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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1일 10시 24분 등록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2008, 을유문화사

 

1.   저자에 대하여

 

저자 스스로 변화경영전문가로 자신을 정의하고 소개하던 시절의 책이다. 책 왼날개를 베껴 적는다.

 

구본형은 변화경영전문가다. 역사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인간이 가장 중요한 기업의 자산이 된 지식사회에서 인문학과 경영학의 다양한 만남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소시민적 수동성을 넘어서서 변화의 주체로서, 수많은 개별적 중심을 지닌 다면적 물결로서 미래의 창조에 참여하는 적극적 과정을 중요시한다. 현재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소장이다.

20년 동안 한국 IBM에서 근무했으며, 경력의 16년을 벼화의 현장에서 경영혁신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했다. 말콤 볻르리지 국가품질경영 모델을 IBM의 단위 조직에 적용시키는 국제심사관으로 호주, 대만, 홍콩, 중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태평양 조직들의 경영혁신과 성과를 평가하고 자문했다.”

 

그는 변화경영전문가, 변화경영사상가를 거쳐 변화경영예술가를 꿈꾸었다. 그의 길은 2013년 변화경영사상가 어디쯤에서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만큼 잘 갔고 아마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다음 이정표, 또는 다음 곳까지 갔을 거다.

 

10년 이상 1년에 1권 이상의 책을 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온 작가가 다산해 놓은 책들을 읽으며, 몇째와 몇째가 닮았고, 공통 유전자가 무엇인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작가의 관심사가 변해가고 있는 지 짐작해본다. 이것 참 재미나다. 결혼식 원판 사진의 가족사진보는 것과 비슷하다. 피를 섞어온 이들의 공통점을 속으로 잠잠이, 그러니까 멋대로, 내 쪼대로 짐작하며 이 가계는 턱선이 각졌고, 이 가계는 얼굴이 동그랗다느니, 얼굴이 붉고 눈이 무서우니 화를 잘 내겠다, 이 사람은 외부에서 들어온 피라느니 신기하네 한다. 제일 재미난 가계 관찰은 약탈혼이 있던 섬 지방의 할머니들이다. 이쁜 처녀를 훔쳐온 뱃사람의 자손들이 모두 삐까번쩍 잘났을 때다. 

 

저서 목록은 이러하다.

1998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이게 그의 첫 책이다.

지리산에서 1달 포도단식을 하다 덜컥 써보고 싶은 오래된 욕망과 만나 작가가 되었다.

1999 <낯선 곳에서의 아침> 원래 전 책과 한 권으로 쓸 작정이었단다.

2000 <월드 클래스를 향하여> 미국적인 뭘 탐구했단다.

2001 <떠남과 만남> 회사를 2000 3월에 그만 두고서 남도 여행을 한 달 반 하고서 쓴 책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한 숨에 읽을 수 있는 시집 같은 경영서

2001년은 그가 20년간 다닌 회사를 나와 자유민이 된 해다. 다산의 해다.

2002

2003

2004 <일상의 황홀> 한 해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일기 형식으로 오늘이 어제와 다름을 기록함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소설을 지향한, 40대의 자서전

2005 <코리아니티> 한국인의 심성 속에 들어 있는 세계적인 요소를 추출해봄

       이 해는 그가 개인대학원 과정인 연구원을 모은 첫 해다.  

2006

2007 <사람에게서 구하라> 사람이 재산인 지식사회에서 사람을 얻는 법

2008

2009 <더 보스 쿨한 동행> 부하직원의 상향적 리더십을 다룬 책

2010

2011<필살기> 현업과 이상적인 직업의 가교를 건설하는 법

2012 <신화 읽는 시간> 판도라의 상자를 인간 마음으로 보고 인간을 탐구함.

2013 <그리스인 이야기> 모험에의 선동을 위한 그리스신화 읽기

유고집 <구본형의 편지>

 

<내가 직업이다> <공익을 경영하라><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사자같이 젊은 놈들>의 자리가 어딘지는 읽어가면서 알게 되리라. 과연 새벽 4시부터 6, 또는 7시 하루 2~3시간의 작업으로 저 책들을 다 써낼 수 있는 것일까? 진심 궁금하다.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참으로 독특하게도 일러두기라는 게 들어있다. 

 

개정판 서문

책을 펴내며

일러두기

플롤로그

 

1장  지난 10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유혹의 나이 마흔 / 절정을 지난 꽃의 아름다움 /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지다.

2장  마흔살

마흔에 관한 이야기들 /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나이

3장  직장생활

홀로그램의 세계 속에서 / 필요한 사람들 / 돌연한 출발 / 나를 마케팅하다 / 새로운시작

4장  얼굴 페르소나

머리카락, 약간의 콤플렉스 / 수염, 자연의 공평함 / , 나의 자부심 / 인상, 자랑할 만큼은 아니지만 / 인형에서 자유인으로

5장  가족

부드러움이 돋보이는 아이 / 나를 닮은 아이 / 나의 별명은 미숙이’ / 늘 옆에 있는 그녀 / 삶의 우선순위 / 아내와 함께 떠나는 여행 / 늘 그립고 반가운 친구

6장  자연

신과 가까워지는 공간 / 변화의 이유 / 나는 나무다 / 나만의 씨앗

7장  건강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죽음 / 욕심이라는 이름의 암세포 / 이상 신호 /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

8장  길에서

정신적 여행자 / 길을 찾아서 /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 행복해지는 법

9장  , 공간

내 마음의 집 / 산을 품은 집, 집을 품은 산 / 욕망이 자라는 공간 / 정원 손질 / 일상의 작은 쉼터

10장 학습

놀이로서의 학습/ 나침반 하나 들고 떠나는 탐험 / 마음이 가는 대로 / 노마드 / 삶의 방식을 바꾸는 혁명

11장 일

내가 일하는 방법 /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 / 성공의 비결 / 유일한 사람 / 청중이 듣고 싶은 강연 / 나의 역할 / 변화의 주체가 되는 길 / 꽃씨와 불씨

 

세 개의 에필로그

평설 내 인생의 역할모델 구본형 따라하기

 

2)     장점과 보완점 평설

 

첫째, 평설이 붙어 있는 자체가 장점이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책에는 그의 개인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연구원 1인의 평설이 뒤에 붙어 있다. 평설은 사전에서는 비평하여 설명하다고 풀이한다. 구본형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나를 잘 모르는 유명인들의 평가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내 책에 대해 어떻게 읽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내 연구원들에게 이 책에 대한 평설을 실어 달라 했다. 그들은 객관적일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애정이 있는 객관성나는 이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166)”

 

이 책 뒤에도 한 사람의 평설이 실려 있다. 그가 20년 다닌 회사를 나와서 만든 1인기업에서 연구원 제도를 처음으로 시작을 했던 2005년 이후다. <코리아니티><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에서 보았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는 휴머니스트 김학원씨의 평설이, <떠남과 만남>에는 그 책의 사진을 찍기도 한 사진가 윤광준씨의 평설이 달려있다. 흥미로운 저술, 공부, 삶의 방식이다. 자기 삶을 들어 스승의 책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평설을 읽다가, 나도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삶의 지침이나 동반자로서 늘 책상 왼쪽에 자리를 잡아놓고 같이 살고 싶은 책들에 대해 논할 때 저런 식으로 정성을 들여서 써보고 싶어진다. 이 글이 그런 글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전작주의가 너무 늦었다는, 지켜볼 이가 없다는 허허로움, 정성을 가지고 세밀히 살펴본 연후에야 생겨나는 질문을 가지고 가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영영 잃어버렸다는 쓸쓸함이 올라온다. 뱃전에 싸둔 보따리들처럼 가슴에 품은 채 나는 흘러간다. 새벽강에 작은 나룻배를 띄우고 홀로 쉬는 마음으로 1페이지 정도의 글을 써보기로 한다.

 

둘째, 그는 40 10년을 결산한 개인 실록인 이 책을 통해 마흔 전환을 이루었고, 50대 멋진 계획을 세웠노라며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라고 선동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전환하고 변곡점에 서라는 그의 선동에 유혹당하고 설득당한다.

 

 

3)     감동적인 장절

 

 

지난 10년동안 14권의 책을 썼다. 그 중에서 나는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이것은 마흔 살의 혁명에 대한 기록이다.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명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내 스타일에 딱 맞는 벤처 산업인 셈이다. 만일 이 과정을 멈추면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나는 죽은 것이다. (개정판 서문)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변화경영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그런 저자를 신뢰하지는 않을 거다. 누구라도.

 

나는 앞으로도 10년에 한번씩 내 변천의 기록과 개인사를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단단한 실체 위에 미래의 10년을 건설할 것이다.

개인사의 10년 단위 실록을 편찬하는 이들이 또 있을까? 이 일을 계속 해 나가서 10년마다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걸 실현해 가는 사람. 실제로 그런 사람

 

타도, 구본형이것이 채 책 속에 숨어있는 정신이다. 나는 나의 문화사, 이 개인의 실록을 통해 내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나의 비전은 먼저 이렇게 나에게 적용되었다. 내가 내 직업의 첫번째 고객인 것이다. 2007 1

자기 비즈니스, 신념의 제 1 적용처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옳다.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이것이 위대한 인물과 힘있는 자들의 역사와 함께 또 다른 역사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 역사의 가장자리에 존재했던 무수히 작고 개별적인 인간들이 증발해서 사라져버린 역사학, ‘인간이 없는 인간에 대한 기술이 인간에 대한 성찰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안네 프랑크의 일기, 난중일기 같이 일기를 쓰는 이들이 적다고 이오덕선생은 말했다. 안타까와하면서. 교단일기를 꾸준히 쓰는 선생도 적다고. 이 말은 블로그와 다른 것 등 여러가지 개인 저작이 가능한 현재에도 유효한 말일까?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관찰하고 기록하자는 그의 책들을 읽으면 일기를 쓰게 된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이야생각하게도 된다.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첫번째 실험 보고서이다.

내가 진정 살고 싶은 삶은? 그리고 내 방식으로 산다는 건 뭘까?

나는 저자의 MBTI 유형이 나와 같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삶을 찾아간 방식, 그리고 그가 삶을 누린 방식을 벤치마킹한다. 아주 좋다. 그런 점이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서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이 책이 바로 그 프로젝트이다.

모닝페이지를 한 지 5년이 되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6학년 때였다. 6학년부터 고1때까지는 일기를 꾸준히 썼던 것 같다. 1때부터 대학교 때까지는 잘 쓰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수행일지의 형태로 썼다. 그런 형태의 기록을 거의 30대 중반까지 왔다.

 

답답했다. 도달해야 하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나에 대해 자꾸 기록해야 하는 건. 그런데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일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실제 나의 느낌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한 건 모닝페이지에 와서인듯 하다. 일기를 통한 자정활동이 불가능해진 것이 17살 때 일기를 집어치운 이유였다. 그와 비슷한 매커니즘이 내 안에 있다. 경계할 일이다.

 

전쟁터에서 먹을 갈아서 초서로 일기를 쓴 난중일기를 읽은 후로는 나의 하루도 저런 식으로 간단하지만 사건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모닝페이지는 6하원칙을 무시하고 감정이 머무는 대로 흘러간다. 일기는 일지처럼 그렇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요구한다. 쓰면서 자율성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시작하는 자율성을 갖지 못해서 그냥 흘려버릴 때가 많다. 일기든, 블로그든 사진이든 글이든 하루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일이다.

결혼 이후의 삶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카페에 올리면 될 터이다. 이건 결혼식 주례를 맡았던 분의 당부였다. 하루를 사진으로 남기라는 것,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은 부부가 여행을 가라는 것 두 가지였다. 카페에 올리는 사진 중 질이 좋은 것을 골라서 인화를 해 두면 좋을 것 같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가 절실한 이유이다. 2004 3

듀란트 부부의 문명이야기 르네상스 편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문명 전환기 라는 칼럼을 썼다. 전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거기서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서 살지 않고 나의 인생을 살겠다고 했고, 나의 특징에 맞춰 살겠다고 선언하였다. 내가 화산지대 물가라는 것도 커밍아웃을 했다.

2013년 여름을 보내면서 한 가지를 관찰한다. 나는 어떤 결심을 할 때 나에게서 그걸 이끌어내지를 못하는 거다. 현장연구를 결심할 때도 옆반 선생님이나 다른 이에게 의탁해서 공동연구를 제안하고, 책을 쓸 때도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해서 동기에 힘을 받으려 한다. 왜 그럴까? 그들의 욕망을 내 동력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관찰되는 부분은 니가 책을 내면 내 이름이 높아지지라는 말에 거부감도 갖는 점이다. 내 인생을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아바타로 살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나의 욕망인지 다른 이의 욕망인지가 헤깔리고 다시 회피하고 싶어진다. 이런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나의 20대와 30대가 갔다. 40대에 이르러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16 나는 40대의 10년을 기록하여 내 개인사에 대한 첫번째 실록을 만들었다.

오호 이거 재미나겠다. 그럼 나는 30 10년의 실록을 편찬해봐야겠구나.

그건 너무나도 분명하다. 스물아홉살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뮤지컬을 보는 의례를 가지면서 나는 30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흔을 맞이했다. 끝이 분명했다. 나의 첫 책은 이런 용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소설적 자전이라고 했지만 이 책은 소설은 아닌 듯 하다. 소설이 허구이면서 진담인 것처럼 이야기는 그럴 것이다.

 

나의 첫 책 컨셉을 신화를 매개로 한 여성의 통과의례로 삼았다. 처음에 그건 관례였다. 이젠 결혼을 잡았다. 결혼이든 관례든 통과의례는 여성의 변화를, 성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변화와 성장을 원하는 여성의 시점을 무엇으로 둘건가가 관건이다. 핵심의례가 관례이든 결혼식이든 신화를 가지고 하겠다는 나의 관점 역시 유효하다. 신화는 제일 재미난 이야기이고 제일 끌리는 읽을 꺼리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먼저여도 좋을 것 같다. 어쨎든 첫 책, 첫 사랑은 변하지 않게 가져간다고 나는 약속했다. 약속은 지킨다. 될 때까지 하면 되지. 인디언기우제처럼 비가 올 때까지 지내면 된다. 그러면 이행률 100%의 기우제가 된다.

 

연구원을 지원하던 시점의 내게 가장 큰 관심은 30살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것이었다. 그 때 출발했다. 그건 존재의 테이블을 갖고, 역마살을 후천적으로 부추기면서 독립을 성취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고, ‘영혼의 동질성을 가진 이와 재회하는 것까지였다. 어떻게 하면 나의 미해결과제를 마칠 건가, 그리고 원가족과 잘 헤어질 건가, 그리고 잘 결혼하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작업을 할 건가였다. 그런 내가 어른으로 홀로서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책으로 남기자는 의미로 나는 <천일간의 자기사랑>이라는 컨셉으로 책을 쓰겠노라며 연구원에 지원했다.

 

얄궂게도 연구원을 하는 과정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예측하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결혼을 해버렸다. 아직 2년이 끝이 나지 않았다. 1년은 함께 공부하고 칼럼을 쓰는 과정이고, 2년차는 자습과정이라고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 길의 촉발자가 돌아가신 것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냐? 그건 그의 운명이었고 나의 운명이었다. 그래도 출발은 그와 함께였다. 그것만으로 그의 역할을 끝났다. 나의 과정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나는 그의 생몰로 나의 과정에 영향 받고 싶지 않다. 어렵게 길떠난 나의 길을 출발 즉시 중단하고 싶지 않다. 나의 8기 연구원 과정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16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은 역사와 소설의 중간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무릇 심오함을 가장하는 자들은 가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밀로 남고 싶어하는 과거도 있었고,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불명확한 감정과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떼어내면 40 10년간의 내 진짜 모습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털어내되 그 이야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 방법, 즉 화자와 이야기를 분리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의 도움을 받았다. 그것이 소설이다. 소설은 거짓과 농담을 가장한 진실과 진담임을 알게 되었다.

소설이 매우 자유로운 글쓰기 방식이구나. 그녀는 20대를 소설로써 써낼 수 있을 거다. 나는 30대를 신화를 가미한 읽을꺼리로 써낼 수 있다. 굳이 라는 주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좋을 거다. 나를 대신해 이야기를 할 사람은 많은 수도 있다. 

 

30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영혼의 갈망 같은 것이다.

저 말은 정말일까? 그는 분명 해운대 술집에서 만난 그 여자를 그냥 돌려보낸 게 후회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니 40대 후반의 늦여름 폭염 같은 사랑의 일탈을 꿈꾸는 것도 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그는 결혼 안에서 사랑을 가꿔갔단 말인가? 나에게는 그녀에 대한 아픔이 있다. 그녀는 남의 세를 살았다. 그 세를 사는 그녀의 마음의 가난에 대해서도 인제 이해를 한다. 지금의 나는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지금 내 나이 때 내 엄마는 재수생 딸을 두었고, 막내 아들을 태권도 도장에 보내고 있었다. 그녀 역시 25살에 혼자되어 38살에 세 살러 떠난 나이다.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 나는 위험을 느낀다. 아마 끊임없이 감시하려 들 것 같다. 나를 세 사는 사람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월세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여성에게도 마흔은 더러운 나이다. 위험한 나이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남자들이 더 많이 했기 때문에 남자들의 마흔살만 조명이 되었을 것이다. 또는 여자들은 아직 새끼들이 딸려 있어서 중년의 위기는 자녀 양육이 어느 정도 끝이 나는 때까지 유예될 뿐이리라. 여자들에게는 오십살이 그런 의미에서 훨씬 의미가 있으리라. 그녀들은 자녀라는 우선 과제를 끝내놓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볼 짬이 생기리라. 나는 남들처럼 살지 않았다. 중년의 전환기를 거치면서 나답지 않은 것에서 벗어나와 좀 더 나다운 삶으로 전화를 해야 했다. 중년기 전환은 결혼 유무, 아이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오기 때문이다. 언제이든 좀 더 자기다와 지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36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면 새로운 단면과 만날 수 있다.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던져주는 여러 상징을 해석하고 가능한 여러 해결 방법 가운데서 내게 적합한 방법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니까. 물로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안고 살면 되는 거지.

문제가 던져주는 여러 상징을 읽고서 방법을 생각하는 방식이 내게도 적용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는 자기 방식을 말하지만 나에게 힌트를 준다.

 

46 마흔이 되었을 때 내게는 나의 세계가 없었다. 내 삶은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저 짜여진 일과 속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나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활력이 넘쳤지만 인생 깊숙이 자리 잡은 피로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현재 내 모습이다. 직업 속에서 한심한 내 모습. 개인 생활에서도 가난하고 피폐하고 쩔은 모습이다. 풍로로움은 없다. 

 

52 여성의 마흔 살은 남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남자는 마치 지는 해처럼 시들지만 여자들은 보름달처럼 절정을 향해 달린다.

 

53 중년이 되자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의 힘과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일어선다. 남자들이 영웅적인 여행을 포기할 때 그리하여 자발적이고 공격적인 경쟁심을 상실해갈 때, 여성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이런 르네상스적 힘과 공격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재미난 일이 생겨날 수 있다. 나는 중년을 넘긴 여자이고, 그는 중년을 넘긴 남자이다. 재혼커플에 맞먹는다.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본 남자와, 그 동안 집 안에서, 또는 아버지와 학교와 절의 그늘과 울타리 안에서만 살다가 인제 좀 개인으로 쏘다녀보려는 여자가 엮였다. 그래서 인제는 좀 더 자율적으로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를 못한 듯 하다.

 

54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실패와 무능력과 비겁함은 비난받아야 할 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비극의 문제로 전환된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강한 자에 대한 비난은 탄식과 슬픔이 된다. 겸손과 동정과 베품은 이런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 변환이다. 이러한 자기수용은 자아통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마흔 살은 융통성이 시작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보는 긍정적 지혜가 위로가 되는 시절이다.

부모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분들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걸, 세대를 거듭하는 물결 속에서 자신의 작은 역할을 다했다는 걸 알게 된다.

 

54 젊은이들의 창조성은 발작적인 불꽃같다. 그들의 창조성의 99퍼센트는 영감에 의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창조성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55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내가 창조성을 기른다면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로서의 창조성을 다루리라. 모닝페이지와 그 책을 통해 이런 걸 조금은 이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가벼운 정신적 태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를 못하다. 아티스트 데이트 영역을 나는 잘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책이나 한 번 더 읽어보자꾸나.

 

57 융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 쓰고 있는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대체로 이러한 갱생의 힘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오호 매우 유용한 시기로다.

 

 59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61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 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 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62 마흔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 아니라 이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 나의 모든 것을 걸어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고? 연구원에 지원하면서 나는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68 이 연구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지루한 일상을 메워주는 탈출구였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 일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변화에 대해 내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13년차다. 필살기 책을 접한 지도 만 3년 째다. 나의 직장생활에서도 한 줄기로 꿰어지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한심하다. 현장연구를 하고, 그리고 그림이든 글로든 교실일지 쓰면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마흔 이후에는 매일 직업일지를 썼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학원씨가 편집일기를 쓴 것처럼.     

 

78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 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점이 있다. 온갖 종류의 구조 조정에도 상관없이 한 조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성장하고 싶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특별함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폐쇄회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의 제3의 꼭지점을 찾아내어 그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누구의 사람이라는 폐쇄적 구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처럼 빼내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사람도 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읽어내는 사람은 이런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익숙하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소질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개발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가 없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설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남겨진 조직의 힘이 격감되는 사람들..그들이 바로 놓칠 수 업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도 저런 전문가가 되고 싶다. 공교육 기관에서 저런 전문가는 어떤 모습일까?

 

승진을 위해 점수를 쌓아가는 남자교사들과 다른 모습의 사람은 딱 두 경우를 보았다. 첫번째는 수업에 장기를 가지고 있어서 수업컨설팅 교사가 된 이다. 두번째는 교육과정에 장기를 가진 교사다. 내 보기에 수업이 아니라 교육행정에 장기를 가진 교사도 있지만 이이들이 자신의 장기를 살리는 길은 없다. 이이들이 자기의 장기를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교육행정은 곧 관리자의 길일 뿐이다. 학교에는 부장급 중간관리자 위에 교장, 교감 관리자가 소수 있다. 어쨎든 승진에는 관심이 없지만 부장업무에 적합한 인성과 자질을 가진 이들도 있다. 매우 평등한 조직이다.

 

나를 먼저 구원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기질에 가장 잘 맞는 혁신업무 담당 16년을 보냈다. 첫째, 현직에 있는 동안 나도 저런 업무를 지원해서 맡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업무라면 다른 이들이 싫어하는 3D업종이라도 해도 좋겠다. 학교에서는 도서관, 방과후학교 쪽이다. 나는 퇴직하여 내 일을 하는 미래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연금 때문이다. 정년까지 일해서 연금 수령자가 되어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내 주제에 누구에게 노후를 의탁할 수는 없다. 둘째는 그가 10년간 자기 분야에서 근무시간의 50%를 매일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업무에 투입해서 필살기를 연마했듯이(그는 이런 시간을 거쳐서 퇴직했다.) 나의 시간을 들여 서너가지의 필살기에 쏟아붓고 싶다. 그래서 선택한 작물만을 재배하고 싶다. 그런데 내 욕망이 어디에 있는 지,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강점과 기질을 가졌는지를 잘 모르겠다. 나는 이걸 (1) 글 쓰고 그림일기를 그리며 장애학생과 다른 세계를 연결시키는 교사를 상상했다. 역할 모델을 잡는다면 일본의 동화작가 오카 슈조와 그림일기를 그리며 창조성에 대한 강의를 하는 데니 그레고리를 짬뽕시켜놓은 버전이다. 이 장기는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나의 어릴 적 꿈과도 연결이 된다. 만약 내가 아이를 낳아서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만 기르는 동안에도 나는 그 아이를 기르는 일을 가지고 읽고 쓰고 그릴 수 있을 거다. 이건 언제 어디서나 평생 할 수 있는 재미난 놀 꺼리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진짜 나인지 어떤지 내가 이런 씨앗과 불씨를 가진 사람인지 어떤지가 검증이 안된 사안이다. (2) 매년 책을 한 권 냈듯이 나도 현장연구를 매년 1개씩 하는 교사로 내 자리를 갖고자 했다. 이건 지난학교 장님의 추동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역할모델은 류 교감님이다. 교사가 된 처음부터 내 앞에 있던 선배, 내가 존경하는 관리자다. 그런데 또 살펴보면 수업은 내 장기가 아닌데, 그래도 내가 교사로 사는 동안에는 수업에 대한 강점까지는 아니어도 수업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내가 식당을 운영한다면 당연히 식당의 메뉴와 여러가지 점검사항을 집중해서 손님에게 필요한 식당이 되어야 하는 게 의무 또는 생존전략인 것과 같다. 현장연구의 갈래가 수업연구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자면 교사 나름대로 특징과 장기가 다 있으니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든, 수업모형을 선택하든 조류를 선택하든 해서 뭔가 한 가지는 수업에 장기를 가져야 하는 도전이 있다. 요즘 슬슬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 거구나 싶으다. 그것을 꿰고 있으면 적용이 더 쉬워질 것 같다. 뜻을 세우고 10년을 경주해야 하는데 나의 일상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3) 나의 오지랖에 대해서는 교육복지 쪽의 일을 하면 어떨까 했다. 이건 브뢴펜브뢰너의 생태학적 이론이 흡수가 잘 되는 연결성테마의 영향이리라.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동심원을 잘 볼 수 있다. 복지관 하나가 학교에 들어와 있는 ‘1인 복지관개념으로 나는 교육복지를 이해하고 있다. 학교 안에 있으므로 필요로 대상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법적인 대상자 선정 규준이 아닌, 그 곳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자원과 연결시킬 수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특수학교는 교육복지우선투자 사업의 대상에서 빠져있다. 희안한 일이다. 교육복지 업무는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모두에서 유용할 듯 하다. 그 업무에 특화된 교사가 있다면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도 유용하리라. 필요하다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면 될 테다. 그런데 현재 학교에 들어와 있고, 내가 경험한 교육복지 사업에는 행정가의 역량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전체와 조율하는 일도 필요하다. 나는 그런 일(행정, 회계)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두루뭉수리 사고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건 즐기지만 실행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적다. 오히려 좀 떨어진 자리에서 잠잠히 상징을 읽고 해석하고 이야기를 하는 걸 더 좋아라 하는 것도 같다. 학생들을 데리고 현장체험학습을 다니고 이런 일은 그닥 즐기지를 않는다. 또한 돈을 벌겠다거나 관리자가 되겠다는 의욕도 별로 없다. 나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서 보람있게 살고 싶을 뿐이다.

 

84 나는 세일즈 대신 나를 마케팅할 방법을 모색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를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설득했다.

나에게도 딱 맞는 진단이다.

 

85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며,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유혹은 올가미고 덫이다. 사냥은 창을 들고 소리 지르며 짐승에게 덤벼드는 것만이 아니다. 온몸에 쥐가 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다 덮치는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덫과 올가미를 놓고 편안한 집에서 술 한잔 하고 푹 쉬고 나서 그 다음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덫과 올가미에 걸려 있는 짐승을 향해 다가가는 것도 사냥의 한 방법이다. 세일즈가 도망치는 고객에게 달려들어 창을 꽂는 것이라면, 마케팅은 짐승이 다니는 길에 온갖 화려한 미끼를 주렁주렁 단 덫과 올가미를 놓아두는 것이다.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성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1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89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이건 할 수 있다. 학습자 테마를 가지고 있다. 관심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걸 즐긴다.

 

113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이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욕망은 부숴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것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115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117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23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내게도 중요한 가치이며 목표이다.

 

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이탁오)

이 말은 사우의 개념에도 적용되고, 선생님에 대해서도, 부모로서의 자신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나도 그래 보자.

 

124 아비 역시 스승과 친구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 같았다. 피로 얽혀 있으니 갈라설 수 없으며, 아이의 천성을 만들어낸 유전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일상 속 좁은 공간에서 아무 꾸밈없는 모습으로 아무데서나 늘 부딪히기 때문에 예의라는 옷을 입고 만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모는 친구나 스승과 다르지만, 이 두 가지 속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매우 유효한 힌트였다. 부모로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 너머 함께 즐기고 어울리며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게 적절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적절한 표현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다. 

 

130 함께 먹는다는 것은 아마 그래서 식구라는 단어가 생겼겠지만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꽤 중요하다. 먹고 산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되고, 먹는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이완을 위한 휴식이기 때문에 휴식시간에 만난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찾아가서 구내식당에서 밥이나 한 끼 얻어먹고 와야겠구나.

 

130 나는 이 아이와 가진 20~30분 정도의 간식 시간을 일 년 반 정도 즐겼다. 나중에는 아내가 퇴직을 하고 집에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주로 아내의 일이 되었다. 그때 오늘은 무엇을 함께 먹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떤 때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까지 버스를 k고 가서 사오곤 했는데, 신이 나서 그 일을 했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즐겼다.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서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작은 수고들은 이런 기쁨을 위해 동반되는 선물의 포장지거나 아름다운 포장 끈이거나 리본 같은 것들이다. 

섬세한 사람이다. 한편 아버지가 이런 시간을 즐겼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남자들은 이런 즐거움을 누린다는 걸 고백하는데 더 자유로와지길 바란다. 나도 이런 시간을 갖고 싶다.

 

132 아이의 지적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야말로 가장 훌륭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저자 부녀는 영어 공부를 일 주일에 서너 날 한다. 이런 기회를 모든 아버지들이 원하는 걸까? 아이와 같이 박물관, 도서관에 가고 싶은 아버지, 여행을 다니고 싶은 아버지, 텃밭을 일구고 싶은 아버지누군가의 부모가 되지만 어떤 그림을 그릴 건지는 삶의 우선순위가 반영된다.    

 

135 그녀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내 고민의 옆에, 내 실패의 옆에, 그리고 내 성공의 옆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죽음 옆에도 있어줄 것이다. 그녀는 늘 내 옆에 있다. 덩굴장미가 여기저기 타고 오르는 나지막한 하얀색 나무 울타리처럼 그녀는 그렇게 늘 내 정원이 되어 곁에 있어주었다.

아내와 나의 관계에서 신혼 초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싸우고 난 후 화해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아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 부딪치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싸운 후 다시 웃고 떠드는 데까지 가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신혼 때는 그러지 못했다. 참는 데까지 참고 있다가 어느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딪쳤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존심을 세우고 침묵을 지키며 기싸움을 했다. 며칠이 지나고 2,3주가 지나도 여전히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대체로 그 싸움의 승리자였다. 그러나 오래 살다보니 서로 알 만큼 알게 되었다.

나도 뒤 끝 작렬하므로 기싸움에서는 이기리라. 감당할 수 없으리라. 주량을 높이는 원흉

 

13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버린 시간의 밭을 일궈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잠 속에 묻혀버릴 뻔한 보물 같은 땅이었다. 하루 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있다. 

하루에 3시간을 우선해서 나에게 줄 수 있다면 나는 직업을 가졌느냐, 얼만큼의 돈을 버느냐, 얼만큼의 출퇴근 거리를 가지느냐, 좋은 음식 거친 음식, 주위입는 옷을 가리지 않으리라. 그 시간이 나에게 구원을 줄 것이므로, 나는 매우 허용적이고 너그러워지리라. 이미 챙겨야 할 전리품을 두둑히 챙겼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다 양보해도 된다.

 

139 그때 나는 이미 죽어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주어야 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자식, 가족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저당잡히고 죽이지 않아야 한다.

 

146 나는 목적을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146 친구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끼면 안된다. 친구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안좋다.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147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148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나도 이해관계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163 곽박의 시에서는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고 해쓴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그의 주제는 변화다. 그는 인간과 자연 및 세상이라고 불리는 지구공동체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인 변화를 자신의 키워드로 삼았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경영하는 방법을 기업체의 경영에도 적용하고 개인의 삶에도 적용한다. 그가 회사에서 혁신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16년을 보낸 것은 어쩌면 우연일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주제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는 그를 이어 변화경영 전문가나 사상가 예술가가 나오는 걸 무척 반길 것이다. 또한 그냥 작가가 나오는 것도 매우 반가워하리라. 각자가 자기 안에서 무엇이 가장 수승한 씨앗인지를 찾아내고 길러내는 과정을 거친 후의 일이리라. 그런데 나는 한 회사의 경영혁신 담당자였던 그가 어떻게 다른 조직과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지가 궁금하다. 의아스럽다다.  

 

인종과 민족, 그리고 나라와 시대를 초월한 또 하나의 주제는 관계 맺음이다. 나는 이것을 무아와 무상이라는 불교적인 키워드를 생각하다가 연결해보았다. 무상은 이 세상의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무아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중 다른 것들과 관계맺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은 없다는 내용이다. 무아가 있기 때문에 무상이 가능하다. 그건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핵심적인 키워드가 될 거다.

 

그걸 어디에 적용할 것인가? 이건 나의 연결성테마가 기능하는 모양일 것이다. 전체를 연결된 것으로, 서로 관계 맺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내게는 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가능하다. 나는 언제나 동심원을 고려하지 않던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부터 이 장이 시작된다. 그 시인은 작은 소읍에 살면서 우주 전체의 기미를 잃던 그 시인이 아닌가? 나의 직업, 아침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하는 새벽푸른빛 안전기지 구축 작업들은 그 안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거다. 과연 이 일이 전체 인류에게, 또는 전체 생명공동체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깨어서 지켜보는 일, 그리고 이미 이 세상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보통 사람들의 영성을 생각하는 시기가 아니던가? 출가와 재가의 경계선이 점점 더 흐릿해지고. 문득 잡념 솔솔 피어 오르네. 이런 잡념 피우는 순간이 책읽기의 즐거움이다.        

 

166 나는 자연의 방식을 추구했다. 자연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을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데려왔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특히 나무로부터 위대한 교훈을 사사받았다.

나무로부터 사사받는다니 이런 발칙한 인사라니! 그는 상당히 도발적이다.

 

169 나무도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수없이 자신을 탄생시킨다.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167 나의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어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내 내면을 뒤지고 곳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샘들에 깊고 굵으며 튼튼한 뿌리를 견실하게 박아두어야 한다. 이 힘들만이 나를 키울 수 있다. 이것이 첫번째 교훈이다.

169 낙엽은 나무의 지혜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169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일 년의 삶이다. 내 책도 내 일 년의 삶의 기록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내 일 년도 떨어진다. 그리고 열매를 남기듯 나도 내 책을 남긴다. 책 한 권이 쓰여지면 내 일 년도 지난다. 나무가 다음 해에도 똑 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 혹독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거친 나무는 이미 전 해의 그 나무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영원히 죽은 것이다. 살아 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정신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로 태어나고 싶어하는 나는 그가 나무에게 배운 이런 지혜를 그대로 적용해서 인간으로 살면서도 나무로 살고 싶다.

 

174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나도 이리 살고 싶다.

 

로댕의 말을 잊지 말아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우 매혹적일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마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지닌 품종을 만들어 내라.           

 

208 나는 미래에 일어난 일을 과거 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활공한다.

 

209 나는 가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라기 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내가 두려워한느 것은 지금 해야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213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길을 가게 된다. 갈림길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우리 마음 속에 그 드물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며 자신의 처음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시인 백석)

 

215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는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그는 길 위에서 죽었다. 그는 완벽한 여행자였다. 맞다 맞다.  

 

216 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그것이야말로 비옥한 정신적 토양이다.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진하게 되므로 죽음이 찾아왔을 때 완전히 비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나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으리라.

사는 동안 마음껏 살아낸 사람은 정말로 죽음으로부터 아무 것도 빼앗기지 않으리라.

 

227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주인을 닮는다. (칭기즈칸)

 

227 그 집에는 작은 뜰이 있었으면 좋겠다. 뜰에는 단아한 느티나무 한 그루 있었으면 좋겠다. 그 밑에 작고 예쁜 평상 하나를 놓아두었으면 한다. 더운 여름날 재미있는 책 한 권 들고 자다 깨다 하며 읽을 수 있는 그런 평상 말이다. 물론 좋은 친구가 찾아오면 작은 소반 위에 안주 겸 반찬 몇 가지 놓고 소주를 마쳐도 좋을 것이다. 그 옆으로 약간 분홍빛이 도는 줄기를 가진 마가목 두 그루를 심어두었으면 좋겠다.

 

228 정원의 가운데쯤이면 작약과 모란 몇 그루를 심어두고 꽃을 보고 싶다. 나뭇잎 또한 예쁘니 꽃이 지고 난 후에도 여러 갈래 창날 같은 시원한 푸른 잎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옆으로 약간 치우쳐서 꽃이 작고 진한 별돌빛 당국화를 두 그루쯤 심어두고 싶다.  

 

229 집은 채광이 잘 되는 동남향 집이면 좋겠다. 유리를 많이 써서 햇빛이 듬뿍 들어오게 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창문이 시원한 작은 방을 하나씩 주고 서재를 좀 크게 하고 싶다.

 

241 아무 것이나 자라도록 방치된 밭은 게으른 농부, 더 이상 농부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의 직무 태만의 결과이다. 이것이 재배의 의미다. 밭을 재배한다는 것은 자신이 심고 싶은 것을 심는 것이다. 심고 싶은 것, 즉 욕망을 따른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서 자라난 또 다른 욕망들을 뽑아낸다는 점에서 바자연적이다.

유사한 욕망들로 점령된 밭을 묵정밭이라고 하고, 그 밭의 소유자를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263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263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68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쓰는 지는 알고 있다. 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저 방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책을 구성하는 지도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도가 있으면 좋다. 그러나 내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은 지도에 없는 곳이다. 대체로 나는 나침반만 가지고 집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간혹 지도에 있는 길들과 교차하기도 하고 얼마간 평행이 되어 달리다 이내 산속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나만의 길을 따라 줄곧 남쪽으로 간다. 이것이 내가 책을 쓰는 방법이다.

쓰다 보면 묘한 곳에 이르게 된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으로, 예기치 않았던 모습으로 다가든다. 그러면 신이 난다. 글은 글에 연하여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언어로 파고든다. 나는 이 방법을 즐긴다. 다소 목적지가 불분명한 여행, 가다가 언제고 목적지가 바뀔 수도 있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여행..난 이런 여행이 좋다. 여행은 곧 자유인데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에서조차 얽매이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나의 첫 책도 이렇게 방향만 가지고도 써나갈 수 있을까? 일단 내가 의도하는 것을 그 원고를 손에 쥐고 난 다음에 수정을 하자. 완성본을 가진 다음에 말하자.

 

271 경제적으로 학습은 자신을 자본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교육과 훈련,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서만 포인트가 누적되는 자본이 바로 인적 자본이다. 자신을 자본화할 때는 전략적 배려를 해야 한다.

 

271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73 나는 살고 싶다. 삶만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변모의 예술이다. 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 시작할 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81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때문이다.

 

281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경영은 가능할까?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 철학은 가능할까?

 

282 혁명은 늘 하루를 바꿔줌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283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기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혁명을, 배움을, 자기경영을 하루와 연결시키는 이 부분이 나는 매우 매우 좋다.

 

276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허물을 벗을 줄 모르는 뱀은 죽어버린다. 생각을 바꿀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신들은 이미 정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이었다.

 

283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말들어 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이 매우 좋다.

 

285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 과정이다.

 

288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 철학, 이것이 바로 내 학습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한 줄기를 이룬다. 또 하나의 줄기는 변화의 기술이다. 나는 이 테마 속에 조직의 진단부터 조직의 변화 모델로 이어지는 기술을 담으려고 한다. 변화의 철학과 기술, 이 두 개의 축을 나에게 적용해봄으로써 변화경영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아마 내 50대는 변화경영의 예술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이 될 것이다.

 

294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 소명은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깨워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자아경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10년마다 기록되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나의 개인적 역사이며, 나를 소재로 한 소설이며, 나에 대한 연구보고서이다.

 

295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나는 물결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 물결은 무수한 반복이 아니라 무수한 변화이다. ‘’

 

297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 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걸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품질기준이다. 지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 원칙이다.

내가 쓰려는 책 역시 그러하다. 신화를 가지고 여성의 통과의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나의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이행시켜야 한다. 한명석씨는 책 쓰기 자체가 통과의례가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책쓰기라는 통과의례를 통과의례에 대한 책쓰기로 하겠다는 것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읻. 하루를 즐길 수 있으면 훌륭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의 물결로서,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사는 것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목적이다.

 

하루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나의 두번째 커리어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르네상스를 바랐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에서 과감한 전환을 하고 싶었다.

 

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 듯 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책을 읽고 감동적이 곳을 골라내어 내 상식으로 걸러 재편하는 데 꽤 능숙하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그것들을 재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작업 역시 즐긴다. 책을 볼 때 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집중한다. 소설이나 시를 뒤적이거나 역사서를 보거나 전문 서적을 읽을 때 내 주제는 늘 변화의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303 내 전문분야는 변화경영이다. 경영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변화라는 주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그리고 기업체에서 전문성을 쌓거나 경영 컨설턴트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 가운데 글로 자신을 표현할 만한 사람들은 더욱 드물다.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이 즐겨 읽고 실천할 수 있도록 된장 풀고 고추장 넣어 먹을만하게 끓여준다는 생각은 시도할 만한 일이다.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어내었다.     

특수교육도 이런 분야의 일이 될 수 있을까?

개인내 강점을 빛나게 발현시켜서 그의 빛나는 이력이, 직업이 되게 하는 것에 나는 관심이 있다. 이게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가능할 건지를 나는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주변에는 글쓰기는 안하지만 이런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참 멋진 사람이다. 나는 둘 다에 서툴다. 나의 교사경력은 맹탕이지 않나.

304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타이핑은 재미있다. 일주일에 한 권을 읽어야 한다는 강제가 없으면 더 재미날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장수가 많아지면 어렵다. 그래도 전체 책을 필사하기도 하니까 뭐.

 

306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나도 해 보고 싶다.

 

306 나를 깨우는 일에 능숙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자기를 깨우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수신이 이윽고 가정과 공동체로 스스로를 확장하게 된다.

 

306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정의이다.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약점이나 장애로 여기는 것들이 얼마든지 강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남과 다르다는 차이를 이용하여 성공을 거두어낸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빛이다. 반딧불이든 커다란 등불이든, 그들은 우리에게 늘 빛을 던져준다.

 

311 나는 이미 성공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내 언어로 고쳐 쓴 쪽지에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는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로 가기에도 숨 차다. 다른 것들을 넘겨다 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나는 가장 중요한 일에 나를 헌신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고집스러움을 강점으로 활용하면 가능하다. 지혜가 없으면 그건 힘이 아니라 똥고집이지만 지혜가 있으면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

 

314 나는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분노는 억제된 불길이다. 나는 때때로 침울해 보이거나 무거워 보였다. 분노를 적의 없는 상태로 감출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스스로에게 물기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제대로 타오를 수 없었다. 가득한 여기에 시달리다가 결국 불문을 열고 굴뚝을 달아 불길이 훨훨 타오르도록 했다. 이것이 나를 살려 주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분노를 자극했다. 나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분노를 키웠다. 이것이 내가 내 속의 분노를 길들이는 방식이었다. 내 속의 욕망이라는 불길이 자 타오르는 동안 나는 마음의 평화를 즐길 수 있었다.

, 그의 분노 조련법이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대분심으로 사용한다는 것

 

317 나는 글을 쓸 때 나에게 주술을 건다.

 

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싸여 있는 씨앗이다. 그것은 적대감이라는 위액과 소화액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발아할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열정이란 심장과 감정과 창자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자신이 되는 자유는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켠 허파의 외침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감동이며 환성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무료와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인생의 재료로 삼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을 반죽하고 주무르며 떼어내고 빚어낸 후 색칠하여 자시 세상에 내놓게 도와주어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아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해낸 사람들이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내 글은 강력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42 막막할 때,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무수한 군중이 있지만 내 말을 듣고 자신의 갈을 가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속에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그 속에 불씨 하나를 던져 넣는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타오르는 것을 보며 즐긴다.

내가 하는 일은 또한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의 꽃씨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다.

 

343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다.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이 이야기 밖에 없던 세상에 나의 이야기 (me story)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개정판 서문

 

지난 10년동안 14권의 책을 썼다. 그 중에서 나는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이것은 마흔 살의 혁명에 대한 기록이다.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명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내 스타일에 딱 맞는 벤처 산업인 셈이다. 만일 이 과정을 멈추면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나는 죽은 것이다.

 

충분히 썩어서 비옥해진 과거가 미래의 수확량을 결정한다는 것은 농사를 한 번이라도 지어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쉰 살이 넘어 50 10년의 아름다운 풍광을 열 개나 그려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이 책의 덕분이다. 나는 아름다운 미래를 회고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회고이것이 개인사를 정리하면서 내 마음을 무찔러 들어온 생각이다. 

 

나는 앞으로도 10년에 한번씩 내 변천의 기록과 개인사를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단단한 실체 위에 미래의 10년을 건설할 것이다.

 

타도, 구본형이것이 채 책 속에 숨어있는 정신이다. 나는 나의 문화사, 이 개인의 실록을 통해 내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나의 비전은 먼저 이렇게 나에게 적용되었다. 내가 내 직업의 첫번째 고객인 것이다. 2007 1

 

책을 펴내며

 

이 책에서 나는 몇 가지 사소한 실험과 반란을 시도했다. 반란이란 성공한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실험이란 즐거운 것이 아니더냐.

 

이 책은 나에 대한 기록에 기초한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이다. 그러니까 유명한 인물들이나 쓰는 자서전 시장에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끼어든 것이다. 그들에게는 불쾌한 일이고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이 책의 부제는 그래서 평범한 인간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라 불러 마땅하다.

 

이 책을 쓰다가 쓰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덤을 얻었다. ‘자서전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살았던 삶이며 동시에 내 속에 있는 그들의 삶이었다. 나는 이러한 깨달음이 바로 인간에 대한 성찰의 확대라고 믿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이것이 위대한 인물과 힘있는 자들의 역사와 함께 또 다른 역사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 역사의 가장자리에 존재했던 무수히 작고 개별적인 인간들이 증발해서 사라져버린 역사학, ‘인간이 없는 인간에 대한 기술이 인간에 대한 성찰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서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이 책이 바로 그 프로젝트이다.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첫번째 실험 보고서이다.

 

자서전은 나이 먹어 쓰는 회고록이고, 통상 죽기 전에 한 번 쓰는 것이다. 그러나 자는 지금부터 10년에 한 권씩 나의 이야기를 편찬하려 한다. 조금 일찍 깨달았다면 더 빨리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40대의 10년부터 시작하게 된 일은 공교로운 일이었다. 만일 20대나 30대부터 기록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10년 후의 세계를 예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일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가 절실한 이유이다. 2004 3

 

일러두기

 

이 책에서 인용문은 모두 따옴표로 표시되었다. 어떤 것들은 저자와 출처를 밝혔고 어떤 것들은 그저 따옴표만 했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내 생각치고 오리지널 내 생각이 있을까? 문화는 처음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내 속에는 나를 키워온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들어 있는 셈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 속에는 나의 생각, 나의 느낌이 편재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무엇이 그들의 생각이고, 무엇이 나의 생각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그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사람 역시 역사의 산물이기도 해서 그가 정말 오리지널인지 불분명하다. 내용이 나를 움직이기 때문에 인용한 것인데, 저자와 원전이 덜렁덜렁 따라와 군더더기가 된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내 것과 남의 것 사이의 경계가 너무 호호하면 도둑질이 될까봐 최소한 따옴표를 써서 형식적으로 구분했다.

 

둘째 어떤 것은 저자를 밝히고 어떤 것은 슬쩍 따옴표만 한 것은 일관성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나는 서로를 밧줄처럼 엮어줌으로써 굴비처럼 꿰어놓는 질서정연한 상징성을 싫어한다. 규칙이 생기면 즐거움은 줄어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멋대로 하는 재미와 기쁨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새처럼 가볍게 변덕을 부리며 쓰는 것 자체를 즐겼다. 불필요한 규제가 없어야 사업하기 쉽듯이 형식이 가벼워야 글쓰기도 즐겁다. 사업을 하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규칙과 표준이 창의성과 예술성을 말살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이끄는 정신적 물결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잃으면 배를 띄울 수도 춤을 출 수도 없다.

 일러두기가 재미있어서 전문 (1p 분량)을 타이핑했다. 재미있다. 독특한 양반이네. 하하. 이래놓고 나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프롤로그

 

모든 좋은 것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니체)

 

16 나는 40대의 10년을 기록하여 내 개인사에 대한 첫번째 실록을 만들었다.

오호 이거 재미나겠다. 그럼 나는 30 10년의 실록을 편찬해봐야겠구나.

그건 너무나도 분명하다. 스물아홉살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뮤지컬을 보는 의례를 가지면서 나는 30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흔을 맞이했다. 끝이 분명했다. 나의 첫 책은 이런 용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소설적 자전이라고 했지만 이 책은 소설은 아닌 듯 하다. 소설이 허구이면서 진담인 것처럼 이야기는 그럴 것이다. 

 

16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은 역사와 소설의 중간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무릇 심오함을 가장하는 자들은 가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밀로 남고 싶어하는 과거도 있었고,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불명확한 감정과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떼어내면 40 10년간의 내 진짜 모습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털어내되 그 이야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 방법, 즉 화자와 이야기를 분리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의 도움을 받았다. 그것이 소설이다. 소설은 거짓과 농담을 가장한 진실과 진담임을 알게 되었다.

소설이 매우 자유로운 글쓰기 방식이구나. 그녀는 20대를 소설로써 써낼 수 있을 거다. 나는 30대를 신화를 가미한 읽을꺼리로 써낼 수 있다. 굳이 라는 주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좋을 거다. 나를 대신해 이야기를 할 사람은 많은 수도 있다. 

 

16 이 책은 놀이이며 유희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 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다. 그동안 배운 학습의 노트이며, 읽었던 책들의 주석이다. 자전적 소설이고, 소설적 자전이다. 지나간 삶에 대한 파괴이고 앞으로 살 삶에 대한 창조이다. 나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보려는 실험이다.

 

17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1장  지난 10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유혹의 나이 마흔 / 절정을 지난 꽃의 아름다움 /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지다.

 

21 불행한 시기에 철학을 시작해서는 안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용감하고 성공적인 장년기의 열렬한 명랑함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니체)

 

21 마흔 살은 오래 끓어서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이다.

 

24 마흔은 가끔 불면증과의 동행과 동침을 의미했다.

 

25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25 바흐 무반주 첼로곡. 파블로 카잘스가 타는 바흐를 듣다 보면 어느덧 잠이 들고 아침에 상쾌하게 깰 때도 있다. 불면증은 적어도 나를 찾아온 이놈은 약간 묵직한 음률을 좋아하는 것 같다.

 

26 불면을 즐기는 방법으로 거대한 프로젝트 하나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남은 시간 동안 인생 전체를 놓고 이루어야 하는 이미지에 대해 그려보기로 했다.

 

26 가장 먼저 본 그림은 저술가의 모습이었다.

 

26 10년마다 이와 비슷한 책을 한 권씩 발간할 예정이다.

그는 이 책 한 권을 발간했다. 다음 권이 준비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27 50대가 되기 전에, 노인의 모든 특성이 나타나는 그 끔찍한 나이가 오기 전에, 아직 젊음이 늦여름처럼 무더운 이 40대에 마지막 폭염 같은 사랑으로 성년의 절정을 매듭짓고 싶어한다. 중년의 금지된 사랑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황홀하게 극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떨쳐버리기 어려운 유혹이다.

 

29 얇은 옷 사이로 부드러운 피부 속으로 만져지는 뼈, 뼈도 아주 성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30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영혼의 갈망 같은 것이다.

 

31 현실은 늘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오직 삶만이 현실의 위력에 눌려 죽어지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왜 그리 중요했을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제와 절제를 현명함으로 불렀던 그 어리석음은 또 어떻게 하랴.

 

36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면 새로운 단면과 만날 수 있다.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던져주는 여러 상징을 해석하고 가능한 여러 해결 방법 가운데서 내게 적합한 방법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니까. 물로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안고 살면 되는 거지.

 

37 40대는 이제 특별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나이가 되었다. 그것은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40대의 10년 가운데 어딘가에 버려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려졌고, 성장의 문턱에서 거부되었으며, 왕성한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38 나는 이미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고, 직장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세대에 편입되었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이 장에서 마흔‘40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장  마흔살

 

마흔에 관한 이야기들 /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나이

 

43 나는 그를 혐오했다. 그는 늘 과거를 과장했다.

 

43 바쁘게 지낸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말았지. 지금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해 공허한 한 남자를 말이야.

 

43 나는 그런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내가 혐오하는 그가 나와 동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든가, 동질성을 인정하고 적어도 그를 혐오하는 것을 중단해야 했다.

 

46 마흔이 되었을 때 내게는 나의 세계가 없었다. 내 삶은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저 짜여진 일과 속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나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활력이 넘쳤지만 인생 깊숙이 자리 잡은 피로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49 그림 형제의 이야기는 통찰력 있는 우화이다. 하나님은 모든 동물에게 30년의 생명을 주었다. 당나귀와 개와 원숭이는 늙는 것이 두려워 30년 가운데 후반 몇 년을 깎아 달라고 했다. 하나님은 친절하게도 모든 소원을 들어주었다. 마침 사람이 나타나 30년 세월의 짧음을 호소하자 하나님은 역시 친절하게도 동물들에게 잘라낸 세월을 사람에게 얹어주었다.

30년 이후 18년은 당나귀에게서 받은 생애다.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 다음 12년은 개에게서 받은 생애다. 양지에 엎드려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거나 졸며 지낸다. 나머지는 원숭이에게서 받은 생애다. 비롯 이때가 되면 자유로워진다. 제 좋을 대로 행동하지만 이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모든 관절이 녹슨 문짝처럼 삐걱거리고 겨우 걷고 먹을 수 밖에 없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비극이다. 마흔살은 당나귀의 삶이다.

 

51 실제로 마흔은 무언가를 해놓은 나이이다. 대부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자라 어엿한 성인이 되고 있다. 작지만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 공들인 흔적이 남아 있으며, 큰마음 먹고 장만한 세간들도 있다. 삶은 충분히 의미있는 해석을 할 수 있다.

 

52 위대한 인생이 그림이 마흔이 되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적인 관심이 자신에게서 가족에게로, 자식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52 어쩌면 마흔살은 여성적인 특성의 수용이기도 하다.

 

52 여성의 마흔 살은 남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남자는 마치 지는 해처럼 시들지만 여자들은 보름달처럼 절정을 향해 달린다.

 

53 중년이 되자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의 힘과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일어선다. 남자들이 영웅적인 여행을 포기할 때 그리하여 자발적이고 공격적인 경쟁심을 상실해갈 때, 여성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이런 르네상스적 힘과 공격력을 회복하게 된다.

 

54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실패와 무능력과 비겁함은 비난받아야 할 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비극의 문제로 전환된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강한 자에 대한 비난은 탄식과 슬픔이 된다. 겸손과 동정과 베품은 이런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 변환이다. 이러한 자기수용은 자아통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마흔 살은 융통성이 시작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보는 긍정적 지혜가 위로가 되는 시절이다.

 

54 젊은이들의 창조성은 발작적인 불꽃같다. 그들의 창조성의 99퍼센트는 영감에 의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창조성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55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56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더 관용적이 되는 반면 덜 도덕적이 된다. 그리하여 도덕적 상대주의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에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용했던 이분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삶의 전체 모습을 해석할 유연하고 더욱 복잡한 새로운 지혜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56 마흔이 되면 단순한 이분법과 전통은 더 이상 등불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 해석한 세상을 가지게 된다.

 

57 융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 쓰고 있는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대체로 이러한 갱생의 힘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59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60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며 죽어야 살 수 있다. 이 치열한 반전을 사람들은 일부러 잊으려 하는가?

 

61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 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 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62 마흔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 아니라 이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63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짜리 인생이었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3장  직장생활

 

홀로그램의 세계 속에서 / 필요한 사람들 / 돌연한 출발 / 나를 마케팅하다 / 새로운 시작

 

68 이 연구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지루한 일상을 메워주는 탈출구였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 일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변화에 대해 내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13년차다. 필살기 책을 접한 지도 만 3년 째다. 나의 직장생활에서도 한 줄기로 꿰어지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한심하다.  

 

69 변화경영은 직원들에게 인기없는 관심사였다. 그들은 모두 현재의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현재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69 변화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 불행한 자들, 또는 불행을 인식한 자들의 과제였다.

 

70 그러나 그들은 두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첫번째는 내가 그 부서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던 이유는 내가 붙잡은 길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71 두번째 이유는..나는 혁명사를 전공하고 싶은 역사학도였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내게 감동과 전율을 주었다. 그 말처럼 매력적인 단어는 없었다.

 

78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점이 있다. 온갖 종류의 구조 조정에도 상관없이 한 조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성장하고 싶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특별함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폐쇄회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의 제3의 꼭지점을 찾아내어 그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누구의 사람이라는 폐쇄적 구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처럼 빼내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사람도 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읽어내는 사람은 이런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익숙하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소질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개발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가 없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설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남겨진 조직의 힘이 격감되는 사람들..그들이 바로 놓칠 수 업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81 떠남이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조직과 단체 속에서 더욱 빛나는 사람들도 있다. 혼자 떨어져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들 속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휘날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에 남아 그 곳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나는 어떤 사람?  

 

83 이 여행이 나만의 여행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데리고 떠나는 가족여행이라는 점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83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IBM 밖으로 끌고 나와 모든 기업과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나의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틀려줄 이야기는 있었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찾아내야 했다.

 

84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했다. 나는 사람의 관계는 가능하면 순수한 것이 좋다고 신봉하는 축에 속하는 숙맥이다. 나는 이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84 나는 세일즈 대신 나를 마케팅할 방법을 모색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를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설득했다.

 

85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며,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유혹은 올가미고 덫이다. 사냥은 창을 들고 소리 지르며 짐승에게 덤벼드는 것만이 아니다. 온몸에 쥐가 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다 덮치는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덫과 올가미를 놓고 펴안한 집에서 술 한잔 하고 푹 쉬고 나서 그 다음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덫과 올가미에 걸려 있는 짐승을 향해 다가가는 것도 사냥의 한 방법이다. 세일즈가 도망치는 고객에게 달려들어 창을 꽂는 것이라면, 마케팅은 짐승이 다니는 길에 온갖 화려한 미끼를 주렁주렁 단 덫과 올가미를 놓아두는 것이다.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성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1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86 나 역시 스스로를 마케팅하기 위해 강력한 매력이 필요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나를 알리는 것이었다. 나의 존재, 나의 콘텐트, 그리고 나의 가능성을 알려야 했다. 어떻게? 이것이 고민의 핵심이었다.

 

87 그리고 열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87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89 경영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89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90 나는 사는 듯 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91 나는 제 2의 인생 속으로 들어갔다. 조직에게 양도했던 힘과 권리를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평범함과 군중이 품을 떠나면서 외로워졌다.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의 꽃을 피워야했다. 그것은 겨울 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4장  얼굴 페르소나

머리카락, 약간의 콤플렉스 / 수염, 자연의 공평함 / , 나의 자부심 /

인상, 자랑할 만큼은 아니지만 / 인형에서 자유인으로

 

99 그들도 가끔 나를 만나게 되면 내가 지난번에 만난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까? 아니면 지금 이 사람이 20, 30년 전부터 알기 시작한 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일상의 여울 속에서 그 작고 미세한 감정의 파도들이 쌓아놓은 퇴적물로 화장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화장품 가운데 으뜸은 역시 세월이다.

 

100 눈은 엄밀히 말하면 두뇌가 밖으로 나온 기관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눈에 표현되게 된다. 눈이 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100 사람은 행동으로 말하게 된다.

 

102 나는 가발은 싫어한단. 가발을 쓰면 처참해질 것 같다 다른 사람처럼 평균이 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등감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머리용 가발이다. 그러나 모자에는 당당함이 있다. 모자라는 액세서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멋을 만들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103 언젠가 파리에 가면 좋은 모자를 하나 사고 싶다. 아이들에 대한 일상적 책임이 가벼워지면 갈 만한 곳으로 몇 군데를 남겨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파리다.

 

104 눈썹과 수염이 많으면 머리카락은 적어지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106 나는 코가 잘 생겼다. 크고 우뚝하며 기름하다. 반듯한 콧날이 길게 내려오면서 너무 좁지 않고 적당하다.

 

107 나는 절대로 아부 같은 것은 못한다. 나이 들고 교활해져서 이제는 가끔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건 좋은 말 정도일 뿐이고, 아부라 할 만한 정도는 못된다.

 

107 자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가운데 이렇게 애착을 가진 부위가 있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약간 푼수로 보일 뿐이다. 원래 푼수인 걸 푼수처럼 보인다고 나쁠 것이 있겠는가?

 

109 나는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에 대하여 약간 시무룩한 편이어서 맥이 없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109 나는 내면의 에너지가 출력되는 것이 약한 듯하다. 막내인 나를 낳았을 때 어머니는 마흔에 가까웠으며 원래 병약하셨다. 거기다가 전쟁이 끝난 직후였기 때문에 먹는 것도 신통치 않아 결국 비실거리는 아이를 낳았을 확률이 많았다.

 

113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이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욕망은 부숴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것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113 어느날 나는 내게 날마다 먹이 주는 손을 거부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파트를 팔고 대중의 선호와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동네로 이사왔다. 내 속에는 불꽃이 있었다.

 

114 돈이 없어도 가난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상상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그때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후 내 불꽃은 마흔을 넘어서면서 거의 사그라지다가 갑자기 전혀 예기치 않게 다시 훨훨 춤추는 듯했다.

 

114 단식이라는 상징은 내게 참으로 적절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해 주었다. 모든 속박은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왔다.

 

115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117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18 마흔이 되어 내가 한 일은 그런 나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5장  가족

부드러움이 돋보이는 아이 / 나를 닮은 아이 / 나의 별명은 미숙이’ / 늘 옆에 있는 그녀 / 삶의 우선순위 / 아내와 함께 떠나는 여행 / 늘 그립고 반가운 친구

 

123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이탁오)

 

124 아비 역시 스승과 친구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 같았다. 피로 얽혀 있으니 갈라설 수 없으며, 아이의 천성을 만들어낸 유전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일상 속 좁은 공간에서 아무 꾸밈없는 모습으로 아무데서나 늘 부딪히기 때문에 예의라는 옷을 입고 만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모는 친구나 스승과 다르지만, 이 두 가지 속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매우 유효한 힌트였다. 부모로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 너머 함께 즐기고 어울리며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게 적절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적절한 표현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다. 

 

129 작은 아이는 어쩌면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가 아직 중학생일 때, 나는 회사를 나와서 내 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그 전에 아이가 오면 함께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을 장만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했다.

 

130 함께 먹는다는 것은 아마 그래서 식구라는 단어가 생겼겠지만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꽤 중요하다. 먹고 산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되고, 먹는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이완을 위한 휴식이기 때문에 휴식시간에 만난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130 나는 이 아이와 가진 20~30분 정도의 간식 시간을 일 년 반 정도 즐겼다. 나중에는 아내가 퇴직을 하고 집에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주로 아내의 일이 되었다. 그때 오늘은 무엇을 함께 먹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떤 때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까지 버스를 k고 가서 사오곤 했는데, 신이 나서 그 일을 했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즐겼다.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서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작은 수고들은 이런 기쁨을 위해 동반되는 선물의 포장지거나 아름다운 포장 끈이거나 리본 같은 것들이다. 

 

131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면 잘 되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제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다. 감정이 격해지고 더듬거리며 장황하게 된다.

 

131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린 둘 다 배움이 느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서로 애를 쓰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늘어가고 서로를 견디게 되었다.

 

132 아이의 지적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야말로 가장 훌륭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저자 부녀는 영어 공부를 일 주일에 서너 날 한다. 이런 기회를 모든 아버지들이 원하는 걸까? 아이와 같이 박물관, 도서관에 가고 싶은 아버지, 여행을 다니고 싶은 아버지, 텃밭을 일구고 싶은 아버지누군가의 부모가 되지만 어떤 그림을 그릴 건지는 삶의 우선순위가 반영된다.    

 

134 생각할 시간을 허용받지 못하는 조급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작은딸은 내 뒤를 이어받아 변화경영연구소를 공동 운영할 생각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 그 애도 자기가 만든 세상, 자신의 세계를 좋아하니까 충분히 소질이 있다 할 수 있다. 어쩌면 10년쯤 후에는 지금의 ‘1인기업이 부녀가 함께 경영하는 ‘2인기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같이 하시면 좋겠다

 

135 그녀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내 고민의 옆에, 내 실패의 옆에, 그리고 내 성공의 옆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죽음 옆에도 있어줄 것이다. 그녀는 늘 내 옆에 있다. 덩굴장미가 여기저기 타고 오르는 나지막한 하얀색 나무 울타리처럼 그녀는 그렇게 늘 내 정원이 되어 곁에 있어주었다.

아내와 나의 관계에서 신혼 초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싸우고 난 후 화해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아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 부딪치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싸운 후 다시 웃고 떠드는 데까지 가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신혼 때는 그러지 못했다. 참는 데까지 참고 있다가 어느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딪쳤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존심을 세우고 침묵을 지키며 기싸움을 했다. 며칠이 지나고 2,3주가 지나도 여전히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대체로 그 싸움의 승리자였다. 그러나 오래 살다보니 서로 알 만큼 알게 되었다.

 

13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버린 시간의 밭을 일궈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잠속에 묻혀버릴 뻔한 보물 같은 땅이었다. 하루 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있다. 

 

139 그때 나는 이미 죽어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주어야 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140 나는 한 달에 평균 서너번은 지방에 가서 강연을 한다. 그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내와함께 간다. 우리는 이것을 강연여행이라고 부른다. 가서 강연 전후 적당한 시간에 산천을 구경하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한다. 아내는 스스로 로드 매니저라고 부른다. 내가 거리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함께 놀아준다. 비행기로 이동하고 그 곳에서 차를 한 대 빌리면 아주 훌륭한 여행이 된다.

 

 141 나는 동해의 바다 냄새를 풍기며 에너지에 차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앞에 선다. 나는 먼 거리를 오느라 파김치가 된 강사가 아니라 삶을 즐기기 위해 떠나온 여행자처럼 싱싱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143 내가 아내와 즐기는 시간의 3분의 1 정도는 이런 여행으로 채워졌다. 이것이 내가 새로운 삶을 가진 후 가능해진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144 우리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늘 그날 늦게라도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아직 아이들을 도와주어야할 시기였기 때문에 아이들만 집에 놔두기 싫었다.

 

145 가족처럼 매일 삶에서 서로의 인생 속으로 들락거리며 만나지는 않지만 내 일상의 또다른 뼈대를 이루는 친구들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친구들은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다. 우린 함께 술을 마시거나 함께 여행하거나 함께 산에 간다.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는 것 만으로는 허전하다. 역시 술을 마셔야 좋다.

 

146 나는 목적을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146 친구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끼면 안된다. 친구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안좋다.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147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148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6장  자연

신과 가까워지는 공간 / 변화의 이유 / 나는 나무다 / 나만의 씨앗

 

자연과 신, 그 어느 쪽도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둘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본성의 집행관이었다. (에밀리 디킨슨)

 

153 나는 이제 곧 쉰 살이 된다. 그러나 봄이 어떻게 오는 지 알게 된 것은 겨우 몇 년 전이다. 나는 천성이 느린 사람이다.

 

156 마흔이 되면서 산에 더 자주 가게 되었다. 언젠가 북한산의 노적봉이 마음에 들어 주말마다 그 봉우리를 찾았던 때가 있다.

 

156 잠시 홀로 있을 수 있는 봉우리기 때문에 이곳에 오르면 우선 옷부터 벗는다. 옷을 모두 벗어두고 햇빛에 온몸을 말리며 홀로 조망하는 기분은 숨겨두고 두고두고 즐길 만하다.

 

159 얼마 전에 작고한 이오덕 선생은 늘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161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63 곽박의 시에서는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고 해쓴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그의 주제는 변화다. 그는 인간과 자연 및 세상이라고 불리는 지구공동체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인 변화를 자신의 키워드로 삼았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경영하는 방법을 기업체의 경영에도 적용하고 개인의 삶에도 적용한다. 그가 회사에서 혁신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16년을 보낸 것은 어쩌면 우연일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주제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인종과 민족, 그리고 나라와 시대를 초월한 또 하나의 주제는 관계 맺음이다. 나는 이것을 무아와 무상이라는 불교적인 키워드를 생각하다가 연결해보았다. 무상은 이 세상의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무아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중 다른 것들과 관계맺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은 없다는 내용이다. 무아가 있기 때문에 무상이 가능하다. 그건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핵심적인 키워드가 될 거다.

 

그걸 어디에 적용할 것인가? 이건 나의 연결성테마가 기능하는 모양일 것이다. 전체를 연결된 것으로, 서로 관계 맺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내게는 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가능하다. 나는 언제나 동심원을 고려하지 않던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부터 이 장이 시작된다. 그 시인은 작은 소읍에 살면서 우주 전체의 기미를 잃던 그 시인이 아닌가? 나의 직업, 아침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하는 새벽푸른빛 안전기지 구축 작업들은 그 안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거다. 과연 이 일이 전체 인류에게, 또는 전체 생명공동체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깨어서 지켜보는 일, 그리고 이미 이 세상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보통 사람들의 영성을 생각하는 시기가 아니던가? 출가와 재가의 경계선이 점점 더 흐릿해지고. 문득 잡념 솔솔 피어 오르네. 이런 잡념 피우는 순간이 책읽기의 즐거움이다.        

 

163 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온몸이 다 꽃이지는 못하다. 그러나 단풍은 온몸으로 불탄다. 은행나무, 화살나무 벚나무, 옻나무도 다 아름다운 가을 나무들이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서산을 넘어가는 해의 아름다움이다.

 

164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다.

 

164 G.K. 채스터턴의 말대로 참으로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기쁨은 도처에 있고 늘 활동중이다.

 

164 빙겐이 성녀 힐데가르트가 나는 스며든다. 초록빛 풀밭에, 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물살에. 나는 깃든다. 죽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곧 생명이므로라고 말할 때 그녀는 곧 나였다.

 

165 내가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할 때 나를 위로해준 것은 자연이었다.

 

165 그 때 나는 치유가 필요했다. 내가 보낸 20년을 돌아보고 다시 새로운 인생 20년을 기획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 했다. 여기서 새로운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근본적인 변화 지점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166 나는 자연의 방식을 추구했다. 자연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을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데려왔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특히 나무로부터 위대한 교훈을 사사받았다.

 

166 내가 나무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내 성격적 특성이 나무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167 나는 다른 사람을 찾아다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나에게는 발이 없다. 나는 한 곳에 서 있다. 나는 나무와 같다. 스스로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키워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찾아오게 하는 것이 훨씬 나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7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167 나의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어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내 내면을 뒤지고 곳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샘들에 깊고 굵으며 튼튼한 뿌리를 견실하게 박아두어야 한다. 이 힘들만이 나를 키울 수 있다. 이것이 첫번째 교훈이다.

 

168 내가 어떤 나무인지는 잘 모른다. 내가 가장 되고 싶은 나무는 깊은 산속의 아주 높은 곳에 위친한 탁 트인 아름다운 곳에서 오래 자란 줄기 붉은 소나무다. 그 그윽하고 향기로운 모습이라니. 그 밑에서 땀을 닦으면 나도 잠시 그 정정함이 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사람들이 종종 찾아주는 너무 깊지 않은 산 맑은 계류 옆의 커다란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봄이 외면 온몸을 열기로 띄워 분홍이 조금 섞인 흰 꽃으로 며칠 피다 바람의 결을 다라 흩뿌리는 그 멋진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어느 거리의 가로수로 잘 자란 느티나무였으면 좋겠다. 느티나무는 멋이 있다. 섬세한 여인 같은 나무다. 줄기도 잎도 모두 곱다.

 

169 나무도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수없이 자신을 탄생시킨다.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169 낙엽은 나무의 지혜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169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일 년의 삶이다. 내 책도 내 일 년의 삶의 기록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내 일 년도 떨어진다. 그리고 열매를 남기듯 나도 내 책을 남긴다. 책 한 권이 쓰여지면 내 일 년도 지난다. 나무가 다음 해에도 똑 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 혹독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거친 나무는 이미 전 해의 그 나무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영원히 죽은 것이다. 살아 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정신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173 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 개씩, 수만개씩, 수백만 개씩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 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174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말아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우 매혹적일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행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 속에서 죽은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많은 낭비를 즐긴다.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마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지닌 품종을 만들어 내라.           

 

7장  건강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죽음 / 욕심이라는 이름의 암세포 / 이상 신호 /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

 

183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185 자연은 다산과 낭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쏟아붓고, 싹튀우고, 꽃을 피운다. 과도하게 주고, 가장 적절하고 강한 것만 남게 한다.

 

187 인류의 흔적들은 100만 년 전가지 올라간다. 대략 초기 97 5천년 동안 사냥꾼으로 살았고, 겨우 2 5천년 동안만 농사꾼으로 살았다. 간단히 말하면 살아온 인생 40년 가운데 39년 동안은 사냥꾼으로 살았고 농사꾼이 된 지는 겨우 1년 밖에 되지 않았다.

 

187 사냥꾼 시절에는 먹을 것과 짝짓기와 목숨을 위해서 살았다.

 

188 문명은 인류가 여성화되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역사 대부분의 주인공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화려하고 빛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면 윌 듀랜트의 지적대로 남성은 자궁, 즉 인간이라는 종족의 주류인 여성에게 조공을 바치는 존재였다. 여자들은 가축을 길들였고, 마지막으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이라는 사회적 틀질을 배우고 익히게 했다.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다. 즉 아무 때나 짝짓기를 하고, 음식을 탐내며, 싸움질을 해서는 안된다.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8장  길에서

정신적 여행자 / 길을 찾아서 /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 행복해지는 법

 

208 나는 미래에 일어난 일을 과저 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활공한다.

 

209 나는 가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라기 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내가 두려워한느 것은 지금 해야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이런 생각들이 내게 지금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한다. 담배를 끊고 일찍 자고 먹는 양을 줄이고, 더 많은 운동을 하라고 내게 명령하기도 한다.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자신에게 시간을 쏟고 더 고독해지라고 말한다. 더 많이 아이들과 생활을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아내와 즐기고, 일 때문에 바쁜 척하지 말라고 말한다.

 

211 꿈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다. 꿈을 만들어내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을 버리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욕망을 버리는 것역시 욕망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욕망의 특별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211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려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 ..현실화되었든 아직 생각으로 남아 있든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213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길을 가게 된다. 갈림길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우리 마음 속에 그 드물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며 자신의 처음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시인 백석)

 

213 내 앞에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그 대신 내 뒤에서 수많은 길이 닫히는 것을 보았네. 이 역시 삶이 나를 미리 준비된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네. (파커 파머 <루스의 이야기>)

 

215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는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그는 길 위에서 죽었다. 그는 완벽한 여행자였다. 맞다 맞다.   

 

216 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그것이야말로 비옥한 정신적 토양이다.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진하게 되므로 죽음이 찾아왔을 때 완전히 비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나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으리라.

 

217 나는 책을 쓰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무엇보다 즐거운 취미인 셈이다. 그 해 발간된 책은 일 년동안의 내 관심사였다. 책 한 권이 나오면 내 일 년동안의 정신적 여정은 정리된 것이다.

 

217 그러나 정말 내 인생은 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에서 표현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내 하루하루였다. 나의 하루들은 책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물처럼 흘러갔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고 낭비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간 것들 속에 내 인생이 담겨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219 깨달음의 내용은 없고 그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정도가 50년을 산 나의 깨달음이다. 참 모자라기 그지 없는 사람이다.

 

220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일과 채소, 그리고 여러 곡물이 섞인 밥을 먹고 하루에 30분씩 운동하고 한 시간씩 햇빛을 쪼일 수 있다면 행복하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일 년에 한 번쯤 흔들의자에 앉아 마치 다 산것처럼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 질 수 밖에 없다.    

 

9장  , 공간

내 마음의 집 / 산을 품은 집, 집을 품은 산 / 욕망이 자라는 공간 / 정원 손질 /

일상의 작은 쉼터

 

227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주인을 닮는다. (칭기즈칸)

 

227 그 집에는 작은 뜰이 있었으면 좋겠다. 뜰에는 단아한 느티나무 한 그루 있었으면 좋겠다. 그 밑에 작고 예쁜 평상 하나를 놓아두었으면 한다. 더운 여름날 재미있는 책 한 권 들고 자다 깨다 하며 읽을 수 있는 그런 평상 말이다. 물론 좋은 친구가 찾아오면 작은 소반 위에 안주 겸 반찬 몇 가지 놓고 소주를 마쳐도 좋을 것이다. 그 옆으로 약간 분홍빛이 도는 줄기를 가진 마가목 두 그루를 심어두었으면 좋겠다.

 

228 정원의 가운데쯤이면 작약과 모란 몇 그루를 심어두고 꽃을 보고 싶다. 나뭇잎 또한 예쁘니 꽃이 지고 난 후에도 여러 갈래 창날 같은 시원한 푸른 잎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옆으로 약간 치우쳐서 꽃이 작고 진한 별돌빛 당국화를 두 그루쯤 심어두고 싶다.  

 

229 집은 채광이 잘 되는 동남향 집이면 좋겠다. 유리를 많이 써서 햇빛이 듬뿍 들어오게 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창문이 시원한 작은 방을 하나씩 주고 서재를 좀 크게 하고 싶다.

 

231 아주 작은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무 바닥에 벽은 전부 황토로 만든 방이면 좋겠다. 작은 나무 책상 하나에 나무 의자 하나, 그리고 바닥에 놓인 쾌 큰 방석 하나가 이 방을 채운 소품의 전부이다. 나는 이 방을 삶의 방이라고 부르고 싶다.

 

232 나중에 누군가 이 방을 기도의 방이거나 면벽의 방이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방에서 나는 늘 나와 만나고 싶다. 이것이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집이라는 공간이었다.

 

232 마흔여덟이 되어서 참으로 다행스럽게 내가 꿈꾸던 것과 비슷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232 이 집을 사기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북한산 남쪽 주변을 거의 5년 동안이나 돌아다녔다.

 

232 나는 북한산을 15년 가까이 다니고 있다. 이사 오기 전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산에 오르고 평창동이나 구기동 쪽으로 일찍 하산하게 되면 잊지 않고 복덕방을 찾아가곤 했다. 돈이 마련된 것도 아니고 당장 이사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만 북한산 밑에 있는 조용한 집을 찾고 있었다.

 

233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은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터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터를 잘 잡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235 거실 앞에 나무 데크를 만들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하루에 몇 시간씩 이곳에서 보내곤 했다.간이식탁과 파라솔을 놓고 가족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달이 환한 날 밤에 술을 마시기도 했다. 또는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기도 했다.

 

235 이곳은 창문마다 예쁜 산수화 같다.

237 어머니 나무에 나와 가지 위에 핀 꽃들은 모두 나무의 자식들이다. 끙하고 힘을 줄 때마다 한 놈씩 나와 가지 끝에 달려있다. 아름다움으로 꽃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다. 참다참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것이 바로 꽃이다. 민감한 시인들은 그래서 꽃 터지는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241 아무 것이나 자라도록 방치된 밭은 게으른 농부, 더 이상 농부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의 직무 태만의 결과이다. 이것이 재배의 의미다. 밭을 재배한다는 것은 자신이 심고 싶은 것을 심는 것이다. 심고 싶은 것, 즉 욕망을 따른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서 자라난 또 다른 욕망들을 뽑아낸다는 점에서 바자연적이다.

유사한 욕망들로 점령된 밭을 북정밭이라고 하고, 그 밭의 소유자를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242 나는 마흔이 넘어 내가 키우려고 마음먹은 작물을 선택하게 되었다. 여전히 다른 작물들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의 작물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은 잡초를 뽑고, 자양분을 제공하며, 훌륭한 밭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욕망이 자랄 수 있도록하나의 욕망,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그저 생긴 대로 자라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것, 내가 만일 소나무라면 아름다운 소나무로 자라는 것, 만일 느티나무라면 아주 정정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내 욕망이었다.

 

243 나도 늦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나 만나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우연히 글 쓰고 강연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246 쉰 살이 되기 전에 이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비로소 벚꽃의 사회적 상징과 의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적어도 벚꽃에 관한 한 비로소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246 어쩌면 밝고 화려한 성격을 오래도록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적 불활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박장대소하게 만들거나, 재치 있고 다소 수다스러운 밝은 벚꽃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그 꽃잎에는 어찌할 수 없이 작고 여리며 앙증맞고 환한 귀여움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이유이다.

 

249 우리는 증거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일을 하면 한 티가 나야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정원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노동이다. 지금 막 시작했지만 아주 훌륭한 취미가 될 것 같다. 생명을 만나고, 생명과 이야기할 수 있으며, 생명이 자라는 것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산에 가서 걷는 것도 좋고, 이렇게 작은 정원 하나에 매달려도 좋으며 댓 평쯤 되는 텃밭에 매여 여름을 보내도 좋다. 즐거운 일이다.

 

250 내가 바라던 대로 이 집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커다란 우산처럼 벌어져 있다. 나는 우리집을 느티나무 벽돌집이라고 부른다.

 

254 나처럼 1인기업을 하는 사람에게 집은 작업장이고, 직장이며, 사무실이고, 일상이 이루어지는 훌륭한 세계이다.

 

254 나는 하루를 숨쉴 수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공간을 원해왔다.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창문을 열면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이 밀려드는 그런 공간을 원해왔다마흔여덟에 북한산 아름다운 언덕 위에 내가 바라던 공간으로 이사올 수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10장 학습

놀이로서의 학습/ 나침반 하나 들고 떠나는 탐험 / 마음이 가는 대로 / 노마드 / 삶의 방식을 바꾸는 혁명

 

259 그러나 내가 떠나온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확보하는 순간 과거 생활의 장점들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아무런 소속감이 없었다. 안전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어졌다. 매일 지겹도록 만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동료들도 사라졌다. 내게 정규적으로 먹이를 주던 손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면 가야할 곳도 사라졌다. 생명보험도, 자녀교육비 지원도, 의료보험도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지출되었다.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던가.

 

260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하면서 완전히 내 손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외로움과 불안과 대면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움을 선택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261 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도록 했다. 계속 책을 쓰도록 했고, 계속 읽게 했으며 그저 빈둥거리며 사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

 

262 직장을 금나두고 홀로 서게 되면서부터 무협지를 읽지 않게 되었다. 시간의 낭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무협지를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263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263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63 나는 한 가지 책을 읽는 것을 경계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264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적 계산을 넘어 빠져드게 한다.

 

265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268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쓰는 지는 알고 있다. 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저 방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책을 구성하는 지도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도가 있으면 좋다. 그러나 내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은 지도에 없는 곳이다. 대체로 나는 나침반만 가지고 집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간혹 지도에 있느 길들과 교차하기도 하고 얼마간 평행이 되어 달리다 이내 산속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나만의 길을 따라 줄곧 남쪽으로 간다. 이것이 내가 책을 쓰는 방법이다.

쓰다보면 묘한 곳에 이르게 된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으로, 예기치 않았던 모습으로 다가든다. 그러면 신이 난다. 글은 글에 연하여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언어로 파고든다. 나는 이 방법을 즐긴다. 다소 목적지가 불분명한 여행, 가다가 언제고 목적지가 바뀔 수도 있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여행..난 이런 여행이 좋다. 여행은 곧 자유인데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에서조차 얽매이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269 이것을 지적 탐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이성의 뒤에 숨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나를 나아가게 하고, 어떤 감정이 나를 휩싸기도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준다. 학습은 온몸으로 이루어진다.

 

269 아침에 일어나 책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겠지만, 이 방법이 내 스타일이다.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270 독자는 작가와 같다. 그들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책을 쓴다.

 

271 경제적으로 학습은 자신을 자본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교육과 훈련,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서만 포인트가 누적되는 자본이 바로 인적 자본이다. 자신을 자본화할 때는 전략적 배려를 해야한다.

 

271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보물섬 이야기의 대부분은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흥미진진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272 주제, 제목, 디자인, 저자 등 무엇이든 눈길을 끄는 놈하고 싸운다.

 

272 책을 들춰보는 순간 천박한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놈들과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싸움은 지저분해지고 이겨도 얻을 것이 없다. 내 시간을 훔치는 놈들이며, 나를 화나게 하여 내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놈들이다. 이럴 때는 번개처럼 얼른 손을 놓는 것이 좋다.

 

272 차례를 보고 몇 장을 넘겨보면 매력을 살살 풍기는 책들도 있다. 나는 그런 책들을 본다. 그러나 그들이 쳐놓은 사유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듯 본다. 나는 단번에 매혹시키는 도약을 즐긴다. 물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도약을 만들어놓은 책을 애써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눈으로 책을 본다. 이미 마흔이 넘은 사람이다. 이미 삶의 웬만한 구석들은 혀로 핥아본 사람이다. 저자의 권위에 눌려 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해한 것을 생활 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바쁜 일인데 언제 그들의 중언부언을 들어줄 시간이 있겠는가?

 

273 단칼에 내 심장을 찌르지 못하는 자들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273 나는 살고 싶다. 삶만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변모의 예술이다. 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 시작할 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74 나는 모든 배움을 삶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삶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고 소설이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경영도 아니고 이윽고 삶도 아니다.

 

275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은 책은 보지 않는다. 오직 마음이 가는대로 읽는다. 글을 쓰는 스타일도 자유롭다. 논문처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규정한 형식을 준수해야 한다. 지적 훈련의 어느 과정은 그래야 한다고 강변할 수 이 있고 옳을 지도 모른다. 사회적 필요성과 자격의 취득이 목적인 경우는 그들의 위엄과 전통을 따라야 한다. 힘을 그들에게서 오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다. 이때 지적 작업은 즐거운 산책이 된다.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276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허물을 벗을 줄 모르는 뱀은 죽어버린다. 생각을 바꿀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신들은 이미 정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이었다.

 

277 자기처형 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자기변화로부터 스스로에게 반대하고 자신의 적이 되려는 데서 그의 기쁨이 생겨났다.

 

281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때문이다.

 

281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경영은 가능할까?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 철학은 가능할까?

 

282 혁명은 늘 하루를 바꿔줌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283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기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283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말들어 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284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새벽에 쓴다. 두 시간쯤 쓰면 지친다. 이 피곤이 나를 살게 해준다.

 

285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 과정이다.

 

286 나는 경영학과 인문학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시킴으로써 훌륭한 휴식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 냉정하고 가혹한 경영 속으로 뜨거운 김이 솟구치는 인문학적 유산을 배치시킴으로써 돈으로 피폐한 영혼과 벌거벗은 몸을 돌아볼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학문적 관심사이다. 그것은 현실세계 속으로 꿈을 침투시키는 작업이었다.

 

286 나는 나에 대해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이 표현을 소설가 최인훈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287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때때로 무리 속에 있지만 그들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그가 묵묵하다면 더욱 그렇다.

 

288 나를 닦아 선비와 같고 무사와 같아진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수신의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자제와 절제라는 방법보다는 내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Let it go! Let it go! 둑을 세워 마음의 흐름을 모아두지 않고 그것이 흐르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선하고 아직 그 선함을 보조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생겨나는 열정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 커다란 파도 같은 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288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 철학, 이것이 바로 내 학습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한 줄기를 이룬다. 또 하나의 줄기는 변화의 기술이다. 나는 이 테마 속에 조직의 진단부터 조직의 변화 모델로 이어지는 기술을 담으려고 한다. 변화의 철학과 기술, 이 두 개의 축을 나에게 적용해봄으로써 변화경영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아마 내 50대는 변화경영의 예술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이 될 것이다.

 

288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는 딛고 나일 수 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11장 일

내가 일하는 방법 /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 / 성공의 비결 / 유일한 사람 / 청중이 듣고 싶은 강연 / 나의 역할 / 변화의 주체가 되는 길 / 꽃씨와 불씨

 

294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 소명은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깨워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자아경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10년마다 기록되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나의 개인적 역사이며, 나를 소재로 한 소설이며, 나에 대한 연구보고서이다.

 

295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나는 물결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 물결은 무수한 반복이 아니라 무수한 변화이다. ‘’

 

297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 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걸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품질기준이다. 지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 원칙이다.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읻. 하루를 즐길 수 있으면 훌륭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의 물결로서,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사는 것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목적이다.

 

하루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나의 두번째 커리어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르네상스를 바랐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에서 과감한 전환을 하고 싶었다.

 

299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299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것들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사업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299 모방할 때의 요령이 두 가지라는 점에서도 사업과 글쓰기는 일치한다. 얼마나 많이 모방하느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당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가 어렵다.

 

300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300 모방의 또 하나의 요령은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다라는 노회한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다. 많이 보고 많이 감동하는 것은 사업이든 글쓰기든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한 근면한 배움의 요결이다.

 

300 글쓰기는 또한 혁명이다. 모방만 가지고는 좋은 글쓰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300 창조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창의적 발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301 세상을 살며 그것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그 안에 키워내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훌륭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배움과 학습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자아경영은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지는 수련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 듯 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책을 읽고 감동적이 곳을 골라내어 내 상식으로 걸러 재편하는 데 꽤 능숙하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그것들을 재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작업 역시 즐긴다. 책을 볼 때 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집중한다. 소설이나 시를 뒤적이거나 역사서를 보거나 전문 서적을 읽을 때 내 주제는 늘 변화의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303 내 전문분야는 변화경영이다. 경영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변화라는 주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그리고 기업체에서 전문성을 쌓거나 경영 컨설턴트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 가운데 글로 자신을 표현할 만한 사람들은 더욱 드물다.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이 즐겨 읽고 실천할 수 있도록 된장 풀고 고추장 넣어 먹을만하게 끓여준다는 생각은 시도할 만한 일이다.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어내었다.      

 

304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304 강점은 꿈을 이루는 도구 같은 것이다. 어떤 꿈이든 그것을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적절한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사나운 괴물을 퇴치해야하는 영웅들이 신으로부터 빌린 날개달린 신발이며, 뚫리지 않는 방패이며, 잘 드는 칼과 같은 것이다.

 

304 자신의 강점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기질이다.

 

305 세계를 함께 할 사람을 고르는데 까다롭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다.

 

305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특히 자신의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직업은 저술가, 대학교수, 예술인, 카운슬링 또는 컨설팅이다.

나는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지금의 나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306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306 나를 깨우는 일에 능숙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자기를 깨우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수신이 이윽고 가정과 공동체로 스스로를 확장하게 된다.

 

306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정의이다.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약점이나 장애로 여기는 것들이 얼마든지 강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남과 다르다는 차이를 이용하여 성공을 거두어낸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빛이다. 반딧불이든 커다란 등불이든, 그들은 우리에게 늘 빛을 던져준다.

 

307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은 세상과의 불화를 의미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처음에는 규제하고 강압하며 표준을 바라는 세상과의 싸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원칙이 통용되는 자신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 세계를 침범하려는 일반의 세계, 군주의 세계와의 오랜 싸움을 전제로 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307 나는 멋진 싸움꾼이 아니다. 싸움꾼이기에는 상처를 쉽게 받는 선천적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쉽게 물러서는 타입은 아니다. 나를 키워준 것은 오히려 약한 마음이 늘 얻어 오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

 

310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는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 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311 나는 이미 성공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내 언어로 고쳐 쓴 쪽지에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는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로 가기에도 숨 차다. 다른 것들을 넘겨다 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312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312 유일함을 수련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아주 깊은 산중에서 잠에 빠져 있기 십상이다. 게으르고 잠을 즐기며 눈치를 보고 비겁하고 교활하지만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견하지도 못하고 발휘할 줄도 모르는 미숙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 내면의 영웅이 스스로 일어나 초려에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312 스스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구곡양장의 길을 따라 여러 번 삼고초려의 극진함을 보여야 한다. 인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만에 하나 자기 스스로를 얻을 수 있다면천하에 자신을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다.

 

313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4 나는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분노는 억제된 불길이다. 나는 때때로 침울해 보이거나 무거워 보였다. 분노를 적의 없는 상태로 감출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스스로에게 물기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제대로 타오를 수 없었다. 가득한 여기에 시달리다가 결국 불문을 열고 굴뚝을 달아 불길이 훨훨 타오르도록 했다. 이것이 나를 살려 주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분노를 자극했다. 나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분노를 키웠다. 이것이 내가 내 속의 분노를 길들이는 방식이었다. 내 속의 욕망이라는 불길이 자 타오르는 동안 나는 마음의 평화를 즐길 수 있었다.

 

315 나는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다. 늘 쉽게 상처를 입는 편이다. 예민하기 때문에 대상을 잘 골라야 한다. 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대신에 책으로부터 배우는 방식을 구했다.

 

315 나는 그들을 읽는다기 보담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사유를 기초로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나는 옷을 사서 치장하는 대신 조금 묵직한 정신적 허영을 즐겼다.

 

317 나는 글을 쓸 때 나에게 주술을 건다.

 

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싸여 있는 씨앗이다. 그것은 적대감이라는 위액과 소화액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발아할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열정이란 심장과 감정과 창자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자신이 되는 자유는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켠 허파의 외침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감동이며 환성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무료와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르 인생의 재료로 삼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을 반죽하고 주무르며 데어내고 빋어낸 후 색칠하여 자시 세상에 내놓게 도와주어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아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해낸 사람들이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내 글은 강력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19 쏟아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된다.

 

320 나는 특정한 강의안이나 패키지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책을 쓰는 것의 장점은 그 내용의 핵심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꺼내 쓸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때그때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적합하게 사용할 만한 내용을 스토리보드 위에 간단히 정돈한다.

 

322 강연은 결국 전달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이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도 예술가가 자신을 표현할 때의 자세와 유사한 몰입이 있어야 한다. 강연자가 몰입하지 못하는 강연은 좋은 강연이 아니다.

 

331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모교,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 적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잇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340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른 것이 잘하지 못할 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는다. 못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342 막막할 때,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무수한 군중이 있지만 내 말을 듣고 자신의 갈을 가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속에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그 속에 불씨 하나를 던져 넣는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타오르는 것을 보며 즐긴다.

내가 하는 일은 또한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의 꽃씨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다.

 

343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다.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세 개의 에필로그

 

357 마흔, 하나의 세계가 닫히면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위대한 시기였다. 

 

363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363 1인 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반드시 먼저 본업으로 고객을 도와야 한다. 돈만 추구하는 기업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의 일부를 사회기금으로 내놓았다고 해서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돈이 면죄부의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본업으로 사회를 도와야 그 일 자체로 의미와 보람이 된다.   

            

평설 내 인생의 역할모델 구본형 따라 하기

 

366 나는 언제나 혼자 놀 줄 아는 사람에게 끌린다. 학벌이나 사회적인 위치에 대한 관념에서 자유로운 대신, 혼자 놀 줄 아는냐의 여부가 내가 사람을 차별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368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삶은 마흔세 살 부터이다. 마흔 소문에 따르면 남자들이 가장 통과하기 어렵다는 시기이다. 여자들의 서른 살에 버금가는 모양이다.   

 

370 나도 늘 혼자 노는 편이다. 낯가림이 심하고,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하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 점을 서운해 한 적도 없다. 혼자 놀면 되니까. 그런데 나의 혼자 놀기는 어ㅓ느 곳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여기서 구본형의 방법론을 따라해볼 필요성이 대두된다.

 

372 구본형의 방법론 중에서 아직 단식은 해보지 못했지만 단지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이다.

 

372 그대신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기로은 구본형의 주된 재료이다.

 

373 나는 나의 이야기의 효용을 믿는다. 아니 신봉한다.

 

377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고 하고 있는 일을 정확학일치시킨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답기 까지 하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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