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암
- 조회 수 2688
- 댓글 수 2
- 추천 수 0
제 글은 일반인들이 대상이 아닌, 현장에서 영업하는 보험에이전트를 대상으로 쓰는 글입니다.
특히 보험에이전트가 VIP시장 공략을 위해 왜,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실무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날팸은 쓴다~
혼돈 – 동면
제2절 23전 23승의 비밀
이순신과 마케팅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어느 무장(武將)의 검에 선혈처럼 새겨져 있는 문구. 영웅(英雄)을 넘어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 인물. 23전 23승, 전승을 거둔 불멸의 장수.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초인(超人). 어릴 적부터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던 완전무결한 사람. 바로 이순신, ‘그’다. 지금부터 역사적 영웅인 이순신을 통해 어려운 보험영업환경을 돌파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아볼까 한다.
솔직히 과거에 난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있는 그의 동상을 지나칠 때도, 명량해전에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비장함이 실린 교과서를 볼 때도, 그다지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에, 너무나 유명했기 때문에, 반대로 너무나 관심이 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조선을 구원한 불세출의 영웅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뒤늦은 나이인 30대 중반이었다. 반면교사는 다름 아닌 TV드라마였다. 모 방송사에서 제작했던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서였다. 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랜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한창 재미있을 시점에 다음 예고편을 보여주면서, 아쉬움과 짜증스러움의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첫 편부터 마지막 종 편까지 끝까지 완주한 드라마가 <불멸의 이순신>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인간 이순신을 알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라도 그를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감동했고, 분노했고 그리고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게 되었고, <난중일기>로 이어졌다.
혹시 <난중일기>를 읽어보았는가? 이 책이 재미있으리라는 기대는 접어두는 것이 좋다.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한 한 인간의 지독한 고뇌와 끝없는 번민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표현은‘몸이 불편하다’라는 문구이다. 그는 전란 내내 여러 질병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난중일기>를 잠시 살펴보자.
계사년 팔월 열 이틀 – 몸이 몹시 불편하여 누워서 하루 내내 끙끙 앓았다. 식은 땀이 때도 없이 흘러서 옷을 적셔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정유년 팔월 스무 하루 – 새벽 3시쯤에 곽란이 일어났다. 토하기를 10여 차례나 하고 밤새도록 괴로웠다.
병신년 삼월 스무 이틀 – 곽란으로 인사불성이 되었다. 대변도 보지 못했다.
병신년 삼월 스무 사흘 – 병세가 몹시 위험해져서 배에 머무르기가 불편하였다.
을미년 삼월 스무 엿새 – 저녁부터는 몸이 매우 불편하였다. 닭이 울 무렵에야 잠시 열이 내리고 땀이 흐르지 않았다.
한 줄 한 줄 읽어나갈 때마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말이지 영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탄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러한 고통과 고난을 극복했던 인물이기에 그는 영웅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지 모른다.
그의 생애를 조금씩 알아 갈수록,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직업적 관점에서, 영업적 관점에서 말이다. 먼저 영업적 측면에서 놀랄만한 사실은 그가 이룩한 성과(成果)다. 바로 ‘23전 23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 말이다. 훌륭한 장수가 많은 전투를 통해 확률적으로 높은 승률을 올릴 수는 있다. 하지만 스무 번이 넘는 전투에서 전승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이다. 전투에 임하는 장수들은 지금의 영업인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성과로 평가 받았다. 전투가 종료된 후, 적의 목을 베어 숫자를 세는 경우도 있었고, 귀를 베어 전공을 측정했다. 어찌되었든 장수로서 그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어떻게 전승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한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 철두철미한 전략, 변함없는 원칙과 신념, 조국에 충성심, 인재 선발의 안목, 부하에 대한 깊은 애정…… 그 이유는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을 것이다. 하지만 23전 23승이라는 성과는 너무도 완벽하다. 단순히 그의 탁월함과 유능함으로 그 모든 성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전승의 비밀은 무엇일까. 너무 답답해서 이 질문을 동료에게 물어보니, 동료는 간단 명료하게 해답을 주었다. ‘그는 패배할 싸움은 나가지 않았다’라고 대답을 해서 한참을 웃었다.
잠시 임진왜란으로 돌아가 보자.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시작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왜적은 불과 침공 하루 만에 부산성을, 4월 24일 상주를, 4월 30일 서울을, 개성과 평양은 60일도 채 되지 않아 함락시켰다. 조선의 신립과 같은 용장들이 목숨을 걸고 전선에 나섰으나,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왜군에게 속수무책이었다. 조선군이 모두 허수아비가 아닐진대, 조선군은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패배했을까. 조선군 패배에는 여러 요소가 있었겠지만, 그 핵심은 왜적의 신무기에 있었다. 바로 ‘조총(鳥銃)’이다. 조총은 새를 쏘아 맞힐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은 무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은 숙련된 왜군의 조총부대 앞에서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이는 조총의 유효사거리 50~100m밖에 되지 않았으며, 조선군이 사용했던 각궁(角弓)의 사거리는 150~300m나 되어 무기의 경쟁력은 뒤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조총은 명중률, 살상력, 화력에 있어서 조선군이 주된 무기였던 각궁에 비해 월등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왜군은 이미 전국시대의 전쟁을 통해 조총 사격에 숙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군이 왜군을 대적하기란 이미 열세였다. 결정적으로 조선군에게 난생 처음보는 무기인 조총의 위력은 ‘심리적 공포’ 그 자체였다. 만약 왜군에게 조총이 없었다면, 전쟁 초반에 그렇게 승승장구 할 수 있었을까. 결단코 아니다. 일본 육군의 승리에는 조총이라는 신병기에 철저하게 기반하고 있었다.
반면 왜군의 기세를 유일하게 저지한 곳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다. 조선 육군과 달리 조선 수군은 연전연승을 해나갔다. 그리고 23전 23승이라는 전승신화를 만들어 냈다. 조선 수군의 승리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순신의 탁월한 영도력으로 모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을까. 승리의 비밀은 바로 조선 주력함선인 판옥선(板屋船)에 있었다. 조선 수군에게 판옥선은 일본 육군의 조총에 버금가는 신병기라 할 수 있었다. 판옥선은 소나무와 나무못으로 만들어져 해전에서 강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내구성은 조선군의 승리를 좌우했던 화포의 장착을 가능케 하였다. 판옥선은 한 척에 20문 이상의 위력적인 화포를 탑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세키부네라 불리는 일본 함선은 재질이 약한 삼나무와 쇠못으로 만들어져 내구성이 떨어졌다. 특히 해전에서 결정적인 무기인 화포의 강한 반동을 견딜 수 없었다. 세키부네와 같은 함선에는 화포 장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일본의 대장선 아다케부네(安宅船)의 경우에도 기껏해야 1~3문 정도의 화포를 장착했을 뿐이다. 이 화포의 장착 여부는 조선군과 왜군의 해전에서 승패를 좌우했다. 화포 장착이 불가능했던 일본 수군은 울며 겨자먹기로 화포 대신 조총을 주력 무기로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왜군의 장기인 백병전을 하기 위해 최대한 승선전투전술(Boading tactics)를 구사하려 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의 전략적 우세를 철저하게 활용했다. 그는 해전에서 철저하게 원거리 공격을 고집했다. 조총의 사거리가 50~100m에 불과한 반면에 조선의 화포는 500m에 달했기 때문이다. 해전에서 조총과 화포는 비교가 되지 못했다. 조선 수군이 줄기차게 원거리 공격을 하다 보니, 왜군의 강점인 백병전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수장(水葬)되는 경우가 다반수였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閑山大捷)에서 사용했던 학익진(鶴翼陣)은 화포를 통한 원거리 공격의 결정판을 보여주고 있다. 판옥선은 이 밖에도 다양한 장점을 소유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진법(陣法)을 구사할 수 있는 유선형 구조, 백병전에 유리한 3층 구조 등 많은 우수성을 소유한 함선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에 비해 군사적 측면에서 높은 핵심경쟁력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핵심경쟁력에는 이순신의 리더십과 판옥선(板屋船)이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전쟁무기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일본의 도선을 방지하기 위해 판옥선을 3층구로 개조했으며, 그 유명한 돌격선 거북선을 창조했다. 또한 살상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지자총통, 현자총통, 별황자총통 등 화포의 다양화를 끊임없이 준비해왔다.
최고의 리더십은 승리이다. 리더십은 승리를 통해 성장하고, 확장하고, 강해진다. 그는 월등한 군사적 우위와 전략적 사고를 통해 승리를 만들어냈다. 반복되는 승리는 군사들에게 자신감과 리더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쌓여갔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리더십도 좋고, 죽음을 각오한 결의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비밀병기가 전장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보험으로 밥을 먹고 사는 우리는 인간 이순신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영업이라는 세렝게티에서 생존할 수 있는 우리만의 최종병기는 무엇인지 자문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