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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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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1일 22시 14분 등록

 

(두번읽기 2/2   계속.........)

 

 

 

흥법(興法)

 

21. 불교로 보는 역사

 

@ 흥법 편의 성격

[385]

이조는 모두 여섯 개의 조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으로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경위를 설명하는 조 세 개, 그리고 그 이후의 전개과정 가운데 특이한 사례를 하나씩 각각 들어 놓은 세 조가 그것이다.

 

[386]

<흥법>은 곧 흥국이었다. 처음 불교를 받아들였으면서도 도교에 빠져 불교를 배척한 고구려는 멸망의 길을 걸었고, 우여곡절 끝에 불교의 세계에 접했으면서도 날로 번창한 신라는 그에 따라 나라도 번창해 갔다. 물론 일연은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법>편의 여섯가지 이야기에 숨어 있는 메시지야 말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일단 이것을 일연이 지닌 불교역사주의라고 명명해본다.

--> 고구려와 도교의 관계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 ‘불교역사주의라는 말이 참으로 와 닿는다. 삼국사기 중심으로 공부한 나로서는 저자의 삼국유사 해설이 참으로 참신하고 재미가 있다.

@ 이 땅에 처음 온 승려 순도

[386]

고구려에서 신라에 불교 전하려 온 순도.

 

백제에 이른 마라난타

[389]

고구려에 첫 승려가 온 지 꼭 12년 뒤, 백제에도 중국 승려 미라난타가 불교를 전하러 온다.

 

[390]

백제에는 가장 남쪽의 진나라로부터 불교가 왔다. 이 같은 사실은 이후 백제 불교의 성격을 말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백제에는 바다를 건너 중국 남방계의 불교가 이어지는데, 특히 법화 신앙의 흐름은 이것을 타고 한층 뚜렷해진다.

 

계룡산의 갑사,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 상상력, 사실 이상의 사실

[392]

일연, 고구려에 처음 불교 전래된 것을 노래한 (7언 절구 형식의 한시)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날으네

어느 곳 고깃밴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394]

순도가 전진으로부터 오기는 왔으되, 어느 철에 어디를 통해 어떻게 왔는가는 <삼국사기>에도 그것을 인용한 <삼국유사>의 본문에도 없다. 일연은 그것을 봄빛이 완연한 압록강이며, 고기 잡는 배를 빌려 타고 건넜다고 노래한다. 물론 상상이다. 이 같은 시적 상상은 그 선연한 형상력의 도움을 받아 우리를 사실 이상의 사실 어디로 데려가고 있다.

---> 일연 스님의 이러한 상상력이 역사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그의 불교역사주의에서 오는 상상력.

 

@ 큰 나무의 인고

[394]

아도-고구려 사람, 미추왕의 때 흥륜사 세움. 신라 불교의 기초를 놓음. 일명, 묵호자. 스스로 자결한 첫 순교자 (.....이 때문에 불교도 없어져 버렸다.)

@ 완고한 신라사회 속에 뿌린 불교의 씨

 

 

 

22. 순교의 흰 꽃 이차돈

 

@ 법흥왕 이전에는 불교는 없었는가?

@ 이차돈에 대한 일연의 관심

@ 순교자의 마음

 

@ 아도의 본마음을 이룬 성자

[407]

어떤 자료를 받아들였는가의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차돈의 머리를 베었더니 흰 젖이 솟아나 한 길이나 되었다는 대목은 어디에나 있다 붉은 피가 아니라 흰 젖이었다는 이 이야기의 절정 부분이며 흰 젖은 부처님의 감응을 말하는 것이었다.

 

[409]

아도의 본 마음을 이룬 성자. 바로 이차돈이 아도의 순교를 이었다고 본 일념의 혜안에 일연은 손들어준 것이다......신라 불교가 뿌리내리는 데에 치른 값진 희생의 전통, 그것은 곧 아도와 이차도의 순교다.

 

[411]

(일연이 이차돈 죽음을 노래한 ’)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 그 후, 백제와 고구려의 불교 

 

 

 

 

탑상(塔像)

 

23.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사랑하는 절)

 

@ 황룡사의 돌무더기

[417]

황룡사는 경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신라의 한가운데였고, 지리상으로만 아닌 마음 속에서는 신라인이 상상하는 세계의 한가운데였다. 그러기에 경주를 여행하는 사람은 비록 지금은 허허벌판일지라도 황룡사 터에 한번쯤은 서 보아야 한다.

 ---> 황룡사 벌판에 서면 온 몸에 전율이 돋는다. 마치 신라 그 시대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빙그르 도는 황량함이여. 불도국에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경주 전체가 하나의 사찰이고 깨달음의 땅일 것이다. 이런 상상은 나를 흥분시킨다. 내가 부산에서 태어나 가장 먼저 경험한 외지가 바로 경주이기에... 불국사의 불국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 마치 교황이 계시는 바티칸의 느낌이겠지. 저녁놀 지는 감은사지 터에 섰을 때 나는 넓디넓은 만주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다음 방문에는 그 느낌이 깨졌지만..... 경주 톨게이트를 통과해 귀신과 돌았다는 그 다리를 지나 경주 오능이 보이고 아....경주다. 신라 땅, 경주는 내 어린 시절의 역사적 상상력을 모조리 잡아먹은 곳. 그리고 지금은 만주땅, 그곳이 그러하다.

 

[417] (감동구절)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들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곤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어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해 주려고 천년을 기다렸단다.”

---> 나의 외로웠던 청소년기의 마음을 쓸어주었던 경주의 불상, 석탑의 돌, 유물 조각들.

미르를 타고 물방울이 되어서 경주로 갈 것이야. 해학적인 신라의 귀신들과 경주 입구 다리 밑에서 한번 뜰 거야. 누가 이기나 보자구. 그리곤 황룡사를 한 바퀴 빙그르 돌아서 쑤욱 날아서 감은사지터로 갈거야. 물이 미르고 미르가 용이고 용은 강을 따라 지하수를 따라 때론 소나기가 되고 때론 물안개가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지. 은경은 미르를 타고 감은사지 탑 꼭대기에 걸터 앉았다. 달이 떴다. 둥글고 노오란 달이 떴다. 땅을 흔들 듯 쿵쾅쾅쾅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문무왕.....

언어재능, 상상력, 공간지능...

 

 

@ 황룡사는 어떤 절이었는가

[420]

전도자 아도 어머니 왈 to 아도 (흥법 편 아도가 신라 불교의 기초를 놓다조’)

지금부터 3,00여 달이 지난 다음 계림국에 성왕이 나타나 불교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서울 안에 일곱 군데의 가람 터가 있거니와......모두 전생의 부처님 때 가람 터요, 불법의 물이 길이 흐를 땅이다. 너는 거기에 가서 큰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 땅히 동쪽에서 부처님 앞에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황룡사는 용궁의 남쪽이라 계시된, 신라 7대 사찰의 후보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421]

신라 제 24 진흥왕이 즉위한 지 14년 곧 계유년(553) 2월의 일이었다. 용궁의 남쪽에 자궁(紫宮)을 지으려 하는데 황룡이 거기 나타났다. 이에 고쳐서 절을 삼고 황룡사라 이름지었다는 정도다.

 

@ 인도의 아육왕도 이루지 못했던 일

[422]

울산바다 어디쯤 배 안의 쪽지

서천축국의 아육왕이 황철 57천근과 황금 3만분을 모아 석가 삼존상을 만들려 하였지만, 이루지 못하고 배에 실어 바다로 띄워 보내노라. 인연 있는 나라, 거기 가서 장륙존상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한다.

 

@ 정말 아육왕이 보낸 것일까?

[427]

cf) 아쇼카왕 이야기

그는 왕이 될 것이며, 온 세계에 84천 개의 탑을 세워 내 이름을 알릴 것이다.“

 

@ 황룡사 구층탑의 경우

[430]

<찰주기>에는 철로된 받침대가 높이가 42척이고, 그 아래로 183척이다고 적었을 뿐이다. 전체 높이가 225척이라는 말인데 학계에서는 요즘의 단위로 70m라고 추정한다......얼마만한 건축 기술을 가졌기에 20층 아파트 높이의 탑을 세울 수 있었을까?

 

[434]

신라를 가운데 두고 중국과 인도의 불교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곳이 황룡사다.  

 

@그 안타까운 최후

 [434]

장륙존상과 구층탑은 신라를 지키는 세 가지 보배 중 두 가지에 해당된다. 나머지 하나는 진평왕이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옥대(玉帶).

 

일연 자신은 탑을 건립한 이후 천지가 매우 태평하고, 한반도의 세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었으니, 어찌 탑의 영험한 도우심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싸움이나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 꾼 것이다.

---> 장륙존상이 보고 싶다. 구층탑이 보고 싶다. 천지를 평화롭게 하는 불도국이 보고 싶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황룡사 터는 나라를 지키는 신라 불교의 절정을 보여준다.

 

[435]

일연은 장륙존상의 최후를 지금 전쟁을 겪은 이래 큰 불상과 두 보살상은 모두 녹아 없어지고 작은 석가상만이 남았다. 구층탑은 고종 16년 곧 무술년(1228) 겨울, 몽고와의 전쟁통에 탑과 절 그리고 장륙존상과 건물들 모두 불에 탔다고 알려 주고 있다. 1228년이라면 일연의 나이 23세 때이고, 전쟁이란 바로 몽고의 2차 침입을 말한다.

 

그 때까지 구층탑은 여섯 번이나 개보수를 거치면서 꿋꿋이 서 있었다. 파손된 이유는 대체로 낙뢰였다

----> 몽골이 쓸고 간 황룡사의 상처. 일연의 구층탑에 대한 애착. 내 사랑 황룡사.... 그 절터에 다시 서고 싶다. 유채꽃 피는 가을에 황룡사 절터 앞을 자전거로 달리리라.

 

인도와 연결되어 있는 신라! 내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짝사랑, 신라 경주 땅. 그리고 중학시절 보았던 타지마할! 그것에 왠지 꽂히고 나는 어른이 되어 인도를, 타지마할을 가게 된다. 그리고 히말라야 티벳불교가 자리잡고 있는 다람살라를 가게 되고, 달라이 라마가 될 후계자 칼마파를 만난다. 나는 왜 그 많은 나라 중에 인도가 가고 싶었을까? 나는 왜 경주 땅, 인도 타지마할 앞에서 나를 만났을까? 나는 무엇을 풀어야 하나? 내 소명은 무엇인가?

 

어린시절 나는 매일같이 잠 자기 전에 부처님께 기도했다.

남북통일 되게 해주세요, 우리 할머니 안 아프게 해주세요, 그리고 무서운 꿈 안 꾸게 해 주세요....”

지금 생각해도 이 때 너무도 간절하고 애절했다.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것을 내 걸고, 우리 할머니 안 아프게 해 달라는 부분에서 정말 간절했다. 나에게 할머니란? 어미 같은 존재였다. 할머니를 따라 이 절로 저 절로 따라 다녔다. 나도 스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왜냐? 스님들은 모두 자상하고 좋으니까. 어려서 상처가 많았던 나, 감성이 예민한 나는 상처받기 쉬었고 엄마의 부재로 나는 늘 나홀로 모험하고 탐험하며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마음은 늘 외로움에 차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사람이 바로 할머니...

 

무서운 꿈 안 꾸게 해 달라고? 그저 어린 아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우리 딸을 보면 세상 없이 잘 잔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어린시절에 밤마다 너무나 무서웠다. 특특히 바퀴벌레가 나타나는 것이 무서웠고 또 귀신이 나타날까 무서웠다. 그 무서움은 엄마에게 말 할 수 없었고, 아니 엄마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이든 하는 순간 엄마에게 거절 당할 것이 뻔했다. 왜냐, 울 엄마는 그때 최악의 상황이었으니까. 지금은 이해가 간다. 나는 할머니의 품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할머니에게 가지 못하는 밤이면 늘 부처님께 의지 해야 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무서움이 내 몸 세포 속에 두드러기처럼 스멸스멸 올라온다. 어린시절 부모의 무관심을 내가 모험과 자유만끽으로 채운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티벳의 독립인가? 티벳이 독립해야 우리 고구려 땅의 조선족 자치구도 느슨해진다. 우리가 통일하고 조선족 자치구를 넘나들면 자연스레 그곳에 우리의 문화와 언어가 지속되면 다시 한반도를 포함한 만주의 고구려 영토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싸움으로써가 아니라 화해와 자비로.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돌아오는 김구의 눈가에 젖은 눈물을 보라. 그의 무명 마고자 옷자락에 스며 있는 민족의 한을 보라.... 그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타살되어 죽었다. 우리는 지금껏 분단되어 있다.

 

NLL를 가지고 정치인들의 정견 대립이 뜨겁다.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삼국 통일을 이끌고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의 애끌는 의지! 우리에게는 문무왕이 나와야 한다. 문무왕 같은 왕이,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나의 이러한 생각들을 연결하여 연결하여 나만의 어떤 메시지가,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분되는 작업인가?

 

---> 역사의 장면들

: 1. 38선 넘는 김구

2. 문무왕의 죽음과 유언

3.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4. 서희의 담판

5. 탈출하는 북한의 아이들

배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역사를 만난다. 위화도가 눈 앞에 들어온다. 한강의 밤섬보다 약간 큰 듯하다. 갑자기 이성계를 생각하니 부하가 치민다. 더 치고 올라갔어야 했는데, 왜 위화도에서 회군했는가?

 

 

 

일연의 선배 승려 무의자(無依子)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아마도 이것이 자신의 마음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24.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 일연과 오대산 그리고 문수보살

[440]

일연의 불교 사상이 문수신앙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잠정적인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일연은) 청소년기의 월정사 경험과 장년기의 문수보살 체험, 이것이 오대산의 문수 신앙을 <삼국유사>에 남기고 싶은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중국의 오대산과 한국의 오대산

[440]

문수보살을 흔히 출가의 보살이라고 한다.

저 유명한 <화엄경>의 이야기에서, 문수 스스로 남쪽을 두루 돌며 깨닫고 동쪽으로 오는데, 거기서 만난 선재동자에게 남쪽으로 갈 것을 권하는 대목이 있다. 곧 선재의 출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깨달음이 길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누구든 수행의 첫 길은 문수보살로부터 시작한다.

 

또 문수보살을 비유해서 세상의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있는 것처럼 문수는 불도를 닦아나가는데 부모라고도 했다. 부모는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자다. 문수도 성불의 그 같은 절대적 조력자라는 뜻이다. 나아가 문수 신앙은 대체로 이런 문수보살의 성격에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오 예~ 문수보살을 모셔야 겠다. 바로 하워드 가드너가 말하는 어린시절의 조력자가 바로 문수보살이다.

 

문수 신앙은 불교의 본토인 인도에서도 발견되지만, 4세기 이후 곧 중국의 남북조시대부터 중국의 불교에서 본격적으로 번성하게 되는 바, 중국인들은 문수보살이 예언한 산이 바로 산서성의 오대산을 가리킨다고 믿었다.

 

[441]

우리나라의 오대산은 바로 이 같은 배경을 가진 오대산이 그대로 넘어온 것이다.

 

일연의 인용

오대산의 오만 개 진신조를 시작하면서, “이 산을 문수보살이 머문 곳이라고 처음 적은 이는 자장법사이다라고 한 짤막한 인용이다.

 

 

@ 오대산과 오만 진신이 된 까닭

[448]

문수보살은 매일 아침 서른여섯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일이 나열한다....... 금빛나는 밭의 형태로, 흰 코끼리의 형태로.............오늘날 우리가 오대산에 가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오대산과 오만 진신은 신비롭기만 하다.

 

@ 눈물의 태자

@ 학의 깃털이 가르쳐 준 것

 

 

25.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 금대암에서 보낸 하룻밤

@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와 인식

@ 중생사에 얽힌 이야기

@ 고려까지 이어지는 중생사의 이야기

 

@ 일연의 생애와 그 반영으로서의 삼국유사

[469]

개인사의 그늘에 놓일 책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삼국유사>는 때로 일연의 생애와 견주었을 때 보다 맑게 이해되기도 한다. 일연에게서 평생의 화두를 하나 들자면 어머니다. 세속의 인연에 너무 연연해한다고 탓하지 마라. 일연의 어머니는 열아홉 살 아직 꽃 피지 않은 나이에 아들 하나를 낳고, 아흔 살 넘어 세상을 마칠 때까지 평생을 혼자 산 사람이다.

 

그것은 앞서 장춘과 그의 어머니 보개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 아들을 찾고자, 애끊는 마음을 부처님 앞에 가 빌고 비는 어머니는, 다름 아닌 일연과 그 어머니의 대역들이다.

 

그것은 인간 세계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미물이라는 짐승에게서도, 일연은 끊지 못할 어떤 인연과 정을 발견한다.

 

[470]

일연 왈 영취사 조

신라 진골인제 31대 신문왕 때이다......재상 충원공이 장산국의 온천에 목욕을 갔다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문득 한 사람이 매를 날려 꿩을 쫓게 하는 것을 보았다.....우물가에 이르자, 매가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안에 있는데 온통 핏빛이었다. 꿩은 두 날개를 펼쳐 두 마리 새끼를 감싸고 있었다. 매도 불쌍히 여기는지 집자 않은 모양이었다. ......절을 지을 만한 곳이라고 하였다.....이름을 영취사라고 하였다.

---> 장산국은 지금의 동래다. 동래온천. 꿩의 이야기도 있고 뼈만 남았지만 자식을 품는 수달의 이야기도 일연이 전한다. 부모의 사랑 또는 집착을....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짐승이며 욕심을 내자면 한없을 인간으로도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장면들이다. 신라인들의 삶의 메커니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연의 화두.....어머니.

 

 

26.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 흰 달이 비추는 산

[472]

만약 삼국유사에 실린 150여 가지가 넘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뜻 깊은 것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여기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를 대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탑상 편의 남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조다. 학위 논문을 쓰면서 나는 이조가 일연과 일연의 문학 그리고 삼국유사를 이해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라고 주장한 바도 있다.

 

백월산 연기 설화로 시작하는 이 조는 부득과 박박이 각각 미타불과 미륵불을 근실히 구하다 함께 왕생하는 이야기다.

 

아리따운 낭자가 하루 밤 자고 가기를 청한다. 박박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부득은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여자를 들인다. 산기가 있는 여자를 시중 들고 출산을 준비한다. 목욕물이 금빛으로 변한다. 낭자는 스스로 자기가 관음보살이라 밝히고, 스님의 대보리가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말한다.

---> 변통없는 (융통성 없는) 원리 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는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에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된다. 불교는 참으로 융통성 있는 철학적 사고체계다. 박박은 하나만 생각했다면 부득은 최소한 둘 이상을 생각한 것이다. 수행자의 초심을 흔들지 않으려는 박박의 태도도 뜻이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부득의 태도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박박은 교조적 외골수? 부득은 현실적 합리&융통성 있는 인물이다.

 

@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사람

@ 저물 무렵에 나타난 아리따운 여인

[477]

부득은 우선 묻기부터 한다. “그대는 어디서부터 밤을 헤치고 오시는 것이오?”

여자가 대답한다. “맑기가 태허와 한 몸이니 어디 오고감이 있나요? 다만 현명하신 스님께서 뜻이 매우 깊고 덕행이 높다 하여 보리를 이루는 데 돕고자 합니다.”

@ 밤부터 아침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480]

여자의 정체는 여기 와서야 밝혀진다. 바로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시험 삼아 두 사람을 방문했던 것이다. 거기에 박박은 보기 좋게 나가 떨어졌지만 부득은 합격한 셈이다.

 

일연 왈

여자는 부녀자의 몸으로 나타난 섭화자라 할 만하다. <화엄경>에서 마야부인 선지식이 열한 군데에 살면서 부처를 낳아 해탈문을 환생했다는 것과 같다. 이 이야기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은 숨은 뜻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비롭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성격을 가진 이가 관음보살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다음 더욱 강화된 생각이라고 한다.

 

[481]

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쫒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 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러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을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헌신인지도 모른다.

 --->노힐부득의 태도는 바로 관음보살의 현신의 모습. 부득은 미륵존상이 되었다. 미타존상이 되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박박은 무량수 불상이 되었고.... 생활 속에서 관음보살님을 자주 만난다. 자애롭고 너그러운 우리네 할머니들 모습 속에는 늘 관음보살님이 계신다. 우리 집 족자에 그려진 관음보살님 상. 아름다운 몸매에 자비가 흐르는 입가의 미소...

.

@ 발톱 하나 칠하지 못한 만큼의 차이

[484]

유독 박박의 것만 금칠을 다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우연이 아니라 거기 어떤 필연이 끼여들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민중의 소박한 신심을 읽게 된다. 발톱 하나 만큼의 차이로 말이다.

---> 참으로 재미있다. 본디 이야기에 한 가지 덧붙여서 민중들은 소박한 신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계속 구전된다. 일연이 이 사실을 알면 빙그레 미소 짓겠지?

 

 

@ 시로 완성되는 <삼국유사>

 

(일연의 ’)

푸른 빛 떨어지는 바위 앞, 문 두드리는 소리

날 저문데 누가 구름 속 빗장 문을 당기는지

남쪽 암자 가까운데 그리로 갈 것이지

푸른 이끼 밟고서 내 뜰을 더럽히지 마오

 

달달박박을 두고 쓴 시다. 이기심은 독선만 키울 뿐이요 자비심이란 찾을 수 없게 된다. 남쪽 암자로 가라든지, ‘푸른 이끼 밟은 발이라고 낭자를 몰아친 것이 그 증표다.

 

[485]

골짜기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리

남창엔 자리 나니 머물다 가오

밤 깊어 백팔 염주 염불도 깊어만 가는데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의 잠 깰까 두려워라

 

노힐부득을 두고 쓴 시다. 일연은 부득의 높은 도를 이중의 굴절을 통해 보여준다.......참 보살행이란 중생의 곤고한 처지에 동참한다는 것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자꾸만 갈라지는 생각과 흔들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염불소리는 밤 깊을수록 높아갈 수밖에 없다. ‘심심전(深深轉)’이라는 표현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문득....염불도 한낱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염불로 공덕을 쌓는다고는 하나, 이럴 때의 염불은 손님의 곤한 잠만 방해할 뿐이다. 일연은 부득의 그런 마음을 읽어내고 있다.

---> 역시 대체로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사상이 융통성이 있어. 불교의 넓은 포용력, 자비함이 좋다.

 

[486]

일연이 쓴 찬시 속에서 이런 절묘한 표현을 얻는다. 또한 편찬자로서 모아 놓은 시들, 곧 향가 한시 민요 등은 모두 일정한 문학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살이의 고통이 무엇이며 역사의 바른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하고, 그것은 뜻밖에도 그가 쓴 찬이나, 인용해 놓은 다른 시와 민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삼국유사>야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는 책이 아닌가?

---> 역사서이자 문학책인 삼국유사, 아직도 여전히 탄탄한 구성과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역사서이자 문학서다..

 

27. 낙산사의 힘

 

@ 담으로 쌓아서라도 지켜야 할 곳

@ 진신의 친견담과 조신

@ 의상과 원효의 거리

@ 어머니,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의 꿈

 

 

 

 

 

의해(義解)

 

28. 운문사 이야기

 

@ 의해 편에 들인 공력

[513]

의해 편에다 들인 일연의 이 같은 노심초사가 승려로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결과만은 아니다. 우리는 삼국사기의 열전에 승려가 단 한 사람도 채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그다지 거론하지 않는다. 원효도 의상도 없다. 아마 일연에게는 이것이 못내 아쉬운 한 가지였으리라. 삼국시대를 특히 신라 중심으로 기술한다고 했을 때 몇몇 승려들의 역할과 업적은 불교의 그것을 떠나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아쉬움은 크다. 기록자가 자기 시대의 이념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주지 못한 점 삼국사기는 거기서도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의해 편의 여러 기록들은 삼국사기의 이런 단점들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도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 원광부터 시작한 까닭

[514]

원광은 중국에 유학하여 불교의 진수를 체득해 온 해동의 처음 사람이었다.

 

@ 원광과 신

@ 세속오계와 운문사

@ 운문사 그 아름다운 이름

 

 

29.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주목절)

 

@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 원효

[531]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 일연이 가장 잘 알았던 사람

[537] 일연 왈

원효가 이미 계를 범한 이후 속인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불렀다. 어느 날 우연히 배우들이 가지고 노는 커다란 박을 얻었는데 모양이 괴이하여 그 형상을 따라 도구를 만들었다. <화엄경>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는 대목을 가지고 무애(無碍)라 이름 짓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시켰다. 일찍이 이것을 지니고 모든 마을 모든 부락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며 다녔는데 노래로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를 뽕나무 농사짓는 늙은이며 독 짓는 옹이장이에다 원숭이 무리들까지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가 크다.

---> 꺼리길 것이 없다....무애....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었던 원효....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 바보 같은 원효

 [540]

자네는 똥인데 나는 물고기 그대로야

--->오어사”-포항시 항사동 위치, 조연으로 나오는 해동불교의 좌장 원효의 완벽한 한판패다.

 

[543]

감통 편의 광덕과 엄장조에서 광덕의 처에게 꾸지람을 들은 엄장이 대오각성하고 찾아가는 사람이 원효다.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 문 닫힌 분황사에서 추억하는 원효

[544] (사진자료)

일연과 원효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원효 입적 후 아들 설총은 원효의 뼈를 갈아 얼굴모양을 만들어서 분황사에 안치.

---> ! 법륜스님이 처음으로 지냈던 절도 분황사가 아니던가? 맞나 아닌가? 오우~!

원효의 탄생지, 밤골. 일연도 밤골 가까운 마을 출신.

 

[545]

원효는 이 나라 불교의 첫 새벽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불교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30. 의상, 화엄의 마루

 

@ 해골바가지도 무섭지 않은 사람

[552]

의상은 한 그림자에 외로이 싸우며, 죽음을 무릅쓰고 물러나지 않았다라고, <송고승전>의 마지막 대목은 적고 있다. 의상은 그런 사람이다. 원효가 감성적이라면 의상은 이성적이다,. 귀신 따위로 마음을 흩뜨릴 사림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부터 원효와 의상은 서로 가는 길이 분명히 달라졌다.

 

@ 의상이 중국에 간해에 걸린 수수께끼

@ 의상도 이미 의상이었다.

@ 의상이 화엄을 전하다.

@ 종남산과 태백산이 똑 같은 봄

 [565]

산둥반도의 등주에 발을 디딘 의상은 생계를 꾸릴 탁발길에 선묘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선묘는 수려한 의상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 뜨거운 정을 품는다. 그러나 의상의 마음은 철석같다. 끝내 선묘는 의상이 불심으로 감동되고 불법에 귀의하기로 한다.  

---> 나의 스타일은 원효지만, 내가 매력을 느끼는 남자 스타일은 의상이다...ㅋㅋㅋ

 

 

31.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궁금한 절)

 

@ 인도에 대한 상념

@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571]

그 성스러운 땅에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발을 디뎠다는 사실을 삼국유사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 준다. 바로 <의해> 편의 인도로 간 여러 스님들 조다. 예컨대 신라 사람 아리나발마는 처음에 불교의 본디 모습을 보러 중국에 들어갔는데, 용기가 더욱 솟아 결국 오천축국까지 이르렀다.

 

cf) 1. 중국 승려 의정<구법고승전> 에서 일연이 인용.

이 책에는 구법 여행승려 모두 60인이 나옴.

동국인이 무려 9, 15% 혜업, 현태, 구본, 현각, 혜륜, 현유 ....

2. 각훈 <해동고승전> 현조, 현대범

3. 혜초<왕오천축국전> 혜초

---> 이들의 발길을 따라 그 길을 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역시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 때 가장 행복하다. 딱딱한 분석글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여... 읽어보고 싶다 위의 세 책.

 

[574]

일연 왈 <귀축제사>라는 한 귀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가고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결국 그곳이 진정 돌아갈 곳이 아니겠는가.

 

@ 인도로 간 여러 스님들

[575]

아리나말마 스님이다. 그가 나란타사에 머물며 율론을 많이 열람하고 패협에다 베껴썼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웬만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낸 모양이다. 패협은 패엽이라고도 쓰며, 경전을 기록하는 기다란 나뭇잎이다.....지금도 남아있는 패협을 보면 무척 고급스럽게 보인다. 가난한 순례자들은 제 몸의 치장 대신 이 종이를 사는 데 재물을 모두 바쳤던 것일까?

 

아리나발마는 돌아오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절(나란타사)에서 죽는다.

---> 눈물이 핑돈다. 가난한 순례자가 패협에 글을 베껴썼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아려온다. 그 열정..... 겸허함... 인간의 도전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중인도 마갈타국에 있는 나란타사 절에 가보고 싶다.

 

@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577]

일연이 이 조에 부친 은 추도사에 가깝다.

 

천축 길 하늘 너무 만첩 산인데

가련타 순례자들 힘써 오르네

외로운 배 달빛 타고 몇 번이나 떠나갔건만

이제껏 구름 따라 한 석장 돌아옴을 보지 못했네.

 

 

 

32.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계보

[582]

진표로부터 시작하여 영심심지로 이어지는 사제 간의 계보에 눈이 뜨인다. 일연은 이 세 사람을 그리는데 세 조나 할애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의 손으로 지금 전라북도를 대표할 금산사, 충청북도를 대표할 법주사, 경상북도를 대표할 동화사가 만들어지거나 커졌다.

 

@ 두 가지로 실린 진표의 전기

@ 일연이 지닌 점찰 신앙에 대한 애착

@ 두 번째 전기에서 구체화되는 미륵보살

 

@ 뼈를 묻은 자리에 솟아난 소나무

[596]

세 사람이 수행하는 방법은 스승의 그것과 방불하다. 제 몸을 버리는 용맹스런 정진과 참회 그것이야말로 진표가 한 수행의 핵심 아니던가?

 

@ 심지가 스승을 잇다

 

 

 

 

신주(神呪)

 

 

33. 밀교의 한 자락

 

@ 어떤 사람이 승려가 되었는가

[603]

출가의 동기를 밝히는 가운데서도 가장 내 마음을 치는 이야기가 다음의 경우다.

주인공은 신라의 승려 혜통.

 

[604]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하였다.

---> 드디어 나왔구나... 자식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보여주는 애절한 이야기... 혜통이 집착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출가하게 된....... 작가 구본형이 그의 저서 <신화읽는 시간>에서 집착을 이야기할 때 인용했다. 수달 어미의 마음이 남 같지 않다.

@ 신라의 밀교 승려

[605]

신주 편에서 소개하는 밀본, 혜통, 명랑 세 사람의 밀교승들은 모두 주문을 외워 어떤 어려움을 물리치고 있다.  

 

 @ 첫 밀교 승려 밀본

@ 혜통과 용의 질긴 싸움

@ 명랑의 신인종

 

 

감통(感通)

 

34.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 불교적 정신이 바탕 된 사회

[621]

정수()스님 얼어죽을 뻔한 여자를 구하다조의 전반부

40대 애장왕 때였다. 승려 정수는 황룡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겨울철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 저물 무렵 삼랑사에서 돌아오다 천암사를 지나는데 문밖에 한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 언 채 누워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 이에 옷을 벗어주고 벌거벗은 채 제 절로 달려갔다. 거적때기로 몸을 덮고 밤을 지새웠다.

---> 불교가 민간 대중들에게까지 얼마나 체화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천의 원리. 신라의 고갱, 첫 번째 스트리퍼.....

 

[623]

바로 감통 편은 이 같은 이야기로 누벼진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삼국유사 9개 편 가운데 여기를 가장 즐겨 읽는다. 이름 없이 살다간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불교를 매개로 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 옥면이 염불해서 서방정토 가다

@ 광덕과 엄장

@ 선율이 살아 돌아오다

 

 

35.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 절과 호랑이

@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643]

(호랑이와 김현의 대화)

어쨌건 죽을 목숨, 사랑하는 이의 손으로 최후를 맞겠다는 것, 다소 유미주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 번 죽음으로 여러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에, 사랑하는 이의 주검을 팔아 한 세상 잘살아 보자 요행을 바라겠냐는 김현도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다. 처녀 호랑이의 바람은 단 하나 자신을 위해 절을 지어달라는 것인데 이로 인해 절에는 호원사라는 이름이 붙고, 그래서 이 이야기가 사철 연기 설화로 분류된다.

 

@ 이어지는 신도징의 이야기

 

@ 호랑이는 호랑이의 굴로

[648]

신도징의 아내는 바로 사람 아닌 호랑이였던 것이다. 여기서 김현의 이야기와 공통점이 발견되고, 일연이 굳이 신도징의 이야기를 붙여 놓은 뜻을 알겠다.

 

호랑이는 결국 호랑이 굴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룻밤 풋사랑도 아니고, 제 몸으로 낳은 자식까지 버려두고..........못내 뒷맛이 쓰다.

 

[651]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킨 것 보다 짐승이면서 사람보다 더한 마음씨를 지닌 처녀 호랑이에게 오히려 사람인 김현이 감동된 것이 더 크다.

 

 

36.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 다시,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

@ 바위 속으로 숨은 뜻

@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세상

@ 경흥이 우연히 성인을 만나다

@ 저무는 사회 속의 고민

 

 

 

피은(避隱)

 

37. 숨어 사는 이의 멋

 

@ 숨어 사는 것의 뜻

@ 혜현이 고요함을 구하다

@ 낭지와 포산의 두 성인

 

@ 양손 스트레이트에 나가떨어진 연회

[686]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논리대로 쓰여진 일연의 은 재미 있다.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이 않아서 아니라.“

 

 

 

 

효선(孝善)

 

38. 불교가 보는 효도

 

@ 효심의 결정편

@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 두 세상을 산 사람

@ 진정 스님, 일연의 초상화

 

[701]

진정은 의상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는 이 조를 읽을 때마다 저자인 일연을 겹쳐 떠올리게 된다. 이조는 진정의 전기가 아니라 실은 진정을 빌려 일연 자신의 전기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어렵고 인생은 짧은 데 효도를 마친 다음이라니? 그건 너무 늦다. 내가 죽기 전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어머님은 많이 늙으셔서 오직 제가 옆에서 지켜야 합니다. 이 일을 놓고 출가라니요? 어찌 차마 그러겠어요?”

니다. 나를 위한다고 출가를 못하다니. 그건 나를 지옥 구덩이에 빠뜨리는 일이야 비록 살아서 삼뢰칠정으로 나를 모신들 어찌 효도라 하겠느냐? 나는 남의 집 문 앞에서 옷과 밥을 빌어도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정말 내게 효도를 하려거든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 역시 불교의 효사상이다. 유교와 다르다. 불교가 훨씬 쿨하다. 인연을 끊고 독립시키는....

 

[703]

진정의 스승 의상은 제자의 아픈 마음(어미 임종 못 본)을 달래주려 제자 3천 명을 데리고 소백산의 추동으로 갔다. 풀을 엮어 움막을 짓고, 3천명을 모아 약 90일동안 <화엄대전>을 강의했다.

--->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다. 마음결이 모두 곱다. 그리고 집착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들.   

 

 

39.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 향가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하나

[704]

일연이 삼국유사에 신라 향가 14수를 실어놓은 것에 대해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우리 고대 가요 중에 그 정형성을 최초로 획득했으며 지극히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한 이 시가 장르에 대해 비록 편린으로나마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오직 삼국유사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향가 하나에 머물지 않고 10세기 이전의 시가에 대해서 그렇다. 책 한 권에 실린 단 14수가 천 년의 시가사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 어떻게 무엇을 노래하였는가?

@ 향가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 노동요의 원조 공덕가

@ 호쾌한 기상이 서린 노래, 융천사의 혜성가

@ 충성심과 이기주의의 사이, 신충의 원가

@ 깨달음의 더할 데 없는 경지, 영재의 우적가

 

 

40. 일연, 혼미 속의 출구

 

@ 괴승 시비

[725]

순수 불교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일연의 태도에서 우리는 괴승의 요소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점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선각자적인 태도를 발견한다. 전쟁과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졌고, 민족에 대한 각성이라는 더욱 큰 문제가 그들 앞에 닥쳤다. 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일연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와 여러 부면에서 부딪혔던 것이다.

 

@ 일연의 생애

@ 본질 앞에서 수정해야할 방편

@ 표면적 전범과 이면적 전범

 

@ 혼미 속에서 찾는 출구

[739]

신라 사회는 고대 삼국시대에서도 중국의 문물을 가장 늦게 받아들였지만 가장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 재래신앙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던 사회 중심부에 외래의 불교가 파고 들어오는데 신라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거기에 종속되지 않았다. 재래 신앙과 불교 신앙의 조화 아래 신라인들의 독특하고 탁월한 불교문화를 창출해 낸 것이다. 이것은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급화된 문화로 옮겨갔음을 말한다. 향가는 신라 문화의 그 같은 특성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증거.

 ---> 이러한 융합의 정신을 2013년 지금의 우리가 배워야 한다. 서양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고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급화로 옮겨가는 방법을..

 

[741]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간 일연 종교와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 승려였다. 그가 삼국유사에서 원효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기술하고 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 자신이 원효 스타일의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의 모습으로 보였을 터다. 물론 승려이기에 그가 보여 준 행적은 일반적인 경우의 충격적인 것과 정도가 다르겠지만 승려의 신분 안에서도 분명 예외적이었다. 그러기에 누카리야와 같은 학자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을 법한데 이는 한마디로 사회사적 배경을 무시한 결론이다.

---> 이 책을 통해 일연과 만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고려시대의 고민이 지금 현재와 통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고민 해결방법도 삼국유사 속에 들어있다. 무신정권 몰락과 몽고의 중국 삼킴, 멘붕의 고려. 주체적인 각성. 역사에 대한 주체적 해석. 불교적 정반합의 사고. 일연, 원효....그리고 불교적인 효 사상....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스며든다...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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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6 23:28:51 *.108.69.102

은경씨가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네요.  역사적 인물을 느끼는 감각도 좋고...^^

 

대중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쓸 수 있다면

한 분야의 오리진도 될 수 있겠지요.

꾸준히 탐구하여 원하는 글쟁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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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9 14:45:31 *.58.97.124

챙겨서 코멘트 달아주시고.... 감사드려요, 선배님..^^

 

대중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쓸 수 있다면....

이것이 참 어려운 과제네요, 선배님.

 

관심을 어떻게 풀어낼 지

늘 고민입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마음대로 질러보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선배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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