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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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려는 책의 키워드는 ‘여인의 변화’이다. 왜 하필이면 여인일까? 여성, 여자, 아줌마, 같은 명칭도 있는데 난 여인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여성은 남성과 대비되는 특성을 말하는 것 같고, 여자는 생물학적 구분을 말하는 것 같고, 아줌마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남성도 여성도 아닌 모양은 여자이나 여성다움이 퇴색해 버린 느낌이 들어 싫었다. 여인이란 단어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란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봄 소쩍새의 울음과 여름 먹구름 속 천둥의 부르짖음으로 그려지는 젊음의 뒤안길을 빠져 나와 자기 꽃을 피워낸 여자를 여인으로 부르고 싶었다. 인생의 봄과 여름을 지나면 중년이온다. 중년의 시기는 변환의 시기이다. 노오란 꽃으로 변하는 시기다. 중년은 여성들에게도 자기다운 꽃으로 변하는 시기이다. 이렇게 자기다운 꽃을 피워낸 여성들을 여인으로 부르고 싶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 전 수상 마가렛 대처를 우리는 ‘철의 여인’이라 불러준다. 제주 ‘올레 길’로 유명한 여인이 있다. 서명숙씨다. 그녀는 23년 기자 생활을 버리고 오랫동안 갈망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길’ 산티아고 길에 선다. 그리고 이 여행 끝 무렵에 삶의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배낭마저도 벗어버린 후 홀로 산티아고 길 위에 서게 된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비에 씻겨 내린 순정한 초록으로 뒤덮인 산을 보면서 용기를 되찾게 된다. 그녀는 순전한 초록으로 뒤덮인 산을 내달리면서 무언가 핏줄기를 타고 흘러넘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느낀 것은 자유였고 기쁨이었다. 그날 내리는 빗속에서 그녀는 그저 오롯한 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딸도, 전직기자도 아닌 그저 ‘서명숙’이라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기 아닌 것들이 빗속에 씻겨 나간 후 만난 자신을 이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를 찾는 길 위에서 자기 아닌 것들이 떨어져 나간 후 마음에 떠오는 것이 고향 제주였고 산티아고 길 위에서 누린 위안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산티아고 길보다 아름다운 제주의 길을 만들리라 다짐하고 귀국 후 제주 올레 길을 만들었다. 나는 서명숙씨를 주저 없이 여인이라 불러준다.
모든 길 위에는 스토리가 있다. 가지 않았던 길로 들어서는 순간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상에 내가 만든 오솔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내가 만든 오솔길에 한 두 사람이 다녀가고 사람들이 나의 오솔길에서 위안과 희망을 얻게 될 때 나는 노오란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우리는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빛나 보인다. 가장 빛나 보이는 삶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나의 까미노! 내가 개척한 길!! 내 이야기가 존재하는 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가슴을 뛰게 하는 나의 길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여인의 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야기의 시작은 내면의 방황이 절정을 이루고 있던 30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이 시절 우연히 참석하게 된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나는 백발의 노신사를 만났다. 이 백발 노신사와의 만남으로 나의 30대 중반의 방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