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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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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7일 07시 35분 등록
이건 밑줄 긋기를 한 것을 옮겨 적어두는 것보다는 그 사건을 기억해 두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가 좀 곤란하다.
한 장 한장이 하나의 큰 사건이고 이야기이다. 

그래도 소설 중에 몇 가지 삶을 웃어버리는 농담이나, 결코 웃지 못할 슬픔이 있어서 옮겨 적어 놓는다.

MeStory를 늘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것을 읽다가 내 삶을 읽게되고, 내 부모님의 삶을 읽게 되고, 내 친구의 삶을 읽게된다. 삶을 재해석 하는 순간을 자연스레 맞게 된다. 그런데, 그걸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5분이나 10분정도로 생각하고 말기엔 그것은 자꾸 삶에 등장하는 어떤 것이다. 앙금처럼 있다가 물길이 거세질 때 한번씩 뒤집어져 올라온다. 

바람이 끝자락에 찬기운이 묻어 있다.
밤공기는 덥지 않다. 곧 입추다. 낮과 밤 모두 깨어 있기 좋은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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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6 - 허삼관매혈기

15. "아들아, 너도 피 팔러 자주 가느냐?"
허삼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전 피를 판 적이 없는데요."
"피도 안 팔아봤으면서 무슨 뼈대가 튼튼하다는 소릴 하느냐? 나를 속이려 드는구나."

20. "밥 한 그릇을 먹어야 겨우 피 몇 방울이 만들어진다는데, 이걸로 두 사발이면 도대체 밥을 얼어마 먹아야 한단 말이우?"

22. "우린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그저 물만 몇 사발 마셨을 뿐이오. 지금 또 몇 사발 마시고, 성안에 들어가서 또 몇 사발 들이켜고.... 계속 마셔서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이 많이 마시면 몸속 피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이지 물이 핏속으로 들어가서....."
"물이 핏속으로 들어가면, 피가 풀어지지 않을까요?"
"묽어지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래야 피가 많아지지 않겠나."

23. "간혹 피를 팔겠다는 사람은 많고 피가 필요한 사람은 적을 때가 있지 않겠어? 그때는 바로 평소에 누가 이 혈두와 교분이 두터운가가 중요하지. 그자와 교분이 두터운 사람의 피가 팔ㄹ게 된다 이 말씀이야..... 여기서 말하는 교분이란 무엇이냐? 이 혈두의 말을 빌리자면, '피를 팔지 않을 때도 자기를 생각하고, 평소에도 늘 자기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군. 평소에 그를 생각한다는 게 뭐냐 하면 말이야."
방씨는 지고 있던 수박을 가리키며 푸념했다.
"이게 바로 평소에 그를 생각하는 거지."
30. "여기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구.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그들이 주문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허삼관은 소리칠 때 손으로 탁자를 치는 모습이 신기해, 자기도 짜라서 탁자를 치며 주면했다.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황주는..... 데워서....."  

32. 어니 삼관이, 자네 피 팔아 번 돈 어떻게 쓸지 생각해봤나?"
"아직 안 해봤는데요,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 일에 써야죠."

35. "삼촌, 여자를 찾아 결혼하고 싶어요. 요 며칠간 줄곧 피 팔아 번 돈 삼십오 원을 어떻게 쓸까 생각했는데요, 할아버지께 몇 원 드리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돈 쓴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삼촌한테도 어느 정도는 드리고 싶었어요. 친척들 중에 삼촌이 저한테 가장 잘 해주셨으니까요. 하지만 좀 아쉽더라구요. 이 돈은 그냥 제 힘을 들여 번 돈이 아니라 제 피를 팔아서 번 돈이잖아요. 드리기가 좀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삼폰, 조금 전에 갑자기 마누라나 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 팔아 돈을 쓸 곳을 찾은 셈이죠. 삼촌, 과일로 배를 채웠는데 어째 꼭 술 한잔 마신 것 같네요. 얼굴이며 목, 발바닥, 손바닥까지 되다 확 달아오르는 게 말예요."

3장.
42. "샤로릉빠오 이십사 전, 훈툰 구 전, 매실 십 전에 사탕을 두번 샀으니 이십삼 전, 여기에 십칠 전짜리 수박 반 통까지 하면 모두 팔십삼 전이네....... 나한테 언제 시집 올 테요?"
"아이야." "내가 왜 당신한테 시집을 가요?"
"당신한테 오늘 쓴 돈이 모두 팔십삼 전이나 된다구."
"당신이 그냥 대접한 거 아녜요? 난 그저 공짜로 생각하고 먹었는데. 그것들을 먹으면 당신한테 시집가야 한다고는 안했잖아요."
허옥란이 딸꾹질을 하면서 말했다.
"나한테 시자오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소? 나한테 시집오면 내가 얼마나 아껴주고, 보호해주고, 또 맛있는 음식도 사줄 텐데......"
"아이야. 당신한데 시집 간다면 난 절대 이렇게 안 먹어요. 시집간 후라면 결국 내 것을 먹는 건데, 아까워서 어떻게 그래요? 진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먹었을 텐데."
"후회할 필요 없어요. 나한테 시집오면 되는데요, 뭘."

47. 사실 허옥란은 속으로 허삼관이 하소용보다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외모도 하소용보다 좀 낫고, 주머니의 돈도 더 많고, 게다가 힘도 하소용보다 세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허삼관을 볼 때마다 괜히 웃음을 지었다. 

4장. 
52. 허옥란은 오 년 동안 아들 셋을 낳았는데, 허삼관은 애들 이름을 각각 허일락, 허이락, 허삼락이라고 지었다. 
삼락이가 십오 개월이 되었을 때 허옥란이 허삼관의 귀를 잡아 당기며 물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당신은 바깥에서 희희낙락했겠다?"
"난 웃은 적 없어. 그저 좀 히죽댔을 뿐이지. 소리를 내서 웃지는 않았다구."
"아이야."
허옥란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니까 애들 이름이 일락, 이락, 삼락이지. 내가 분만실에서 고통을 한 번, 두 번, 세 번 당할 때 당신은 밖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즐거웠다 이거 아냐?"
*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이름을 짓고 싶다. 


5장. 
53. 성안에서 허삼관을 아는 사람들은 이락이의 얼굴에서 허삼관의 코를 찾았고, 삼락이의 얼굴에서는 허삼관의 눈매를 읽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일락이의 얼굴에서는 허삼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락이가 허삼관을 전혀 닮지 않았다고 수군거렸다. 입이 그나마 허옥란을 닮았고, 다른 곳은 엄마조차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허삼관이 이 아이의 아버지일까? 아니라면 일락이를ㄹ 세상에 내놓은 씨앗을 허옥란의 몸에 심은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하소용은 아닐까? 이런 말이 나오는 건 일락이의 이목구비가 점점 하소용을 닮아갔기 때문이다. 

76. 허삼관은 늘 허옥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락이는 나를 닮고, 이락이는 당신을 닮았는데, 삼락이는 저 녀석은 도대체 누굴 닮은 거지?"
 허삼관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세 아들 가운데 일락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열 받게도 일락이가 다는 놈의 자식으로 판명된 것이다. 그때부터 허삼관은 등나무 평상에 누워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있다가 가끔씩 상심에 찬 눈물을 흘렸다. 허삼관이 눈물을 흘릴 때면 삼락이가 다가와 자기도 따라 울었다. 삼락이는 아버지가 왜 우는지 몰랐고, 자기가 왜 우는지도 몰랐다. 단지 다른 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자기도 따라서 재채기를 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상심이 그대로 전해졌던 것이다. 

85. "........ 나랑 의논할 생각하지 마. 나하고는 상관없으니까. 이건 하씨 집안의 일이라구. 사람들 말이 내가 만일 그 돈을 물어주면 돈 써서 자라 대가리 짓을 하는 거라고 하더군. ......  됐어, 됐다구. 다시는 울지 말라구. 당신 계속 울고만 있는 거 보기 싫어 죽겠으니까. 이렇게 하지. 당신이 하소용한테 가서 이렇게 전해. 당신과 십 년 동안 산 정을 생각해서, 또 일락이가 구 년 동안 날 아버지라고 부른 정을 생각해서 일락이를 하씨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내가 키울 거지만, 이번의 이 돈 만큼은 하소용이 내야 한다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사람들 볼 낯이 없다구 말이야. ...... 이런 제기랄, 이거 하소용한테 너무 후한 거 아냐?"

13장
121. "삼관이, 내가 방금 하소용 집을 막 지나는데,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자네 부인하고 하소용의 부인이 싸우면서 욕하는 걸 보고 있더군. 아마 최소한 서른 명은 될 거야. 그 여자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얘기들 ...... 차마 못 들어주겠더라구. 사람들은 웃고 난리고 말이야. 또 몰래 자네 이야기도 하더군. 허삼관이 피를 팔아서 자라 대가리 노릇을 했다구 말이야...."
"내버려두쇼."
허삼관이 탁자 옆의 의자에 앉으며 문 앞에 서 있는 방씨에게 말했다.
"그 여자는 원래 제멋대로인 여자니까, 난 상관없다구. 삶은 돼지가 뜨거운 물 무서워하는 거 봤나?"

19장.
163. -167.
이날 밤, 온 식구가 침대에 누웠을 때 허삼관이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지금 제일 원하는 게 먹는 거라라는 거 나도 안다. 밥에다 기름에 볶은 반찬, 고기며 생선이며 하는 것들이 먹고 싶겠지.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너희도 같이 즐거워야겠지? 설탕을 먹었어도 뭔가 또 먹고 싶다는 거 내 안다. 뭐가 또 먹고 싶으냐? 까짓 거 내 생일인데 내가 조금 봉사하지. 내가 말로 각자에게 요리를 한 접시씩 만들어줄 테니 모두 잘 들어라. 절대 말을 하거나 입을 열면 안 돼. 입을 열면 방귀도 못 먹는다구. 자 다들 귀를 쫑긋이 세우도록 그럼 요리를 시작하지. 뭘 사먹고 싶은지 주문부터 해야지. 하나씩, 하나씩, 삼락이부터 시작해라. 삼락아, 뭘 먹고 싶으냐?"

164. "뚜껑을 여니 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자, 젓가락을 들고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고......"
허삼관은 침 삼키는 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걸 느꼈다.
"삼락이 혼자 삼키는 소린가? 내 귀에는 아주 크게 들리는 게 일락이, 이락이도 침을 삼키는 것 같은데? 당신도 침을 삼키는구먼. 잘 들으라구. 이 요리는 삼락이한테만 주는 거야. 삼락이만 침 삼키는 걸 허락하겠어. 만약 다른 사람이 침을 삼키면 그건 삼락이의 홍사오러우를 훔쳐먹는 거라구. 다른 사람들 요리는 나중에 만들어줄 테니까 그러지들 말라구. 먼저 삼락이 먹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 요리는 따로 만들어줄께. 삼락이 잘 들어라. 한 점 입에 넣고 씹으니까 맛이 어떠니? 비계는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살코기는 보들보들한게 ..... 내가 왜 약한 불로 고았는지 아니? 맛이 완전히 스ㅕ들게 하기 위해서야. 삼락이의 홍사오러우는 ...... 삼락아, 천천히 먹어라. 자 , 다음은 이락이. 넌 뭘 먹고 싶니?"
"저도 홍사오러우요. 전 다섯 점 썰어주세요."
"좋았어. 이락이한테는 다섯 점을 썰어서 살코기와 비계를 반반씩 해서 물에 넣고 삶은 다음, 식혀서 다시......"
"아버지, 형하고 삼락이가 침 삼켜요."
"일락아."
허삼관이 꾸짖었다.
"아직 네가 침 삼킬 차롁 아니잖아. "
그러고는 요리를 계속했다. 
"이락이 고기 다섯 점을 기름에 볶아서 간장을 뿌리고, 오향을........"
"아버지, 삼락이가 아직도 침 삼켜요."
"삼락이가 침 삼키는 건 자기 고기를 먹는 거야. 네 고기가 아니잖아. 네 고기는 아직 다 안됐잔니......"
허삼관은 이락이의 홍사오러우를 만들어준 다음 일락이한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일락이는 뭘 먹을래?"
"홍사오러우요."
허삼관은 기분이 약간 상했다.
"세 놈이 죄다 홍사오러우를 먹겠다니........ 좀 일찍 말하지 않고, 일찍 말했으면 한꺼번에 만들잖아. 자, 그럼 일락이 줄 고기 다섯 점을 썰어서......"
"전 여섯 점 주세요."
"일락이한테 여섯 점을 썰어서, 고기와 비계를 반반으로 ........"
"고기는 빼주세요. 전부 비계로 해주세요."
"반반씩 해야 맛있는 거야."
"전 비계만 먹고 싶어요. 살이 하나도 없는 걸로 먹고 싶어요."
이락이와 삼락이도 함께 소리쳤다.
"우리도 비계 먹고 싶어요."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비계로 홍사오러우를 만들어준 뒤 허옥란에게는 붕어찜을 해줬다. 붕어에 훈제 고기, 생강, 버섯을 함께 넣어 소금을 살짝 바르고 황주를 뿌린 뒤 잘게 썬 파를 얹어서 한 시간 정도 익힌 다음, 뚜껑을 여니 맑은 향기가 방안 가득히......
허삼관이 눈에 선하도록 붕어찜을 만들고 나니, 방 안 가득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꾸짖었다. 
"이건 너희 엄마를 위해 만든 건데, 너희는 침을 왜 삼켜?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 이젠 자야지."
마지막으로 허삼관은 자기가 먹을 돼지간볶음을 만들었다.
"돼지간을 먼저 작게, 아주 작게 썰어서 사발에 담은 다음, 소금을 뿌리고 얼레짓가루를 입히는 거야. 얼레짓가루가 돼지간을 신선하게 유지해주거든. 그 다음에 황주 한 반을 뿌리는데, 황주는 돼지간의 냄새를 없애주지. 그 다음에 파를 잘게 썰어 얹고서 솥의 기름을 충분히 데워져 김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돼지간을 기름에 넣고 한 번, 두 번, 세 번 뒤집어서......."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락, 이락, 삼락이가 허삼관을 따라 계속 볶아대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말렸다. 
"안 돼. 세 번만 뒤집으면 된다구. 네 번부터는 굳는단 말이야. 다섯 번부터는 질겨지고, 여섯 번까지는 볶으면 씹을 수조차 없게 된다구. 그래서 세 번만 볶은 다음 간을 꺼내서 천천히 먹는 거야. 황주 두 냥을 잔에 따라서 한 모금 마시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 갈 때 뜨거운 기운이 확 느껴지는 게 수건으로 얼굴을 씻을 때처럼 후끈하단 말씀이야. 에, 이 황주는 또 장을 깨끗이 씻어주는 역할을 하지. 이제 젓가락으로 돼지간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고 ........ 카,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로구나........"
방 안은 군침 도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 돼지간볶음은 내 요리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그리고 당신까지 다들 내 요리를 훔쳐 먹고 있는 거라구."
허삼관이 기분 좋게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자 다들 내 돼지간볶음 맛 좀 보라구."

* 홍사오러우와 돼지간볶음을 이야기로 만들어 먹는 장면을 읽다가 한밤중에 편의점에 갔다. 나도 침을 꼴깍꼴깍 삼키다가 참을 수 없어서였다. 이야기로라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허기짐이 무엇에서 오는지 나는 알고 있다. 
  

20장
170. "눈이 침침하고 가슴이 뛴느 게 영 힘이 없어. 속이 메슥러리는 게 꼭 토할 것 같기도 하고. 좀 누워야겠어. 서너 시간 지나도 안 일어나면 그냥 놔둬. 하지만 일고여덟 시간이나 잤는데도 안 일어나면 사람을 불러서 병원에 데려가야 해. 알았지?"
허삼관이 잠든 후 허옥란은 손에 삼십 원을 꼭 쥐고 문간에 앉아 텅 빈 골목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 먼지가 날렸다. 허옥란은 희뿌연 담벼락을 응시한 채 혼잣말을 되뇌었다.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오십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

22장. 
"일락아, 일락아,  왜 우니?"
"허삼관도 제 친아버지가 아니고, 하소용도 제 친아버지가 아닐요. 전 친아버지가 없는 거잖아요."
"왜 서쪽으로 가는 거냐? 너의 집은 동쪽인데."
"집에는 안 가요."
"일락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거라."
"방씨 아저씨, 저한테 국수 한 그릇만 사주세요! 국수 사주시면 그때부터 아저씨가 제 친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내가 너한테 국수 열 그릇을 사줘도 네 아버지는 될 수 없단다."
.
.
.
"집으로 안가면 어딜 간다는 거냐?"
"저도 몰라요. 어쨌든 집에는 안 갈 거예요. ...... 누가 국수 한 그릇만 사주세요. 그럼 제가 친아들 노릇 할게요. 누가 국수 좀 사주세요. 네?"

191. "자 업혀라."
허삼관은 일락이를 업고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골목을 지나 큰 길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은 바로 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 옆으로 난 길이었다. 걸어가는 중에도 허삼관의 입은 일락이에게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 '자라 대가리'라는 욕을 들어도 착한 사람. 위화는 작가노트에 이 이야기는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사람에게 '죽음'만이 평등하게 다가온다는 것도 어렴풋이 흘려드고서는 이 소설은 '평등'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허삼관의 '매혈'인생이 위대한 평등을 보여준다.


25장.
215. 알아? 공장이 왜 문을 닫았는지, 가게가 왜 문을 닫았는지, 학교에서 애들을 왜 안 가르치는지, 당신이 왜 꽈배기를 못 튀기는지..... 왜 사람들이 나무에 묶이고 외양간에 갇히는지, 왜 맞아 죽는지 아냐구? 모 주석께서 한 말씀 하시면 그걸 노래로 만들고, 벽에 걸고, 차나 배에 써넣고, 침대보와 배갯잇, 컵, 냄비, 심지어는 화장실 벽이나 타구에까지 새겨넣는 이유를 아냐구? 모 주석의 이름을 부를 때 왜 그리 길게 부르는지...... 자, 들어봐. 위대한 영도자시며, 위대한 원수이시며, 위대한 스승이자 위대한 조타수인 모 주석, 만세 만세 만만세. 다 합쳐서 마흔 자도 넘는 걸 한 번에 다 읽어야 한다구. 중간에 쉬면 안 돼. 왜 그런지 알아? 이게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이 말씀이야......
문화대혁명이 오늘날까지 왜 이렇게 떠들썩한지 이제야 좀 알겠어. 문화대혁명이 무엇이냐? 개인적인 원수를 갚을 때 말이지, 예전에 누가 당신을 못살게 굴었다구 치자구. 그러면 대자보를 한장 써서 길거리에 붙이면 끝이야. 법망을 몰래 피한 치주라고 써도 되고, 반혁명분자라고 써도 좋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고. 요즘은 법원도 없고, 경찰도 없다구. 요즘에 가장 많은 건 바로 죄명이야. 아무거나 하나 끌어와 대자보에 써서 척 붙이면 당신은 손 쓸 필요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잡아다 작살을 낸다 이 말씀이야.

226. "반찬은 전부 밥 아래 숨겨놨다구.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 어서 한 입 먹어."
허옥란이 숟가락으로 밥을 뒤집어보니 과연 아래쪽에 고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허삼관이 그녀를 위해 홍사오러우를 만든 것이다. 그녀는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열심히 씹었다.
"이건 내가 몰래 만든 거야. 아이들 몰래 말이야."

236-237. 나하고 임분방은 딱 한번 뿐이었다. 너희 엄마하고 하소용도 마찬가지고. 오늘 내가 너희한데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나도 엄마하고 똑같은 죄를 저질렀다는 걸 너희가 알았으면 해서다. 그러니 엄마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
허삼관은 허옥란을 바라보면서 계속 말했다.
"너희가 만약 엄마를 증오한다면, 나도 마땅히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도 너희 엄마랑 똑같은 놈이니까."
허옥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너희 아버지랑 나랑은 다르단다. 내가 아버지 마음을 상하게 해서...... 그래서 임분방과 그렇게 된 거란다......"
"사실은 다 같은 거야."
"아니에요. 당신하고 나하고는 달라요. 만약 나하고 하소용 사이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당신이 임분방의 다리를 만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허삼관이 허옥란의 말에 동의했다.
"하실 그렇긴 해. 하지만......."
그리고 한마디를 덧부였다.
"결국 당신과 똑같아."
* '사실은 다 같은 거야.' 이걸 알려면 대체 얼마나 살아야 하는 걸까?
왜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많이 싸우고, 난 또 그게 그렇게 싫었을까? 결국은 같은 거란걸 왜 모르고 말이야.


26장.
253. "방씨는 몸이 완전히 갔어요."
허삼관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오줌보가 터졌어요. 우리가 피를 팔기 전에 물을 좀 많이 마시잖아요. 그날은 방씨 아저씨가 정말로 많이 마셨거든요. 그래서 오줌보가 터져버렸죠. 그때는 나도 피를 못 팔았어요........"

262. 허삼관은 허옥란이 다음 말을 안 해도 이락이 때문이란 걸 잘 알았다. 그 역시 이락이를 위해서라면, 이락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술을 세 잔째 털어 넣은 다음부터는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먹은 술이 거꾸로 넘어올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문가로 뛰어가 웩웩거리며 토를 했다. 허리에 경련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몸을 일으켜 세울 수조차 없어 그대로 쪼그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일어나 입을 닦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이락이네 생산대장이 허삼관이 돌아오자 다시 잔을 가득 채우며 소리 질렀다.
"자, 또 한잔 들어요! 몸은 상해도 감정은 상하면 안 되니까. 자, 한잔 듭시다!"
허삼관은 속으로 '이락이를 위해서, 이락이를 위해서라면 마시다 죽는 한이 있어도 마셔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잔을 받아들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 모습을 본 허옥란은 이제야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264. 허삼관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근룡이가 누워 있던 빈 병상을 바라보았다. 흰 침대보도 이미 걷어가 병상에는 삼베로 짠 요만 덜렁 놓여 있었다. 그 요에는 한 방울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핏자국을 한참 바라보던 허삼관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허삼관은 병원 밖으로 나와 벽돌 한 장을 깔고 앉았다. 겨울 바람이 뼛속 깊이 파고 들었다. 그는 두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목을 옷깃 안으로 잔뜩 움츠린 채 근룡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방씨와 함께 처음으로 피를 팔러 왔던 일을 떠올렸다. 피를 팔기 전에는 반드시 물을 마셔야 하고, 피를 팔고 나서는 반드시 돼지간볶음에 호아주 주 냥을 마셔냐 한다고 가르쳐준 ....... 허삼관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27장.
이 혈두는 울상이 되어 서 있는 허삼관에게 설명했다.
"한 달도 못 돼서 또 피를 팔러 오다니, 자네 죽고 싶어 환장했나? 자네 정말로 죽을 작정이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나무에 목을 매라고...... "
"제발 근룡이 얼굴을 좀 봐서라도......"
"이런 니미럴, 근룡이가 살았을 때도 그 친구 얼굴을 봐서 부탁한다더니, 이제는 죽은 사람 얼굴까지 봐달라는 거야?"
"근룡이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습니까? 그 친구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을 텐데, 그 친구 얼굴을 봐서라도 딱 한 번만......"
이 혈두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 헛움을 웃었다.
"이런 철면피 같으니라고. 자네 그 두꺼운 얼굴을 봐서 내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지. 여기서는 피를 팔아줄 수가 없고, 다른 곳을 찾아보게나, 다른 병원은 자네가 얼마 전에 피를 팔았다는 걸 모르니, 아마 피를 사줄 거야. 알겠나?"
이 혈두는 허삼관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날카롭게 한 마디 덧붙였다.
"자네 피 팔다 죽어도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거야."

280. "제 아들입니다. 병이 위중해서 상하이의 큰 병원에서만 고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집안에 돈이 없으니 피를 파는 거지요. 상하이까지 가는 길에 이런 식으로 피를 팔면 도착할 때쯤에는 일락이 치료비는 모을 수 있을 겁니다."
허삼관이 이렇게 말하다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람들에게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진 듯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한 채 허삼관의 말을 듣고 있었다. 

290. "그렇게 계속 피를 팔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겠수?"
"며칠 있다 숭린에 가면 또 팔 건데요."
"아니, 먼저는 힘을 싹 팔고 그 다음엔 온기를 싹 팔았다거니, 그럼 이제는 목숨만 겨우 남았을 텐데, 또 피를 팔면 그건 목숨을 팔아 넘기는 거 아니요?"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 해도 전 피를 팔아야 합니다. 아들이 간염에 걸렸거든요. 지금 상하이의 병원에 있는데, 가능한 한 빨리 돈을 모아 가야지 몇 달을 더 기다렸다가는 아들이.........  " 

291. "저야 내일모레면 쉰이니 세상사는 재미는 다 누려봤죠.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봤으니 사람 노릇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노인은 허삼관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소. 우리 나이가 되면 사람이 할 짓은 죄다 해본 셈이지......"
이때 돼지들이 갑자기 꽥꽥대기 시작했다. 
노인은 허삼관이 이불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당신 행색을 보니 도시 사람 같은데, 당신네들 깔끔한 걸 좋아한다는 거 내 알지만, 우리 같은 시골 사람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단 말이오. ....... 그러니까  내 말은......."
노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이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돼지들을 당신 이불 속에 넣어주고 싶은데.... 이불 속이 따뜻해지게 말이우........"
허삼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가 왜 꺼리겠습니까? 참 다정하시군요. 한 마리만 주십시오. 한 마리면 충분합니다."

294. 그래서 방금 판 사백 밀리리터의 피가 고스란히 다시 그의 혈관으로 돌아왔고, 거기다 다른 사람의 피 삼백 밀리리터까지 추가로 수혈 받은 다음에야 혈압이 간신히 배고가 육십으로 올라갔다. 
.... 그가 의사에게 일주일 전에 린푸에서 한 번, 나흘 전에 바이리에서 또 한 번 피를 팔았다고 하자, 의사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한마디 내뱉었다.
"망할 놈의 자식."
"그게 아니라, 내 아들 때문에......"


311. "나도 젊었을 때야 그렇게 생각했지. 내 몸의 피가 곧 돈나무라고 말일세. 돈이 없거나 부족할 때 흔들기만 하면 돈이 생기는 줄 알았지.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더라구. 처음에 나랑 같이 피를 팔았던 사람이 둘 있어. 한 사람은 방씨고 다른 한 사람은 근룡인데, 방씨는 몸이 완전히 망가졌고 근룡이는 피를 팔다 죽었지. 자네들 정말 돈이 급할 때가 아니면 자주 팔아서는 안 돼. 연속해서 팔았다가는 몸이 다 망가진다구. 내 말 꼭 명심하게. 이건 다 경험담이니까......."

322. '이전에 돼지간볶음에 황주를 곁들여 먹은 건 순전히 피를 팔았기 때문이지만, 오늘은 거꾸로 돼지간볶음에 황주를 곁들여 먹기 위해 피를 파는 거야.'

30장.
327. "여보, 내가 늙어서 앞으로는 피를 팔 수가 없다네. 내 피는 아무도 안 산다는 거야. 앞으로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여보, 이젠 피 팔 일 없어요. 이젠 집에 돈도 있을 만큼 있고, 또 돈 떨어질 일도 없는데 무슨 피를 또 판다고 그래요? 그런데 오늘 왜 피를 팔려고 했어요?" 
"돼지간볶음 한 접시나 먹었으면 해서. 황주 두 냥하고..... 피를 팔아서 사 먹으려고......."

331. "그런 걸 두고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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