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구본형

개인과

/

/

  • 구본형
  • 조회 수 6048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2년 12월 25일 16시 15분 등록
좋은 생각 5월
우리, 있는 그대로 이미 즐거운 존재


가벼운 검진이 있어 병원에 갔다. 늘 복잡하고 붐비는 곳이 병원이다. 차례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제 내 이름을 부를 지 모른다. 잘 살고 있는데, 공연히 몇 가지 검사를 받아 보자는 처의 말을 듣고 따라오긴 했지만, 병원에 와서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나이들어 병원에 가면 좋은 소리 들을 게 없다. 탈이 난 것임이 밝혀져 입원이라도 하게되면, 그때 부터는 환자로서 수감 상태에 들어 가게 된다. 다른 사람의 보호 아래 들어 간다는 것처럼 화나는게 없다. 정상을 그리워하는 비정상들의 집합소, 그게 병원인 것 같다.

내시경실에 들어 갔던 부인 하나가 휴지로 입을 막고 나오는데 피가 사방에 묻어 있다. 의사가 따라나와 급히 응급실로 옮기도록 조치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긴장하는 듯 했다. 아직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밥 한 수저에 잘 익은 김치 한 조각 얹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상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행복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병원이 즐겁지 않은 곳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병원은 우리가 정상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이미 즐거운 존재 라는 것을 일깨우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오만을 치료하는 곳, 신을 발견하는 곳, 우리가 고기덩어리일 수 있다는 것, 돈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어떤 깨우침과 같이 있다. 위험과 기회는 늘 함께 손 잡고 다닌다. 이별은 사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불편하지 않으면 편리함을 알 수 없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이 날아갈 듯 개운 하다. 그리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병원의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무료한 기다림의 시간을 이런 생각들을 하며 보내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병원은 그리 나쁜 곳은 아닌 듯도 하다.

우리가 가끔 아플 때 깨우치게 되는 일상의 아름다움은 건강이라는 소중한 것을 내 놓고 배우게 되는 아주 비싼 교훈들이다. 감기와 몸살 조차도 우리가 조금 쉬어야 한다는 것을 잊은 대가임을 깨닫게 해 준다. 다행이 우리들은 아무 탈도 없었다. 벌써 점심 때가 다 되었다. 함께 나오다 복집에서 시원한 지리를 시켜 먹었다. 참 맛있었다. 한끼만 굶어도 밥은 즐거움이 된다.
IP *.208.140.138

프로필 이미지
2016.01.10 16:42:43 *.212.217.154

있는 그대로 즐거울 수 있기를,

손님 모두가 즐거움으로 받아드리기를,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기를.


프로필 이미지
2017.10.14 14:35:40 *.212.217.154

병원에서 행복의 본질을 보는 역설처럼,

행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하지요.

행운의 상징인 네입 크로버를 찾기위해

행복의 상징인 세입 크로버를 짖밟아 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2020.11.18 11:53:15 *.139.108.201

삶의 어두운 곳에서

반대의 가치를 찾는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어두운 하늘 만큼

질병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요즘,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3 변화의 주술 [22] 구본형 2010.06.29 7743
122 위험한 탐험- 카를 구스타프 융, 생각탐험 23 [4] 구본형 2010.07.04 6063
121 그녀를 다루는 법 - 카를 구스타프 융 2, 생각탐험 24 [3] 구본형 2010.07.05 8698
120 아프리카로 가자, 순수한 인류의 소년시대로 - 카를 구스타프 융, 생각탐험 26 [7] 구본형 2010.07.07 9171
119 올해는 제발 떠나시게, 미루지 말고 [8] 구본형 2010.07.13 7491
118 오늘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6] [1] 구본형 2010.07.15 8462
117 놓아두자, 인생이 달려가는 대로 [9] 구본형 2010.07.19 8532
116 두 번 의 여행 [4] 구본형 2010.07.21 6556
115 나의 독서법 - SBS 와 함께하는 독서의 기쁨 캠페인 [12] 구본형 2010.07.22 8830
114 변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 [8] 구본형 2010.07.29 7743
113 아침에 비 [8] 구본형 2010.08.02 7032
112 나눔의 경영학 [7] 구본형 2010.08.05 7284
111 델피에서 - 배우려는 자는 무지에 통곡해야한다 [6] 구본형 2010.08.19 7157
110 산토리니 당나귀가 가르쳐준 소통의 원칙 [5] 구본형 2010.08.26 7019
109 매니 이야기- 회심(回心), 메타노이아(metanoia), 위대한 정신적 전환 [4] 구본형 2010.08.30 7441
108 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14] 구본형 2010.08.31 11942
107 젊음, 꿈, 투지 [7] 구본형 2010.09.08 7479
106 과잉 책임감이라는 덫 [2] 구본형 2010.09.13 7260
105 먼저 나를 따르라 [6] 구본형 2010.09.14 6695
104 박노진의 책 추천사 - [4] 구본형 2010.09.15 7641