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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일 15시 08분 등록

아침을 먹고 가방을 챙겨든 후에 느긋하게 집에서 나와 직장을 향합니다. 걸어갈까 자전거를 타고 갈까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기로 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보라색 이쁜 꽃이 도랑에 피어 있습니다. 어린시절 달개비라고 하던 풀인데 수없이 지켜본 풀이지만 보라색 이쁜 꽃이 눈에 들어 오는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습니다. 큰 사거리의 신호등을 건너고 나니 연분홍의 애기 메꽃이 피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팔꽃이라고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아는 형님의 말씀을 듣고는 마음이 자꾸 가는 꽃입니다. 꽃을 잠시 바라보는 마음을 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리를 건너서 또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립니다. 메타세쿼이아에 매미가 우화하면서 벗어 놓은 허물들이 꽤 여럿 달려있습니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아 길을 건넙니다. 길 옆의 메타세쿼이아에 매미들이 열심히 울고 있습니다. 매미소리가 어지간한 차소리를 이길 만큼 큰 소리가 납니다. 아이들이 보는 과학잡지책에 도시와 농촌의 매미의 분포가 다르다던데 아마 도시에 많이 사는 매미 종류가 더 시끄럽지 않을까 잠깐 생각을 해 봅니다. 주변의 자동차 소리를 이기고 짧은 시간에 짝짓기를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매미들이 낮은 곳에 앉아 있습니다. 어린시절 잠자리는 많이 잡아 봤어도 매미는 많이 잡아보지 못했는데 매미들이 쉽게 잡힙니다. 한마리 두마리 저나무에서 세마리째..네마리째 금방 손에 가득할 만큼 잡았습니다. 작은 생명의 떨림이 손에 전해져 옵니다. 어린 시절에는 많은 생명을 잡고 죽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러지는 않습니다. 매미의 떨림과 소리를 느껴보고는 풀어 줍니다. 위험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매미는 궁벵이로 오랫동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눈 앞에까지 왔다가 사라진 것이겠지요. 다음 번에는 사람의 손이 닿는 낮은 곳에 안지 않기를 바라면서 놓아주지만 요즘 오고가는 출퇴근 길에 언제나 많은 매미를 잡았다가 놓아 줄 수 있는 것을 보면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였겠지요.

 

어제는 오년을 넘게 함께 일했던 회사를 접으면서 일부의 동료는 남아 있는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기로 하고 일부는 구조조정으로 퇴사를 하게 되어서 송별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그것을 발표하던날 여러가지 감정이 머리를 헤집고 들어 왔습니다. 남게 되어 기쁜 것도 떠나게 되어 슬픈 것 만도 아니지만 남은 자로서 급작스럽게 회사를 정리하고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쉽지가 않습니다. 있을 때 잘 하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지만 어리석게도 옆에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늦었지만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메일을 후배에게 보내었습니다.

 

매미처럼 위험이 다가오는 줄 모른 것은 아니지만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또는 조금 덜 벌고 덜 쓰면 되지뭐 하면서 애써 무시한 것은 아니었는지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조금 덜 벌고 덜 쓰는 전략이 유효한 것인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이제 길어야 두달 남은 일들이 마무리 되면 저를 비롯한 남겨진 동료들 또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저 자신도 작은 일은 아니지만 아끼는 두 후배가 더 나은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 일을 같이 하던 회사의 본부장을 만났습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후배를 데려가시는 것이 어떻냐고 제가 사업을 하면 제가 데리고 가고 싶은 친구인데 일을 같이 하셨으니 잘 아실테니 어떠신가 하고 당부를 했습니다. 다행히 본부장님도 오히려 와주면 고맙겠다라고 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부탁을 드리지 않아도 상황을 알게되면 후배사원을 데리고 가고 싶어하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다 본인이 닦아놓은 길이지요. 다만 저는 숟가락 하나 더 놓고 생색을 내어 봅니다.

 

회사로 들어와서 후배에게 몇 가지 조언아닌 조언을 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경험이 조금 많다는 핑계로 그냥 몇 마디 잔소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회사를 선택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연봉협상에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지금의 현재와 비교해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현재 회사가 어려워서 후배들에게 넉넉하게 주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걱정이 더 드는 것이겠지요. 많은 경우 지금 받고 있는 직장의 연봉을 기준으로 생각을 하게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이 이직을 하면서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말해주었습니다.

 

한 오년동안 좋은 후배들을 만나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제 실력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복을 많이 받았으니 복을 지어야 할텐데 그게 쉽지는 않군요.

 

먼저 나가게 된 후배들과 나중에 나갈 후배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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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08:46:29 *.108.8.66

따뜻한 선배를 둔 후배는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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