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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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번잡할 때 산을 잘 찾는다. 나는 비록 성당을 다니지만 산에서 만나는 절에 들릴 때마다 절에서 풍기는 고요한 기운에 내 마음의 어지러움도 어느새 가라앉는 것 같다. 특히 물고기가 바람을 타다 들려주는 풍경소리는 잔잔한 소리 결에 내 마음도 절로 평안해진다. 불가에서는 물고기 문양으로 풍경을 만드는 이유를 '잠 잘 때도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늘 깨어 수도하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러한 정진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좁은 절 속에서 만나는 정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것 같기만 하다.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면 살 수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람 속에 사는 물고기'라면 그 자유로움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바람 속에 물고기'라는 역설이 나지막한 풍경소리에 실려 꽉 막힌 중생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라고 말이다.
지난 주말, ‘사기열전’을 읽다가 장자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오랜 만에 '장자'를 꺼내 읽었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짧은 예화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서술방식을 사용한다. 사마천에게 장자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노자 한비 열전>에서 나라의 벼슬을 맡아 자신을 도와 달라는 초나라 위왕의 초청을 전하로 온 사신에게 장자는 웃으며 말한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남들은 임금에게 등용되어 뜻을 펼쳐보려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찾아 다니는데, 장자는 이렇듯 찾아온 벼슬마저 거부하며 자유를 누리며 살려 했다. 장자의 호탕함에 덩달아 내 가슴까지 시원해 진다. 장자처럼 자유롭고 호탕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꾸어본다.
장자에게 자유는 곧 소통이었다. 내 속에 갇혀 살지 말아라! 나와 내가 아닌 것과의 소통이 이루어 지는 자유로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요컨대 ‘나’와 ‘남’이라는 경계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없을 때 가능하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변화' 라 한다.
그 유명한 장자의 호접몽이다. 자아와 타자의 관계는 구별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없는 것이라는 장자의 가르침! 고정된 자아상을 버리고 또 버려 맑은 연못처럼 마음이 맑을 때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리라.
자아의 삶이 얼마나 짥고도 유한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자기수양에 힘쓸 때 비로소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의 통로가 마련된다는 뜻이다. 흔히 우둔한 원숭이를 뜻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조삼모사의 비유 역시, 실은 소통의 논리를 의미하는 우화이다. 원숭이의 마음과 셈법을 이해하여 논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른바 열린 소통의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장자의 뜻이 담긴 우화가 바로 장자 제물편의 조삼모사 우화이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틀 속에 갇혀 생산성을 뽑아 내야 하는 우리네 일상은 늘 고달프고 구속당하는 삶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장자의 나비를 꿈꾸어 본다. 나비와 내가 동시에 보이는 자유로움을 꿈꾸어 본다. 결국 고정된 나를 비우고 관계 속에 담기는 물처럼 자유롭게 변화해야 가능한 일이리라.
바람을 타고 노니는 물고기처럼 일상을 헤엄치는 꿈을 꾸어 본다. 나를 버리자. 동시에 나를 세우자. 두 가지 눈을 뜨고 자유로 통하는 문을 두드려 본다.
2013-07-22
坡州 雲井에서
'바람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가 시원하고 홀가분하게 만들어 줍니다.
조삼모사 고사를 '소통'의 의미로 읽다니, 새로와요!
저는 아마 살로9에서 였을 거예요.
맥락을 잊어먹고, 정확한 단어도 휘발되어서요
'9기는 젖동냥으로 자라고 있어서 관심이 소중합니다' 정도로 제게 기억된 말을 생각해요.
형선님의 말이었어요.
지난 살롱9 목관 5중주 음악회에서 가족 모두 오셔서 들으셨지요
옆에서 가족의 모습을 보았어요.
큰 아이는 아빠를 닮았고, 작은 아이는 친구와 뒤에서 춤을 추었어요.
그 아이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두 엄마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요.
1 학기 애 많이 쓰셨지요? 정말 힘들던데요. ^^ 수고하셨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요. 가족도 회사도 다 놓고 몽골여행 가서 바람과 초원을 말처럼, 새처럼 노니다 오세요.
^^
형님, 도입부와 마무리 글 분위기 너무 좋아요. 오프 수업 글도 좋고, 상승국면으로 들어가시는 건가요?! ^^
그런데,
도입부에 자유 이야기로 시작해서 중간에 소통 이야기로 갔다가 마무리에 자유 이야기로 다시 가네요.
자유 이야기인지, 소통이야기 인지 조금 헤깔리는 듯. (물론 자유=소통 이라는 장자의 사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헤깔려요. ^^::)
역시 형님의 글은 소재 수준이 높아서 저에겐 아직 좀 어려운 듯....
사실. 저, 이 글 세번 읽었습니다....(지금 한 번 더 읽어보려고요 ㅋ )
제가 독해력이 좀 딸려서요. 그러니 그냥 참고만 해주세요 ^^::
p.s. 제가 중 2 수준의 독해력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몰라요 ㅜ.ㅡ
그래도, 딴지 걸고, 딴지 걸리고 해볼라구요. 도움 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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