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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 유형선
1. 역사 속에서 인상적인 장면 3개를 선택하여 간단히 묘사(그리듯 설명)하세요.
1) 박노해 사노맹 (남한사회주의 노동자연맹) 사건 법정 최후 진술
써야 한다. 써야 한다. 오늘의 법정을 기록해야 한다.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결국 사형이었다.
박노해의 최후진술은 장엄했다. 3시간 10분이라는 유례없이 긴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의 성장과 사노맹 활동,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의 오류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피력했다. 법정을 가득 메운 3백여명의 방청객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5차례나 걸쳐 큰 박수로 호응했다.
박씨의 손에는 소설 단행본 두께의 원고가 들려 있었고, 최후진술은 시인답게 재치 있고 말끔한 어조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면서도 방청객을 웃기기도 했고 울리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진정 나라의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했고 이런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박씨의 최후진술이 길어지자 재판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후 8시 5분쯤 박씨가 마지막으로 시를 낭독하려 하자 곧바로 10여명의 전경들이 박씨를 끌고 나갔다.
저 밤하늘을 보고 있으니, 최후진술을 마치지 못하고 끌려가면서도 웃는 박노해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웃는 박노해의 얼굴을 떠올리며 박노해의 죽음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나브로 알아차렸다. 어느 누구도 박노해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2) 공자와 노자의 만남
나는 공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오로지 노력만으로 인생역전을 이루어 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서른 살에 홀로서기를 다짐하며 ‘삼십이립’을 선언했었다. 그러나 오늘 노자 선생을 만나고 그 동안 내가 쌓아온 ‘나’라는 존재의 거울이 깨지듯 산산이 깨져버리고 인생을 바로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송나라에서 상나라의 예법을 배웠고, 주례의 경우 노나라에서 독학으로 깨우쳤다. 하지만 무엇인가 늘 아쉬웠다. 주례의 본산인 주나라에 가서 배워야 제대로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주나라의 낙읍에 사시는 시대의 현인 ‘노자’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드디어 오늘 노자 선생을 만났다. 제자들을 뒤로 하고 홀로 선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찻상을 앞에 놓고 선생과 물끄러미 마주앉았다. 정적을 깬 것은 선생이었다.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한 눈빛을 가진 노자 선생께서 정적을 깼다. ‘저에게 무엇을 물으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나는 공손히 그러나 힘주어 ‘예’가 무엇인지 물었다. 예를 배우기 위해 주나라까지 찾아왔다는 말씀도 드렸다. 예를 가르친 성현들의 이야기 속에서 깨달은 에너지를 말씀 드렸다. 내 가슴에 있는 진정한 ‘예’를 깨우치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여드렸다. 또한 ‘예’의 힘으로 세상의 혼란을 잠재워 보고 싶은 꿈이 가득했다.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삼십대의 젊은 내 자신을 보여드렸다. 짧은 질문 속에 내 가슴 가득한 꿈을 실어 질문을 드렸다.
선생은 조용히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넘기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또한 군자는 때를 만나면 입신양명하겠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고 명군의 눈에 띄지 못하면 떠돌이 신세가 될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뒤통수를 한데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분명 나는 오늘의 가르침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노자 선생의 가르침은 내 인생이 크나큰 교훈이다. 나아갈 줄 알면 물러나는 법도 배워야 하며, 용기를 알면 비겁함도 배워야 하며, 직진을 알면 돌아가는 법도 배워야 하며, 강직함을 알며 융통성도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 가르침이 내 영혼에 둥지를 틀고 있다.
3)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제와는 어쩔 수 없이 대결해야 한다. 시대 속에 던져진 나의 운명에 나는 움츠렸었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굳혔다. 승산 없는 싸움으로 보이지만 나는 이 싸움을 의젓하게 마주하리라. 단 한편의 시를 쓰고 죽고자 할 때 비로소 이런 시가 나오는 것 같다. 언제라도 역사가 나에게 희생을 요구할 때 나는 내 자신을 십자에게 매달 준비가 되었다. 내 모가지를 드리우고 조용히 피를 흘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음을 나는 선명하게 느꼈다.
2. 이 중 하나를 선택하고 선택한 이유를 해석(해명)하세요. 잡다하게 풀지 말고 가장 중요한 동인 하나를 잡아 집중적으로 탐구하시오.
박노해의 최후진술을 꼽습니다. 박노해의 법정에 끌려오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참으로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힘은 위대합니다. 한 인간의 다짐은 마치 휴전선을 마주 대하는 북한의 위협만큼이나 국가에게는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검찰이 밝히는 것처럼 정당 노동 학원 종교 청년운동단체 등 각계각층에 3천여 조직원을 침투시켜 놓고 전국적 규모의 조직을 결성, 민중봉기를 통한 체제전복을 기도하였다. 또한 박씨는 이른바 보급투쟁을 통해 2억원 이사의 조직운영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안가와 인쇄소 운영을 하여 실천적 투쟁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한 체제전복 혁명가 박노해는 감옥에서 스스로를 죽입니다. 국가가 박노해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죽였습니다.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부활시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시인은 결코 자신의 과거 속에 묻혀 살지 않으려 합니다. 2000년부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쟁터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며 ‘생명/평화/나눔’을 내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박노해는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살린 이유를 시의 언어로 말합니다. ‘길을 잃거든 빳빳해진 네 목을 쳐라!’ ‘길이 끝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저는 박노해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스스로를 죽이고 스스로를 재생시켜 변신하는 부활을 배우고 싶습니다.
3.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세요.
제가 제 스스로의 주인입니다. 박노해 시인에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가르침을 배웁니다.
어제 저는 제 자신을 메타포로 표현해보라는 질문에 우물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우물이다.
나는 비록 좁지만
하늘을 담고 있다.
제 자신이 참으로 좁다고 질책했습니다. 더 넓게 파고 싶어서, 더 깊게 파고 싶어서 그렇게 책에 매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구본형 선생님을 따라 온 것도 같습니다. 더 넓게 더 깊게 파면 더 큰 성취를 이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의 내면에는 이미 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제 우물은 분명 하늘을 담고 있습니다. 구름 진 하늘도, 비 오는 하늘도, 청명하게 맑은 하늘도 담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오는 데로, 폭풍이 오면 오는 데로, 무지개가 뜨면 뜨는 데로 비추일 뿐입니다. 구름에 하늘이 담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 우물 속 깊이는 알 수 없습니다. 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사람은 제 자신입니다. 누구도 대신 해서도 안되고 대신 해 줄 수도 없습니다. 제 마음의 우물을 보며 매일 어떤 하늘이 담겨 있는지 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물에서 물을 떠 올리겠습니다. 그 물로 글을 쓰겠습니다.
저는 책을 쓸 것입니다. 거기에는 스스로의 가슴속에 비추인 하늘을 퍼 올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고전 속에서 본 현인들의 이야기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쓸 것입니다. 폭풍우 치는 하늘이 마음에 담겨 괴롭고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것 입니다. 그 폭풍우 치는 밤에 마음의 우물을 길은 사람들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고요한 새벽에 우물을 길러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한 세상이 원망스럽고 분통하여 새로운 정신적 세상을 그려낸 플라톤의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조삼모사에 기뻐하는 어리석은 원숭이 같은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너의 셈법을 바꾸어보라는 장자의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나치의 폭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살아남아 슬픈 브레히트의 시를 쓸 것입니다. 아내를 위해 자식을 위해 나의 모습을 숨기고 억누르고 자꾸만 감추려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쓸 것입니다. 우리들 좁은 속에 담긴 하늘을 노래할 것입니다. 비록 좁지만 작은 우물 속에 깃든 하늘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울 속에서 변치 않는 맑은 물을 길어 올릴 것입니다.
제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할 것입니다.
산에 가서 마음의 짐을 내려본 사람은 산에 맛들립니다. 마음의 짐을 친구와 이야기하며 풀어본 사람은 우정에 맛들립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짐을 지고갈 용기를 얻은 사람은 기도에 맛들립니다.
책도 마찬가지 입니다. 책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경험을 맛보면 책에 깊이 맛들립니다. 이 매력을 누구는 '치유'라고도 하고 누구는 '깨달음'이라고도 합니다. 무엇이라 칭하던 이 에너지의 근원을 찾아보려 탐색을 시작합니다. 마치 강의 시원을 찾으러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강의 시원이 '고전'임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고전이 깊은 산골에서 인적 없는 곳에서 찾은 옹달샘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내 거대한 폭포임을 깨닫습니다. 수 백년 수 천년을 이어온 폭포 같은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이게 고전을 찾는 이유입니다.
坡州 雲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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