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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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여기 좀 봐봐. 삼촌이 사진 찍어줄께. 정민이도 이쪽 좀 보세요. 하나, 둘, 셋!"
'찰칵!'
또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사진을 몇 컷을 더 찍고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수민아, 이 사진 봐봐. 너랑 은성이랑 정민이랑 나왔지?!"
"어! 정민이, 스파이더맨이다! ㅋㅋㅋㅋ" 사진을 보고 은성이가 말했다.
"어?! 정~민~이~, 스파이더맨~~~~~~ ?! ㅋㅋㅋㅋㅋ" 그 말에 수민이도 공감하는 듯 꺄르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알고보니, 찍힌 사진들 중에 한 컷속의 두 아이는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두살박이 정민이만 벽을 보며 마치 그 벽을 타는 듯 더듬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그 사진 한장으로 아이들의 웃음은 한 동안 계속됐다.
1박2일로 교외에 다녀왔다. 두어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친한 회사동료 형의 가족과 나의 가족, 이렇게 두 가족이 같이 움직였다. DSLR 카메라를 챙겼다. 내 DSLR 은 7년전 모델이어서 카메라가 크다. 사진 옮기고 현상하는 일련의 과정들도 최신형 같지 않고 불편해 요즘은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물론 카메라를 언제나 휴대하고 다닐만한 실력도 열정도 없다). 더욱이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꽤 좋아졌을 뿐더러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facebook 이나 블로그 등 웹으로 바로 바로 올릴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하지만, 이번 여행에 동행하는 아이들이 세 명이나 됐고, 녀석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미리 짐작했기에 오랜만에 DSLR 카메라를 들고 갔다. 아이들과 같이 인물사진을 찍을땐 DSLR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노는 사이사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사진 찍는 실력이 별로라 되도록 많은 사진을 찍고 그 중 괜찮은걸 고르는게 나의 생존(?!)전략이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담았고, 먹는 모습을 담았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담았다. 다만 수중카메라나 방수되는 가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즐겁게 물놀이하는 모습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둘째 날 아침도 순간순간 아이들의 모습을 찍었다. 아침을 먹고 리조트 로비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찍었다. 한동안 뜀박질을 멈추지 않던 녀석들이 숨을 헐떡이며 잠시 로비 의자에 앉았다. '스파이더맨 사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아 탄생(?!)하게 되었다.
'사진'은 '순간'을 담는다. 기억하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잊혀져버리는 '순간'을 카메라를 통해 '사진'이란 매체로 남긴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들의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의 추억이 되었지만, 몇몇 사진들은 '역사의 순간'으로 남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 놓으면 그 순간을 잊어버릴 걱정이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 예전에 찍은 사진을 찾아보게 되면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다. 순간의 이미지만 남고 그 외의 것들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한 장의 사진과 그 순간을 둘러싼 이야기가 '주루룩' 따라 나오기도 한다. 나의 비전문적인 사진들 - 전문가들이 봤을 때 '사진'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사진일지도 모르는 - 은 '내 생의 순간들이 허무하게 증발해서릴 수도 있다'는 아쉬움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진을 찍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통해 '삶의 일순간'을 담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삶 전체를 담을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삶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영상(비디오)는 누군가가 나를 찍어줘야 한다. 그렇기에 삶 전체를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녹음(오디오)은 나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말을 해야지만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더군다나 나의 삶을 영상으로 담거나, 소리로 담는다고 생각해보자. 그 어마어마한 용량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반면, 글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글은 쉽게 쓸 수 있고, 나홀로 할 수 있고, 그 저장용량도 크지 않다. 노트에 쓰면 그 노트를 보관할 작은 공간(상자 몇 박스?!)정도면 되고, 요즘처럼 컴퓨터로 쓰게 되면 손가락만한 USB에도 엄청난 분량의 글을 저장할 수 있다. 원할 때 사이사이 메모를 할 수도 있고, 때론 시간을 내서 나의 일주일을 촤라락 펼쳐보고 노트에 쓸 수도, 컴퓨터에 남길 수도 있다. 글은 삶을 기록하고 싶은 나의 욕구를 해소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가 될 것 같았다. '글'을 통해 나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자세하게, 그리고 더 많이 담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내 삶과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거야. 평범한 개인의 자서전을 쓰는거지.' 나의 목표는 그런 이유에서 태어난 듯 하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목표에 힘을 실어주신 분이 다름 아닌 나의 스승, 구본형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글로써 평범한 개인이 위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글을 통해 평범한 개인도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나는 사이사이 사진을 찍는다. 길을 걷다가 그저 그런 일상을 포착해 사진을 찍기도 하고, 고된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퇴근길 지하철의 풍경을 찍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도 한다. 그리고 사이사이 메모를 한다. 생각나는 것을 적기도 하고, 나에게 일어난 일을 무미건조하게 기록하기도 한다.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가 하면 일상 속 나의 수많은 감정들을 담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 타인의 목소리를 담고, 순간 순간의 사실과 생각들을 메모하는 등, 이 모든 행위들은 결국 '개인의 역사쓰기'를 위한 소중한 재료가 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재료들을 활용하게 '나의 역사'라는 멋진 요리를 만드는 요리법은 결국 '글쓰기'가 아닐까. 나는 글로 삶을 요리하는 멋진 요리사가 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글을 써보는건 어떤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잘 쓰지 못해도 좋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도, 지나가는 멋진 남자(또는 여자)를 보고 '멋지다, 잘생겼다, 저런 사람과 사랑하고 싶다'라는 시덥지 않은 생각도, 그 어떤 것도 괜찮다. 그런 사실과 생각들을 글로 옮기고, 그것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그런 글을 쓰고 또 쓴다면...... 결국 누군가는 삶을 맛있게 요리하는 멋진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잊혀져 버릴 수도 있는 개인의 역사를 모두의 역사로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모이고 모여, 다듬고 다듬어져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걸작으로 탄생할지 또 누가 아는가.
상상한다. 지금 이 순간의 기록이, 냅킨에 끄적이는 이 순간의 낙서가, 이런 조각들이 모여 나의 삶을 보여주는 멋진 책 한권으로 탄생하는 순간을...... 나는 즐겁게 상상해 본다.
글, 사람과 삶과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매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