히 즐기기 위한 승선이라
행복하다. 1997년 파나마 운하를 경유해 뉴욕으로 가던 여정에 갑작스런
모친의 별세로 인해 중도 귀국했던 아픈 추억도 떠올랐지만 이번 여행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그러했다고 믿어진다.
7. 2030년 아내의 가게와 두 딸의 작업실 그리고 내 서재 공간을 합친 건물을 세웠다.
아내의 가게는 주말이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머리 손질이며 맛사지를
시술하느라 분주하다. 작은 딸은 요리 솜씨를 발휘해 그 분들의 간식거리를
만들어 낸다. 동네 꼬마들과 글짓기 교실에서 엎치락 뒤치락 중인 것은 큰 딸이다.
나 역시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상담 중이다. 행복하다. 이 건물의 이름은 시리우스
SIRIUS이다. 먼 옛날 항해사들에게 길잡이 별이 되었던 항해용 붙박이별 중에서
가장 밝은 별. 우리 가족은 등대와 같은 존재로 세상을 살아 나간다.
8. 초등학교 때 부터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시골에서
나의 이동 수단은 말과 당나귀이다. 조금 시내로 나갈 때는 할리 데이빗슨이
함께 한다. 아내는 주책이라 하지만 나는 즐겁다.
9. 무지개 전사. 내가 함께 가는 이 대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았다.
10. 내 장례식이다. 나로부터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강의를 통해
만났던 인연도 있다. 그들이 뜻을 모아 새긴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 안의 씨앗을 발견하게 하고 그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하신 분,
출발지로 돌아가다"
딸들과 또 그의 아이들은 웃으며 나를 보내고 있다. 인생 2막, 후회없는 삶을
살았으므로...
IP *.22.88.201
두다가는 끝내 피어나지 못할 것 같아 후끈거리는 낯을 의식하면서도 꿈을 그려
봅니다.
-3. 2005년 15년의 승선을 끝내고 육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치열한 고민 끝에 택한
징검다리. 나를 더 탐색할 필요를 느꼈다.
-2. 2007년 자기탐색의 과정에서 MBTI, STRONG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큰 도움은
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상담도 가끔씩
했다. 2009년까지 약 150건의 상담을 했고, 만남 자체로 인해 내가 배운 경우도
많았다.
-1. 2007년 여름, 변경연 함성사모 영남 모임이 만들어졌고 첫모임에 참석했다.
형산이라는 호를 얻었고, 선한 자극을 주는 많은 동반자를 얻었다.
0. 2009년 가을 마음 속에서 끓어 오르는 '그 무엇'을 주체하지 못하여 고민한다.
모기업으로 부터 분사가 되고 잦은 조직 개편으로 거의 위장병이 생길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서 또 한번의 조직개편이 있었고 드디어는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명상과 정리작업을 거치다가 모닝페이지
쓰기를 시작했다. 2010년 1월 16일이면 12주의 과정이 끝난다. 또 다시 한 그룹의
지지자와 동반자를 얻었다.
1. 2010년 큰 아이의 수능이 끝나는 시점에 첫 책의 초고를 마쳤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쉽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격려가 도움이 되었다.
15년의 항해를 뼈대로 삼은 스토리 텔링 형식의 글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듣고
싶었으나 뒤 늦게야 알게 된 것 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현대의 항해에 관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냈다. 현실적인 제약으로
연구원도 꿈벗도 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 늘 자극이 되어온 변경연에 오래도록
진 빚을 갚는 기분이라 속이 다 후련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운제 선생님의
뒤를 이어 끊이지 않고 책을 내는 것이 또 다른 목표가 된다. 함성 영남에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았다. 늘 글쓰기를 재촉해 온 초아 선생님의 채찍질은 눈을 감아도
떠 오른다.
고향에서 문학회 할동을 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오신 큰 누님의 시집도 발간되어
기쁨이 두 배가 되었다. 등단을 못해 애태우고 있었는데 올 한 해 계속해서 좋은
소식이 들리더니...
2. 2015년 회사와 내가 동시에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내가
이끄는 팀은 GLOBAL TOP 10의 MARINE CONSULTING 조직이 되었다. 합당한
보상과 대우를 받았다.
3. 2017년 큰 아이가 카피라이터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나는 안정된 직장을 떠나
집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르고 뒷 쪽으로 아담한 산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스트로베일 집이고 다락에는 큰 유리 天窓을 내어 별빛도 달빛도 머물도록
만들었다. 이곳에서 회사 다니는 틈틈이 정리한 시와 글들을 정리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와 상담 여행을 즐긴다. 커다란 개 두마리와 거위들로 하루 종일 분주한
마당이 늘 즐거운 풍경이다.
4. 2018년 작은 아이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첫걸음을 내딛었다. 아내는 작은
아이와 한 건물에서 토탈 뷰티샾을 경영한다. 아내의 오랜 꿈인 현장 강의를
돕기 위해 가끔 초청 강사의 역할도 함께 한다. 다분히 통계적이고 서구지향적인
진로상담기법을 다듬을 필요를 느낀다.(구체화 필요)
5. 2020년 고향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지었다. 연구원들과 꿈벗들의 책을 반강제(?)로
기증받아서 서가의 한 켠을 채웠다. 몇 권 되지도 않는 책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읽으며 꾸었던 유년시절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통영의 예술혼을
이어받은 수많은 시인, 작가가 태어날 것이다. 부지는 동네 어른들의 기증을
이끌어냈고, 도서관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출판사들이 도움을 주어서
고민하던 것에 비해 쉽게 건축이 이루어졌다. 이 일을 위해 사부님을 비롯한
변경연의 많은 분들이 성원을 보내 주었다.
6. 2025년 아내와 크루즈 여행중이다. 상선을 타고 함께 여행한 적은 있지만
크루즈 여행은 처음이다. 직업으로써가 아니라 온전히 즐기기 위한 승선이라
행복하다. 1997년 파나마 운하를 경유해 뉴욕으로 가던 여정에 갑작스런
모친의 별세로 인해 중도 귀국했던 아픈 추억도 떠올랐지만 이번 여행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그러했다고 믿어진다.
7. 2030년 아내의 가게와 두 딸의 작업실 그리고 내 서재 공간을 합친 건물을 세웠다.
아내의 가게는 주말이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머리 손질이며 맛사지를
시술하느라 분주하다. 작은 딸은 요리 솜씨를 발휘해 그 분들의 간식거리를
만들어 낸다. 동네 꼬마들과 글짓기 교실에서 엎치락 뒤치락 중인 것은 큰 딸이다.
나 역시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상담 중이다. 행복하다. 이 건물의 이름은 시리우스
SIRIUS이다. 먼 옛날 항해사들에게 길잡이 별이 되었던 항해용 붙박이별 중에서
가장 밝은 별. 우리 가족은 등대와 같은 존재로 세상을 살아 나간다.
8. 초등학교 때 부터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시골에서
나의 이동 수단은 말과 당나귀이다. 조금 시내로 나갈 때는 할리 데이빗슨이
함께 한다. 아내는 주책이라 하지만 나는 즐겁다.
9. 무지개 전사. 내가 함께 가는 이 대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았다.
10. 내 장례식이다. 나로부터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강의를 통해
만났던 인연도 있다. 그들이 뜻을 모아 새긴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 안의 씨앗을 발견하게 하고 그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하신 분,
출발지로 돌아가다"
딸들과 또 그의 아이들은 웃으며 나를 보내고 있다. 인생 2막, 후회없는 삶을
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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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형산님의 건강함이 느껴집니다. 많은 이들에게서 긍정의에너지를 받고, 자신 안에서 키운 에너지를 주변으로 전달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항해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 기대합니다.
시리우스가 어떤 별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
항해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 기대합니다.
시리우스가 어떤 별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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